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별 개성 없는 인기 영화 감상글입니다. 이미 예고편 등으로 공개된 걸 제하면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꽤 재밌었습니다. 국내 평론가나 인터넷상에서 부정적 평가를 잔뜩 퍼붓는 걸 꽤 많이 봤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의외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데 다소 놀랐을 정도네요. 어쨌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이쪽 마블 영화들을 쭉 봐왔다면 꼭 봐야 될 영화는 맞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자면 영화를 보기 이전엔 뭐 어떤 걸 기대하고 어떤 걸 기대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평가란 건 ‘기준’에 의해 갈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한 영화 보면서 누가 스토리나 작품성 기대하나요. 야한 영화에는 ‘그것’만 잘 나오면 기준에 합격이죠. 하지만 누가 야한 영화에 예술성 따지기 시작하면 일이 골치아파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어벤저스 2에 기대한 것은 어벤저스 1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미국 애들이 보통 원라이너(one-liner)라고 부르는, 빠르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개그성 대사들. 다수의 주연들 사이에서 적절한 분량 배분과 이들간의 개성을 잘 반영한 관계 형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구심점으로서 이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연결고리들.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이 팀을 이루어 배구 토스마냥 이리 저리 적을 넘겨주고 싸우는 액션 장면들. 즉 전작의 2.0 버전을 기대했던 것이죠.

 어벤저스 2는 이런 기대들을 잘 만족시키는 영화입니다. 전작에 비해 액션씬들은 스케일이 더 커졌고, 유머도 여전히 풍부하며 전개도 빠릅니다. 도입부에서 바른생활 사나이 캡틴 아메리카가 말한 것처럼 영화 전개되는 동안 꾸준히 재등장하며 낄낄댈 만한 대사가 제법 있고요. 아이디어나 스케일 면에서 감탄할 만한 장면들도 몇몇 있습니다. 파티장에서 묠니르를 놓고 벌이는 개그 장면이 갑자기 진지해지더니 예상 못할 부분에서 재등장하는 것이나, 스케일을 원한다면 헐크버스터 vs 헐크만 해도 어때요. 은근슬쩍 복선들이나 기존 시리즈의 등장인물들도 스쳐지나갑니다. 거기에 추가해 캐릭터들마다 감정이입할 구석들을 집어넣어놨죠. 특히 1편에 이어 능력적으로 별볼일없는 호크아이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구석 등은 꽤 영리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많습니다. 불평을 이해 못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감독 조스 웨던은 슈퍼히어로물 덕후로서 이쪽 분야에 대해 정말 빠삭하게 꿰고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책잡히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이것도 넣고 싶고, 저것도 넣어야겠는데 욕심을 도무지 버리지 못하는 거죠. 결과물은 꽤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이 이상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이 영화에는 너무 많은 파편조각들이 들어 있고, 개중 몇몇은 눈에 띌 정도로 제대로 처리를 못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웨던은 버피와 파이어플라이로 개성 강한 캐릭터들간의 앙상블을 다루는 데 대단한 재능이 있음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호흡이 긴 TV 시리즈에서의 경우고 보다 호흡이 짧아야 하는 이 영화에서는 상영시간을 2시간 넘게 뽑으며 간신히 해내는 정도에 머무릅니다. 조스 웨던은 그 덕분에 너무 지쳐버려 어벤저스 시리즈 제작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지만요.

 또 우리의 슈퍼히어로들은 여전히 자신의 캐릭터성을 갖고 농담따먹기를 쉴틈없이 해대긴 합니다만 전작에서처럼 ‘슈트 벗어도 난 백만장자에 자선가에 천재에 플레이보이지’라던가 ‘신이 약골이군’ 수준의 명대사들을 뽑아내지는 못합니다. 이미 캐릭터들은 전작에서 많이 소모되었고 신선한 맛이 제법 빠졌으니까요. 이를 벌충하기 위해 신규 캐릭터인 울트론이 제법 활약해주고 다른 신 캐릭터들도 있긴 하지만 기존 캐릭터들 전개해야 하는 시간에 비중이 많이 밀립니다.

 그래요. 기존 캐릭터들을 분량을 전개하기 위해 추가로 환상을 집어넣고 로맨스를 집어넣어 캐릭터를 설명하려 들긴 합니다만, 이 부분 역시 여러 모로 문제점이 많습니다. 블랙 위도우를 제외하면 환상 장면들은 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나마 블랙 위도우가 본 환상이 재밌는 건 여태껏 그녀의 배경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이고요, 다른 캐릭터들은 기존 영화에서 배경 이야기를 설명해줬는데도 제대로 내적 심리갈등을 표현해주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문제죠. 로맨스 역시, 이야기상 필요한 거고 아이디어는 좋다는 건 인정해야겠지만 구현은 명백하게 삐걱거립니다. 덕분에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오락가락하게 되죠.

 마지막으로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울트론과의 격돌은 스펙터클하기는 하지만 너프를 많이 먹었습니다. 1편에서도 생각해보면 정확히 같은 요소를 보았었죠. 어쨌건 초인은 아닌 호크아이와 블랙 위도우가 격투전으로 활약할 여지를 주기 위해서 외계 군단 치타우리는 뭔가 많이 허접하게 등장했고, 울트론 군단 역시 숫자만 많지 허접하기로는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최종결전은 전작의 재탕에 가까워지죠.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어벤저스 2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게 어벤저스 2.0이라는 데 있습니다. 2.0 버전의 한계인 셈이죠. 버전업을 해서 더 커지고 좋아지고 빨라졌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어벤저스 2는 1편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즐겁고, 재밌고, 배우들 호연에 사소한 것도 신경 많이 썼으며 돈값 충분히 합니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스타워즈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줬듯이 3부작의 중간다리는 새로운 희망 2.0 버전이 아니라 제국의 역습이어야 하거든요. 새로운 갈등 구조를 도입하고 분위기를 전환하며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제다이의 귀환을 위한 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시리즈물의 일환으로서 이야기는 전개해야 할 테죠.

 하지만 어벤저스 2의 이야기는 사실 이제 10편째를 맞이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상에서 봐도 그리 큰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변함없이 악당이 등장했고, 조금 무거운 척 하지만 여전히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변함없이 때려잡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별 바뀐 게 없죠.


 원래 마블쪽 영화들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이지 명백하게 앞뒤 전개를 뽑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차기작을 위한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곁다리일 뿐이고 전작에서 했던 것들을 조금 다르게, 더 많이 분량을 늘려 제한된 시간에 우겨넣은 뒤 다시 시도해보고 있을 뿐인 거죠. 그러니 잘 만들긴 잘 만들었고, 두 시간 반을 홀딱 반해서 극장에서 보내고도 뭔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싶습니다. 삭제 분량을 다 집어넣은 감독판이 나오면 좀 더 전개 면에서는 여유를 가질 지도 모르겠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니 더 잊혀지기 쉬울 수밖에요. 결국 1편만큼 기억에 남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는 내내 즐거웠지만 보고 나서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네요.




 덧. 제가 좋아하는 브라이언 타일러가 음악을 맡았는데 생각보다는 아쉽더군요. 메인 테마는 대니 엘프만이 편곡했다는데도 역시 좀 아쉽고, 그래도 쿠키 영상이 끝나고는 알란 실버스트리의 1편 테마곡이 그대로 흘러나오던데 변함없이 즐거웠습니다.


빠바밤! 바바밤 바바밤 바바바밤~ 바바밤! 바바밤 바바바밤~ 빰~ 밤밤 밤밤~ 밤~ 밤바밤~ 밤밤밤밤~ 밤~
(아뇨, 들릴 정도로 크게 따라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덧2. 그래도, 늘 하는 말이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리 만화 원작의 역사가 길고 길어도 아이언 맨이니 캡틴 아메리카니 하는 이름의 히어로들을 이 영화 시리즈만큼 길고 다양하며 납득할 만하게 영상화한다는 일 자체가 말이죠. 캡틴 아메리카, 얼마나 끔찍한 이름입니까. 혹시 그렇게 느끼시지 않는 분들이라면 캡틴 코리아로 이름을 바꾸고 의상에 태극마크가 달린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네. 끔찍하죠.




 덧3. 명색이 슈퍼히어로니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거야 당연하지만(그리고 플롯상 필요성도 나오지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려고 애쓰는 부분들은 꽤 마음에 들더군요.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뭔 슈퍼맨이 저래! 하고 생각했던 것과 대비되어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덧. 클릭하면 스포일러입니다.


 영화 끝나는 부분에서 어째서 어셈블! 이 나오지 않는가는 보면서 많이 의아해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어벤저스 어셈블! 은 유명한 그 동네 출동 구호 같은 건데, 캡틴이 어벤저스-까지만 말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잘라버리더군요.

 이에 대해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웨던이 관객의 기대를 갖고 장난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많던데요, 하긴 퀵실버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호크아이의 가족과 아내를 소개하고 감정이입시킨 뒤 심지어 이번 전투에서 살아 돌아가면 꼭 그걸 할 거야~ 하는 전형적인 죽기 직전 대사까지 시키고 죽기 직전까지 몰아놨다가 갑자기 퀵실버를 대신 죽여버리는 연출 말입니다. 심지어 퀵실버가 하는 대사 - 이건 예상 못했지? - 까지도 호크아이와 관객 둘 다를 노린 메타적인 발언이기도 하고요. 뭐, 웨던이야 세레니티에서 ‘나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은 충격과 공포의 사망 장면도 뽑아냈으니.

 그래도 말했듯이 편집은 좀 아쉽기는 하죠. 토르의 샘 부분을 대충 건너뛰는 것이나, 개인적으론 영화 초반부 로고가 뜨는 것부터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스타크가 로키 창을 들자마자 갑자기 로고가 딱 뜨는데 많이 이상했어요. 그 외에도 이것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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