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리 산맥을 뒤로하고, 검은 두 그림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오른쪽으로 저녁노을이 만든 길다란 그들의 그림자가 힘겹게 드리워져 있었다. 멀리서 언듯 보기에도 한명은 여성, 한명은 남성이었지만, 아마 그들 가까이까지 와서 언듯 너무도 하얗고, 아름다운 여성이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굶어죽기 일보직전의 거지 주제에 이 아름다운 성의 노리개를 팔아치우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에게 침을 뱉었을 것이다.
얼마 못가서 여성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지표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어둑어둑한 저녁노을 속에서 그 모습은 마치 땅속으로 녹아들어가는듯이 보엿다. 남자가 그 곁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자기 앞의 이 여성은 노예가 아니라 갓 결혼한 나의 아내라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곤, 배낭에서 무언가 조그만 구슬을 하나 꺼내들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멤논조차도 부지런히 서너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더이상 걷기는 커녕 일어나 설기도 힘든 상황에서, 얼어붙는듯한 사막의 밤을 맞아 얼어죽는것 만은 피하고 싶을때 꺼내들수 있는 저정도 크기의 구슬은 적어도 이 그레타 가든에서는 환각제 껌 밖에 없었다.
남자는 환각제 껌을 꺼내어 들고 굉장히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그 모습은 멀리서 보면 사랑스러운 노리개 노예가 중독될것을 우려해 환각제 껌 조차 먹이지 못하는 한심한 주인의 모습으로 보였다. 일반적인 노예의 주인이라면,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환각제 껌처럼 비싼 물건을 꺼내들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는다. 환각제 껌 한 조각이면 노예를 세명은 살수 있었다. 따라서 저 멀리 그림자의 남자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든 평민이 보기에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사치스러운 짓이였다. 노예에게 환각제 껌을 먹일 생각을 하는것도 구역질이 나는데, 노예가 중독될것을 우려해 망설이기 까지 하다니! 저자는 틀림없이 세상물정 모르고 온실 안에서만 자라다가 가문이 망해버려 모든 재산을 잃고 사랑스러운 노리개 노예하나만을 건질수 있었던 부잣집 망나니가 분명해.
한참 후에야 노예의 그림자는 남자의 그림자로부터 환각제의 그림자를 받아 물었다. 그리곤 천천히 씹었다. 환각에 잔뜩 취한 하얀 얼굴의 여자 노예가 감히 주인의 부축을 받으며 비척비척 환각과도 같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것은 밤하늘에 별이 가득이 뜨고 나서였다.

"이 오트밀은 정말 맛이 없군."
"소금대신에 모래를 뿌려먹는 셈이니까요."
하긴, 밖에는 저렇게 심한 모래폭풍이 불고 있음에도 잠만은 아무 걱정없이 잘수 있다는것에 메이는 감사할수 있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두께 5미터의 모래이불을 덥고 있다던지, 어딘가에 캬반을 매장해 버리고 이 뜨거운 사막을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던지 하는 불상사는 적어도 이 바위동굴에는 없었다. 메이와 칼린 일행은 캬반을 잔인하다 싶을정도로 닥달한 덕에 간신히 데프리 산맥의 언저리에 도착할수 있었고, 군데 군데 뚫려있는 바위 동굴들중 메이와 칼린 뿐 아니라 캬반들까지도 충분히 들어갈만한 커다란 바위동굴을 발견할수 있었다. 폭풍이 불어오는 방향과 이 동굴이 있는 면과는 비스듬히 틀어져 있었으므로, 이곳에 모래가 쌓여 다음날 아침에 입구가 모래로 막혀버릴것 같지도 않았다. 다맘, 모래가 날려들어 고생스럽게 준비한 오트밀을 다 망쳐놓는것만은 아무리 동굴 입구를 캬반 가죽으로 만든 텐트를 넓게 펴서 막는다고 해도 피할수가 없었다.
"자성이 강한 모래라서... 쓰죠."
"이런 오트밀은 헤븐리 더스트를 섞어 판다고 해도 아무도 안 먹을거야."
호키역시, 이런 오트밀을 먹느니 차라리 고결하게도 굶어 죽어버리겠다는 듯이 오트밀 그릇을 외면하고 있었다. 사실은 주인이 안보는 사이에 그레타 모래쥐 몇마리를 잡아먹어 배가 부른 상태였다.크게 하품을 하는 호키를 보면서 칼린은 번치스 베넘 캣은 식사를 할때 자기의 독소 역시 같이 먹는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죽지않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떠 올렸다. 분명 이너 스피어에 즐비한 아카데미에 가면 그 이유를 알려 주겠지만,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개라지.' 편하게 생각 하기로 했다. '저 여자 역시 목숨이 아홉개라고 신타록 사형이 그랬지. 배틀맥에게 밟힌적이 있었는데도 살아났다고 했나?'
칼린은 피식 웃엇다. 원래 신타록 사형은 허풍이 심하다. 칼린이 생각하기에 신타록이 코만도 맥의 코크핏에 뛰어올라 폭탄을 던져넣어 잡았다는 그 무용담 역시 신타록 본인의 허풍일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둠 속에서 2Km 밖의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해 내고, 100미터를 9초 내에 달리며, 자기몸의 세배 정도를 뛰어오르는 훈련을 하는 신디게이트 무사들의 야전교범에도, 배틀맥을 만나면 그 100미터를 9초내에 주파해내는 주력으로 도망칠것을 권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 밤 쯤이면 그들은 시저스 노크에 도착했겠군."
"아마 오늘밤 중에 멤논에라도 도착하면 다행일껄요."
"무슨 소리야? 그들은 우리보다 적어도 하루는 일찍 출발한데다가, 우리는 그 오아시스에서 모래폭풍에 이틀이나 갇혀있었잖아? 멤논이면 여기서 부지런히만 가면 하루거리라고"
칼린은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떡 했다. 역시 뭔가 알고있어. 나는 그들이 느리게 이동하는 이유를 알고 있소 라는 뜻이잖아.
"그렇고 보니 그 노예, 노리개라고는 해도 노예로서는 무척 약해 보였어."
다시 한번 끄덕. 칼린은 말이 필요없다는 투였다. 아니, 대답해줄수 없으니 묻지 말아달라는 투였다. 그정도면 메이에겐 충분했다.
"그 노예, 뭔가 중요하군. 그렇지?"
마약 밀매상이 소중히 여기는 노예라면, 오호라... 그 마약의 화학식이나 제조법 데이터를 노예의 뇌속에 강제 입력 해 놓았겠군. 하긴 뇌속에 삽입되는 정신. 신경 제어 프로세서 -일명 노예칩-을 이용하면 개인용 정보 단말기로도 할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애지중지 했었군. 그 이빨 다 썩어 빠지는 재수없는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