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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르. 중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글자체와 나선형 DNA 구조물]





게임 <어쌔신 크리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일명 낙쌔신이라 불리는 게임 <어쌔신 크리드>. 화려한 예고편으로 수많은 유저들을 사로잡았으나 정작 게임 자체는 지루한 반복 미션이 전부였다고 평가 받기 때문입니다. 해외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유명 게임 사이트들을 살펴보면 점수가 천차만별인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해 보진 못했고, 플레이 영상을 보거나 설정을 많이 접한 편입니다만, 낚쌔신이란 비평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더군요. 과연 이 게임을 그렇게 액션으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암살 액션 말고 다른 점은 평가 대상이 아닌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저기 숨겨놓은 복선과 설정, 흔히 말하는 떡밥이 엄청나다고 하거든요. 평가를 하면 그런 떡밥까지 다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이 게임은 단순한 십자군 역사물이 아닙니다. 2012년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기억을 찾아 올라가는 기계에 접속하는 SF물입니다. 주인공을 이용하는 제약회사 조직은 이 기계를 이용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신비로운 유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려 하고, 이 유물들을 모아 막강한 힘을 획득하려 하죠. 그 유물 목록은 다양한 것처럼 보이는데, 성경과도 크게 연관이 있는 듯하고, 나스카 문양이나 중국의 예언 등 범세계적인 환상 요소를 뒤섞어 놓았습니다. 여기다 비밀스러운 거대 조직과 그걸 캐내려는 주인공의 사투까지 한편의 거대한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사실 거대 SF물이 맞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를 평가할 때 이런 부분은 거진 빼놓더군요. 그리고서는 지나친 반복 미션이 짜증난다는 비판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주인공(아사신 알타이르가 아니라 2012년의 실제 주인공 데스몬드)이 제약회사 압스테르고에 맞서 음모를 캐내려는 부분은 게임에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액자형식이라고 하지만, 미래 이야기보다 십자군 시대 이야기에 비중을 훨씬 많이 두었죠. 홍보를 할 때도 SF물이 아니라 중세 시대의 암살 액션물인 것처럼 홍보를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기계 애니머스에 접속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참신한 인터페이스나 중세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요즘 컴퓨터에서나 볼 수 있는 에러 메시지가 뜨는 건 찬사를 보내야 마땅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시간여행이란 걸 답습하지 않고, 조상의 기억을 더듬는 기계로 시대 이동을 하는 설정도 꽤 괜찮습니다. (앞으로도 이 게임에 시간여행이 나올 것 같진 않더군요) 제작사에서는 이걸 소설로도 내보낼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꽤 볼만한 책이 나왔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못해도 <타임라인>만큼의 재미를 줄만한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에 <어쌔신 크리드>의 가장 큰 문제는 게임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홍보를 제대로 못한 제작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판의 미로>를 무슨 가족 판타지인 것마냥 광고했다가 욕을 먹었던 홍보사가 생각나네요. 제작사 UBISOFT는 이 게임이 그저 중세 암살 액션물이 아니라 다양한 판타지 요소가 겹친 한편의 SF물이었다고 선전했어야 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게임을 만들어 놨으니까요. 겉멋이 잔뜩 들어간 예고편만 보여주지 말고, 데스몬드가 기계에 접속하는 모습이라든가 압스테르고의 음모를 파헤치는 부분도 예고편에 넣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유저의 기대치를 올바로 세울 수가 있지요. 공개한 동영상을 보자면 이게 어디를 봐서 SF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원.

 

위에서 <판의 미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홍보한 내용과 정작 작품 자체가 달라 작품의 평가가 떨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도 그런 사례에 들어갈 법 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 자체가 완벽하다는 건 아닙니다. 지루한 암살 반복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고, 후속작이 나온다면 고쳐야 하겠죠. 하지만 홍보 방식이 지금과 달랐다면 지루했다고 욕은 좀 먹었을지언정 낚쌔신이란 불명예 타이틀을 얻는 일은 피했을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저들이 기대치가 올라간 건 광고 때문이었고, 광고에 낚였다는 의미로 낚쌔신이란 별명이 붙은 거니까요. 낚싯대를 제대로 드리웠다면, 제대로 된 미끼를 달았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제 유저들이 낚쌔신 예고편이 또 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게임의 성격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후속작에서 유저들이 기대하는 것도 달라졌겠죠. 아마 암살 액션보다 압스테르고의 음모 분석을 기대하는 유저가 더 많을지도 몰라요. 2편은 그런 기대에 맞는 내용으로 나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참신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묻히기에는 좀 아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평가야 어떻든 간에 판매량과 홍보가 엄청났던 게임이라 그냥 묻히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