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영웅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무리 미천한 출신의 사람이라도 우연의 우연이 겹쳐 전설의 무기를 얻고, 덤으로 미녀 마법사와 동료가 되어 (그 대상이 엘프라면 더더욱 좋다) 다른 믿음직한 동료들과 긴 여행을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젊은 영웅 기사의 영예를 얻은 다음, 최종 목표인 '세계 정복을 꿈꾸는 마왕'을 물리친 후, 인질이 되었던 공주를 구출하고, 삼각관계에 빠져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이스한 설정을 기대하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전설의 무기는커녕 그 흔해빠진 롱소드 하나와도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고 있는 소망이기에, 지금 내가 보고있는 이런 삼류 소설이 팔릴 수 있는 것이겠지.



"화르륵"



마지막장까지 눈여겨 볼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허구 투성이의 이야기책이 내 손에서 불타올랐다. 어쩌다 이런 물건이 내 서재에 끼어들어 왔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나는 한줌의 잿더미로 변해버린 책의 흔적을 날려보낸 후, 낭비해버린 시간을 되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곧바로 책상 앞으로 다가앉아 펜을 들었다.



'마스터 N의 기록'



내가 겪었던 모든일들을 기록해놓은 전투의 기록.

지금까지 봤던 시간 때우기용 소설과는 다른, 그야말로 사실의 증언.

수많은 사람들과 전쟁을 치루어 왔고,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만

이 책이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단 하나.



얼뜨기 기사와 엘프 마법사 정도가 마왕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만만하지가 않다는 것 뿐이다.



돈 많은 녀석이 더욱 더 많은 돈을 벌기 마련이고, 더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녀석일수록 전설을 만들어내기가 그만큼 쉬운 법이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위로 올라가야 하고, 비록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의 타격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땅에 얽매여 아둥바둥거리는 것은 죽기보다 싫기에, 우리들 - 지옥에서 환생한 아크메이지들은 끊임없이 이 땅을 피로 물들이며 세상을 마법과 전쟁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결국엔 모두가 무(無)로 돌아간다는 당연한 결말에 직면하게 되겠지만.

그 당연한 결말을 피하기 위해 아크메이지들은 한층 더 자신의 국력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간다.



"지금 와서 이렇게 생각해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나는 상념을 떨치고 펜을 움직여 내가 겪었던 일들을 또다시 적기 시작했다.



" 오늘도 여전히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