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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C 클라크의 낙원의 샘. 하드 SF의 경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하드 SF(Hard Science Fiction), 란 주로 과학, 그것도 자연 과학이나 기술 과학의 지식이나 이론, 기술 그 자체를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을 말합니다. 자연 과학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정합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단순히 특이한 기술이나 장치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가제트 SF와는 구별됩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제트 SF로는 <전격 Z 작전(나이트 2000)>나 <컴퓨터 형사 가제트> 등을 떠올릴 수 있겠군요.)


  SF 중에는 인문 사회 과학, 이를테면 정치, 사회 체제, 심리학 등을 주제로 다룬 작품도 꽤 많은데(예 조지 오웰의 <1984> 등), 이런 작품을 영어권에서는 '소프트 SF'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등에서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지요.


  하드 SF의 내용은 주로 어떤 특정한 문제를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해결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최근 이야기했던 우주 엘리베이터 제작 과정을 소재로 한 <낙원의 샘>(아서 c 클라크) 같은 작품은 바로 하드 SF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군요.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달로 날아가는 대포를 만드는 과정을 소재로 한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같은 작품도 하드 SF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드 SF 작품은 이야기에서 인간 관계 등의 묘사보다는 과학적인 서술과 묘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지만, 항상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연 과학과 기술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스타쉽 트루퍼스>(로버트 하인라인)처럼 정치,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도 있어, < 낙원의 샘> 같은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하드 SF인지 아닌지 나누는 것은 명확하다고 보기 힘듭니다.
(< 스타쉽 트루퍼스>에서는 강화복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가 상당히 강조하지만, 작품 전반적으로는 정치, 사회적인 인문 과학 경향이 훨씬 강합니다. 사실 강화복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훈련하고 완벽한 장비를 갖춘 엘리트 군대를 묘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선 아예 강화복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장비보다는 인간의 용기와 노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도 본격적인 하드SF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사실 그것은 하인라인 작품의 전반적인 특색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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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스타쉽 트루퍼스. 강화복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재이자 보조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작가는 로봇 시리즈에서 로봇 공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지만, 일라이저 베일리와 다닐 R 올리바가 활동하는 <로봇 도시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로봇 공학이라는 기술 자체보다는 로봇에 얽힌 인간의 사회 문제가 훨씬 강조된 경향을 보이며, <파운데이션> 시리즈처럼 아예 정치, 사회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을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아이, 로봇>처럼 로봇 공학 중심의 작품은 하드 SF, <파운데이션> 같은 작품은 소프트 SF라고 부르는게 타당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한 작가의 작품은 모두 묶어서 부르는 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아서 C 클라크 같은 작가도 <스페이스 오딧세이> 시리즈처럼 종으로서의 인간의 성장이나 사회, 정신적인 발전을 다룬 작품이 많음에도 이들을 소프트 SF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한편, "하드 SF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분 중에는 '하드 SF'를 "자연 과학을 중심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본격 SF', 또는 '정통파'나 '주류 SF'라는 의미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슐러 르귄이나 로저 젤라즈니처럼 자연 과학보다는 정치, 사회적인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거나 인간의 심리 묘사 등에 중점을 둔 작가의 작품조차 하드 SF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흔히 '하드 SF 팬들은 다른 SF 작품을 무시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드 SF란 앞서 말한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SF'가 아니라 주로 20세기 중반 미국의 SF 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속칭 '주류 SF', '정통파 SF'를 뜻합니다.

(물론, 이 '주류 SF'라는 말도 사람마다 매우 다릅니다. 3대 대가나 그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던 사람의 작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적인 SF 전반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지요. 호시 신이치나 츠츠이 야스타카 등 일본 작가의 작품은 제외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나라에 관계없이 좋은 작품과 작가 전반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같은 사람이라도 작가에 대한 호불호, 또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로 나뉘는 만큼 속칭 "정통파SF"나 "주류 SF"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하드 SF라는 용어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어떤 작품을 무작정 하드 SF, 소프트 SF로 나누는 것은 반대합니다.


  앞서 말했듯 <낙원의 샘> 같은 일부 작품을 뺀 대다수 SF 작품들은 하드 SF와 소프트 SF의 경향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 중 어느 쪽이 두드러지는가는 작가의 작품마다, 심지어 하나의 작품을 보는 독자들의 견해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정치 사회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해서 소프트 SF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감시 체제 등과 관련한 기술적인 묘사가 매우 자주, 상세하게 등장하고,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보여지곤 합니다. 게다가, 명백하게 '스페이스 오페라'로 분류하며 심지어는 SF가 아니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타워즈> 같은 작품도 외전 소설 중에는 <스론 트릴로지 시리즈>처럼 복제 인간 체제나 우주선의 조종 시스템 등 기술, 자연 과학적인 측면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도 있지요.)


  따라서 하드 SF란 말은 장르라고 하기보다는 작품 자체의 경향성 정도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표현 자체도 '하드 SF의 경향성이 강하다.', '소프트 SF에 가깝다.'는 형태로 표현하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령 <스타워즈>의 소설 중에서 <스론 트릴로지> 등은 '하드 SF 비슷한 느낌이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요?)



  하드 SF와 소프트SF라는 말이 어떤 갈래나 장르가 될 수 없듯, 이것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일부 팬들이 잘못 생각하듯 하드 SF가 소프트 SF에 비해 우월한 것이 아니며, 하드 SF(경향성이 강한 작품)를 좋아한다고 해서 소프트SF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잘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취향이 다를 뿐이지요.


  앞서 말했듯 아서 C 클라크조차 소프트 SF 경향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으며, 이른바 주류 SF 작가 중에서 하드 SF가 아닌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만큼 "하드 SF만 좋아한다."거나 "난 하드 SF는 안 봐"라고 일방적으로 나누어 차별하기보다는 가능한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작품 하나하나,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준으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장르나 경향에 관계없이 이른바 좋은 작품은 가리지 않고 보는 것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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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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