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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마린, 그러니까 우주 해병대 한 명이 있었다. 마린은 숲 속에 혼자 있는 게 싫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표면이 죄다 정글로 이루어진 이 행성 자체가 싫었다. 이런 곳에는 으레 무서운 소문이 떠돌던 그 외계종족이 나타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망할 놈들은 정글 행성이 고향별이라고 했다. 마린은 그 녀석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나 이야기만큼은 누구보다도 많이 접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서 한 방에 사람들을 해치고 홀연히 사라진다고 했다. 거기에 당한 동료들이 벌써 한둘이 아니었다. 이제는 장갑복에 죽어간 동료들 이름을 새길만한 틈도 남지 않았다.

 

그 외계종족이 무서운 이유는 우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간을 굴절시키는 기술이 있기에 육안으로만 보면 찾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푸른 빛으로 방전이 이는가 싶더니 어느 새 모습을 감춘다고 했다. 주의력이 깊은 사람이라면 무언가가 왜곡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지만, 주변에 이렇게나 풀숲이 무성한데 어디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마린의 눈에는 사방이 온통 삐뚤어 보였고, 당장이라도 그 외계종족이 튀어나와 머리에 칼을 한 방 날릴 것만 같았다. 그래, 그 놈들은 칼을 쓴다고 했다. 총을 쏘지 않고 칼을 쓴다는 사실이 어쩐지 간담을 서늘케 했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그 놈들은 손등 위쪽으로 칼을 매달고 다닌다고 했다. 평소에는 칼날을 감추고 다니기에 볼 수가 없지만, 전투 시에는 번뜩이며 튀어나와 무엇이든 단칼에 베어버린다고 전했다. 칼날은 도대체 무슨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다만, 타액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그 벌레 같은 외계놈들도 머리통이 순식간에 날아간다고 했다. 총알도 막아내는 그 외골격을 단박에 뚫어버리다니, 믿기 힘들었다. 그렇게 뛰어난 물질로 그렇게 원시적인 무기를 만들다니, 이해도 가지 않았다. 마린은 손에 쥔 라이플을 바라보았다. 탄약이 99발이 들어가든, 999발이 들어가든, 몇 발이 들어가든 그 소총은 초라해 보였다.

 

극소수이긴 했으나 그 외계종족이 어떻게 생겼는지 봤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처럼 두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며, 두 팔을 쓴다고 했다. 키는 무척이나 커서 아마 인간이 눈높이를 맞추자면 고개 좀 아플 거라는 표현도 들었다. 피부는 현저히 다른데, 마치 파충류처럼 비늘이 있고 거기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흩어져 있다고 했다. 굵직한 머리카락은 촉수처럼 퍼져 있으며, 정수리에서 시작해 어깨로 내려온다고 묘사했다. 얼굴에서 코나 입, 귀 등은 찾아보지 못했고, 오직 어둠 속에서 두 눈만 시퍼렇게 번득인다고들 입을 모았다.

 

칼을 쓰는 만큼, 놈들은 옷차림도 원시적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장갑이나 갑옷 등은 잘 걸치지 않으며, 천쪼가리 몇 개를 두르는 게 고작이라는 말이었다. 아마 그토록 뛰어난 은신 기술이 있으니 굳이 방어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중 몇몇은 뼈로 무장을 한다고도 했다. 그 외계 벌레놈들을 죽인 다음, 뼈를 발라내 갑옷 대신 걸치는 듯싶었다. 그게 실제로 방어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취향일 따름인지야 모를 일이었다. 단지, 그렇게 뼈를 걸치고 다니는 놈들은 손등에서 칼을 뽑는 게 아니라 뭔가 더 커다란 무기를 휘두른다고 했다. 양쪽에 날이 달린 장대무기라고 한 것으로 보아 큰 낫이나 창일 수 있었다.

 

마린은 떠오르는 잡념을 지워버리고 재빨리 비컨을 찾을 생각만 했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가면 드롭쉽이 기다리는 지역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설마 낙오자를 버려두고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 때, 무언가 섬찟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마치 죽음이 임박했다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마린은 애써 불안감을 지우려고 했으나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 절대적인 육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탐지장치에 어떻게 표시가 되든 아무 상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전자장비 따위가 아니었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린은 그것을 보았다. 푸른 방전, 공간이 굴절된 이미지, 목으로 날아오는 손목칼날, 파충류 같은 피부, 퍼렇게 번쩍이는 두 눈 그리고 자신의 죽음까지. 마린이 어이없게도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과연 그 외계사냥꾼이 자신의 두개골을 마음에 들어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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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나서 한 번 이야기해봅니다. 에일리언과 저그, 타이라니드 관계도 그렇지만, 저 둘의 관계도 살펴볼만 한 듯. (이러니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개봉했을 때 <스타크래프트> 표절이란 이야기가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