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 모든 작품에 대한 이야기. 정보나 감상, 잡담.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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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거칠고 황량합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폭력적이고 위협적이라는 인식이 박혔죠. 문명이 붕괴하면, 규칙도 사라질 테고, 그러면 약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어지니까요. 전체주의 집단이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약탈자들이 돌아다니며 생존자를 학살하거나, 돌연변이 괴물이나 살인 로봇이 사방에서 설칠 수 있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싸움판을 벌이기 쉬운 장르이고, 격렬한 총격전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택입니다. 종말 창작물이 내면의 폭력성을 분출할 수 있어서 인기를 끈다는 이야기도 들었네요. 그 말이 옳든 아니든, 수많은 종말 창작물이 피 튀기는 다툼을 보여주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창작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말 이야기에 항상 폭력이 끼어드는 건 아니며, 남성 작가만 쓰는 것도 아닙니다. 널리 알려진 수작 중에서 여성 작가가 치유와 회복,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들도 많고요.
여성 작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아무래도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여성 작가니까 섬세하게 쓴다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일 겁니다. 그래도 생존자의 외로움과 비애, 절망, 한탄 등을 세세하게 그려내는 것들이 많더군요. 가령, 이전에 이야기한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최후의 인간>이 그렇습니다. 메리 셀리가 지었는데, 홀로 남은 주인공의 온갖 감정을 장황하게 풀어냅니다. 줄거리는 그렇게 정교하거나 딱 부러지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보다 절망 속에 처한 인간의 상실감을 낱낱이 밝히는 것에 주력합니다. 주인공은 영국부터 프랑스를 거쳐 그리스와 터키까지 두루두루 여행합니다. 여행하는 와중에 비탄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설파합니다. 메리 셀리 본인이 남편 때문에 겪은 마음 고생도 장난 아니었으니, 그런 심정도 어느 정도 작품에 녹았을 겁니다. 오늘날의 종말 문학이 주로 대재앙의 원인과 대처 방법에 골몰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여성 작가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멸망한 세상에서 각 인물들의 관계를 고찰합니다. 거기서 치유나 희망의 단서를 발견합니다. 비록 세상은 끝장났지만, 그럼에도 아직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회복의 여지를 마련합니다. 설사 회복하지 못해도 각자의 위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죠. 여성 작가들은 인물의 심리를 살피고, 그걸 바탕으로 인간 관계를 조율하는 데 능숙한 것 같아요. 케이트 윌헬름이 쓴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보면, 그런 애틋한 시선이 잘 드러나죠. 종말 문학이면서 바이오펑크인데, 주연들이 전부 복제인간입니다. 복제인간이니 당연히 서로 똑같이 생겼고,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랍니다. 문제는 그런 정신적 유대감이 하도 긴밀한 나머지, 단독 행동을 못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대피소와 같은 마을에서 자라지만, 점차 세상으로 진출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려면 서로 떨어져야 하고, 단절된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인류 종말 리포트>는 마가렛 앳우드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SF 소설입니다. 본인 말로는 여기서 기발한 착상이나 새로운 예측, 세상 뒤집기가 없으므로 SF 장르가 아니라고 하네요. 그럼에도 훌륭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이자 바이오펑크로 독자들이 선호합니다. <노래하던 새들도>처럼 여기서도 인간의 후예들이 등장합니다. 기존 인류는 사라지고, 크레이그라 불리는 그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합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걸 모릅니다. 거의 원시 공동체에 가깝게 살아가지만, 현생 인류 같은 잔머리와 약삭빠름은 없습니다. 주인공 지미, 속칭 눈사람은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예 아닌 후예들을 보며 깊은 고독에 빠지죠. 소설의 절반은 어떻게 세상이 망했는지 이야기하고, 절반은 망한 이후의 크레이그를 보여줍니다. 눈사람과 크레이그 공동체를 보면, 역시 이런 분야에서는 여성 작가의 솜씨가 훨씬 낫구나 싶네요. 만약 남성 작가가 썼다면, 권력 투쟁과 폭력과 정치가 판치는 공동체로 묘사했을 듯해요.
르 귄 여사는 언제나 자기 작품에 사회적 약자를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폭력을 행하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 혹은 약자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를 살펴보죠. 이를 위해 고립된 세계를 만드는데, 그래야 세계 속의 인물 관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 간 항해가 가능함에도 우주선은 별로 안 나오고,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많죠. 그것도 고대나 중세 사회에 가까운 묘사가 많고요. <언제나 귀향>도 그런 쪽입니다. 행성 로망스가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이지만, 여타 설정은 르 귄 여사의 다른 작품과 엇비슷합니다. 도시들은 물에 잠기고, 곳곳에 독소가 퍼지고, 과학 기술은 옛날로 퇴보했습니다. 소규모 마을이 여기저기 퍼져서 살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부장 권위와 권력 계층과 그 밖의 소수 문화가 충돌하고, 어울리고, 갈라지죠. 재앙 원인에 집착하기보다 소수 부족으로 갈라진 이들의 다양한 삶의 면모를 들여다봅니다. 헤인 연대기에서 각 행성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죠. 설정이 행성 고립에서 세계 멸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멸망하면, 기존 기술이 후퇴할 거라는 예상을 많이들 합니다. 그래서 고대나 중세 사회가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많죠. 르 귄 여사가 쓴 <언제나 귀향>도 고대 사회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죠. 중세 사회에는 종교가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으므로 이런 설정은 종교 SF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앤 할람(실명 그위네스 존스)이 쓴 <데이메이커>도 이런 부류입니다. 과학 기술이 멸망을 불렀으므로 생존자들은 과학 기술을 연구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과학 공부가 종교적 금기로 발전한 사례죠. 하지만 금기가 생기면, 이를 깨는 경우도 따르는 법입니다. 주인공 소녀는 과학 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금기를 깨는 위험에 다가섭니다. 이를 위해서 먼 여정에 오르고, 그 와중에 조금씩 성장한다는 성장 소설입니다. 제약 많은 사회에서 소녀가 어른으로 향하는 내용이죠. 앤 할람의 책은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르 귄 여사와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더군요. 그래서 르 귄 이야기를 하는 김에 <데이메이커>도 이야기해봤습니다.
묵시적이지만 따스하고, 암울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코니 윌리스가 쓴 옥스포드 시리즈 중 <둠즈데이북>이 그렇습니다. 시간여행 소설이기도 하며, 그래서 미래와 과거를 번갈아 전개합니다. 문제는 두 세계 모두 질병이 퍼졌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는 겁니다. 모순적이지만, 작가는 그 와중에도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개그 만점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대사는 황당하고 실소가 터지며,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내보냅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기에 다소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애정 어린 시선은 분위기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도 결코 인간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는 셈이죠. 코니 윌리스의 이런 필력을 아줌마 스타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만큼 정겹다는 뜻입니다. 아줌마 스타일이 진짜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소설은 <개는 말할 것도 없고>겠지만, <둠즈데이북>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아줌마의 미소가 절실합니다.
다른 작품과 달리 장편이 아니라 단편이지만, <말과 소리>는 인상적입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썼는데, 역시 사람들의 관계와 심리 묘사와 치유를 이야기합니다. <야생종>에서도 얀얀우라는 여성을 등장시켜 공동체 회복과 구성원 유지를 거론했죠. 얀얀우는 초인으로서 스스로 재생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을 치료하는 치유사이기도 했습니다. 초인물에서도 그런 화두를 제시했으니, 세상이 무너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오죽하겠어요. 남성이 파괴를, 여성이 회복을 맡는다는 설정은 좀 단편적이지만, 사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렇잖아요. <말과 소리>는 의사 전달을 할 수 없어 갈수록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가 배경입니다. 문자 그대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꼴 때리는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 여성이 자신과 남을 보듬고, 아이들을 키우고, 희망을 다시 바라보는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보니, 여성 작가들 소설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군요. 흔한 인식과 달리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방랑자가 꼭 남자라는 법도 없죠.
이 정도면 여성 작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 작가의 성향을 한쪽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잘못이겠습니다만.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분명히 인물 간의 관계와 희망, 치유 등을 절실하게 노래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보고 오히려 치유를 받는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홍수>라는 종말 소설을 하나 더 썼죠.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도리스 레싱의 <생존자들의 회고록>도 있습니다.
여성 작가의 종말문학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 작가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심리의 변화에 대한 접근이
종말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펼쳐지는 게 눈에 띄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