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게임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집 앞에 새롭게 생긴 오락실에서 <인베이더>와 흑백으로 된 –지금은 제목도 알 수 없는- 자동차 경주 같은 게임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자동차 경주는 위 아래로 긴 화면에서 자동차의 핸들 같은 것을 조작해서 위에서 내려오는 자동차와 벽을 피해서 달리는 게임이었죠.)

  그러다 처음으로 ‘음악’이 들어간 게임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갤러그>였지요. 뿅뿅거리는 총알 소리나 벌레처럼 생긴 적 전투기가 부서지는 소리 만이 아니라 스테이지 넘어갈 때 짧은 음악이 참 인상적인 게임이었죠.
(앗, 음악이 나온 게 맞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정말로 음악이 효과적으로 들어간 건. 갤러그 이후 불과 1년 만에 선보인-그럼에도 10배쯤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제비우스>였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음악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는데, 그게 또 기분을 고조시켜주는 효과가 있었지요.
(아.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데 <갤러그>는 음악이 없었고 <제비우스>에서 음악이 있었군요.^^)

  256색의 멋진 색상으로 가득한 배경에 더욱 독특한 효과음, 여기에 음악까지… 참 대단했던 게임이었습니다.

남코의 제비우스. 정말 최고의 게임이었다.
[ 남코의 제비우스. 정말 최고의 게임이었다. ]

  시간이 흘러 친구네서 애플 2 컴퓨터를 보면서 게임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 애플 2의 음악은 솔직히 영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피커를 울려서 나오는 단음의 음악이었거든요.
(그 당시 처음 본 게 <페르시아 왕자> 시리즈로 알려진 조단 메크너씨의 <카라테카>였습니다. 게임 자체에는 음악이 없지만 시작할 때 나오는 음산한 음악이 스피커의 찢어지는 듯한 느낌과 절묘하게 조화되어 멋진 분위기를 가져다 주었죠.)

  그리고 제가 구입한 것이 당시 대우에서 나온 IQ-1000… 바로 MSX 였지요. (차후 MSX2는 IQ-2000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정말 작명 센스하고는...)

  애플 2와 비교할 때 MSX는 그야말로 게임을 위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컴퓨터였는데, 바로 3채널의 사운드 출력기(PSG)를 갖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컴퓨터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던 애플 2만 보다가 모니터에 달린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는 MSX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여러모로 음악이 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특히 코나미사의 <마성전설>이나 <트윈비> 같은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코나미는 초창기부터 게임 음악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회사지요.)

  게임 음악 자체는 MSX2에 가서도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조금 채널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하지만, 별도로 발매된 ‘FM팩’이라는 놈을 사용한 음악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고작 3채널에 소리도 ‘컴퓨터’ 같았던 MSX가 난데없이 9채널의 FM 음악, 신디사이저의 놀라운 효과음과 소리를 내어주었으니까요.
(컴퓨터를 오케스트라로 바꾸어준다고 했던 당시 광고가 기억에 남네요.)

윈도용으로 리메이크된 YS 2. 미디를 지원해서 좀 더 멋진 음악을 기대할 수 있다.
[ 윈도용으로 리메이크된 YS 2. 미디를 지원해서 좀 더 멋진 음악을 기대할 수 있다. ]

MSX라면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 메탈기어. 코나미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분위기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
[ MSX라면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 메탈기어. 코나미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분위기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 ]

  당시, MSX2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친구네서 <YS2>나 <악마성 드라큘라> 같은 걸 하면서 질릴 정도로 그 음악을 들었지요.

  그랬으니 당시 제가 구입했던 IBM-PC의 음악(?)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습니다. 네… 당시 애플 2 역시 애플 2e라는 모델로 음악 기능을 강화했는데, IBM-PC(XT)는 애플 2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스피커 소리를 내었으니까요.
(네… 역시 여기서 음악을 제일 먼저 들은 게, 친구네서 처음 보고 반했던 <카라테카>였습니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일까요? 오래지 않아 IBM-PC에 애드립(Adlib) 카드라는 게 나왔던 겁니다. 캐나다에서 만들었다는 이 음악 카드는 스피커의 단음에 지나지 않았던 IBM에 FM 신디사이저 기능을 제공해 주었지요.

  미국에서는 시에라의 <킹스퀘스트> 같은 게임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지만, 제가 가장 먼저 접한 건 코에이의 <삼국지 2>였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은 별로 기억에 없고 역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역시 코에이의- <황제>였지요.

  칸노 요코씨가 담당했던 <대항해시대>도 괜찮았지만, 저로서는 게임 자체의 중후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더해준 이시구로 아키라씨의 <황제> 쪽이 더 만족스러웠습니다.

코에이의 황제. 코에이 게임 사상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게임은 음악이 또 잘 어울렸다. CD를 사고 싶지만...
[ 코에이의 황제. 코에이 게임 사상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게임은 음악이 또 잘 어울렸다. CD를 사고 싶지만, 품절인데다 옥션 가격은... ]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새로운 충격을 맛보게 됩니다. 바로 ‘사운드 블래스터’라는 카드를 구입하게 된 것이지요.

  싱가폴의 크리에이티브라는 회사에서 만든 이 카드는 애드립의 음악 기능은 기본적으로 내장하고(동일한 야먀하의 칩셋을 내장) 여기에 디지털 사운드 프로세서를 내장하여 ‘효과음’을 더하게 됩니다.

  사운드 블래스터를 처음 달고 했던 게임 <엑스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지요. 특히 외계인 턴이 되었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풀 숲을 가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공포!

  그야말로 영화 <에일리언>이나 <조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엑스컴 3>가 전작들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건 바로 이 ‘미지의 공포’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실시간 방식은 꽤 재미있긴 했지만, 턴을 오가면서 펼쳐지는 긴장감을 살릴 수 없었으니까요.)

마이크로 프로즈의 엑스컴. 이제껏 이보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은 없었다.
[ 마이크로 프로즈의 엑스컴. 이제껏 이보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은 없었다. ]

  게다가 <윙커멘더 2> 오프닝에서는 킬라시 왕자의 목소리까지!
(그래서 당시 <윙커멘더>나 <스트라이크 커멘더>에서는 목소리가 추가되는 스피치 팩이라는 것이 따로 나왔습니다.)

사운드 블래스터의 매력. 킬라시 왕자의 목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윙커멘더 2 / 오리진)
[ 사운드 블래스터의 매력. 킬라시 왕자의 목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윙커멘더 2 / 오리진) ]



  하지만, 그 이상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네. IBM-PC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PC 엔진 듀오에 비하면…

  세계 최초로 CD-ROM을 내장한 게임기였던 이 기종은 –성능 면에서는 IBM-PC(당시 386)보다 떨어졌지만- CD 트랙의 음악이라는 놀라운 기능을 제공했으니까요. 게다가 풀 보이스라는 매력까지…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얄미웠던 시오리. 이런 극악의 히로인은 아마 최초이자 최후가 아닐까? (두근두근 메모리얼 / 코나미)
[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얄미웠던 시오리. 이런 극악의 히로인은 아마 최초이자 최후가 아닐까? (두근두근 메모리얼 / 코나미) ]

  <두근두근 메모리얼>이라는 게임을 처음했을 때 그 충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완벽했지만(저는 지금까지 이보다 완성도 높은 연애 게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말을 하는 것이 또 놀라웠지요.
(창사 이래 최초로 연애 게임이란 걸 선보인 코에이는 이후 2편에서 '플레이어가 입력한 이름'을 불러주는 놀라운 연출을 넣어두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486 컴퓨터를 구입해서 컬러 화면을 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일본 게임을 한글화하여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지만 같은 시기 저는 같은 게임을 PC 엔진 판으로 만끽하고 있었죠.
(가령, 국내에 한글화되어 나온 <탄생~데뷔~>에서는 오프닝에서 목소리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PC엔진 듀오에서는 오프닝 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이벤트에서도 목소리가 나왔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라이벌 포함)의 데뷔곡(?)이 음악 트랙으로 들어있었습니다.)

  PC엔진 듀오에서 한동안 맛보았던 충격과 만족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만함(?)은 오래지 않아 CD 4장으로 된 오리진사의 <윙커멘더 3>가 나오면서 깨어졌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CD에 이어 DVD로도 나오고 동영상은 기본에 PC의 사운드 기능도 5.1 채널이니 돌비니 하는 상황이기에 더 이상 사운드로 ‘충격’을 맛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블루레이에 장비를 충실하게 갖추면 분명히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PC 스피커->애드립->사운드블래스터->CD 트랙으로 넘어가는 충격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요.)

  오래 전 PC 사운드는 대단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게임을 재미있게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향상된 시스템이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추신) 개인적으로 게임 음악 중에서 가장 만족한 것은 역시 액티비전의 <메크워리어 2>였습니다. 황지훈씨라고 재미 한국인 음악가 분이 만든 곡이라는데 참 독특하면서도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지요.
(황지훈씨는 그 밖에도 <헤비기어>, <다크레인> 등의 음악을 맡았는데, 동서 게임 채널의 <삼국지 천명 2>에서도 음악을 맡았다고 하네요.)

액티비전의 메크워리어 2. 이 게임은 음악 CD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액티비전의 메크워리어 2. 이 게임은 음악 CD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장면과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2>를 손꼽고 싶습니다. 오프닝의 연출이 너무 멋지고 음악이 잘 연결되어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주고 있지요. (아... CD 트랙으로 음악을 바꾸었다는 윈도판을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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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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