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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번역/창작 게시판 - 작가/번역 : 스타워즈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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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제초가 안 된 곳이었다.
이테인은 비르한의 발디딘 곳을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줄기가 부러진 쿠바라 묘목들을 지나자, 타다 남은 그루터기들로 이루어진 원형으로 펼쳐져 있었다. 공기는 연기와 구워진 바크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입에선 쉴새없이 욕설이 터져나왔다. 퀼루라 어에 서툰 이테인으로서도 그가 내뱉고 있는 게 저주에 가까운 단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당신 탓이요." 밭을 둘러보던 비르한이 내뱉었다. 지평선 위에서 비치는 햇빛이 눈부신 탓에, 그의 손은 눈썹 위에 걸쳐져 있었다. 대낮인 덕에, 간밤의 폭발이 불러온 피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쩌면 좋소? 계약자들한테 뭐라고 하냔 말이오?"
물어보나마나. 니모디아 인들은 동정심이란 단어를 모르는 족속이다. 농촌 마을의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자연 재해라 한들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일은 자연 재해도 아니었다.
500미터에 이르는 지역에 폭발 흔적이 걸쳐 있었고, 중심의 화구는 지름이 12, 아니 15미터 정도. 그 깊이에 대해 이테인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화구 주변에는 트랜도샨과 우베스가 아래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블래스터를 든 채, 흙 속에서 뭔가를 찾는 듯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다. 비르한이나 이테인 쪽으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 눈에는 틀림없이, 촌스럽고, 영양 부족에다가, 농장일에 찌들린 시골 처녀 정도로 보였으리라.
단순한 운석 조각이 떨어진 거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듯 싶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이테인이 그네들이 모르는 뭔가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게 왜 제 탓이죠?" 이테인이 반문했다.
"내 눈이 장식인 줄 아시오?" 비르한의 말투에 불쾌함이 묻어나왔다. "스피더나 화물선, 아니면 살포기든 뭐든 간에, 추락하는 걸 수십번이나 봤소. 저런 구멍이 안 뚫려요, 그냥 박살나서 타버리고 말지. 박살나도 이렇게, 밭을 절반이나 말아먹진 않는단 말이오. 이건 행성 밖에서 온 거요. 아마 군용이나 뭐 그런거 말이오." 그는, 주변에 널려있는 작물들을 발로 차댔다. 모두 불에 타버린 작물들이었다. "당신네들, 다른 행성 가서 싸우면 안되겠소?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데 이게 다 뭐냔 말이오."
이테인의 머리속이 바빠졌다. '바크 가격을 생각해 보면, 분명 엄청난 손해야. 이걸 메꾸려고 호칸 쪽으로 날 넘길지도 모르지. 작물 상당수가 불타버렸으니 돈이 엄청 깨질테고, 난 이미 군식구니까. 젠장, 숨을 곳을 다시 찾아야겠어. 정보를 퀼루라 밖으로 빼낼 방법도 다시 생각해야겠군.'
이테인이 그을린 땅을 살펴보고 있을 때, 우베스와 트랜도샨은 돌아서서 밭 옆의 지저분한 길 쪽으로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우베스는 자신의 헬멧 한 쪽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콤링크로 뭔가를 듣는 자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달려야 할 만큼 급한 일인 듯 싶었다. 즉 이번 일이 - 비 오듯이 추락하는 - 나-샤다 살포기의 일상적인 사고가 아니란 뜻이다.
이테인은 좀 더 기다렸다가 구덩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그토록 살피던 게 뭔지 알아 볼 참이다.
엄청난 폭발이었음은 확실했다. 검게 그을린 화구의 한쪽 면은 평평하게 깎여 있었고, 파편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거대한 폭발. 소형 비행선이 폭발한 흔적이었다.
비르한은 내버려 둔 채, 호칸 패거리가 했던 것처럼, 주변을 돌며 지면을 훑었다. 이테인 자신도 뭘 찾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쿠바라 과수원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걸 보기 전까지는.
이른 아침의 햇빛이 땅 속에 묻힌 뭔가의 표면, 심하게 긁힌 금속 표면에 반사되었다. 폭발로 인해 땅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이테인은 최대한 무관심을 가장하며, 자세를 낮추고는 손가락으로 그것 주위의 흙을 파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모양이 완전히 드러났다. 검게 그을린 그것의 색이 친숙해 보이는 이유를 안 것은, 그보다 몇 분이 더 지나서였다. 그것은...비틀린 금속 파편이었다. 엄청난 힘으로 찢겨 나가면서 얼어붙은 금속 파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예전에 완제품을 본 적이 있어.'
R5 아스트로메크 드로이드의 파편. 파편에는 공화국의 상징이 뚜렷이 박혀 있었다.
'그들이 온다.'
'누구든 간에, 무사해야 할텐데.'
낮에 움직이는 게 위험한 짓인 줄은 다르만도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오른쪽 다리는 체중이 실릴 때마다 비명을 질러 댔다.
길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덤불 속에 떨어진 다르만은, 주변의 흙을 파내 얕은 참호를 만드는 데 두 시간을 쏟아부었다. 나무 뿌리와 돌들은 끈질기게 방해했고, 착지 때 나무에 부딪힌 충격도 작업을 더디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나뭇가지와 잎으로 참호 입구의 위장까지 마친 다르만은 조심스레 길 쪽을 정찰하고 있었다. 가끔 라이플 가늠자나 헬멧의 바이저에 설치된 전자식 쌍안경 패널을 통해 훑어 보기도 했다.
일단, 밤 동안 다르만 주변에 모여들었던 작은 짐승들은 사라졌다. 쫓아버리려는 시도는 진작에 포기했었다. 처음에 녀석들은 장갑복을 이리저리 쑤석거리다가, 거리를 두고 그를 관찰했다. 하지만 낮이 되자 참호 아래쪽에서 반짝이던 눈들은 간 곳이 없었다.
아직 현재 위치도 확인 못한 상태였다. 포착 위험 탓에 GPS 네트워크는 사용 불가. 홀로차트에서 확인한 지형 특이점을 찾아내려면,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정찰을 해 봐야 했다.
자신의 방향이 북쪽인 것은 확실했다. 흙에 파묻혔을 때 붙잡았던 가느다란 가지 주변에는 자그마한 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그 돌들의 둘레에는 태양의 경로가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 동-서의 방향은 확보. 다르만의 데이터패드가 계산한 속도와 거리가 정확하다면, 현재 위치는 첫번째 합류점에서 북동쪽으로 40~50 클릭 사이의 지점일 것이다. 걸어서 제 시간에 도착할 거리가 아니다. 다리 상태도 안좋은 데다가 추가된 짐까지 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짐을 끌고 간다면 수풀 사이로 아주 명확한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럼 적들도 그대로 따라 오겠지.
다르만은 군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리 쪽 장갑판을 떼어낸 후, 무릎 쪽 언더슈츠를 벗겨냈다. 관절 위쪽의 근육이나 힘줄이 찢어진 것 같았다. 그는 임시로 만든 붕대에 다시 박타 액을 뿌린 후, 각반과 장갑판을 착용했다. 그러고는 감시를 계속했다.
이제 뭘 좀 먹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다르만은 좀 더 참아 보기로 했다.
DC-17의 전자기 조준경의 십자선으로 진흙길을 훑었다. 처음에는 헬멧을 쓴 채로, 눈 앞에서 번쩍이는 화면을 주시했지만, 화면상에 너무 많은 정보가 뜨는 바람에 되려 정신이 사나워졌다. 라이플의 조준경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혼돈 그 자체. 빛, 화려한 빛, 눈도 못 뜰 정도의 빛. 이건 그거군. 티포카 시티의 야경. 휴양소에서 나온 빛하고 벽에 반사된 빛들이 뒤섞여 버리면 딱 이런 모양새였어. 젠장, 차라리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말지.
하지만 시간이 - 잠깐 동안이지만 - 흐르자 그는 익숙해졌다. '그 날 아침 같군. 킬로 분대와 델타 분대가 처음으로, 전방 투영 장치를 쓰고서 실탄 훈련을 치렀던 날. 끔찍했지. 적응 못한 친구들은 그 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는 보는 법을 배웠고, 보지 않는 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르만은 계속 상태창 전부를 살펴 봤다. 각각의 상태창들은 무장의 장전 여부와 장갑복의 작동 상태, 그리고 다르만 주변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각 상태창을 다 확인한 그는, 차분한 느낌의 푸른색 부품들로 이루어진 매끈한 원통을 통해 주변을 훑어 봤다. 조준경에 비친 화면에는, 그가 표적에 맞는 화기로 바꿨을 때를 대비한 표시점과 함께, 거리, 환경 정보 및 다른 옵션에 대한 정보도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 다르만은 굳이 눈돌릴 필요도 없이 필요한 내용을 선택할 수 있다. 그가 시선을 둘 곳은 표적뿐.
희미하게 투닥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그는 긴장했다. 목소리 다수. 오른쪽에서 접근 중. 그 때, 목소리가 그쳤다.
그는 기다렸다.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고, 곧이어 두 명의 위케이가 그의 시선에 잡혔다. 순간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꽤나 부지런해 보이는 그들 둘은 길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그 때, 한 녀석이 갑자기 멈춰서서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하더니 뭔가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뭔가 발견한 듯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는 곧장 다르만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르만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날 찾았을 리 없어. 다르만은 속으로 되뇌었다. 교본대로 했으니까. 반사면도, 움직임도, 냄새도, 아무것도 노출시키지 말 것.
하지만 위케이는 곧장 다가와서, 덤불 속으로 들어왔다. 다르만과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는, 뭔가 추적하다 흔적을 놓친 듯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르만은 숨을 멈추다시피 했다. 헬멧은 완전 방음이었지만, 숨소리도 새어 나갈 것만 같았다. 위케이와는 점점 가까워져서, 이제는 위케이 특유의 땀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다르만의 눈에 비친 녀석의 부무장은 하드륨 총신의 KYD-21. 다른 손에는 바이브로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이제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만큼 가까워졌다.
[[B]]두려움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B]]
놈은 길 옆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리 정도 높이의 주변을 살피는 놈의 모습은, 흡사 도서관 시렁에 놓인 디스크들을 뒤져보는 모양새다.
[[B]] 두려움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그대가..[[/B]]
이제 그 위케이는 오른쪽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녀석의 장화는 다르만의 등에 얹혀 있는 가지들을 밟고 있었다. 그 때 위케이가 아래를 쳐다보더니, 고함을 치듯이 뭐라고 말했다.
[[B]]... 그대가 그 두려움을 이용하는 동안만큼은.[[/B]]
다르만은 위케이의 턱 바로 아래에 주먹을 갖다 댔다. 건틀렛에 내장된 바이브로 블레이드가 위케이의 목에 파고들자, 주먹을 비틀어 놈의 혈관을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한쪽 팔로 시체를 받아들었다. 위케이는 목이 찢어진 채로, 아직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팔을 내려 가능한 한 조용히 지면에 시체를 내려놓았다.
"뭐 좀 찾았냐?" 다른 위케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가르-울? 가르?"
답이 올 리 없다. 그럼, 내가 대답해 주지. 다르만은 DC-17을 겨누었다.
두번째 위케이는 덤불로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동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를 때, 그런 식으로 뛰는 건 미친 짓. 너절한 놈들. 시골 농부들 윽박지르는 데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군. 놈이 저지른 두번째 미친 짓은 블래스터 총구 앞으로 곧장 달려온 것이다.
다르만은,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깨끗하게 머리를 날려 보냈다. 소리없이, 깔끔하게, 위케이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에서 한 자락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장님, 나이샷." 다르만은 안도했다. 이제 말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다음 할 일은 위장을 풀고, 저 시체를 감추는 것. 전화 카드 마냥 저렇게 놔둘 수야 없는 노릇이다. 몇분 정도 기다리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특별한 이상이 없자, 그는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땅 위로 올라섰다.
그는 시체를 덤불 안으로 끌고 왔다.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첫번째 놈은 도대체 뭘 따라온 거지? 그것은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었다. 쥐단의 호기심이 그가 숨은 곳을 알려준 것이다. 그는 주의 깊게 확인하면서, 시체를 끌고 온 흔적을 나뭇가지로 지웠다. 다리는 여전히 말썽이었다.
물건 낭비는 안좋아. 그러기도 싫고. 저 위케이들에게 블래스터나 바이브로 블레이드 같은 건 이제 필요없을 테고 말이지. 다르만은 시체를 이리저리 뒤져 보곤, 데이터 카드나 기타 쓸만한 것들을 챙겼다. 두근거림도, 자신이 도둑같다는 느낌도 없었다. 다르만의 개인 물품은 전부 공화국 대육군의 재산이었고, 그 자신도 뭔가를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필요한 건 정보. 다행히도, 지금 건져낸 카드에 수록된 정보는 임무 수행에 유용할 듯 싶었다. 그리고 저 구슬이나 동전들은 뭘 사거나, 누군가를 매수할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시체를 숨기기에 적당한 곳이 있었다. '파묻을 시간은 없어.' 그 때 덤불 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동물의 움직임. 작달막한 머리가 여럿 나타나더니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또 너희냐?" 다르만의 투덜거림이 헬멧 너머의 쥐단에게 닿을 리는 없다. "가서 자라, 좀." 녀석들은 앞으로 다가오더니, 위케이의 박살난 머리에 몰려들었다. 자그마한 이빨로 시체를 뜯어먹는 쥐단 무리의 모습은 마치, 시체에 덮은 검은 색 털 담요같이 보였다.
묻을 필요도 없겠군.
뭔가 흘러 나오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오자, 다르만은 목이 찢어진 위케이 주변을 살펴 봤다. 라이플은 계속 겨눈 채였다. 그 위케이는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속이 뒤틀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오노시스 전투에서 이미 수없이 적을 죽였다. 멀리서 유탄 발사기와 대포로 박살낸 드로이드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다. 핏속에서 들끓던 공포와 생존 본능. 살기 위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눈 앞에서의 살해, 그 부산물은 철조각이 아니다. 장갑과 오른쪽 팔뚝의 장갑판에는 위케이의 목에서 뿜어진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깨끗하게 처리했어야지. 칠칠치 못하군, 나란 놈은.'
훈련은 숱하게 받았었다. 정확하게 죽이는 법, 확실하게 살해하는 법, 깔끔하게 없애는 법. 하지만 그 다음에 다가올 감정에 대해 가르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가 느껴지긴 해.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나중에 다시 고민해 봐야겠군.
라이플을 계속 겨눈 채, 다르만은 자신의 실수를 마무리지었다. 저 식인 짐승들은 곧 다음 식당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제4 장은 이걸로 끝입니다. 이제 5 장으로 넘어가야겠지요.
각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멋집니다.
이테인은 비르한의 발디딘 곳을 따라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줄기가 부러진 쿠바라 묘목들을 지나자, 타다 남은 그루터기들로 이루어진 원형으로 펼쳐져 있었다. 공기는 연기와 구워진 바크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입에선 쉴새없이 욕설이 터져나왔다. 퀼루라 어에 서툰 이테인으로서도 그가 내뱉고 있는 게 저주에 가까운 단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당신 탓이요." 밭을 둘러보던 비르한이 내뱉었다. 지평선 위에서 비치는 햇빛이 눈부신 탓에, 그의 손은 눈썹 위에 걸쳐져 있었다. 대낮인 덕에, 간밤의 폭발이 불러온 피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쩌면 좋소? 계약자들한테 뭐라고 하냔 말이오?"
물어보나마나. 니모디아 인들은 동정심이란 단어를 모르는 족속이다. 농촌 마을의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자연 재해라 한들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일은 자연 재해도 아니었다.
500미터에 이르는 지역에 폭발 흔적이 걸쳐 있었고, 중심의 화구는 지름이 12, 아니 15미터 정도. 그 깊이에 대해 이테인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화구 주변에는 트랜도샨과 우베스가 아래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블래스터를 든 채, 흙 속에서 뭔가를 찾는 듯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다. 비르한이나 이테인 쪽으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 눈에는 틀림없이, 촌스럽고, 영양 부족에다가, 농장일에 찌들린 시골 처녀 정도로 보였으리라.
단순한 운석 조각이 떨어진 거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듯 싶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이테인이 그네들이 모르는 뭔가를 아는 것도 아니다.
"그게 왜 제 탓이죠?" 이테인이 반문했다.
"내 눈이 장식인 줄 아시오?" 비르한의 말투에 불쾌함이 묻어나왔다. "스피더나 화물선, 아니면 살포기든 뭐든 간에, 추락하는 걸 수십번이나 봤소. 저런 구멍이 안 뚫려요, 그냥 박살나서 타버리고 말지. 박살나도 이렇게, 밭을 절반이나 말아먹진 않는단 말이오. 이건 행성 밖에서 온 거요. 아마 군용이나 뭐 그런거 말이오." 그는, 주변에 널려있는 작물들을 발로 차댔다. 모두 불에 타버린 작물들이었다. "당신네들, 다른 행성 가서 싸우면 안되겠소?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데 이게 다 뭐냔 말이오."
이테인의 머리속이 바빠졌다. '바크 가격을 생각해 보면, 분명 엄청난 손해야. 이걸 메꾸려고 호칸 쪽으로 날 넘길지도 모르지. 작물 상당수가 불타버렸으니 돈이 엄청 깨질테고, 난 이미 군식구니까. 젠장, 숨을 곳을 다시 찾아야겠어. 정보를 퀼루라 밖으로 빼낼 방법도 다시 생각해야겠군.'
이테인이 그을린 땅을 살펴보고 있을 때, 우베스와 트랜도샨은 돌아서서 밭 옆의 지저분한 길 쪽으로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우베스는 자신의 헬멧 한 쪽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콤링크로 뭔가를 듣는 자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달려야 할 만큼 급한 일인 듯 싶었다. 즉 이번 일이 - 비 오듯이 추락하는 - 나-샤다 살포기의 일상적인 사고가 아니란 뜻이다.
이테인은 좀 더 기다렸다가 구덩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그토록 살피던 게 뭔지 알아 볼 참이다.
엄청난 폭발이었음은 확실했다. 검게 그을린 화구의 한쪽 면은 평평하게 깎여 있었고, 파편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거대한 폭발. 소형 비행선이 폭발한 흔적이었다.
비르한은 내버려 둔 채, 호칸 패거리가 했던 것처럼, 주변을 돌며 지면을 훑었다. 이테인 자신도 뭘 찾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쿠바라 과수원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걸 보기 전까지는.
이른 아침의 햇빛이 땅 속에 묻힌 뭔가의 표면, 심하게 긁힌 금속 표면에 반사되었다. 폭발로 인해 땅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이테인은 최대한 무관심을 가장하며, 자세를 낮추고는 손가락으로 그것 주위의 흙을 파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모양이 완전히 드러났다. 검게 그을린 그것의 색이 친숙해 보이는 이유를 안 것은, 그보다 몇 분이 더 지나서였다. 그것은...비틀린 금속 파편이었다. 엄청난 힘으로 찢겨 나가면서 얼어붙은 금속 파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예전에 완제품을 본 적이 있어.'
R5 아스트로메크 드로이드의 파편. 파편에는 공화국의 상징이 뚜렷이 박혀 있었다.
'그들이 온다.'
'누구든 간에, 무사해야 할텐데.'
낮에 움직이는 게 위험한 짓인 줄은 다르만도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오른쪽 다리는 체중이 실릴 때마다 비명을 질러 댔다.
길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덤불 속에 떨어진 다르만은, 주변의 흙을 파내 얕은 참호를 만드는 데 두 시간을 쏟아부었다. 나무 뿌리와 돌들은 끈질기게 방해했고, 착지 때 나무에 부딪힌 충격도 작업을 더디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나뭇가지와 잎으로 참호 입구의 위장까지 마친 다르만은 조심스레 길 쪽을 정찰하고 있었다. 가끔 라이플 가늠자나 헬멧의 바이저에 설치된 전자식 쌍안경 패널을 통해 훑어 보기도 했다.
일단, 밤 동안 다르만 주변에 모여들었던 작은 짐승들은 사라졌다. 쫓아버리려는 시도는 진작에 포기했었다. 처음에 녀석들은 장갑복을 이리저리 쑤석거리다가, 거리를 두고 그를 관찰했다. 하지만 낮이 되자 참호 아래쪽에서 반짝이던 눈들은 간 곳이 없었다.
아직 현재 위치도 확인 못한 상태였다. 포착 위험 탓에 GPS 네트워크는 사용 불가. 홀로차트에서 확인한 지형 특이점을 찾아내려면, 일단 여기서 벗어나서 정찰을 해 봐야 했다.
자신의 방향이 북쪽인 것은 확실했다. 흙에 파묻혔을 때 붙잡았던 가느다란 가지 주변에는 자그마한 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그 돌들의 둘레에는 태양의 경로가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 동-서의 방향은 확보. 다르만의 데이터패드가 계산한 속도와 거리가 정확하다면, 현재 위치는 첫번째 합류점에서 북동쪽으로 40~50 클릭 사이의 지점일 것이다. 걸어서 제 시간에 도착할 거리가 아니다. 다리 상태도 안좋은 데다가 추가된 짐까지 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짐을 끌고 간다면 수풀 사이로 아주 명확한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럼 적들도 그대로 따라 오겠지.
다르만은 군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리 쪽 장갑판을 떼어낸 후, 무릎 쪽 언더슈츠를 벗겨냈다. 관절 위쪽의 근육이나 힘줄이 찢어진 것 같았다. 그는 임시로 만든 붕대에 다시 박타 액을 뿌린 후, 각반과 장갑판을 착용했다. 그러고는 감시를 계속했다.
이제 뭘 좀 먹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다르만은 좀 더 참아 보기로 했다.
DC-17의 전자기 조준경의 십자선으로 진흙길을 훑었다. 처음에는 헬멧을 쓴 채로, 눈 앞에서 번쩍이는 화면을 주시했지만, 화면상에 너무 많은 정보가 뜨는 바람에 되려 정신이 사나워졌다. 라이플의 조준경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혼돈 그 자체. 빛, 화려한 빛, 눈도 못 뜰 정도의 빛. 이건 그거군. 티포카 시티의 야경. 휴양소에서 나온 빛하고 벽에 반사된 빛들이 뒤섞여 버리면 딱 이런 모양새였어. 젠장, 차라리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말지.
하지만 시간이 - 잠깐 동안이지만 - 흐르자 그는 익숙해졌다. '그 날 아침 같군. 킬로 분대와 델타 분대가 처음으로, 전방 투영 장치를 쓰고서 실탄 훈련을 치렀던 날. 끔찍했지. 적응 못한 친구들은 그 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는 보는 법을 배웠고, 보지 않는 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르만은 계속 상태창 전부를 살펴 봤다. 각각의 상태창들은 무장의 장전 여부와 장갑복의 작동 상태, 그리고 다르만 주변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각 상태창을 다 확인한 그는, 차분한 느낌의 푸른색 부품들로 이루어진 매끈한 원통을 통해 주변을 훑어 봤다. 조준경에 비친 화면에는, 그가 표적에 맞는 화기로 바꿨을 때를 대비한 표시점과 함께, 거리, 환경 정보 및 다른 옵션에 대한 정보도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 다르만은 굳이 눈돌릴 필요도 없이 필요한 내용을 선택할 수 있다. 그가 시선을 둘 곳은 표적뿐.
희미하게 투닥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그는 긴장했다. 목소리 다수. 오른쪽에서 접근 중. 그 때, 목소리가 그쳤다.
그는 기다렸다.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고, 곧이어 두 명의 위케이가 그의 시선에 잡혔다. 순간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꽤나 부지런해 보이는 그들 둘은 길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그 때, 한 녀석이 갑자기 멈춰서서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하더니 뭔가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뭔가 발견한 듯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는 곧장 다르만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르만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날 찾았을 리 없어. 다르만은 속으로 되뇌었다. 교본대로 했으니까. 반사면도, 움직임도, 냄새도, 아무것도 노출시키지 말 것.
하지만 위케이는 곧장 다가와서, 덤불 속으로 들어왔다. 다르만과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는, 뭔가 추적하다 흔적을 놓친 듯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르만은 숨을 멈추다시피 했다. 헬멧은 완전 방음이었지만, 숨소리도 새어 나갈 것만 같았다. 위케이와는 점점 가까워져서, 이제는 위케이 특유의 땀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다르만의 눈에 비친 녀석의 부무장은 하드륨 총신의 KYD-21. 다른 손에는 바이브로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이제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만큼 가까워졌다.
[[B]]두려움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B]]
놈은 길 옆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리 정도 높이의 주변을 살피는 놈의 모습은, 흡사 도서관 시렁에 놓인 디스크들을 뒤져보는 모양새다.
[[B]] 두려움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그대가..[[/B]]
이제 그 위케이는 오른쪽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녀석의 장화는 다르만의 등에 얹혀 있는 가지들을 밟고 있었다. 그 때 위케이가 아래를 쳐다보더니, 고함을 치듯이 뭐라고 말했다.
[[B]]... 그대가 그 두려움을 이용하는 동안만큼은.[[/B]]
다르만은 위케이의 턱 바로 아래에 주먹을 갖다 댔다. 건틀렛에 내장된 바이브로 블레이드가 위케이의 목에 파고들자, 주먹을 비틀어 놈의 혈관을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한쪽 팔로 시체를 받아들었다. 위케이는 목이 찢어진 채로, 아직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팔을 내려 가능한 한 조용히 지면에 시체를 내려놓았다.
"뭐 좀 찾았냐?" 다른 위케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가르-울? 가르?"
답이 올 리 없다. 그럼, 내가 대답해 주지. 다르만은 DC-17을 겨누었다.
두번째 위케이는 덤불로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동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를 때, 그런 식으로 뛰는 건 미친 짓. 너절한 놈들. 시골 농부들 윽박지르는 데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군. 놈이 저지른 두번째 미친 짓은 블래스터 총구 앞으로 곧장 달려온 것이다.
다르만은,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깨끗하게 머리를 날려 보냈다. 소리없이, 깔끔하게, 위케이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에서 한 자락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장님, 나이샷." 다르만은 안도했다. 이제 말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다음 할 일은 위장을 풀고, 저 시체를 감추는 것. 전화 카드 마냥 저렇게 놔둘 수야 없는 노릇이다. 몇분 정도 기다리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특별한 이상이 없자, 그는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땅 위로 올라섰다.
그는 시체를 덤불 안으로 끌고 왔다.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첫번째 놈은 도대체 뭘 따라온 거지? 그것은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었다. 쥐단의 호기심이 그가 숨은 곳을 알려준 것이다. 그는 주의 깊게 확인하면서, 시체를 끌고 온 흔적을 나뭇가지로 지웠다. 다리는 여전히 말썽이었다.
물건 낭비는 안좋아. 그러기도 싫고. 저 위케이들에게 블래스터나 바이브로 블레이드 같은 건 이제 필요없을 테고 말이지. 다르만은 시체를 이리저리 뒤져 보곤, 데이터 카드나 기타 쓸만한 것들을 챙겼다. 두근거림도, 자신이 도둑같다는 느낌도 없었다. 다르만의 개인 물품은 전부 공화국 대육군의 재산이었고, 그 자신도 뭔가를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필요한 건 정보. 다행히도, 지금 건져낸 카드에 수록된 정보는 임무 수행에 유용할 듯 싶었다. 그리고 저 구슬이나 동전들은 뭘 사거나, 누군가를 매수할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시체를 숨기기에 적당한 곳이 있었다. '파묻을 시간은 없어.' 그 때 덤불 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동물의 움직임. 작달막한 머리가 여럿 나타나더니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또 너희냐?" 다르만의 투덜거림이 헬멧 너머의 쥐단에게 닿을 리는 없다. "가서 자라, 좀." 녀석들은 앞으로 다가오더니, 위케이의 박살난 머리에 몰려들었다. 자그마한 이빨로 시체를 뜯어먹는 쥐단 무리의 모습은 마치, 시체에 덮은 검은 색 털 담요같이 보였다.
묻을 필요도 없겠군.
뭔가 흘러 나오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오자, 다르만은 목이 찢어진 위케이 주변을 살펴 봤다. 라이플은 계속 겨눈 채였다. 그 위케이는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속이 뒤틀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오노시스 전투에서 이미 수없이 적을 죽였다. 멀리서 유탄 발사기와 대포로 박살낸 드로이드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다. 핏속에서 들끓던 공포와 생존 본능. 살기 위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눈 앞에서의 살해, 그 부산물은 철조각이 아니다. 장갑과 오른쪽 팔뚝의 장갑판에는 위케이의 목에서 뿜어진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깨끗하게 처리했어야지. 칠칠치 못하군, 나란 놈은.'
훈련은 숱하게 받았었다. 정확하게 죽이는 법, 확실하게 살해하는 법, 깔끔하게 없애는 법. 하지만 그 다음에 다가올 감정에 대해 가르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가 느껴지긴 해.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나중에 다시 고민해 봐야겠군.
라이플을 계속 겨눈 채, 다르만은 자신의 실수를 마무리지었다. 저 식인 짐승들은 곧 다음 식당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제4 장은 이걸로 끝입니다. 이제 5 장으로 넘어가야겠지요.
각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멋집니다.
가입한 지 3년. 좀 있으면 4년.
좀....나아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