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라는게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기점으로 시작된 신화 체제라고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라는 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공포 소설을 집필했을 뿐이지요.


  게다가 그의 작품은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펄프 작가로서 나름대로 인기를 모으기는 했지만, 문학적인 평가는 고사하고 제대로 출판된 작품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작품을 집필했지만,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황. 결국 러브크래프트는 1937년 암으로 사망하면서 불운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은 러브크래프트의 친구이자 그를 스승처럼 생각했던 한 사람의 작가(편집자) 덕분입니다.


  어거스트 덜레스...

  그 자신이 작가이기도 했던(13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6세에 작가로서 데뷔했던) 덜레스는 1939년 동료인 도널드 완드레이와 함께 출판사인 아캄 하우스(Arkham House)를 설립합니다. 그가 이 출판사를 만든 것은 바로 존경하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아캄 하우스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꾸준히 소개되었습니다. 아니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덜레스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여 소개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바로 "크툴루 신화"이지요. 더욱이 덜레스는 다른 작가들이 크툴루 신화의 창작과 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품이 탄생하였고, 이를 통해 작가들이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크툴루 신화는 덜레스의 개인적인 해석이 더해지면서 러브크래프트의 원저와 다르게 발전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모습을 갖추었기에 이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덜레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대중에 소개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크툴루 신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작품이 새롭게 태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의 사례가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가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후의 해석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다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토미노 요시유키의 손을 벗어나 다채롭게 펼쳐진 <기동전사 건담>이나, 진 로덴버리의 손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는 <스타트렉>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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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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