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을 좋아하는 주인공 제이드 양. 젤다의 링크도 그러고 보니 녹색이었는데.

비욘드 굿 앤 이블은 레이맨 시리즈를 만든 미쉘 앙셀(Michell Ancel - 이렇게 읽는 거 맞나?)이 만들어서 나름대로 유명한 게임입니다. 네, 이 게임 프랑스에서 만든 거예요. 근데 저 사실 레이맨 근처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 사실에 대해선 뭐라 말을 못하겠군요. 한편으로 장르 공식으로 따지자면 우주판 젤다라고도 하던데 전 역시 젤다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 사실도 뭐라 말 못하겠네요. 전 콘솔 근처도 못 가봤거든요.


[[fsize=8]]3번트랙 "Home Sweet Home"[[/font]]

어쨌건, 비욘드 굿 앤 이블은 꽤 근사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사실 액션 어드벤처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복합장르라고 해야겠죠. 주인공이 사진기자(어째서 등대에 고아원을 짓고 사는지는 몰라도)니 디카인지 필카인지 헷갈리는 카메라 들고 장난치는 사진찍기(?)가 조금, 다이조인가 뭐시긴가 하는 막대기로 적을 두들겨패는 격투가 조금, 각종 퍼즐이 복합된 어드벤처도 조금, 적들 눈을 피해 돌아다녀야 하는 잠입이 조금, 맵 돌아다니면서 아이템 사고팔고 대화하는 RPG적 요소도 조금, 추가적으로 레이싱과 본격적인 공중 슈팅이 들어가고, 점프 버튼이 없고 떨어져 죽는다는 게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마리오 같은 플랫포밍 게임의 요소까지도 조금씩 끼여 있습니다.


[[fsize=8]]멕시코 음악이 미칠 듯 흘러나오는 호버크래프트 레이싱. 이외에도 부스터 없인 못 깨는 루터 레이스도 있습니다.[[/font]]

보통 이렇게 잡다한 것들을 한 게임에 구겨넣으면 뭐가 뭔지 구별이 불가능한 잡탕찌개가 되어 내다 버리게 되기 십상입니다만, 비욘드 굿 앤 이블의 강점은 단단하고 또 튼튼한 게임플레이입니다. 기본적으로 액션어드벤처의 틀에 미니게임들과 자잘한 요소들을 버무려 넣고,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들 사이를 부드럽게 전환시켜주면서 플레이어를 다양한 상황에 처하게 해주는 구성은 그야말로 훌륭합죠. 다음 순간에 뭐가 튀어나오게 될지, 뭘 플레이하게 될지가 기대되는 물건이라고나 할까요.


[[fsize=8]]중간에 나오는 미니게임 아닌 미니게임 중 한 장면.[[/font]]

좋은 건 이 게임을 구성하는 서브장르들이 죄다 꽤 재밌다는 겁니다. 격투는 꽤 간단한 시스템에다가 적을 중심으로 카메라가 고정되는 방식이라 조금 난감할 때도 있지만 대신에 피곤하게 길지가 않죠. 증거 사진을 찍는 것이 게임의 주 목적이지만 동시에 사진기로는 아무 데나 원하는 곳을 찍을 수도 있고, 암호를 풀거나 동물 사진을 찍어서 돈을 벌거나 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호버크래프트는 단순한 탈것으로 시작하지만 업그레이드해서 레이싱에서부터 슈팅까지 할 수 있죠.


[[fsize=8]]게임의 주 수익원은 동물 사진을 찍는 겁니다. 생각보다 꽤 재밌죠.[[/font]]

그런 면에서 게임 디자인적인 측면을 곱씹어보면 합리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근사한 아이디어들을 잔뜩 구겨 넣었다는 게 여러 모로 티가 납니다. 다른 능력을 가진 동료와 협동하면서 진행해야만 하는 플레이 방식, 주인공의 탈것인 호버크래프트를 업그레이드해나가는 과정과 게임이 진행되면 점점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나는 맵, 태생이 콘솔용 게임이지만 마우스와 키보드를 적절히 조합해서 PC에서도 충분히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조작성, 각종 미니게임들에 자잘한 숨겨진 요소들……캐릭터와 적들의 디자인들조차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플레이 방식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나가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어서 꽤나 인상 깊지요.


[[fsize=8]]동료가 슈퍼 액션을 쓰면 플레이어가 이어서 필살기(?)를 쓸 수 있지요. 사실 공격용이 아니라 이건 장애물 치우기용이지만.[[/font]]

동료는 (거의) 한 명 뿐이지만 대신 게임플레이에 필수적입니다. 슈퍼 액션을 쓴다거나, 혹은 주인공 대신 스위치를 눌러준다거나 하는 필수적인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죠. AI가 꽤 좋아서 필드에서는 플레이어를 잘 따라다니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이 중요한 잠입 부분에서는 당연히 동료가 거슬리게 되므로, 적절히 플롯 도구를 써서 주인공과 떼어놓는데 그것 또한 퍽 자연스러워서 맘에 들더군요. 물론 길을 막거나 하는 삽질을 하지도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구성은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럽죠.


[[fsize=8]]근사한 그래픽.[[/font]]

그래픽 엔진은 조금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입니다. 시대적으론 SF지만 유사 인류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판타지풍의 화사한 배경 세계는 적당히 블러 효과만 넣어주면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죠. 독특한 느낌은 아마도 프랑스 게임이라서 그런 걸까요? 글쎄요. 캐릭터 디자인이 거부감 든다는 사람들이 좀 뵈던데, 어렸을 적에 디즈니 만화동산도 한 번 안 봤나 봐요.


[[fsize=8]]밤하늘에는 별자리 이름도 나옵니다. 위키서 algenib을 쳐봤는데 페가서스하고 페르세우스자리의 두 별 이름으로 나오네요.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각각 335광년과 590광년…….[[/font]]

아무튼, 이런 예쁜 그래픽을 만드는 건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이고 디자인의 문제이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효과와 낮은 텍스처 해상도를 갖고도 충분히 멋져 보이기엔 넉넉하지요. (우리 나라 게임들 보면서 한 번 챙겨봐라 싶은 요소기도 합니다. 번쩍번쩍 화려하게 효과만 넣으면 뭐한담, 보고 있으면 눈만 아픈데.) 물론 동작과 캐릭터들의 인터렉션도 부드럽기 그지없다는 것도 보너스.


[[fsize=8]]아날로그 스틱으로도, 그리고 마우스로도 편리한 이른바 ‘빙빙 돌리기’인터페이스.[[/font]]

목소리 연기와 사운드, 음악 효과는 물론 최고 수준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고, 게임플레이 내내 적절한 난이도 배분도 강점입니다. 게임 디자인도 그렇고 저연령층이나 라이트 유저를 고려했는지 아주 쉬운 게임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맥없는 게임은 아니란 거죠. 난이도가 낮은 것은 체크포인트가 수도 없이 널려있는 덕분이 큽니다. 잠입 부분만 해도 방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혹시 적에게 걸려도 방 입구 부분에서 저절로 다시 시작하게 되는 바, 한 번 죽으면 욕 퍼부으면서 죽었던 곳까지 가기 위해 세이브 파일 불러와서 30분을 더 반복 플레이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쉽게쉽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진행해나갈 수 있습니다.


[[fsize=8]]잠입 액션 부분. 물론 여기 나오는 병사들도 메기솔 같은 데서 그렇듯 기억력이 꽤 나쁩니다만, 저기 등 뒤의 화살표 달린 탱크 이외 부분은 사실상 무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제약될 수밖에요.[[/font]]

불행히도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흔해빠진 카메라 버그도 있고, 무엇보다 운이 나쁘면 게임 진행이 완벽하게 불가능해지는 버그에 걸리는 수가 있습니다. 진행에 필수적인 아이템이 안 나온다거나, 동료가 아예 사라진다거나, 다행히도 이건 특정 부분에서만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팬들이 만든 비공식 패치로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는 있긴 합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공식 1.01버전 패치를 하면 오히려 버그가 더 생긴다고 하더군요.


[[fsize=8]]스토리 전개에 대화는 필수.[[/font]]

한편으로, 우수한 게임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스토리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선과 악을 넘어서(혹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라고 해석하면 이상하려나요)라는 철학적인 제목에 비해 꽤 단순하고 직설적인 플롯 구조도 그렇거니와, 이렇게 근사하게 시스템 짜놓았으면 플레이시간이 한 60시간쯤 되는 방대한 스토리와 맵을 펼쳐 놓아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실제로는 배경도 꽤 좁고 끽해야 10시간에서 15시간 정도면 빠뜨린 거 하나 없이 완벽히 클리어가 가능합니다.


[[fsize=8]]배경이 되는 공간, 이렇게 보면 모르겠지만 꽤 좁습니다.[[/font]]

일전에 욕했던 비슷한 플레이 시간의 어드벤트 라이징이 길고긴 스토리에서 요점만 찍고 넘어가는 빨리감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이 녀석은 전개도 제대로 해주고 게임 구성도 알차지만 대신에 이야기 자체가 워낙에 짧고 간단하죠. 역시 저연령층을 고려해서였을까요? 허나 기왕 제목을 선악에 대한 걸로 정하고 알차게 시스템 채워넣었더라면 좀 반전도 팍팍 넣어주고, 캐릭터들도 깊게 파고들어가서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리저리 꼬아서 선과 악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긴 시나리오를 짜넣었다면 진짜 흠잡을 수 없는 물건이 되었을 텐데 말예요. 솔직히 전 알파 섹션이 워낙 처음부터 나 악당이에요 하고 이마에 써놓고 다니기에 알고 보니 나쁜 놈이 아니라는 반전쯤은 당연히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덕분에 결말이 좀 맥이 빠지게 되더군요.


[[fsize=8]]애초에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은데, 오른쪽의 히스패닉계 친구는 정말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냥 제작단계에서 빼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font]]

아쉬운 단점과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비욘드 굿 앤 이블의 매우 튼튼한 게임플레이는 그런 단점들을 넘어 꽤 근사한 게임이 되기엔 족하긴 합니다. 아마 후속작이 나온다면 이미 확립된 구성을 갖고 좀 방대하고 자유도 있는 규모로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짧은 게임들이 늘 그렇듯이 속편을 기대해주라는 결말을 냈지만, 불행히도 시스템적인 완성도에 비해 판매량은 좀 많이 절망적이었고 후속작은 별 가망이 없다는 게 아마 더 아쉬운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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