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링커 1979년 - 작가 - 요한(windkju)
글 수 29
저번화 연재에서 빼먹은 부분 때문에 이번에 연재분량이 좀 많습니...다.. 죄송해요.
-------------------------------------------------------------
폐곡선
6.
드리트리는 실수했다. 다비드의 별을 너무 과신했다. 약을 먹은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인내심을 시험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불구덩이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 같은 짓이다. 어두운 눈밭은 스산했었다. 가끔 길잃은 늑대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혼란으로 가득찬 불투명한 우유빛의 세계에 붉은 선을 그었다.
드미트리를 먹었다.
제레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현실을 바라보았다. 요셉은 여전히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니나는 나를 따라 열차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나의 등을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 두려웠다. 요셉의 말이 옳았다. 제레미는 나치였고, 악마였다. 그는 인간을 먹었다.
너무나 적나라한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 스며 들어왔다. 생각을 공유하는 약이라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각의 태반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도 나의 생각을 알 것이다.
나는 설계에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오랜 노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기울어진 열차칸 안으로 들어서며 필요한 부속품들을 떠올렸다. 열차칸 안은 며칠전의 아수라장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필요한 부속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물건을 하나 찾아낼때마다 설계도는 수십번씩 바뀌었다. 완전히 적합한 재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피스톨 운동 하나를 하기 위해서 수십가지의 다른 재료들을 구해야 했다. 그렇지만 끝없이 상상했다. 설계도가 바뀌어갈때마다 점점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가능했다.
「기쁜가봐?」
지켜보던 니나가 불쑥 말해왔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앉아있는 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아까부터 너의 표정. 웃고 있었어.」
「그렇습니까?」
「그래.」
나는 의자밑의 부속지를 뜯어내다가 문득 변명을 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웃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기뻐서 였을까. 몽골로 갈 수 있어서? 아니면 기계 장치를 만지고 있어서? 어떤 쪽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변명했다.
「아마도 몽골로 갈 수 있게 되어서 기쁜거겠지요.」
「자신의 감정까지 가정형으로 말하는 구나. 아니야. 내가 보기에 너는 창조에 기뻐하고 있어.」
손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니나를 바라보았다. 니나는 예의 웃음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상기된 그녀의 얼굴은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소녀도 아니고, 처녀도 아닌 중간적인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려 다시 고개를 숙여 하던 일에 전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하. 부정하는 구나. 그래도 난 알고 있어. 넌 지금 창조에 기뻐하고 있어. 만들어 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 새로운 것. 이전에 없던 것. 그런 것을 깨우는 것을 넌 좋아해.」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니나는 어깨에 올려둔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어쩐지 그것은 어깨를 풀어주는 것만 같았다. 너무 경직되지 말아라.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니나는 슬며시 나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나는 그녀의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소리가 밖까지 들릴 것 같다. 그녀는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너였으니까.」
「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후회했다. 순간적으로 니나의 입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슬며시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그녀의 깊은 속눈썹이 동공에 드리운 그림자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발 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이 투명하게 비쳐질 것만 같은 순간. 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
「‘인류는 모두 이어져 있다.‘」
꿀꺽.
침삼키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주책없는 심장은 떨어져 나가버린 것 같다. 아니 차라리 뜯어내 버렸으면.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가에서 길잃은 물기가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멈췄다. 그녀에게 키스하려한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에서 물기가 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눈물 방울이 그녀의 앙다문 턱에서 송글 맺혔다. 그리고 뚝. 나의 눈앞에서 떨어졌다.
「내가 그 인류의 끝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열차밖으로 뛰쳐나갔다. 열려진 열차문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슬픔을 감싸줄 수 없었다. 그녀를. 그녀를. 나는 무력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7.
위험은 도둑처럼 다가왔다.
나는 열차칸에 앉아 재료들을 이리저리 조립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방속에 챙겨왔던 몇가지 부속들이 도움이 되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도구들을 챙겨왔던 것일까.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서 떼온 부속과 천장에서 벗겨낸 철판을 이리저리 연결하면서 나는 고양된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그것이 기계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쁜 것이었다. 굳이 생물의 창조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나는 분명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의 설계도를 따라 만드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인력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가속엔진으로 터뜨리게 만들려고 하는 물건은 거대한 새총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탄성력이 아니라 인력을 이용한다는 것의 차이뿐이었다.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완성품을 들어 보았다.
나는 그 물건에 고스란히 홀러를 꽂아넣었다. 이로써 홀러는 반대로 움직이게 된다. 공간을 열지않고 공간을 깨는 힘만을 이용한다. 나는 그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 순간 요셉이 고함을 질렀다.
「피해!」
순간 채찍같은 나뭇가지가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피할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나의 얼굴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피였다. 그 순간 니나가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뭐하는 거야! 바보같이!」
「무,무슨 일입니까?」
니나는 나의 물음을 무시하며 나의 몸을 끌어당겼다. 덕분에 눈밭에 쳐박혔지만, 감사해야 했다. 차라락! 순간 거센 나뭇가지가 내가 있던 열차문에 부딪혔다. 쇠로 된 열차가 움푹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니나가 대답했다.
「링마스터야. 그녀가 돌아왔어.」
두려움이 들었다.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바라보았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뻗어온 나뭇가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숲의 끝에는 까닥거리는 수많은 집게발을 가진 마차가 움찔거리며 다가왔다. 옥토퍼스. 문어라는 이름을 가진 마부석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명의 예의 마부였고, 또 한명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링마스터의 손가락이 불을 뿜었다.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순간 나는 죽음의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다. 예전에 저것이 나의 몸을 태웠다. 나는 기억했다. 불꽃이 몸을 휩싸고 돌때 링마스터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광기에 어린 눈을, 광기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서워. 두려워. 죽을꺼야. 죽고 말꺼야. 불꽃으로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꺼야.
열기에 휘말린 눈보라가 순간적으로 걷혔다. 순식간에 녹아버린 눈보라는 빗방울로 변해서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눈보라의 장막이 걷힌 것처럼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때. 빗방울을 뚫고 거대한 선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에 젖은 선미는 물기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네오나치의 비행선이었다.
순간 나뭇가지 하나가 세차게 나의 머리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나뭇가지는 나를 움켜쥐려고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꽂혔다. 나는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의 예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 소리를 들었다.
-째깍.
시계소리였다. 요셉은 거세게 팔을 휘둘러 나뭇가지를 후려쳤다. 놀랍게도 팔목두께의 나뭇가지가 그대로 바스라져 버렸다. 잔가지를 쳐내듯 다가오는 나뭇가지들을 모조리 바스라뜨린 요셉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외쳤다.
「조슈! 완성되었습니까!」
「네,네?」
「완성되었냔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음이 다가왔는데 무엇이 완성되었다는 것인가. 죽음의 완성? 그렇다. 죽을 수 밖에 없다.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대로 죽게 될 것이다. 오오. 죽음으로 완성되는 미학이여.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요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요셉은 혀를 차며 나를 움켜쥐려 했다. 나는 그가 나를 부셔버릴거라고 생각했다. 몸을 피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 대화할 수 없었다. 금세 다가온 나뭇가지들이 요셉을 노리고 날아왔다.
-째깍.
요셉은 다시 나뭇가지를 상대하려 몸을 돌렸다.
「조슈! 정신차려!」
니나가 소리쳤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 가득한 무엇인가를 보았다. 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거지? 저 표정은 도대체 무엇이지? 어떤 감정? 어떤 생각?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 싫다는 것일까. 싫다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나에게 실망했다는 것일까.
찰싹.
나는 얼얼한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니나는 세게 후려친 탓인지 손을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다. 알싸한 아픔이 느껴졌다. 왜 나는 맞아야 했던 것인가.
「도대체, 한심하기 짝이 없군.」
「네?」
「너는 이대로 죽어도 좋단 말이야? 너는 해야할 일이 있잖아!」
해야 할 일? 그랬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인간이 되어야 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인간이 되지 못한다.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망연중에 주위를 바라보았다. 요셉은 나뭇가지와 연신 싸우고 있었다. 그의 힘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오래도록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제레미는? 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제레미를 찾았다. 인력의 힘인지 금방 눈밭에 숨어있는 제레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움크리고 주위를 부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상태였을 테다.
시간내에 할 수 있을까? 옥토퍼스를 바라보았다. 집게발을 가진 그것은 금방 도착하게 될 것이다. 요셉의 강한 반발탓에 속도를 줄이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나는 손에 완성품을 쥐었다. 아직 이름은 짓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
니나가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차를 돌아보았다. 선로에서 기울어진 열차칸은 움직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각도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몸을 날려 열차칸의 뒤편으로 달려갔다. 열차칸의 후미는 예전에 본적이 있었다. 그것에는 고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정확한 각도. 정확한 설치가 필요하다. 나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후미에 완성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몽골로 가야 한다. 빨리!
어느새 니나도 나를 따라 달려왔다. 그녀는 나의 손놀림을 보면서 말했다.
「빨리해! 요셉은 얼마 버티지 못해.」
「알았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완성품은 쉽게 열차의 후미에 설치되었다. 미리 후미의 모양까지 계산에 넣었던 탓이다. 나는 완전히 열차에 동화된 그것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다 됐다!」
「좋아! 조슈. 모두를 불러!」
제레미에게 달려갔다. 힐긋 바라보니 요셉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가 다가오는 나뭇가지들을 모조리 바스라뜨리고 있었지만 워낙 수가 많았다. 세차게 후려치는 나뭇가지들을 찍고 치고 부쉈다. 게다가 링마스터가 거의 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보일 것만 같은 거리였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이 반짝일 때마다 하늘에 붉은 화염의 선이 그어졌다. 왜 직접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
제레미를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제레미는 주위를 박탈하며 움크리고 있었다. 누리살에서부터 1년. 도망쳐 나올때 다섯명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먹었다. 식육의 공포 때문에 도망쳐나왔지만, 그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미스 벤자민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다. 도망칠 수 없었다. 언제가는 한명의 인간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제레미의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사람이 있었다.
「일어나! 그녀는 널 죽이지 못해.」
제레미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강한 생각은 그의 정신을 파고들 수 있었다.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강하게 말했다.
「일어나! 그녀는 널 죽이지 못해!」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는 거부할 듯 몸부림을 쳤지만 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투명한 거울처럼 들여다 보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낱낱이 읽어낼 수 있었다. 미스 벤자민의 실험과 그녀가 시도한 실험의 잔혹성을. 그것은 단지 생각을 공유하는 약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생각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공유하게 하는 약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로 만드는 약이었다. 단 한명의 사람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제레미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네가 필요해. 알아? 그러니까 널 죽이지 못해.」
「나,나를 주,죽이지 못해?」
「그래. 그러니까 달아나야 해.」
「다,달아나?」
나는 손가락으로 열차칸을 가리켰다. 제레미는 나의 손가락을 따라 열차칸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나는 그 변화가 맘에 들었다.
「달아나?」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제레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열차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레미를 열차칸으로 보냈다. 이제 요셉을 부를 차례였다. 그러나 순간 망설여졌다. 요셉이 없다면 어떻게 나뭇가지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요셉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막아주는 덕분에 나뭇가지의 공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다. 깨달음은 순식간이었다.
「요셉! 바닥을 쳐요! 바닥을!」
나의 고함소리에 요셉이 잠시 뒤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나를 바라본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들었을까? 그는 다시 바삐 나뭇가지들을 쳐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소리쳤다.
「눈을 치는 겁니다! 눈으로 시야를 가려요!」
나의 외침을 들은 모양이었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의 양손이 강하게 뒤로 당겨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탄환을 장전하는 것 같았다. 눈보라에 그의 몸을 덮은 옷이 흩날렸다. 나는 그의 몸에서 나는 시계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양 주먹이 완전히 뒤로 당겨졌을 때. 나는 환청처럼 그 소리를 들었다.
-탈칵.
태엽이 걸리는 소리같았다.
주먹이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내뻗어졌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땅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이 떨리기 시작할 때, 아주 찰라 시간이 멈추었을 때, 노도와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쿠가가가가각.
눈들이 거센 파도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높이가 가히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 눈의 폭풍이 시야의 전부를 가려버렸다. 나는 입을 쩍 벌리며 가공할 만한 위력에 감탄했다.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에서 폭풍을 만들어낸 요셉은 그것에 무감동하며 몸을 돌렸다. 그가 뒤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갑시다!」
고개를 끄덕이고 열차칸으로 달려갔다.
-----------------------------------
진하게 쓰여지는 글씨가 여기선 구현이 안되는군요.
한글 파일이 자동으로 텍스트로 바뀌는 건가;;;
아 참고로 현재 쓰고 있는 분량은 원고지 분량 645매로 곧 완결입니다. 대충 750매쯤에서 완결이 날 것 같군요.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
폐곡선
6.
드리트리는 실수했다. 다비드의 별을 너무 과신했다. 약을 먹은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인내심을 시험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불구덩이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 같은 짓이다. 어두운 눈밭은 스산했었다. 가끔 길잃은 늑대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혼란으로 가득찬 불투명한 우유빛의 세계에 붉은 선을 그었다.
드미트리를 먹었다.
제레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현실을 바라보았다. 요셉은 여전히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니나는 나를 따라 열차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나의 등을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 두려웠다. 요셉의 말이 옳았다. 제레미는 나치였고, 악마였다. 그는 인간을 먹었다.
너무나 적나라한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 스며 들어왔다. 생각을 공유하는 약이라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각의 태반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도 나의 생각을 알 것이다.
나는 설계에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오랜 노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기울어진 열차칸 안으로 들어서며 필요한 부속품들을 떠올렸다. 열차칸 안은 며칠전의 아수라장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필요한 부속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물건을 하나 찾아낼때마다 설계도는 수십번씩 바뀌었다. 완전히 적합한 재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피스톨 운동 하나를 하기 위해서 수십가지의 다른 재료들을 구해야 했다. 그렇지만 끝없이 상상했다. 설계도가 바뀌어갈때마다 점점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가능했다.
「기쁜가봐?」
지켜보던 니나가 불쑥 말해왔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앉아있는 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아까부터 너의 표정. 웃고 있었어.」
「그렇습니까?」
「그래.」
나는 의자밑의 부속지를 뜯어내다가 문득 변명을 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웃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기뻐서 였을까. 몽골로 갈 수 있어서? 아니면 기계 장치를 만지고 있어서? 어떤 쪽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변명했다.
「아마도 몽골로 갈 수 있게 되어서 기쁜거겠지요.」
「자신의 감정까지 가정형으로 말하는 구나. 아니야. 내가 보기에 너는 창조에 기뻐하고 있어.」
손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니나를 바라보았다. 니나는 예의 웃음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상기된 그녀의 얼굴은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소녀도 아니고, 처녀도 아닌 중간적인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려 다시 고개를 숙여 하던 일에 전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하. 부정하는 구나. 그래도 난 알고 있어. 넌 지금 창조에 기뻐하고 있어. 만들어 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 새로운 것. 이전에 없던 것. 그런 것을 깨우는 것을 넌 좋아해.」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니나는 어깨에 올려둔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어쩐지 그것은 어깨를 풀어주는 것만 같았다. 너무 경직되지 말아라.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니나는 슬며시 나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나는 그녀의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소리가 밖까지 들릴 것 같다. 그녀는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너였으니까.」
「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후회했다. 순간적으로 니나의 입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슬며시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그녀의 깊은 속눈썹이 동공에 드리운 그림자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발 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이 투명하게 비쳐질 것만 같은 순간. 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
「‘인류는 모두 이어져 있다.‘」
꿀꺽.
침삼키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주책없는 심장은 떨어져 나가버린 것 같다. 아니 차라리 뜯어내 버렸으면.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가에서 길잃은 물기가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멈췄다. 그녀에게 키스하려한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에서 물기가 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눈물 방울이 그녀의 앙다문 턱에서 송글 맺혔다. 그리고 뚝. 나의 눈앞에서 떨어졌다.
「내가 그 인류의 끝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열차밖으로 뛰쳐나갔다. 열려진 열차문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슬픔을 감싸줄 수 없었다. 그녀를. 그녀를. 나는 무력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7.
위험은 도둑처럼 다가왔다.
나는 열차칸에 앉아 재료들을 이리저리 조립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방속에 챙겨왔던 몇가지 부속들이 도움이 되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도구들을 챙겨왔던 것일까. 마치 이런 일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의자에서 떼온 부속과 천장에서 벗겨낸 철판을 이리저리 연결하면서 나는 고양된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그것이 기계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쁜 것이었다. 굳이 생물의 창조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나는 분명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의 설계도를 따라 만드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인력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가속엔진으로 터뜨리게 만들려고 하는 물건은 거대한 새총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탄성력이 아니라 인력을 이용한다는 것의 차이뿐이었다.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나의 완성품을 들어 보았다.
나는 그 물건에 고스란히 홀러를 꽂아넣었다. 이로써 홀러는 반대로 움직이게 된다. 공간을 열지않고 공간을 깨는 힘만을 이용한다. 나는 그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 순간 요셉이 고함을 질렀다.
「피해!」
순간 채찍같은 나뭇가지가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피할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나의 얼굴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피였다. 그 순간 니나가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뭐하는 거야! 바보같이!」
「무,무슨 일입니까?」
니나는 나의 물음을 무시하며 나의 몸을 끌어당겼다. 덕분에 눈밭에 쳐박혔지만, 감사해야 했다. 차라락! 순간 거센 나뭇가지가 내가 있던 열차문에 부딪혔다. 쇠로 된 열차가 움푹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니나가 대답했다.
「링마스터야. 그녀가 돌아왔어.」
두려움이 들었다.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바라보았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뻗어온 나뭇가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숲의 끝에는 까닥거리는 수많은 집게발을 가진 마차가 움찔거리며 다가왔다. 옥토퍼스. 문어라는 이름을 가진 마부석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명의 예의 마부였고, 또 한명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링마스터의 손가락이 불을 뿜었다.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순간 나는 죽음의 공포에 몸이 얼어붙었다. 예전에 저것이 나의 몸을 태웠다. 나는 기억했다. 불꽃이 몸을 휩싸고 돌때 링마스터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광기에 어린 눈을, 광기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서워. 두려워. 죽을꺼야. 죽고 말꺼야. 불꽃으로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꺼야.
열기에 휘말린 눈보라가 순간적으로 걷혔다. 순식간에 녹아버린 눈보라는 빗방울로 변해서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눈보라의 장막이 걷힌 것처럼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때. 빗방울을 뚫고 거대한 선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에 젖은 선미는 물기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네오나치의 비행선이었다.
순간 나뭇가지 하나가 세차게 나의 머리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나뭇가지는 나를 움켜쥐려고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꽂혔다. 나는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의 예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 소리를 들었다.
-째깍.
시계소리였다. 요셉은 거세게 팔을 휘둘러 나뭇가지를 후려쳤다. 놀랍게도 팔목두께의 나뭇가지가 그대로 바스라져 버렸다. 잔가지를 쳐내듯 다가오는 나뭇가지들을 모조리 바스라뜨린 요셉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외쳤다.
「조슈! 완성되었습니까!」
「네,네?」
「완성되었냔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음이 다가왔는데 무엇이 완성되었다는 것인가. 죽음의 완성? 그렇다. 죽을 수 밖에 없다.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대로 죽게 될 것이다. 오오. 죽음으로 완성되는 미학이여.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요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요셉은 혀를 차며 나를 움켜쥐려 했다. 나는 그가 나를 부셔버릴거라고 생각했다. 몸을 피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 대화할 수 없었다. 금세 다가온 나뭇가지들이 요셉을 노리고 날아왔다.
-째깍.
요셉은 다시 나뭇가지를 상대하려 몸을 돌렸다.
「조슈! 정신차려!」
니나가 소리쳤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 가득한 무엇인가를 보았다. 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거지? 저 표정은 도대체 무엇이지? 어떤 감정? 어떤 생각?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보기 싫다는 것일까. 싫다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나에게 실망했다는 것일까.
찰싹.
나는 얼얼한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니나는 세게 후려친 탓인지 손을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다. 알싸한 아픔이 느껴졌다. 왜 나는 맞아야 했던 것인가.
「도대체, 한심하기 짝이 없군.」
「네?」
「너는 이대로 죽어도 좋단 말이야? 너는 해야할 일이 있잖아!」
해야 할 일? 그랬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인간이 되어야 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인간이 되지 못한다.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망연중에 주위를 바라보았다. 요셉은 나뭇가지와 연신 싸우고 있었다. 그의 힘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오래도록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제레미는? 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제레미를 찾았다. 인력의 힘인지 금방 눈밭에 숨어있는 제레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움크리고 주위를 부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상태였을 테다.
시간내에 할 수 있을까? 옥토퍼스를 바라보았다. 집게발을 가진 그것은 금방 도착하게 될 것이다. 요셉의 강한 반발탓에 속도를 줄이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나는 손에 완성품을 쥐었다. 아직 이름은 짓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
니나가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차를 돌아보았다. 선로에서 기울어진 열차칸은 움직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각도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몸을 날려 열차칸의 뒤편으로 달려갔다. 열차칸의 후미는 예전에 본적이 있었다. 그것에는 고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정확한 각도. 정확한 설치가 필요하다. 나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후미에 완성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몽골로 가야 한다. 빨리!
어느새 니나도 나를 따라 달려왔다. 그녀는 나의 손놀림을 보면서 말했다.
「빨리해! 요셉은 얼마 버티지 못해.」
「알았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완성품은 쉽게 열차의 후미에 설치되었다. 미리 후미의 모양까지 계산에 넣었던 탓이다. 나는 완전히 열차에 동화된 그것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다 됐다!」
「좋아! 조슈. 모두를 불러!」
제레미에게 달려갔다. 힐긋 바라보니 요셉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가 다가오는 나뭇가지들을 모조리 바스라뜨리고 있었지만 워낙 수가 많았다. 세차게 후려치는 나뭇가지들을 찍고 치고 부쉈다. 게다가 링마스터가 거의 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보일 것만 같은 거리였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이 반짝일 때마다 하늘에 붉은 화염의 선이 그어졌다. 왜 직접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
제레미를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제레미는 주위를 박탈하며 움크리고 있었다. 누리살에서부터 1년. 도망쳐 나올때 다섯명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먹었다. 식육의 공포 때문에 도망쳐나왔지만, 그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미스 벤자민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다. 도망칠 수 없었다. 언제가는 한명의 인간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제레미의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사람이 있었다.
「일어나! 그녀는 널 죽이지 못해.」
제레미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강한 생각은 그의 정신을 파고들 수 있었다.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강하게 말했다.
「일어나! 그녀는 널 죽이지 못해!」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는 거부할 듯 몸부림을 쳤지만 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투명한 거울처럼 들여다 보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낱낱이 읽어낼 수 있었다. 미스 벤자민의 실험과 그녀가 시도한 실험의 잔혹성을. 그것은 단지 생각을 공유하는 약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생각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공유하게 하는 약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로 만드는 약이었다. 단 한명의 사람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제레미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네가 필요해. 알아? 그러니까 널 죽이지 못해.」
「나,나를 주,죽이지 못해?」
「그래. 그러니까 달아나야 해.」
「다,달아나?」
나는 손가락으로 열차칸을 가리켰다. 제레미는 나의 손가락을 따라 열차칸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나는 그 변화가 맘에 들었다.
「달아나?」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제레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열차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레미를 열차칸으로 보냈다. 이제 요셉을 부를 차례였다. 그러나 순간 망설여졌다. 요셉이 없다면 어떻게 나뭇가지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요셉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막아주는 덕분에 나뭇가지의 공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다. 깨달음은 순식간이었다.
「요셉! 바닥을 쳐요! 바닥을!」
나의 고함소리에 요셉이 잠시 뒤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나를 바라본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들었을까? 그는 다시 바삐 나뭇가지들을 쳐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소리쳤다.
「눈을 치는 겁니다! 눈으로 시야를 가려요!」
나의 외침을 들은 모양이었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의 양손이 강하게 뒤로 당겨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탄환을 장전하는 것 같았다. 눈보라에 그의 몸을 덮은 옷이 흩날렸다. 나는 그의 몸에서 나는 시계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양 주먹이 완전히 뒤로 당겨졌을 때. 나는 환청처럼 그 소리를 들었다.
-탈칵.
태엽이 걸리는 소리같았다.
주먹이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내뻗어졌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땅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이 떨리기 시작할 때, 아주 찰라 시간이 멈추었을 때, 노도와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쿠가가가가각.
눈들이 거센 파도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높이가 가히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 눈의 폭풍이 시야의 전부를 가려버렸다. 나는 입을 쩍 벌리며 가공할 만한 위력에 감탄했다.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에서 폭풍을 만들어낸 요셉은 그것에 무감동하며 몸을 돌렸다. 그가 뒤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갑시다!」
고개를 끄덕이고 열차칸으로 달려갔다.
-----------------------------------
진하게 쓰여지는 글씨가 여기선 구현이 안되는군요.
한글 파일이 자동으로 텍스트로 바뀌는 건가;;;
아 참고로 현재 쓰고 있는 분량은 원고지 분량 645매로 곧 완결입니다. 대충 750매쯤에서 완결이 날 것 같군요.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긴장감이 바짝바짝 살아있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