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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중에서도 두고두고 못 잊을 희대의 명장면.]



영화 <에일리언 3>은 전체 시리즈 중에서도 꽤나 이색적입니다. 일단 겉보기에 이 작품은 성공 요건을 두루 갖추었습니다. 화려한 감각을 자랑하는 데이빗 핀처가 감독을 맡았으며, 전작 1~2편은 뛰어난 SF물로 흥행가도를 달렸어요. 당연히 관객들의 기대는 드높았고, 굉장한 결과물이 나올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봉하고 나서는 비평과 수익 양쪽에서 몰매를 맞았습니다. 이야기는 너무 무겁고 느릿했으며, 컴퓨터 그래픽은 조악했고, 액션이 화려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비평가와 전작 배우는 물론이고, 팬들마저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로튼 토마토나 IMDB 점수는 형편없고, 메타크리틱도 반타작 났습니다. 2편의 흥행이 대단한 만큼, 3편은 실패작으로 잊혀졌고, 아직도 이 영화를 거론하면 고개를 젓곤 하죠. 거기에 1편보다 제작비를 훨씬 들였음에도 돈은 더 못 벌었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간신히 본전치기하고, 그나마 해외 수익이 나서 제작비의 두 배를 거뒀으나 이를 성공으로 봐야 할지….


따지고 보면, 내외적으로 문제가 컸는데 우선 배급사 간섭이 너무 심했던 것 같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자기 색깔이 강하고 배급사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야 하는데, 스튜디오 참견이 너무 심했다고 하더군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배급사가 제작사에게 배 놔라 감 놔라 떠드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짐작이 가긴 합니다. 하긴 에일리언 프랜차이즈라는 돈다발 시리즈를 뮤직 비디오만 찍었던 신예에게 맡겼으니 20세기 폭스도 불안했겠죠. 결국 핀처는 강렬한 데뷔작을 내놨음에도 그 누구보다 이 영화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에일리언 4부작 DVD가 나왔을 때도 리들리 스콧과 제임스 카메론은 코멘터리에 참여했는데, 핀처는 그러지 않았죠. 제작진은 리들리 스콧이 3편을 맡아주길 바라기도 했고, (3편 초고 작업에 참여했던) 윌리엄 깁슨은 <다이 하드 2>를 찍은 레닌 할린을 원했다고도 합니다. 스콧이나 할린이 맡았다면 좀 더 대중적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처럼 구원적인 중세 SF 느낌은 옅어졌을 겁니다.



물론 전작에서 미래 모습을 강조하다 갑자기 중세로 회귀한 듯한 이미지는 걸림돌입니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그 동안 우주선이나 우주 기지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창백하고 차가운 색조가 지배적이었죠. 등장인물도 기술자나 해병대 등 뭔가 첨단 기기를 다루는 데 프로들이었고요. 하지만 감옥 행성 퓨리 161은 구질구질하고 금욕적인 수도원처럼 보입니다. 노스트로모나 LV-426 식민지도 그리 깔끔하지 않았으나, 퓨리 161 교도소는 아예 벌레가 들끓을 만큼 지저분해요. 죄수를 가두는 곳이라 첨단 장비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습니다. 간수부터 죄수들까지 믿을만한 구석도 없는 군상들이고, 그나마 좀 기댈만한 인물은 목사를 자처하는 딜런 뿐입니다. 1~2편에서 주요 소재였던 로봇은 거진 활약이 없고요. 인간이 자신과 닮은 로봇을 만들었다는 것도 중요한 이야기였는데 말입니다. 이런 배경 설정은 리플리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만. 전작을 기억했던 관객이 보기엔 갑자기 웬 종교물이 튀어나오니, 단절감이 심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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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객들이 원한 건 이러한 우주전쟁물이었을 겁니다.]



퓨리 161로 배경을 옮기면서 생긴 다른 문제는 별로 건질만한 디자인이 없다는 점입니다. 에일리언 시리즈는 독특한 구조물을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요철이 심한 노스트로모의 벽면, 기괴하고 거대한 스페이스 쟈키 우주선, 흡사 거대한 소총을 보는 듯한 슐라코, 끈적거리고 을씨년스러운 에일리언 둥지, 흉악한 벌레 공룡 같은 에일리언 여왕 등이 그러하죠. 이런 볼거리는 <프로메테우스>도 마찬가지기에 다른 건 몰라도 눈 호강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교도소 작업장은 딱히 볼만한 게 없어요. 생김새가 독특한 것도 아니고, 디테일이 세세하지도 않습니다. 색깔 맞춤이 그럴 듯하지도 않고, 복장도 그냥 무난한 편입니다. 다들 평범한 작업복이나 로브 입고 다니는 수준이니까요. 컴퓨터나 동작 감지기 같은 장비도 안 나오는 데다가 신형 우주선은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다른 시리즈는 노스트로모, 슐라코, 프로메테우스, 아우리가처럼 새로운 탑승물을 계속 내놓는데, 3편은 외계 괴물 장르이면서도 주역 우주선이 안 나와요. 막판에 회사 우주선이 도착하지만, 이건 비중이 약해서 없다고 해도 무방하죠.



공포물이나 전쟁물에서 종교물로 뒤바뀐 것도 문제입니다. 1편은 미지의 생명체가 풍기는 공포를, 2편은 적들이 몰려오는 혼란스러운 전투를 다뤘습니다. 3편은 고난을 딛고 구원하는 테마인데, 전작들과 달리 뭔가 짜릿한 맛이 없습니다. 에일리언의 무서움을 강조하기보다 리플리의 내면에 더 집중하거든요. 시리즈가 3편이나 나왔으니, 리플리라는 인물에게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치중하는 바람에 정작 중심 소재인 에일리언이 겉돈다는 느낌입니다. 전작들은 에일리언을 최종적으로 처치하며 결말을 맺었습니다. 허나 3편은 에일리언을 처치하고 나서도 리플리의 선택이라는 마지막 장이 남았죠.



게다가 2편 결말에서 생존자가 3명인데, 리플리만 살아남은 것도 거시기하죠. (비숍은 어차피 기계니까 제외.)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한 힉스 상병과 그렇게나 지키려고 했던 뉴트가 얼굴도 못 비치고 말았으니까요. 주제를 위해 두 인물을 희생시킨 거야 십분 이해합니다. 해병인 힉스가 있었다면 전투 분위기가 짙어졌을 테고, 뉴트는 아이라서 금욕적인 죄수 수도원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겁니다. 리플리의 마지막 선택 역시 두 사람이 없었기에 보다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허나 그렇다 해도 전작 생존자를 시작하자마자 죽인 건 심했다 싶습니다. 특히 뉴트와 리플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너무한 처사가 아닌지. 눈 앞에서 딸을 잃은 엄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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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이고 날렵한 이미지는 좋았습니다만, 액션 비중이 낮아서….]



에일리언이 고작 하나, 그것도 평범한 병정 계급이라는 것도 치명타입니다. 1편도 어차피 병정 계급 하나였지만, 거기는 스페이스 쟈키나 다른 알도 있었죠. 그리고 2편에서 인해전술과 거대 괴수로 판을 키워놓은 덕택에 관객 기대치는 훨씬 올라갔습니다. 이걸 만족시키려면 정말 거대 괴수를 몇 마리씩 불러서 우주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었죠. 그래서인지 윌리엄 깁슨이 쓴 시나리오는 힉스 상병이 주연이었다고 합니다. 슐라코가 다른 우주선과 마주치고, 다시 에일리언이 나타나는 바람에 생존자를 모아 싸운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걸로 만들었으면 아마 액션물이 되었을 거고, 작금의 3편처럼 이질감을 주진 않았을 겁니다. 시고니 위버도 여기에 동의했는데, 제임스 카메론이 리플리를 람보처럼 만든 게 탐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주연이었던 리플리를 뺄 수는 없었고, 다른 시나리오 작가를 거치면서 중세 교도소 행성으로 배경이 바뀝니다. 핀처는 액션물을 찍을 생각이 없었고, 마침내 에일리언 한 마리만 나와 질주하는 영화로 완성했어요. 관객들이 실망해도 이상할 건 없겠죠.



어쩌면 전작들을 거치면서 관객이 에일리언에 익숙해진 것도 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논의했는데, 사람은 낯선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이미 영화가 두 편이나 나오다 보니, 더 이상 낯설지 않고 공포도 반감된 거죠. 2편에서는 여왕을 등장시켜 설정을 확대하고 위압감을 주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만. 3편은 특별한 신종을 내보내지도 않고,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이 애초에 에일리언 설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동물이 숙주라는 게 특징인데, 속도가 빠르다는 거 말고는 특별한 개성이 없죠. 괴물 장르에서 괴물이 시시하니, 작품 전체에 힘이 빠지는 게 당연할 테고요.



실사 구현도 어설프긴 합니다. 1~2편에서는 슈트 촬영하거나 로봇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윌리엄 깁슨이 레닌 할린을 요구했을 만큼, 외계 괴물은 빠른 액션에 걸맞아야 했어요. 이후 진짜로 메가폰을 잡은 데이빗 핀처 역시 좀 더 짐승다운 괴물 모습을 원했고요. 그래서 인간 형태를 벗어나 뒷다리가 더 길고, 등에 달린 튜브도 제거한 영화 속 ‘독 에일리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통로를 날렵하게 질주하는 야수는 슈트나 로봇 촬영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컨셉은 좋았지만, 촬영 기술이 그걸 못 따라갔어요. 시리즈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도 도입했지만, 그다지 많은 분량이 아닌 데다가 품질마저 조악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혁신을 일으킨 <터미네이터 2>나 <쥬라기 공원>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수준입니다. 괴물 움직임도 어색하고, 그래픽 티가 다 나기에 공포가 오히려 반감되는 역효과만 불렀죠. 하기야 지금 생각해봐도 데이빗 핀처는 컴퓨터 그래픽과 딱히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미장센, 거기에 걸맞는 음악과 노래가 특징이지, 실감나는 괴물 구현이랑 거리가 멀죠. 에일리언 시점으로 질주 장면을 찍은 건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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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에일리언은 당대의 이런 엄청난 특수효과를 쫓아가기 버거웠죠.]


참고로 <터미네이터 2>, <에일리언 3>, <쥬라기 공원> 세 영화 모두 고인 스탠 윈스턴이 참가했습니다. 로봇, 괴물 효과를 맡았는데, 컴퓨터 그래픽보다 모형 액션 쪽이었죠. 다른 두 영화는 엄청난 흥행과 충격적인 시각효과로 명성을 떨쳤는데, 나머지 에일리언만 이 모양이니, 원. 한편으로 H.R. 기거는 독 에일리언을 다시 만들면서 여러 안건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시 돋친 혀로 인간 내부를 공격하는 방식이 소름 끼쳤죠. 제노모프와 인간의 키스라고 할까요. 하지만 안건들은 그리 반영이 안 되었고, 이 점이 섭섭했나 봅니다.



이쯤 되면, <에일리언 3>는 데이빗 핀처의 망쳐버린 미완성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심지어 흑역사로 묻어버리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만큼 많은 단점을 품었음에도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 3편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희한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더군요. 한번 보면 잊지 못할 강렬함이 도사린다고 할까요. 위에서 말한 단점들이 되려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우주 시대의 중세 수도원이라니, 그만큼 틀에 박히지 않은 독특한 배경이죠. 등장인물들이 죄다 흉악한 범죄자들이라 시종일관 미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 긴장감이 괴물과 조우하면서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화기나 장비가 없어 일방적인 액션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 정도로 야만적인 세계이고, 특히 동물에게서 태어난 에일리언을 용과 포식자에 비유하는 해석이 무엇보다 좋았네요.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정적인 화면 연출도 일품. 에일리언 시점으로 질주하는 연출은 신선했고, 마지막 장면은 기나긴 시리즈의 끝을 맺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에일리언 3>는 분명히 결점이 수두룩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 받는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100점 만점에 50점을 받을 영화는 분명히 아니라고 봅니다. <블레이드 러너>마냥 저주 받은 걸작은 못 될지언정 최소한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만. 감독조차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마당에 그 날이 언제나 올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