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뭔지를 느낀다면, 그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 들어 무언가 감을 잡게 되었습니다.

 

  게임 소재론이라는 과목은 참으로 흥미로운 과목입니다. 이번 심사 결과물 중에서 '게임 소재론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이 부족하다.'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재론이라는 과목은 게임 기획과 관련한 모든 과목 중에서 유일하게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는 과목이기 때문입니다.

 

  소재론은 그 단독으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소재론이라는 과목은 많은 소재를 밑거름으로 아이디어라는 열매를 낳는 방법론입니다.

 

  문제는 소재라는 것은, 교과서를 읽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자기 계발서 등에서 매우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지만, 그것 하나하나가 애매모호한 느낌입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서도 각기 다르지만, 상황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아니며, 노력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소재를 이용해서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방법론이라니.

 

  제일 처음에 이 과목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치는 저 자신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수 년에 걸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도 평이 나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번의 심사를 통해서 말 그대로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다는 표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소재론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니. 정작 그 내용을 보고 한참 동안 머리가 멍했던 느낌입니다. 머리를 짜 봤지만, 심사위원을 이해하도록 만들기에는 부족한 대답 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의 교과서 교정에서 그 부분에 가장 많은 고민을 기울였고, 그만큼 시간도 더 오래 걸렸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직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에는 단지 강의를 맡았으니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래도 자신을 가지고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소재론은 필요한 것이며, 정말로 도움이 되는 과목이라는 것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아직 소재론을 가르치는 방법론에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강의는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더욱 완성도 높고 충실한 시간을 만들어나갈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한지 어언 6년이 넘어가지만, 이제야 초보티를 벗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지금의 나를 비웃으며 아직 멀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저는 소재론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교사로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나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도 수업 진행 그 자체가 제게 많은 교훈을 주고, 교사로서만이 아니라 기획자로서 성장하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9월부터 산업 대학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게임 학과가 아니라 디지털 정책 전공인데, 나름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거듭나고 싶고, 이를 위해 공부도 하고 자격도 갖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닐테니 그만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수 년 간보다도 최근에 몇 달 간 제 자신이 더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교사를 만났고, 좋은 조언자와 심사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체험을 많이 한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사옥을 옮기고 분당 한겨레 센터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문화적인 충격이라 할만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다녔고 여러가지를 많이 하다보니 분당 센터의 직원 분과도 어느 정도 친해질 정도였고, 연극이나 뮤지컬 티켓도 공짜로 얻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정말로 좋아하셨지요. ^^)

 

  곰곰히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을 만나서 성장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만남에서 얻는 체험이 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침 아래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질문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수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도, 학생을 만나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오랜 기간 많은 학생을 만났는데,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제게 추억과 함께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것을 하게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다는 것을 느끼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행복한 시간, 보람있고 충실한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profile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