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 심금을 울리는 로망 중 하나는 보행 메카닉이며,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보드게임 <배틀테크>가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멕워리어>로 더 유명한 듯한 이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는 조종사인 멕워리어가 되서 배틀메크라는 이족 보행 전차를 움직이죠. 메크가 꽤 강력하다는 설정인지라 기타 전차, 항공기, 보병 등은 그냥 지원만 하는 축이고, 대개 전투의 향방은 메크의 싸움에 따라 흘러갑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상전만 그런 거고, 수중전이나 해전은 어떨지 의문입니다. <배틀테크> 세계에도 강이나 바다가 있을 테고, 그렇다면 그곳을 장악하기 위해 병기를 내보낼 테인데. 저는 메크가 물에서 싸우는 건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멕워리어>나 <멕커맨더> 같이 세계관 구현이 제한된 비디오 게임은 물론이고, 보드게임에서도 수중 메크는 못 본 듯하네요. 이미지 한 번 찾아보기도 힘드니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가 극히 희미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긴 수중 메크란 건 애당초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상전이야 지표면에 붙어서 싸우기 때문에 지형 극복을 위한 두 다리가 (설정만이라도) 꽤 쓸모 있겠죠. 하지만 수중전은 3차원 전투이고, 극복해야 할 건 지형이 아니라 물의 저항력입니다. 저항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유선형으로 빠져야 하는데, 대개 메크는 각지고 팔도 붙어있는지라 물을 헤치고 나가긴 별로 좋지 않죠. 그나마 상체는 유선형으로 만들면 된다 치죠. 그러나 다리라는 건 노처럼 넓게 생겼거나 물갈퀴라도 붙지 않은 이상 물 속에서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다리를 떼 버리고 거기다 지느러미를 가져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 관절을 연이어 붙이고 마이오머 근육을 이용하면 효율적인 금속 지느러미를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느러미 달린 메크가 구축함이나 전함, 잠수함을 상대로 얼마나 우위를 점할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지느러미로 이동한다면 스크류나 키로 움직이는 함선보다 급격한 기동이 가능하겠지만, 그것 가지고 어뢰나 폭뢰를 얼마나 회피할 수 있을까요.

 

배틀메크를 위주로 이야기하긴 했는데, 이는 예시일 뿐 꼭 메크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행 메카닉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비해 수영 메카닉이 별로 없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리는 (역시 설정상이지만) 바퀴나 궤도전차에 비해 지형 돌파력이 뛰어나다고 우길 수라도 있지, 지느러미는 키와 스크류에 비해 이점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설정이 이 모양이니 이걸 가지고 글을 쓰거나 게임을 만들 수도 없는 거고요.

 

하지만 저는 수중 메크, 더 넓게 말해서 수영 메카닉이 없는 이유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다고 봅니다. 첫머리에 로망 이야기를 했는데, 보행 메카닉에 비하자면 수영 메카닉은 로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다리로 땅을 걷는 인간입니다. 따라서 인간처럼 걷는 기계에 우리 자신을 투영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허나 인간에겐 지느러미가 없죠. 그러니 지느러미로 이동하는 메카닉에게도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거고요. 보행 메카닉이 등에 추진기나 스크류 팩을 붙이고 물 속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래서야 무늬만 수중 메카닉일 뿐 다리가 달린 건 여전히 똑같잖아요. 결국 수영 메카닉이라고 해 봤자 지느러미나 물갈퀴로 이동하는 어류, 파충류를 본뜨는 게 고작이지요. 그래도 상어나 악어 같은 동물은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어느 정도 로망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상어 로봇, 악어 로봇 같은 거나 나올 따름이고요.

 

결국 모든 걸 좌우하는 건 로망이라는 거. 혹시 또 모르죠, 인어가 보기엔 다리 대신 지느러미 달린 아틀라스가 형님처럼 보일지도?

aqua_zoid.jpg 
[수영 메카닉이란 이런 결과물로 귀착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