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비우스 스틸리코(359? 360?~408)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

로마 동부 발렌스 황제의 휘하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봉직한 반달 족 출신의 용병대장 아버지와 로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동시대인들에게는 세미-바바리안, 즉 '반야만족'으로 불리웠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최후의 로마인', '서로마제국 최후의 총사령관'으로 불린다.

22, 3세 무렵 로마 제국의 마지막 단독 황제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신임을 받고 황제 호위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황제의 조카딸이자 양녀인 세레나와 결혼, 이후 대제의 군대를 지휘하여 각지를 전전하면서 군경력을 쌓았으며 테오도시우스 대제 사후에는, 18세의 아르카디우스와 11세의 호노리우스를 각각 동, 서로마제국 황제로 옹립하고, 나이가 어렸던 호노리우스 황제의 보좌역으로서 서로마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실권을 장악, 395년부터 408년까지 서로마제국을 사실상 통치했다.

테오도시우스 대제 재위기에는 브리타니아 참칭제 마그누스 막시무스 토벌전, 서고트 전쟁, 이탈리아를 장악한 프랑크인 아르보가스테스와 그의 괴뢰 에우게니우스 토벌전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대제 사후에는 395년부터 404년에 이르기까지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을 연달아 격파하고, 게르마니아 방어선의 게르만족들을 일시적으로나마 제압, 북아프리카의 무어족 장군 길도를 모살하여 북아프리카에서의 제국의 지배권을 재확립하였으며, 406년 라다가이소가 이끄는 게르만 연합군 40만을 불과 3~4만 남짓의 병력으로 완파하는 등, 일생 전투에서는 패배를 몰랐던 서로마제국 최후의 용장으로도 유명하다.

408년, 서고트 족의 지도자이자 그의 평생 적수였던 알라리크를 갈리아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그의 힘으로 참칭제 콘스탄티누스와 그 휘하의 브리타니아 2개 군단, 그리고 라인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진입해온 게르만 족을 제압하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원로원과 군부의 지지를 잃고 환관들의 모략에 의해 처형되었다. 당시 그의 휘하에는 황제와 환관, 원로원을 제압하기 충분한 군대가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선제 테오도시우스와의 약속과 제국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가 처형된 후, 그의 아들이자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외손자라는 것 때문에 한때는 동로마 제국 차기 황제로도 거론되던 에우케리우스 왕자 또한 처형되었으며, 이미 사망한 장녀의 뒤를 이어 호노리우스의 두번째 황후가 된 그의 차녀는 수도원으로 보내져 행방을 감추었다. 그의 아내 세레나는 알라리크에 의해 자행된 로마 약탈 당시 고트족에 의해 살해되었다([[fcolor=#0000ff]]호노리우스, 또는 호노리우스의 동생 갈라 플라키디아 공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다[[/FONT]].).>

에드워드 기번의 영향으로 아이티우스 장군을 로마 최후의 장군으로 일컫는 경향이 많았습니다만, 최근(6, 70년대부터 지금까지)에는, 학계는 몰라도 최소한 소설가들은 아이티우스에 비해 스틸리코를 좀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을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 쉽게 말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정치군인'이었던 아이티우스보다는, 마음만 먹으면 서로마제국을 엎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권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찬탈자보다는 로마의 충신으로 죽는 길을 선택한 스틸리코 장군이 좀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한다는 것 때문이겠죠. 게다가 그의 죽음과 함께 천년 이상 버텨오던 로마가 약탈을 당하고, 로마 제국의 황녀가 야만족에게 겁탈되는 등의 참사들이 연잇게 되니 말입니다.
([[fcolor=#0000ff]]물론 호노리우스 황제가 로마 제국 황제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백치황제라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만, 그랬으니 스틸리코가 10년이 넘게 제국을 지킨 것이기도 하니....[[/FONT]])

그래서 그런가, 스틸리코 장군은 여러 소설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악역을 맡을 때도 있고, 선역을 맡을 때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무너져가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하면서도 잘못된 수단을 취하는 것으로 묘사될 때도 있고([[fcolor=#0000ff]]악역일 경우[[/FONT]].), 오장원 직전의 제갈공명처럼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제국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는 슬픈 영웅의 모습일 때도 있죠([[fcolor=#0000ff]]당연히 선역일 경우[[/FONT]].).

잭 와이트의 '독수리들의 꿈' 시리즈에서는 서로마제국의 브리타니아 철수 후, 로마의 장군이었던 카시우스 브리타니쿠스와 그의 가족([[fcolor=#0000ff]]이들은 스틸리코 장군과 관계있는 인물들입니다[[/FONT]].)들이 브리타니아에서 새로운 왕국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스틸리코 장군은 일종의 <신화>로 묘사되죠.

윌리스 브림의 '눈 속의 독수리'에서의 스틸리코 장군은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 퀸투스 장군의 후원자이자, 제국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는 외로운 권력자로 묘사되지요. 주인공 입장에서는 막판에 가서 뒷통수를 치니 별로 좋게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훈족의 왕이자 '신의 채찍'으로 불리는 아틸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윌리엄 네피어의 소설에서는 아틸라의 어린 시절에 잠시 등장합니다. 서로마제국 황실에 볼모로 잡혀간 아틸라를 이용하여 모종의 책략을 사용하려고 한 스틸리코를, 갈라 플라키디아 공주가 살해하지요(.....). 여기서는 좀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만, 아틸라 시점에서 볼때 긍정적인 인물일 수는 당연히 없지요(....).

흔히 이야기되는 <비극적인 영웅>이라는 존재가, 문필가들의([[fcolor=#0000ff]]그리고 독자들의[[/FONT]])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그 자신으로만 보면 팔자 사나운 셈이지만, 일단 쓸 거리가 많으니까 그런 건지....

[[B]]덧[[/B]] . 시오노 여사 같은 경우에도 스틸리코를 상당히 높게 평가했지만, 유럽 쪽의 이 계열 문필가들 치고 스틸리코 장군을 주목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마지막 로마 장군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정도니....

[[B]]덧 2.[[/B]] 잭 와이트 외에도 스틸리코 장군을 아더 왕 전설과 연결시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상당히 희극적인 해석입니다만 요렇게 갖다붙이는 경우도 있더군요.

스틸리코 장군이 게르만 사람과 로마 사람의 혼혈이라는 점, 그리고 게르만계이면서도 로마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점을 들어서, 게르만을 뱀에, 로마를 독수리에 비유하고, 스틸리코를 이 두 상징의 결합체로 보아, 천공을 나는 독수리와 땅을 기어다니는 뱀의 신화적인 결합체, 즉 '용'으로 상징되는 존재로 만드는 겁니다.
(북구 쪽에도 드라카가 있다고 하면 할말 없지만, 아더왕 떡밥 쪽 사람들은 로마하고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해서 ; 그리고 북구와 아더왕은 사실 관계가....-_-;;)

아더의 아버지인 유더 왕은 통칭 유더 펜드래건, 펜드래건은 '용의 머리', 혹은 '용의 후예'라 해서 용과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그가 등장했던 시기는 바로 스틸리코 장군의 사후 얼마 되지 않아서(...[[fcolor=#0000ff]]라고 말해집니다[[/FONT]].)이기 때문에, 스틸리코 장군이 아더 왕 왕가의 시조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모로 해괴한 해석이긴 합니다만, 스틸리코 장군의 부계 혈통인 반달 족의 분포 지역이나, 스틸리코 장군이 초창기에 활동했던 지역에서 드래곤의 전승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 로마 제국의 역대 사령관들 중 브리타니아에 온 것은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아버지인 테오도시우스 장군 이후에는 스틸리코 장군이 마지막이기도 하고([[fcolor=#0000ff]]확실하지는 않다고 하지만[[/FONT]].) 해서 이 쪽으로 연결하는 것도 꽤나 지지를 받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