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여자다!"
부룬가드가 짓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방금전까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메이에게 느끼던 분노감은 어느덧 거의 잊혀져 있었다. 그는 지금 그녀에게 경악하고 있었다.
'또 한구... 이것으로 벌써 서른 일곱구...'
메이와 칼린의 뒤를 추적하면서도 그는 어둑한 구석에 숨겨져 있는 검은 늑대단 무사의 시체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칠래야 놓칠수가 없었던 것이, 그 시체들은 보통사람들은 잘 발견할수 없지만, 신경이 날카로운 신디게이트 무사라면, 거기에 지금 메이와 칼린이 도주하고 있는 그 뒤를 추적하고 있는 경우에라면 더욱더 잘 발견할 만한 장소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숨겨져 있다기 보다는 보란듯이 전시해 놓은 것에 더욱 가까웠다.
'처음부터 그 광장에 우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는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부룬가드는 직감적으로 이 시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도주로의 청소작업이였으며, 그것은 메이와 칼린이-아니, 칼린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그 광장에 부룬가드가 함정을 만들어 놓고 일렌느와 젠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그 광장에서 일렌느와 젠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이런 정확한 도주로 확보를 할수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봉인된 군대의 열쇠. 이젠 그여자가 쥐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일렌느의 반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였다. 전쟁터에서 칼끝처럼 단련된 부룬가드의 직감은 바로 그 메이라는 여자 스스로가 봉인된 군대의 일부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부룬가드의 제안을 거절하던 메이의 태도는 너무도 단호한 것이였으며, 부룬가드가 느낀 바에 따르면, 그 단호함은 결코 정의감이나 동료들에 대한 의무감에서 나온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여자는 분명히 그 반지를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신타록은 타시안의 유지를 받고 그여자를 감추어 두었던게 틀림없어.'
나즈막한 3층 건물 옥상 구석에 숨겨져 있는 또다른 무사의 시체를 흘깃 보면서 부룬가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내고 있었다. 신타록 그 돼지자식이라면 단순히 타시안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그여자를 감추어 둔 것만은 아니었겠지.
반대편 고물상 건물 지붕으로 도약하면서, 부룬가드는 일렌느와 젠탄을 놔두고 자신을 따라 메이와 젠탄을 추적하고 있는 이올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부룬가드 스스로는 분노에 못이겨 일렌느와 젠탄을 잊은것 뿐이지만, 노장인 이올이라면 아마 그 시점에서 지금 자신이 내린 결론을 내렸으리라.
"마스터! 위를!"
이올의 고함소리에 부룬가드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물상 건물 지붕에 여기저기 솟아있는 안테나들 사이로 레이저 스트링의 거미줄이 걸려 있었다. 미처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 수호자들중 하나의 목 안쪽으로 날카로운 레이저 스트링이 파고 들었다. 그는 그 스스로가 달리던 그 힘에 의해 목이 절단되고 만 것이다.
"십이인의 수호자가 이젠 사천왕이 됐군 그래."
비웃는 듯한 메이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들려왔다. 레이저 스트링의 거미줄을 밟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공중에 떠 있는듯 했다.
"마스터 부룬가드. 이쯤에서 포기하는게 어때?"
"건방지다! 퍼브 여주인 주제에!"
그러나 부룬가드의 목소리엔 분노는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마스터로서의 자존심보다는 무사로서의 호승심에 더욱 사로잡혀 있었다. 이 여자야말로 어쩌면 그가 만난 중 최강의 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스터. 칼린이 보이지 않습니다. 칼린이 반지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그녀를 잡아야 합니다."
"반지라면 여기에 있지."
높이 치켜올린 메이의 왼손에서 일렌느의 반지가 흉흉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희에게 줄 생각은 없어."
"역시 넌, 봉인된 군대의 일부라는 거냐?"
"캬하하하하. 봉인된 군대. 실드 레기온. 정체는 이거였단 말이냐. 캬하하하하."
메이의 웃음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기어나온 마녀의 것인냥 음험했다.
"나 스스로는 봉인된 군대와 아무 관련이 없다."
메이의 얼굴에 알수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 군대의... 아니, 우리 종족의 여왕이 된다!"
일렌느의 반지가 달빛을 받아 차가운 빛을 내 뿜었다.
부룬가드는 자신들의 등뒤로 다가오는 음산한 살기들을 느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