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나가 에어 스피더를 공용 주기장에 맡기고 보안 절차를 거쳐서 사무실에 들어선 이후의 일과는 어제와 다름이 없었다. 지방행정담당국의 일이라는 것이 대게 코어 월드와 미드 림에 있는 여러 행성들의 총독이나 자치 정부가 하려는 각종 크고 작은 일을 '보고' 받아서 '심의'하고는 그 결과를 '시달'해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가로수 심기나 상하수도 관리나 쓰레기 수거 같은 정말 '사소한' 일은 각 행성에서 '보고'만 하고 처리해도 되었지만 제국의 법은 인구의 변동에서 재정 상황, 행성내 식량 생산이나 공업 생산, 등록된 우주선의 숫자와 등급, 학생과 교사의 숫자, 행성내 공연장이나 극장의 숫자 등 온갖 사항을 지정된 양식에 따라 각 행성이 코루스칸트의 중앙 정부에 '보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물론 수만년간 은하계의 어느 누구도 생각치 않았던 일을 시행하는데 시행착오나 저항이나 불만이 없을리 없었겠지만 임페리얼 스타디스트로이어와 스톰트루퍼로 대표되는 제국의 강대한 무력, 이른바 '신 질서'는 이를 가능하게 했고(물론 클론 전쟁 시기부터 각 행성에 조직되어 있던 COMPNOR(*)의 덕분도 있었지만) 애이나가 제국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등 참사관으로 첫발을 내딛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아우터림의 바쿠라에서 근무할때 처음 맡았던 일도 광물의 월별 생산량과 월별 수송실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날그날의 실적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 다음은 광부들의 숫자와 개인별 채굴실적, 그리고 근무태도를 파악하고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는데(그들의 근무조건은 '상부에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일련의 현장적응과정이자 견습과정이기도 했다.

1년후 그녀는 키팩스 행성으로 보내졌는데 비옥한 농업행성인 이곳은 동시에 제국의 가혹한 식량정책으로 불만이 가득한 행성이기도 했다. 농부들이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제국에 바치는 것 이외에도 '지정된' 가격에 '지정된' 상인에게만 팔아야 했고 종자며 농약, 비료, 농기구는 '지정된' 상인에게서만 사야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농부들은 자신들을 '하청업자'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고 있었고 심지어 각종 공문서에도 그렇게 기재하곤 하였으며 행성의 농부들과 제국이 임명한 총독(그리고 총독이 '지정'한 상인들) 사이에는 늘 긴장이 감돌았다. 그녀는 총독이 주재한 회의에서 제국에 바치는 것 이외에는 관여하지 말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가 냉담과 불쾌의 벽에 부딪혔고 이후 '외로운'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총독이 뇌물수수로 잡혀들어가고 새 총독이 부임해오자 이때쯤 '경험이 쌓인'그녀는 뭔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 총독과 새로 부임한 관리들에게 겨우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 조치로 제국에 대한 키팩스 행성 농부들의 불만이 극적으로 낮아졌고 그녀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등 참사관으로 승진하게 되었으며 이때의 경험을 잊지않고 다른 행성에서도 십분 활용한 덕분에 서른에 1등 참사관에 올라 코루스칸트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운도 좀 따른 편이었다, 최소한 그동안 그녀가 있었던 행성에서는 반란군의 습격이나 눈에 띄게 활발한 활동이 없었고 불만과 절망에 찬 주민들의 대대적인 봉기도 없었으니까.

사무실에서 여러 '보고'와 '심사','시달'들이 처리되는 동안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녀의 휴대용 컴링크(**)에 설치된 개인간 통신 소프트웨어에서 다른 관청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메세지가 송출되었다.(물론 그녀는 주의깊게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제국 아카데미 동기나 코루스칸트에 와서 알게된 그녀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남녀 제국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일정을 유능한 증권거래인들처럼 빠르게 주고받았고 금방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약속이 성사되었다. 임페리얼 플라자 중심부에 있는 적당한 가격과 맛과 서비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내부 장식을 갖춘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슬쩍 자리를 비우는 몇몇 하급 사무원들을 모른척하던 애이나는 정확히 점심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식당은 내무성 건물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고 그녀는 운동삼아 적당히 걷는걸 선호하였으니까. 내무성 건물을 나오자 코루스칸트 답게 온갖 색깔과 모양의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찬 임페리얼 플라자가 그녀를 맞이했다. 다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여기저기 스톰트루퍼들이 무리를 지어 경계하고 있었는데 애이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겼거나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아예 임페리얼 플라자가 패쇄되었을테니까.

애이나가 식당에 들어서자 이미 몇몇이 와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치와 날씨(코루스칸트의 날씨는 늘 똑같으니까)를 뺀 연극이나 음악회 감상, 주변인들의 결혼소식, 그리고 다들 관심을 가지는 서로의 승진과 나중의 임지 등의 이야기였다. 애이나도 메뉴판을 보면서 이야기에 무난히 끼어들었다. 누군가가 조용하고 지내기 좋으며 실적올리기 좋으면서 반군이 등장하지 않을만한 아우터림 행성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다들 웃기 시작했다.

"맙소사, 스톰트루퍼들이군, 여긴 왠일이지?"
문화예술부에서 미술작품 '심사'를 담당하는 랄프 베블렌이 식당 바깥을 오가는 스톰트루퍼들을 보고 놀랐다.

"걱정마, 우릴 지켜주는거야."
재무부에서 국유재산 관리 업무를 맡아 승승장구 하고 있는 피에르 마르샬이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지켜주다니? 누구에게서?"
아카데미 시절 애이나의 룸메이트였고 지금은 산업부에서 일하는 미셀 코르테스가 의아해했다.

"당연히 반군들이지. 그리고 그 동조자들. 너희들은 뭘 주문할지 정했어?"
애이나가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면서 슬쩍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4년전 얼데란이 순식간에 파괴되고 엄청난 사망자들이 나온 이후 이런 주제는 늘 예민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그들이 그 일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긴해도 말이다. 

그리고 애이나가 주문을 결심하고 메뉴판을 내려놓은 순간...

"황제가 죽었다!"

"황제가 죽었다! 베이더도 죽었어!"

"제국군이 엔도에 전멸당했어!"
갑자기 식당안 사람들에 메세지를 받아보고는 경악하며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몇은 벌써 식당 문을 박차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고 창밖에서는 임페리얼 플라자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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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NOR(*)-Commission for the Preservation of the New Order의 약자로 은하계 각지에 깔린 조직으로 구 소련의 콤소몰이나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나 SA(돌격대)에 가까운 은하제국의 어용관변단체 입니다.

컴링크-스타워즈 세게의 개인 휴대용 무선통신기, 우리 세계의 휴대전화나 휴대용 무전기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