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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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남녀노소 등급 상관없이 비디오를 빌려주던 사려깊은 동네 비디오 가게 덕에 일찍 <매드 맥스>시리즈를 접한 뒤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팬이 되었고, 그 영향으로 <폴아웃>을 플레이 할때면 게임 후반부에 아무리 쓸모가 없다 하더라도 가죽옷과 쏘우드오프 샷건은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덤으로 어찌보면 부질없는 '도그밋'을 살리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고...
물론 이제는 그런 시간도 지난지 꽤 되어 추억이 되어갔습니다. 어제 까지는...
아시다시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서브컬쳐계에서는 친숙한 장르입니다. 만화, 영화, 게임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다들 조금씩이나마 경험했을 것이고, 이 분야의 공통적인 특징하면 법과 질서가 사라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상 가운데 꺼져갈 것 같은 인간성을 지켜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는 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누구나 아는 클리셰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매드 맥스>의 새로운 작품이 30년만에 나왔습니다.
현란하고 세련됐지만 원초적인 뭔가가 부족한 요즘 액션물에 대한 대항마라는 극찬이야 이미 널린 리뷰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니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말해보자면 영화는 정말 군더더기가 없고 쉴 틈도 없는 스릴 넘치는 재미라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과감한 생략으로 쓸데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하지 않으며, 과거나 개인사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고, 전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고 즐기게끔 되어 있습니다.(솔직히 당장 눈앞이 산 넘어 산인데 과거가 궁금합니까?)
어찌 보면 단순하고 결말이 눈에 보이는 스토리 구조라도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과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조합으로 흥미를 잃지 않고 스토리에 집중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는 영화였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앞서 말했듯 이런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임에도 클리셰 투성이가 아닌 강렬한 개성들을 갖추었습니다.
전편의 토커터, 휴멍거스의 뒤를 잊는 강력하고 무자비한 독재자 임모탄(3편의 엔티티는 단순 악역은 아니니..., 참고로 배우분이 1편의 그 토커터...)
처음봤을 때는 2편의 웨스처럼 작품 내내 맥스를 개고생 시키는 숙적격인 인물일 걸로 예상했으나..., 사실상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눅스
흔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긴 했으나 사실상 남성관객의 취향에 맞게 그럴듯하게 포장만 되었을 뿐인 섹시한 여전사가 아닌 진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의 위치로 진정한 전사 그 자체였던 퓨리오사(맥스와는 상반되면서도 닮은꼴인)
이밖에 다른 조연들도 모두 보면 잊기 힘든 강렬한 개성들을 갖추고 있습니다.(감상평들 보면 특히 빨간 내복의 기타리스트가 인기 폭발인듯^^)
그래도 저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의 가운데 끼게 되었던 주인공 맥스입니다.
보는 분에 따라서는 맥스는 그저 진주인공 퓨리오사의 보조자 정도였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시리즈를 돌이켜 보면 아시겠지만, 맥스는 1편 후반부에 가족의 복수를 이룬 뒤 그저 모든걸 잃고 뚜렷한 목적도 없이 생존만을 중요시하며 떠돌아다니는 방랑전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에 고통받는 약자들을 보고 결코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는 절대 아니었으며 자신과 상관없는 분쟁을 늘 피하려던 인물입니다.
그는 어쩌면 제목 그대로 미쳐버린 세상에서 모든 걸 잃은 뒤 광기로 정신을 유지하는 중 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수도 별로 없고 상실의 고통을 나누려 하지도 않으며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편에서 정착민들의 리더 파파갤로는 맥스의 이런 면을 간파하고 일갈했죠. "너만 모든걸 잃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렇듯 맥스는 이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북두의 권>의 켄시로같이 뭐하나 부족한것 없는 완벽한 인물이 아닌(켄시로는 아예 초반부터 거의 구세주로 인정받죠.) 겉모습만 베테랑 전사일뿐 정신적으로는 나약한 인물입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어떤 위기에서도 생존하는 그가 왜 정신적으로 나약한가는 2,3,4편 각각에 나오는 파파갤로, 사반나, 퓨리오사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맥스보다 약할지 모르나 자신만의 생존이 아닌 타인을 위해 어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버티며 싸워나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과 함께 엮이며 심경의 변화를 느낀 그는 매번 떠날 수 있는 어느 시점에서 결국 돌아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움이 필요했던 이들을 도와 그들의 희망을 되찾아줍니다. 지키지 못한 소중한 것들, 일찌감치 놔버린 희망에 대한 상실감이 그들을 통해 치유되는 것이죠.
하지만 모든게 끝난 마지막에 맥스는 그들과 함께 하는게 아니라 다시 외로운 방랑전사의 길로 떠납니다.
약육강식의 잘못된 세상을 이겨내는 진정한 승자들은 자신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억압과 고통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바로 그 약자들임을 알기 때문이죠. 퓨리오사는 싸우는 이유가 구원이라고 했고 맥스는 그 구원의 길을 찾게 도와주었지만, 이번편에도 결국 스스로 다시 황무지로 떠난 그가 찾는 것은 아마 그 자신만의 구원일 것입니다.
그렇게 비록 떠났지만 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을 통해 맥스는 신화나 전설 속에 남을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2편 마지막 대사 "He lives now, only in my memories..." 처럼, 이 영화를 사랑한 제게도 영원히 영웅으로 남게 되겠죠.
이건 정말 SF와 판타지가 결합된 완벽한 고전적 영웅 신화(?)입니다. 대체 뭔말인지 쓰고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매드 맥스>란 작품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이은 벅찬 감동을 30년이란 시간이 지나(물론 저에게 30년은 아니고^^;) 되찾게 해준 70세 할아버지 감독 조지 밀러와 스탭들, 열연을 펼친 배우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덧: 그래도 개인적으로 꼽는 시리즈 중 최고는 2편 <로드 워리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