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나이트 위저드'의 초반부에 보면, 주인공들이 소속된 나이트 위저드의 총사령관인 안젤롯이 이런 대사를 많이 합니다.

 世界は ねらわれます
 ㅡ 세계가 노려지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보면 이런 식의 번역을 상당히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가 B를 C하다'의 수동형태인 'B가 C하여지다' 하는 번역이 많죠.
 이외에도 일본어를 직역하다가 나오는 수동형 번역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번역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노려지다'라는 말은 '노리다'의 사역형으로 쓴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일본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것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직역입니다.

 문법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말 어법에는 '노리다'라는 말이 수동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 '그는 전국 수석을 노리고 있다'는 식으로 사용되지 '너는 노려지고 있다', '전국 수석이 그에 의해 노려지고 있다'는 식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수동 형태로 굳이 고치려면 문맥적 의미가 같은 다른 어휘를 사용하여 의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넌 누군가에게 위협받고 있다', '넌 위협받고 있다', '전국 수석이 그의 목표다' 라고 바꾸는 식으로요.

 일본 애니메이션 자막들의 경우, 일본어 대사를 그대로 직역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이신 어머니가 이런 자막을 보시곤 말이 어색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막 만드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마추어인데다가 아무래도 일본어의 어감을 살리려다 직역을 해놓은 자막인 것 같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우리가 일본 사람도 아닌데 왜 일본어 원문의 어감을 살려서 이해해야 되는 거니? 우리 말로 번역을 하는 거면 우리 말에 맞게 고쳐야 되는 거 아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영화자막을 몇 개 만들어 본 저로서도 십분 이해가 되는 말씀이었으니까요.

 인터넷이 우리말 파괴 현상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리말 파괴 현상에 일본어의 무분별한 번역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의 대사들을 쉽게 받아들이죠. 비약일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 자막은 네티즌의 언어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언어 사용의 사례를 인터넷의 여러 게시글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구요.

 물론 몇몇 자막 제작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번역이 우리 말 어법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자연스러운 우리 말로 번역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말 어법에 맞게끔 의역을 가하거나 원어와 다른 어휘로 번역하면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원문의 맛을 떨어뜨리지 말라며 항의를 합니다. 심지어는 욕설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 사용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몇몇 수동형 직역은 우리말 어법과 상식에 맞지 않는 번역입니다. 원문의 맛을 떨어뜨린다지만, 일본의 시나 소설, 혹은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문학작품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대사인데 원문의 맛을 따져가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매주 쏟아지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자막들을 만드느라 정신없는 자막 제작자들의 노고는 고압게 생각하지만, 가급적이면 우리말에 맞는 어법과 어휘로 자막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입니다. 그리고 자막을 보는 네티즌들도 그냥 받아보지만 말고 한 번씩 이게 올바른 우리말 번역인지 곰곰히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뭔가 잘못된 번역이란 생각이 들면 제작자 분들에게 정확하게 지적을 해 주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