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 게임에 언제부터 분대 전술을 도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본격적으로 도입한 게임은 <레인보우 식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 게임은 여러 명의 레인보우 대원이 불시에 사방에서 테러리스트를 덮쳐야 하는 특성상 혼자 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테러리스트 퇴치라면 모르겠으나 인질을 구해야 하므로 협동이 필수적이죠. 그것도 머릿수로 우르르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요 길목마다 엄폐, 저격, 연막, 엄호 등을 활용하지 않으면 대원이 다치거나 인질이 죽습니다. 그래서 실제 현장에 들어가 총질하는 것보다 계획 세우는 게 더 어렵기도 하죠. 사실 플레이어가 총질 한 번 안 하고 공략할 수도 있습니다.
[지휘관, 정찰병, 중화기 사수 세 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협동하는 레인보우 베가스 분대.]
이 시리즈는 이런 식의 분대 전술을 계속 활용하다 <베가스> 시리즈에 가서 분위기를 약간 바꿉니다. 괜히 지도 보면서 계획 짜느라 골머리 썩히는 과정을 과감하게 빼버리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거죠. 대신 10명 안팎의 팀원을 현장에서 조종할 수 없으므로 대원이 셋으로 줄었습니다. 대신에 맵 크기를 늘려서 대원들과 인질 사이를 넓혀서 진압 과정이 길어져도 인질이 곧바로 죽는 불상사를 막았죠. 고작 세 명 가지고 무슨 놈의 분대 전술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인공지능이 상당히 뛰어나 플레이어가 원하는 전술을 거의 모두 구현할 수 있습니다. <고스트 리콘> 시리즈는 이것의 확장판이라고 봅니다. 요즘의 분대 전술 FPS라고 하면 다 이런 식인 듯.
FPS 게임에 분대 전술을 적용할 수 있는 까닭은 슈팅 액션이라는 특성 때문일 겁니다. 총격전이란 건 대개 동선이 정해졌습니다. 괜찮은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긴 다음 총구만 내놓고 쏴대는 거죠. 즉, 다른 액션 게임처럼 움직임이 격렬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비교적 깁니다. 적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느 지점에서 적과 교전하는가?’입니다. 분대 전술 FPS 게임은 이러한 지점을 선정하고, 그 지점에서 어떤 무기로 싸워야 가장 효과적일지 파악하는 패턴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만큼 액션도 뒤따르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순수한 전략 게임은 오직 머리만, 순수한 액션 게임은 오직 손만 바쁘죠. 분대 전술 FPS 게임은 머리와 손이 모두 바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부류의 작품 중에서 인상적인 것 하나가 <스타워즈 : 리퍼블릭 코만도>였습니다. 제다이가 혼자 날뛰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무슨 분대 전술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게임은 제다이가 아니라 클론 전쟁이 한창 벌어질 시기의 클론 엘리트 병사가 주연입니다. 플레이어는 클론 코만도가 되어 휘하의 3명을 지휘해가며 싸워야 하고요. 사실상 제다이가 거의 나오지 않고, 클론 병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드로이드와 온갖 생물체들을 상대로 블래스터를 쏘며 싸우기 때문에 여타 프리퀄 프랜차이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엘리트라도 일개 병사에 불과한 주연들이 서로 협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죠.
[델타 07 대원과 연결 중인 엘리트 코만도.우측 구석은 델타 64. 각 클론 병사를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분대 구성도 나름 괜찮습니다. 폭발물, 탐지, 저격 전문가 등으로 이루어져서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죠. 한 명이 전자장비를 작동시키는 사이에 나머지 3명이 엄호하거나 서로 사각을 견제하며 싸우거나 포지션을 바꾸는 등 분대 전술도 그럴 듯하고요. 고증이 깊은 편은 아닙니다만, 대부분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수준으로 움직여줍니다. 4명이 모두 모여 싸우면 상당히 든든해요. 등을 맡길 아군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각 분대원들이 성격도 달라서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꽤 재미납니다. 무전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가끔은 만담으로 보일 정도로 웃기기도 하고, 대원들 간에 우정도 깊어지죠.
<콜 오브 듀티>는 전술 게임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대개 미션에서 분대를 이루어 싸우긴 합니다. 매력적인 동료들이 많죠. 특징은 플레이어가 명령을 내리는 대장이 아니라 오히려 지시를 받는 부하라는 것. 따라서 전술을 구사하며 전진하는 게 아니라 대장 캐릭터가 먼저 나가 전술을 짜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합니다. 머리 쓰는 것보다 손이 빨라야 유리한 게임이죠. 뭐, 그래도 플레이어가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해서 팀 전술을 바꿀 수야 있긴 합니다. 대장이 조용히 들어가자고 했는데, 막 쏴버리면서 진압한다든가. 그런데 이러면 전술이라고 할 수도 없죠. 그냥 플레이 방식이 달라지는 것일 뿐. 거기다 대장 명령을 무시하면 난이도도 올라가고, 시나리오와도 멀어지기 일쑤.
설정에 따라 분대를 구성하기 어려운 게임도 있습니다. <크라이시스>처럼 주인공 캐릭터가 은폐 장치를 이용해서 잠입하는 게임들이 그렇습니다. 이 게임엔 분대가 있긴 한데, 중요한 일은 주인공 노매드가 혼자 다 해먹죠. 은폐 장치는 에너지 소모가 빠르거나 공격하면 해제가 되는 등의 한계가 있고요. 그래서 은폐 장치를 조절하는 게 상당히 손이 가는 일이고, 그 탓에 다른 분대에게 일일이 명령을 내릴 시간이 없습니다. 어차피 분대 행동이든 은폐 행동이든 ‘숨을 곳을 찾아 이동한다’는 개념은 비슷합니다. 전투를 잘 하는 병사는 사격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엄폐/은폐를 잘 한다는 공식이 통하는 거죠. 위치 선정 때문에 머리 굴려야 하는 건 똑같다는 소리입니다. 수시로 강화복을 조절할 여유도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 은폐 캐릭터에게 분대까지 덧붙여서 머리를 두 번 쓰게 만드는 일은 피하는 게 낫겠지요. 차후 나올 <퓨처 솔져> 등에선 은폐를 유지하면서 분대 전술을 펼치나 본데, 어떤 식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스파르탄 노블 팀과 전진하는 주인공. 하지만 아쉽게도 저들과 전술 행동은 불가능합니다.]
<헤일로 ODST> 같은 경우엔 분대 전술 게임이 아니라는 게 아쉽기도 하더군요. 매력적인 분대원들을 잔뜩 만들어 놓고서 전부 NPC로 굴려버리니. 서로 힘을 합쳐서 싸울 수가 있긴 한데, 그렇다고 전술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더군다나 작중 플레이는 신병이자 졸병인 루키 시점이라서 명령을 내리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스파르탄 지휘관이 되어서 휘하의 ODST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것도 괜찮을 텐데요. <헤일로 리치>에선 스파르탄 노블 팀이 주인공이라서 팀원을 한껏 강조하던데, 과연 분대 전술 게임이 될는지. 현재까지 공개한 걸 보면, 그냥 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헤일로 ODST>처럼 신병이자 말단이 주인공.
톰 클랜시 시리즈를 제외하면, 현재 분대 전술로 가장 이름을 날리는 건 <기어즈 오브 워>일 겁니다. 인공지능이 안 좋아 동료가 아니라 원수라는 말도 많지만, 동료들의 견제 사격이 꽤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죠. 간혹 고수들은 동료가 귀찮다면 쓰러질 걸 내버리고 혼자 전진하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이 게임에서는 마커스 피닉스가 분대장이라고 해도 따로 전술을 짜거나 하진 않습니다. 동료들은 마커스가 움직일 때마다 알아서 주위 엄폐물을 찾거나 총을 쏘는 식이지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요. 괜히 톱질한다고 앞으로 나갔다가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과연 여기에 어떤 전술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이런 단점이 있습니다만, 동료들과 함께 총질하는 게 중요한 작품임에는 분명하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멀티 플레이에서 이런 분대 전술은 의미가 많이 퇴색합니다. 인공지능보다 더 좋은 플레이어들이 있으니까요. 간혹 멀티 플레이에서 부분적으로 NPC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 사람보단 못하죠. 심지어는 싱글 플레이도 플레이어끼리 협동해서 진행하기도 하니. 그런 점에서 보자면, 멀티 플레이 기술이 갈수록 발달하는 판국에 분대 전술 게임이 늘어나는 게 희한하기도 합니다. 하긴 모든 사람들이 멀티 플레이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숨어서 총질하는 마커스와 도미닉. 뭐, 뇌미닉이니 뭐니 해도 동료의 견제 사격은 중요하죠.]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은폐 장치가 있지 않는 한 분대 전술을 선호합니다. 혼자서 난리 치는 것보다는 서로 힘을 모아 협동하는 게 훨씬 그럴 듯하잖아요. 앞으로는 분대 전술 FPS 게임이 얼마나 발전할지도 궁금합니다.
10명짜리 분대가 나오는 건...오플포/암드 어설트 계열이 있지요. 해보면 왜 진짜 분대가 나오는 게임이 드문지 깨닫게 됩니다. 아직 게임의 AI는 단체 행동을 제대로 할 만큼 매끄럽지 못하니까요. -_- 물론 사람이 AI를 대체하는 멀티에서는 좀 더 잘 돌아가긴 합니다만, 배틀필드 2에서처럼 그냥 여섯 명 아무나 모아놓고 분대장 지정해놓는다고 분대가 된다는 건 좀 거시기하죠.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으로 아메리카스 아미가 있습니다. 이거야 애초에 군 홍보 게임이고 해서 좀 현실적인 편입니다. 육군 보병의 경우 분대별로 소총수 유탄수 같은 보직이 미리 정해져 있고 해당 보직의 장비는 고정되어 있으며 자기 자리를 고르는 것 이외의 선택은 할 수 없죠. 특수부대로 할 경우는 좀 다르지만.
반면 12명이 분대원으로 등장하는 오플포/암드의 경우, 분대원이 떼거지로 나오다보니(암드는 소대까지 지휘할 수 있는 것 같던데), 쫄병들에게 명령을 일일이 내리다 보면 1인칭 시점보다는 자연히 전술맵화면이나 Del키를 누르면 나오는 광역시점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분대장을 맡게 되면 총쏠일도 줄어들고 트리거해피하고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되죠. 하지만 그만큼 새분화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분대전술의 재미가 게임의 액션감을 압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게이머들이 FPS를 대하는 경향은 오플포와 같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전술적인 게임'보다는 쏘고 터뜨리고 달리는 '액션'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 같고, 소비자의 수요가 그런쪽이다보니 개발자들의 초점도 자연히 그쪽으로 지향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분대라긴 좀 그렇고 팀에 가깝긴 한데, 현장에서 수신호와 명령으로 배치를 정하고 사격을 하는 시스템이죠. 분대원의 적절한 운용 없이는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사격은 가늠좌에 놓고 쏴도 잘 안맞기 때문에(사실 이게 더 맞긴 합니다만) 람보플레이는 불가능합니다. 분대원을 아무렇게나 휙휙 보내놓으면 다 죽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애매하죠.
좀더 고전게임으로 가자면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게임중 하나인 프리덤 파이터가 있습니다. 스토리는 딱 월드 인 컨플릭트 같은 느낌으로, 소련이 어느날 휙 미국을 집어잡수자 군경험도 없는 시민들이 레지스탕스를 조직해 온갖 중화기로 무장한 소련군을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는다는 뭐 그런 스토리입니다만, 황당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걸물입니다.
분대를 지휘해 사격지점을 설정하고 공격루트를 잡는 것 뿐 아니라 한 챕터에 서너개의 맵이 있는데, 전부 연동되어 있습니다. 다른 맵에서 어떤 조건을 클리어하지 못한 다면, 다른 맵에서의 진행이 불가능하죠.
FPS가 아니라 TPS고 고전겜에 속하긴 합니다만, 게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한번씩 추천하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