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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과학 포럼
SF 속의 상상 과학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과학 이야기.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 이 게시판은 최근에 의견이나 덧글이 추가된 순서대로 정렬됩니다. )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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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 등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물거미>에서는 우주 여행 중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독특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과거’로 가서 당시에는 멸종한 ‘예지자’들을 만나서 해답을 얻는 방법이었지요.
그리고 그 ‘예지자’들은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니 프레데릭 폴이니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SF 작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SF 작가들을 예지자라고 부르면서 문제의 해결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상황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SF 작품들에 관하여 ‘SF는 미래를 예지한다.’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SF 속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이를테면, 2001년에 달에서 모노리스가 발견되거나(<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3년 4월 7일에 아톰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철완 아톰>))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던 SF 속의 다양한 상황이 어느새 현실 속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보면, ‘SF에 예지 능력이 있다.’라는 말도 비단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렇게 아시모프를 비롯하여 여러 작가가 다양한 ‘예언’을 실현하는 상황에서 특히 ‘재현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쓴 작가는 역시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은 ‘쥘 베른’이 아닐까 합니다.
(흔히 SF는 취향이 한정되어 대중적인 인기 작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엄청나게 팔리고 있으며, 이제까지 판매된 작품을 누적하면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성경 같은 걸 빼면 사실상 1위죠.-)
![Jules_Verne.jpg Jules_Verne.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s_Verne.jpg)
[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쥘 베른 ]
에드거 앨런 포우, H.G. 웰스, 그리고 코난 도일 등과 함께 초기 SF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SF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기구를 타고 5주일>(1863)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 모험 소설을 내놓았는데, 이들 작품에서 선보인 다양한 내용은 그 후 실제로 재현되곤 했지요.
이를테면 그의 작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작품 속에서 기지로 선정했던 장소는 실제로 NASA가 있는 플로리다였고, 달에서 돌아온 우주선(대포알)이 도착한 곳은 아폴로 8호가 실제로 내려왔던 바로 그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8호의 선장은 쥘 베른의 손녀에게 ‘우리는 플로리다에서 달로 향하여 지구로 돌아왔는데, 우리의 우주선이 착륙한 곳은 소설에서 나온 지점에서 겨우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 붙어, 소설 속에서 그랬듯 바다 위에 떠오를 필요없이 해저를 거침없이 여행하고 나아가 북극해마저 통과하는 위업을 달성했지요. 그 밖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습 등에서 ‘재현성 높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SF는 ‘예언서’일까요?
이 의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예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성격을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거나 짐작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평범한 풍자 시인에 지나지 않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것이 후일 그대로(또는 비슷하게) 이루어졌을 때 ‘예언은 이루어졌다(또는 맞았다.).’라고 말하지요.
(물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자신이 예언자라고 한 일은 한 번도 없으며, 단지 후세 사람들이 멋대로 말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SF의 ‘예지력’은, 특히 쥘 베른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의 ‘예지력’은 그 어떤 예언자조차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F가 미래를 예지했다.’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 쥘 베른은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날아간 뭔가가 달을 돌고 바다에 내려오리라는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달 여행은 그가 작품에서 말한 것보다 100년 뒤에 진행되었고, 그가 말한 대포가 아닌 로켓이었으며 대포알이 아닌 우주선에는 산소 발생 장치가 아니라 공기가 잔뜩 들어간 탱크가 담겨 있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뭔가가 날아가 달을 돌고 바다에 떨어진다.’라는 점을 제외하면 쥘 베른의 이야기 중 타당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예언자였다면 솔직히 엄청나게 틀렸다고 해야겠지요.
아니 쥘 베른만이 아닙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로버트 하인라인도, 그리고 아서 C 클라크도 수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예견’을 했지만 이들 모두는 엄밀히 말해 틀렸습니다. (아서 C 클라크는 20세기 말 잡지에서 21세기 가능성에 대해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 중 들어맞은 것은 그가 21세기가 되고도 꽤 오래 산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SF는 뻥쟁이? 또는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 허망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SF는 과학이 아닌 상상 과학,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많은 SF 팬은 SF를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SF에는 ‘과학 비슷한 것’은 있어도 ‘과학 그 자체’는 없습니다. SF 속의 과학은 어디까지나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라는 과학적인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SF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학적인 법칙이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에서도 아시모프가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로봇 공학(Robotics) 3원칙을 지키는 로봇은 흥미롭고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 타당한 기술은 아니며,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처럼 셔틀 안에서 조심조심 걷는 장면은 솔직히 말해서 바보스럽죠. 게다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은 먼치킨 병기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구현되는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이 -하인라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실제로 연구되고 있으며, 로봇 공학과 인공 지능이 -역시 아시모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민간 우주 여행이 -클라크가 기대한 모습과는 다르지만- 점차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세밀한 방법은 무시하고 본질적인 면에서 SF의 여러 상황은 ‘재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아동용의 만화인 <철완 아톰>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친구가 되는 로봇’ 역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SF의 예언’이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SF가 예언을 이루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JULE_VERNE_MOON.jpg JULE_VERNE_MOON.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_VERNE_MOON.jpg)
[ 대포알을 타고 달까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지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과 <지구에서 달까지>는 실제의 우주여행을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달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래 달로 갈 수 있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늘에도 동아줄을 내려주길 기다리거나, 선녀의 목욕탕을 찾으려 애쓸 필요없이 우리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우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단순히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SF가 미래를 예언한다.’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SF는 절대로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미래를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게 좋다.’라거나 ‘이런 미래에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라는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할 뿐이지요.
이런 것이 그대로 미래의 모습으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아무리 뛰어난 하드 SF 작품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는 일은 없습니다.) 최소한 ‘전설’이나 ‘신화’보다는 나은 가능성….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SF의 예언’을 이루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1950년대 말, 데츠카 오사무가 탄생시킨 로봇 아톰은 2003년 4월 7일에 태어났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2003년 4월 7일 아톰처럼 마음을 갖고 10만 마력의 힘에 하늘을 나는 로봇이 탄생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아톰을 보고 자라난 이들은 로봇 공학자가 되어 아시모와 같은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릴 때 보고 자라난 아톰을 상상하면서….
이렇듯,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가능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SF의 예지력’이며, SF만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쥘 베른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도 달나라 여행은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은 그것을 읽은 많은 이들(특히 <지구에서 달까지>의 주역인 미국인들)에게 도전할 만한 과제를 던져주었고 이를 해결하는 힌트를 주어 소설이 나오고 고작 100년 만에 달 여행을 성사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지요.
SF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게 하는 강력한 설득력이...
SF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다양한 도전을 이룩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SF를 좀 더 쉽고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여하튼 SF는 예언서는 아니지만, 그 예언을 -방법은 다를지라도- 이루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니까요.
추신)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 리>, <지구에서 달까지>, <지구 속 여행> 같은 쥘 베른의 작품은 흔히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그의 작품이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아동용으로 다시 편집되어 나왔기 때문일 뿐, 그의 소설 자체가 아동용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열림원에서 나온 <쥘 베른 걸작선> 중 하나인 <신비한 섬>은 엄청나게 두꺼운데다 자그마치 3권…. 아이들이 읽으려면 아마 몇 주는 걸릴지도 모를만한 분량이죠.
쥘 베른의 작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입증하듯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분명히 19세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보아도 ‘왠지 가능하게 보인다.’라고 여겨지죠. 본문에서도 이야기했듯 그야말로 강력한 설득력…. 분명히 그 중 상당수는 낡아빠진-또는 잘못된- 과학임에도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니 진실로 믿을 수밖에요.
(어떤 면에서는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테크노 스릴러 작가의 원류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쥘 베른 작품은 완역본으로 제대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SF로서도 높은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흥겨운 작품들이니까요. (19세기의 ‘신사’들이 왜 쥘 베른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나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찾기 어렵다면 한번 ‘SF&판타지 도서관’에 오셔서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그의 작품은 매우 두껍지만 쉽게 읽히고 페이지가 금방금방 넘어가기 때문에(깊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도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jule_verne_earth.jpg jule_verne_earth.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_verne_earth.jpg)
[ 열림원의 쥘베른 걸작선... 역시 쥘 베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맞추어 다시 나오기도 했다. ]
그리고 그 ‘예지자’들은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니 프레데릭 폴이니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SF 작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SF 작가들을 예지자라고 부르면서 문제의 해결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상황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SF 작품들에 관하여 ‘SF는 미래를 예지한다.’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SF 속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이를테면, 2001년에 달에서 모노리스가 발견되거나(<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3년 4월 7일에 아톰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철완 아톰>))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던 SF 속의 다양한 상황이 어느새 현실 속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보면, ‘SF에 예지 능력이 있다.’라는 말도 비단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렇게 아시모프를 비롯하여 여러 작가가 다양한 ‘예언’을 실현하는 상황에서 특히 ‘재현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쓴 작가는 역시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은 ‘쥘 베른’이 아닐까 합니다.
(흔히 SF는 취향이 한정되어 대중적인 인기 작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엄청나게 팔리고 있으며, 이제까지 판매된 작품을 누적하면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성경 같은 걸 빼면 사실상 1위죠.-)
![Jules_Verne.jpg Jules_Verne.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s_Verne.jpg)
[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쥘 베른 ]
에드거 앨런 포우, H.G. 웰스, 그리고 코난 도일 등과 함께 초기 SF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SF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기구를 타고 5주일>(1863)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 모험 소설을 내놓았는데, 이들 작품에서 선보인 다양한 내용은 그 후 실제로 재현되곤 했지요.
이를테면 그의 작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작품 속에서 기지로 선정했던 장소는 실제로 NASA가 있는 플로리다였고, 달에서 돌아온 우주선(대포알)이 도착한 곳은 아폴로 8호가 실제로 내려왔던 바로 그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8호의 선장은 쥘 베른의 손녀에게 ‘우리는 플로리다에서 달로 향하여 지구로 돌아왔는데, 우리의 우주선이 착륙한 곳은 소설에서 나온 지점에서 겨우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 붙어, 소설 속에서 그랬듯 바다 위에 떠오를 필요없이 해저를 거침없이 여행하고 나아가 북극해마저 통과하는 위업을 달성했지요. 그 밖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습 등에서 ‘재현성 높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SF는 ‘예언서’일까요?
이 의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예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성격을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거나 짐작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평범한 풍자 시인에 지나지 않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것이 후일 그대로(또는 비슷하게) 이루어졌을 때 ‘예언은 이루어졌다(또는 맞았다.).’라고 말하지요.
(물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자신이 예언자라고 한 일은 한 번도 없으며, 단지 후세 사람들이 멋대로 말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SF의 ‘예지력’은, 특히 쥘 베른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의 ‘예지력’은 그 어떤 예언자조차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F가 미래를 예지했다.’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 쥘 베른은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날아간 뭔가가 달을 돌고 바다에 내려오리라는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달 여행은 그가 작품에서 말한 것보다 100년 뒤에 진행되었고, 그가 말한 대포가 아닌 로켓이었으며 대포알이 아닌 우주선에는 산소 발생 장치가 아니라 공기가 잔뜩 들어간 탱크가 담겨 있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뭔가가 날아가 달을 돌고 바다에 떨어진다.’라는 점을 제외하면 쥘 베른의 이야기 중 타당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예언자였다면 솔직히 엄청나게 틀렸다고 해야겠지요.
아니 쥘 베른만이 아닙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로버트 하인라인도, 그리고 아서 C 클라크도 수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예견’을 했지만 이들 모두는 엄밀히 말해 틀렸습니다. (아서 C 클라크는 20세기 말 잡지에서 21세기 가능성에 대해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 중 들어맞은 것은 그가 21세기가 되고도 꽤 오래 산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SF는 뻥쟁이? 또는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 허망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SF는 과학이 아닌 상상 과학,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많은 SF 팬은 SF를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SF에는 ‘과학 비슷한 것’은 있어도 ‘과학 그 자체’는 없습니다. SF 속의 과학은 어디까지나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라는 과학적인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SF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학적인 법칙이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에서도 아시모프가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로봇 공학(Robotics) 3원칙을 지키는 로봇은 흥미롭고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 타당한 기술은 아니며,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처럼 셔틀 안에서 조심조심 걷는 장면은 솔직히 말해서 바보스럽죠. 게다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은 먼치킨 병기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구현되는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이 -하인라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실제로 연구되고 있으며, 로봇 공학과 인공 지능이 -역시 아시모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민간 우주 여행이 -클라크가 기대한 모습과는 다르지만- 점차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세밀한 방법은 무시하고 본질적인 면에서 SF의 여러 상황은 ‘재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아동용의 만화인 <철완 아톰>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친구가 되는 로봇’ 역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SF의 예언’이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SF가 예언을 이루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JULE_VERNE_MOON.jpg JULE_VERNE_MOON.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_VERNE_MOON.jpg)
[ 대포알을 타고 달까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지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과 <지구에서 달까지>는 실제의 우주여행을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달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래 달로 갈 수 있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늘에도 동아줄을 내려주길 기다리거나, 선녀의 목욕탕을 찾으려 애쓸 필요없이 우리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우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단순히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SF가 미래를 예언한다.’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SF는 절대로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미래를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게 좋다.’라거나 ‘이런 미래에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라는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할 뿐이지요.
이런 것이 그대로 미래의 모습으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아무리 뛰어난 하드 SF 작품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는 일은 없습니다.) 최소한 ‘전설’이나 ‘신화’보다는 나은 가능성….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SF의 예언’을 이루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1950년대 말, 데츠카 오사무가 탄생시킨 로봇 아톰은 2003년 4월 7일에 태어났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2003년 4월 7일 아톰처럼 마음을 갖고 10만 마력의 힘에 하늘을 나는 로봇이 탄생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아톰을 보고 자라난 이들은 로봇 공학자가 되어 아시모와 같은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릴 때 보고 자라난 아톰을 상상하면서….
이렇듯,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가능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SF의 예지력’이며, SF만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쥘 베른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도 달나라 여행은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은 그것을 읽은 많은 이들(특히 <지구에서 달까지>의 주역인 미국인들)에게 도전할 만한 과제를 던져주었고 이를 해결하는 힌트를 주어 소설이 나오고 고작 100년 만에 달 여행을 성사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지요.
SF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게 하는 강력한 설득력이...
SF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다양한 도전을 이룩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SF를 좀 더 쉽고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여하튼 SF는 예언서는 아니지만, 그 예언을 -방법은 다를지라도- 이루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니까요.
추신)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 리>, <지구에서 달까지>, <지구 속 여행> 같은 쥘 베른의 작품은 흔히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그의 작품이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아동용으로 다시 편집되어 나왔기 때문일 뿐, 그의 소설 자체가 아동용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열림원에서 나온 <쥘 베른 걸작선> 중 하나인 <신비한 섬>은 엄청나게 두꺼운데다 자그마치 3권…. 아이들이 읽으려면 아마 몇 주는 걸릴지도 모를만한 분량이죠.
쥘 베른의 작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입증하듯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분명히 19세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보아도 ‘왠지 가능하게 보인다.’라고 여겨지죠. 본문에서도 이야기했듯 그야말로 강력한 설득력…. 분명히 그 중 상당수는 낡아빠진-또는 잘못된- 과학임에도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니 진실로 믿을 수밖에요.
(어떤 면에서는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테크노 스릴러 작가의 원류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쥘 베른 작품은 완역본으로 제대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SF로서도 높은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흥겨운 작품들이니까요. (19세기의 ‘신사’들이 왜 쥘 베른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나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찾기 어렵다면 한번 ‘SF&판타지 도서관’에 오셔서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그의 작품은 매우 두껍지만 쉽게 읽히고 페이지가 금방금방 넘어가기 때문에(깊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도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jule_verne_earth.jpg jule_verne_earth.jpg](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803/863/003/jule_verne_earth.jpg)
[ 열림원의 쥘베른 걸작선... 역시 쥘 베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맞추어 다시 나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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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
2009.03.10 16: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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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불을 보고 키를 움직이는 항해자... 참 멋진 표현이군요.
분명 SF는 어두운 바다에서 갈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또는 보물지도?) 그 과정은 우리 마음대로지만,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능성은 커지게 마련이죠.
추신) 아... 사실은 쥘 베른의 <지구속 여행>에서도 공룡이나 원시인(같은 종족?)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라고 했기 때문에 오해가 있지만, 원제는 'journey to the center of earth'(프랑스명 Voyage au centre de la Terre)로서 쥘 베른의 작품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으며, 제작진에서도 원작자로 '쥘 베른'의 이름이 들어있죠.
분명 SF는 어두운 바다에서 갈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또는 보물지도?) 그 과정은 우리 마음대로지만,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능성은 커지게 마련이죠.
추신) 아... 사실은 쥘 베른의 <지구속 여행>에서도 공룡이나 원시인(같은 종족?)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라고 했기 때문에 오해가 있지만, 원제는 'journey to the center of earth'(프랑스명 Voyage au centre de la Terre)로서 쥘 베른의 작품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으며, 제작진에서도 원작자로 '쥘 베른'의 이름이 들어있죠.
2009.03.10 23:30:42
그렇습니까? 쥘베르느의 책에는 두부류의 인간이 나오더군요.
이미화석화대가는 보통사이즈의 인간과 커다란 매메드형 코끼리가 마치 집돼지 사이즈로 보이게하는
거인형인 '현세 인간'이요.
물론 쥘 베르느의 책에서도 원시파충류의 언급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쥘 베르느의 탐험자들은 과거의 한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과학자의 신념을 관철해나가는 것이지요(적어도 로덴브로크 교수에게는요.)
아마도 영화제작자들은 그 줄거리에 고립된 원시와 싸우는 코난도일의 이야기을 얽은 것 같네요.
동감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미화석화대가는 보통사이즈의 인간과 커다란 매메드형 코끼리가 마치 집돼지 사이즈로 보이게하는
거인형인 '현세 인간'이요.
물론 쥘 베르느의 책에서도 원시파충류의 언급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쥘 베르느의 탐험자들은 과거의 한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과학자의 신념을 관철해나가는 것이지요(적어도 로덴브로크 교수에게는요.)
아마도 영화제작자들은 그 줄거리에 고립된 원시와 싸우는 코난도일의 이야기을 얽은 것 같네요.
동감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2009.03.10 19:27:05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인류의 발전이란 곧 "SF를 현실로 만드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 하나가 전부 과거의 SF였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계실 컴퓨터, 하나씩은 있을 텔레비전, 밖에 주차되어 있을 자동차 등. 아니, 그 이전에 입고 계실 면과 나일론 등으로 짠 옷, 타르가 깔린 도로, 시멘트로 만든 건물, 유리 등, 세상의 하나하나가 전부 과거의 SF였습니다. 중세 시대 사람들에게 현재는 SF로 보일 것이라는 거죠. SF를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아니, 세상의 진보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SF가 미래에 대한 발판이라고 봅니다. 비단 SF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랑거리라고도 불리는 "상상력"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발판이라고 말이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SF는 멀지 않다. 아니, 현실이 바로 SF다"라고요.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군요. 그런 면에서 SF가 "허황되고 유치한 꿈이나 꾸게 하는 거짓된 과학 이야기"라는 국내에 존재하는 선입견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SF가 미래에 대한 발판이라고 봅니다. 비단 SF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랑거리라고도 불리는 "상상력"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발판이라고 말이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SF는 멀지 않다. 아니, 현실이 바로 SF다"라고요.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군요. 그런 면에서 SF가 "허황되고 유치한 꿈이나 꾸게 하는 거짓된 과학 이야기"라는 국내에 존재하는 선입견이 안타깝습니다.
2009.03.11 00:26:26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것이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표도기님 주제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자식이란 그 부모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듯 합니다. 어릴적부터 책을 접할수 있는 기회를 아이에게 많이 부여하면 그 아이가 자라서 독서를 하는 양은 보통은 다른 또래의 아이에 비해서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30분씩 책을 읽어 준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말을 않해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어떤 책을 읽혀 줄것인가에 대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고민을 많이 하겠지요. 저라면 그냥 두꺼운 SF소설들을 읽어 주겠습니다. (아동용의 쥘베른의 소설이 아닌 성인용의 소설 자체) 어릴적에는 그게 무슨뜻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아이가 자라면 다시 책을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이나 의미를 이해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30분씩 책을 읽어 준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말을 않해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어떤 책을 읽혀 줄것인가에 대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고민을 많이 하겠지요. 저라면 그냥 두꺼운 SF소설들을 읽어 주겠습니다. (아동용의 쥘베른의 소설이 아닌 성인용의 소설 자체) 어릴적에는 그게 무슨뜻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아이가 자라면 다시 책을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이나 의미를 이해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03.11 14:21:42
책은 아버지가 가르친다... 글쎄요.
쥘 베른의 예를 들어 볼까요. 쥘 베른은 평생 아들 때문에 골치였습니다. 공부 안하고 일도 안하고 의욕도 없고 무식하고 완전히 내 놓은 자식이었거든요. 쥘 베른의 집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아들은 전혀 문학이나 책이나 학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쥘 베른이 아무리 가르치려고 책을 읽히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죠. 자식 교육에는 물론 환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담배 사러 나간다고 집을 나서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버지는 그렇게 어이없이 집을 나가버렸고 그의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돈 벌러 뛰어다녀야 했지만, 떠나간 아버지는 팬터지와 공포 소설 매니아였던 관계로 팬터지와 호러 잡지와 페이퍼백 단행본을 집 전체에 한 가득 남겨 놓았죠. 스티븐 킹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형과 함께 어른 한 명 없는 텅 빈 집에서 성인용 팬터지와 호러물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중학교 때 이미 단편을 썼고, 고등학교 때 그의 형이 편집한 잡지에 단편을 팔았죠. 스티븐 킹은 작가 말고는 다른 직업을 가질 생각이 아예 없어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버지는 자식 교육이나 양육에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사람이었지만, 스키븐 킹이 작가로 대성한 것은 따지고보면 그의 아버지가 남긴 책 무더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은 운명이라고 봅니다.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집안 환경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도 개인차가 너무 커서 뚜렷하게 정의 내리기 어렵거든요. 집 전체가 책이어도 가족 중에 그것을 열심히 읽어대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브론테 자매라던지 혹은 앤 라이스 & 앨리스 보샤르트 자매, 김원일 & 김원우 형제, 하인리히 만 & 토머스 만 형제처럼 가족 전체가 모두 책을 좋아해서 훗날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작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경우도 많죠.
쥘 베른의 예를 들어 볼까요. 쥘 베른은 평생 아들 때문에 골치였습니다. 공부 안하고 일도 안하고 의욕도 없고 무식하고 완전히 내 놓은 자식이었거든요. 쥘 베른의 집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아들은 전혀 문학이나 책이나 학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쥘 베른이 아무리 가르치려고 책을 읽히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죠. 자식 교육에는 물론 환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담배 사러 나간다고 집을 나서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버지는 그렇게 어이없이 집을 나가버렸고 그의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돈 벌러 뛰어다녀야 했지만, 떠나간 아버지는 팬터지와 공포 소설 매니아였던 관계로 팬터지와 호러 잡지와 페이퍼백 단행본을 집 전체에 한 가득 남겨 놓았죠. 스티븐 킹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형과 함께 어른 한 명 없는 텅 빈 집에서 성인용 팬터지와 호러물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중학교 때 이미 단편을 썼고, 고등학교 때 그의 형이 편집한 잡지에 단편을 팔았죠. 스티븐 킹은 작가 말고는 다른 직업을 가질 생각이 아예 없어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버지는 자식 교육이나 양육에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사람이었지만, 스키븐 킹이 작가로 대성한 것은 따지고보면 그의 아버지가 남긴 책 무더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은 운명이라고 봅니다.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집안 환경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도 개인차가 너무 커서 뚜렷하게 정의 내리기 어렵거든요. 집 전체가 책이어도 가족 중에 그것을 열심히 읽어대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브론테 자매라던지 혹은 앤 라이스 & 앨리스 보샤르트 자매, 김원일 & 김원우 형제, 하인리히 만 & 토머스 만 형제처럼 가족 전체가 모두 책을 좋아해서 훗날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작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경우도 많죠.
2009.03.11 23:18:18
모든 의사 집안에서 모든의사가 나오거나 혹은 소설가 집안에서 유명한 소설가가 전부 나온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스티븐 킹이나 쥘베른의 아들 이야기등은 극히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열거하신 인물들에는 한가지 결여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쥘베른이 조금더 자식에 대한 애정을 보이거나 스티븐킹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조금더 넘쳤다면 그들은 그거 그렇고 그런 삼류소설이나 쓰는 사람이 됬거나 혹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수도 있겠지요.
인간이 자신의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경우는 지극히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삶은 살아간 인간중에 인류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면 위인 인류에게 민폐를 끼치면 악인이 되는 것이지요.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냥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간다고 봅니다. 물론 위인들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범인들의 그것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책을 읽어주게 하자고 하는 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가끔은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인가 같이 할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 주자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아기를 그들의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면 말이지요.
아이의 성장은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지만, 어느새 흘러가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유아기에서 사춘기를 맞고 다시 성년이 되고 그러면서 점점 단절되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꼭 독서 아니더라도 서로 유년기에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그 아이가 자라서 부모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보여집니다.
독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할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너 책좀 봐라 하는 것과 오늘은 내가 책을 읽어줄께 라고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것 어느 것이 나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을까요?
스티븐 킹이나 쥘베른의 아들 이야기등은 극히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열거하신 인물들에는 한가지 결여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쥘베른이 조금더 자식에 대한 애정을 보이거나 스티븐킹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조금더 넘쳤다면 그들은 그거 그렇고 그런 삼류소설이나 쓰는 사람이 됬거나 혹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수도 있겠지요.
인간이 자신의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경우는 지극히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는 삶은 살아간 인간중에 인류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면 위인 인류에게 민폐를 끼치면 악인이 되는 것이지요.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냥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간다고 봅니다. 물론 위인들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범인들의 그것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책을 읽어주게 하자고 하는 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가끔은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인가 같이 할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 주자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아기를 그들의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면 말이지요.
아이의 성장은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지만, 어느새 흘러가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유아기에서 사춘기를 맞고 다시 성년이 되고 그러면서 점점 단절되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꼭 독서 아니더라도 서로 유년기에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그 아이가 자라서 부모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할 확률은 상당히 높다고 보여집니다.
독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할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너 책좀 봐라 하는 것과 오늘은 내가 책을 읽어줄께 라고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것 어느 것이 나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을까요?
2009.03.11 19:30:06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아실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저의 해석이 있습니다.
인간을 기르는데(가르치는게) 3명의 사람이 있다.
아버지(부모)는 나날의 행동으로 자식을 가르치며 기른다.
스승은 말과 글로서 제자를 가르치고,
임금(국가)은 법을 만들고 다스림으로서 그 국민들을 기른다.
이리하여 부모와 스승과 나라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사람을 가르치고 길러낸다.
이자리에 모이신 많은 이들을 부모를 떠나 스승밑에 들어가야할 무렵부터
푹 빠져버린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무조건 희망란에 과학자라고(알고보면 기술자인)
서슴지 않고 써내려가신분들이 많을 터이고요.
오늘의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인지요.......
꼬이던,찌그러지던,아니면 민숭맹숭한 모습일망정 아직도 꿈을 안고 젊은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매겨보는 우리야말로 가치있는것을 알아봐 줄만한 사람들이 아닌가요?
아자!아자!아자!
그리고 이것에 대한 저의 해석이 있습니다.
인간을 기르는데(가르치는게) 3명의 사람이 있다.
아버지(부모)는 나날의 행동으로 자식을 가르치며 기른다.
스승은 말과 글로서 제자를 가르치고,
임금(국가)은 법을 만들고 다스림으로서 그 국민들을 기른다.
이리하여 부모와 스승과 나라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사람을 가르치고 길러낸다.
이자리에 모이신 많은 이들을 부모를 떠나 스승밑에 들어가야할 무렵부터
푹 빠져버린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무조건 희망란에 과학자라고(알고보면 기술자인)
서슴지 않고 써내려가신분들이 많을 터이고요.
오늘의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인지요.......
꼬이던,찌그러지던,아니면 민숭맹숭한 모습일망정 아직도 꿈을 안고 젊은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매겨보는 우리야말로 가치있는것을 알아봐 줄만한 사람들이 아닌가요?
아자!아자!아자!
2009.03.12 00:46:27
어떤 이는 SF의 필요조건 중 하나로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그것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하기도 하더군요. 주객이 전도된 생각이라고 할까요.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왕 그 예측이 현실로서 이루어지면 그게 감격스러운 거고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보고 싶은 예측의 순간은 유전자 기술로 공룡을 다시 만드는 겁니다. 물론 현재 생태계에 과거 동물을 살리는 게 어울리지 않는 길이긴 하지만…. (흥, 마이클 클라이튼의 경고 쯤이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보고 싶은 예측의 순간은 유전자 기술로 공룡을 다시 만드는 겁니다. 물론 현재 생태계에 과거 동물을 살리는 게 어울리지 않는 길이긴 하지만…. (흥, 마이클 클라이튼의 경고 쯤이야)
SF는 사실 그시대의 과학에 의지해서 미래의 모습을 보는것 이라고 할수 있죠.
그렇다면 그 SF에 매혹되고 그것을 이루기위해 나아가는 사람은 바로 등대불을 보고 키를 움직이는
항해자와도 같지요.
물론 시라노베르즈락도 우주를 꿈꾸었고 쥘 베르느도 우주를 꿈꾸었지만 쥘 베르느의 것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그가 널리 알려져있다는 것외에도 쥘베르느가 그의 시대에 충실했기 때문 아닐까요?
PS: 영화인 지구속여행은 쥘 베르느의 작품보다는 아서 코난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와 더욱 가까운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