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와 통진당 때문에 국정원은 여론조작 파문에 대해 면죄부를 얻었고, 국정원 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국정원이 위기감을 느끼다 보니 핀치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이걸 타이밍 좋게 터뜨렸다는 꽤 신빙성 있는 얘기도 있긴 한데, 아무튼 결국은 모든 것이 국정원의 승리가 되고 국정원이 중정 시절이나 안기부 시절처럼 다시금 이 나라를 사실상 지배하는 세력이 되는 것이려나요? 국정원이 진짜 목표로 하는 건 사실 중정이나 안기부보다는 슈타지나 KGB인 것 같지만요... 그럼 이제 새누리당이 동독 공산당이나 소련 공산당의 포지션에 놓이게 되는 걸까요? 그건 새누리당 스스로가 거부해야 될 일일 것 같은데?


좀 다른 얘기지만 괜히 이석기와 통진당을 일본 적군파에 비유하는 말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저 종북NL 세력 때문에 국정원이 개혁되지 못한 채 계속 국민의 위에 군림하고 국가의 위에 군림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국민과 국가의 위에서 전제군주와 같이 군림하는 국정원이 보수 우파 진영과 계속 손을 잡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진보 좌파가 힘을 잃고 보수 우파의 절대우위가 성립하게 되어 보수 우파 진영의 특정 정당이 초장기적으로 집권하면서 사실상의 독재를 행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오고야 말 것이니까요. 네, 자민당이 수십년 간 장기집권을 하던 시대의 일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끝나고 특정 정당이 사실상 독재를 하는 그런 상황이 종식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겠지요. 당장 지금의 일본만 해도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진보 좌파 진영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가지면서도 진보 좌파 진영에 대한 비판보다는 오히려 보수 우파 진영에 대한 비판에 더 집중해 왔던 것이 사실 옆나라의 저런 상황 덕분이었습니다. 옆나라가 너무 안 좋은 사례를 보이다 보니 말이지요. 한번 저런 시대를 거치고 나면 그런 상황이 끝난 그 다음의 시대에도 계속 정치가 막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옆나라가 너무 생생하게 보여줘서...

 

아무튼 대한민국의 일본화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그게 단순히 '대한민국의 일본화'로 끝날지, 아니면 아예 '대한민국의 일본제국화'로 가게 될 지는 미래에 가서야 알 수 있겠지만요.
나라의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는 지금과 큰 변화가 없지만 특정 정당이 마치 자민당의 55년 체제처럼 초장기적으로 집권을 유지하면서 독재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정치권을 지배하게 되어 지금의 일본처럼 될 지, 아니면 정보기관과 검찰과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가 실종되어서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답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과거의 일제처럼 될 지... 둘 중 어느 방향으로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으로 가든 이 나라는 끝입니다. 정치 수준이 일본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니까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까 진보 진영 쪽의 몇몇 분들은 저처럼 일본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독일의 사례까지도 인용하면서 저보다도 더 심각하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당의 제3제국이 성립된 것처럼, 공존을 고려하지 않고 타협과 존중이 없는 정당들 간의 극한 대립과 그로 인한 정치적 교착, 정당들의 지지자들 간의 격렬한 투쟁, 그리고 극단주의자들의 준동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극단주의자들과 그들에게 기대를 품은 동조자들에 의해 파국을 몰고 올 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제3제국이 들어선 것처럼, 민주주의에 기반한 지금의 대한민국 체제가 무너지고 한국판 히틀러와 한국판 나치당이 대두하면서 한국판 제3제국이 탄생하지 않나 하는 그런 우려도 나오고 있는 것이죠.
아니 뭐, 그 분들이 우려하시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판 파시스트당과 한국판 무솔리니 정도는 왠지 제가 생각하기에도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독일의 사례를 인용하신 분들도 지적하고 있고 또 그 이전에도 이미 많은 논객들이 자주 지적해 왔던 것입니다만,  전체주의적 성향 탓에 파시즘의 망령이 기웃거리기도 쉽다는 한국 사회의 취약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이기도 하니까요(그나마 우리 국민의 정치 의식이 일본 같은 경우에 비하자면 훨씬 나은 편이고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그나마 일본보다는 나은 편이었던지라 이게 억제된 것일수도요? 문제는 그러한 타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우위성이 이제 무너지려 한다는 것이지만요.).

 

이미 부산에서 민주당 측의 집회를 통합진보당 측의 집회로 착각하고 총기를 들고 위협하는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도 들려오는데, 이거 점점 제가 위에서 언급한 몇몇 분들의 우려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