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앙 - 작가 : 월광토끼(moonr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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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리브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10여년전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기리는 전쟁 기념관이 건립됬지만 주민들에게는 올리브의 재배가 더 중요했다. 전쟁기념관 따위로는 관광수익도 얼마 나오지 않았다. 시의회에서는 도시를 렌디노어 시와 같이 크고 유명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정작 시민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트레비아 공화국의 행정단위로 ‘펜토스 선거구’로 구별되는 지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아르카디아로부터 트레비아 반도에 육지로 진입하는 길목은 3가지가 있었다. 트레비아 극서지방의 네이룬 접경지대, 최남단의 펜토스 지구와 북동쪽의 아피아 지역이 그것이였다.
본디 아르케디아군의 목표는 네이룬을 점령한 후 네이룬 접경지대를 통해 전력으로 북상, 1개월 안에 트레비아 반도를 초토화시킨 다는 것이었다. 트레비아와 아르카디아간의 전면전이 시작된지 3개월째인 1426년 10월, 트레비아 남부의 네이룬 접경지역에서는 제국군의 전격전이 가로막혀 긴 전선이 구축되었고, 소득 없는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네이룬은 전쟁 시작 이주일만에 완전히 격파되었지만 그 국경은 쉽게 격파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아피아 지역을 통해 트레비아 동부의 항구들을 장악하고자 했던 제국군의 의도는 7월의 두잔 전투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아피아 지역이 대 병력의 단기 이동에 적합하지 못한 진입로라는 것만 증명되었다. 전쟁의 첫 3개월간 두 지역에 걸쳐 시도된 침공은 실패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낸 것은 육군이 아닌 해군이었다. 8월에 트레비아 해군의 스테폴 주둔 함대가 나투르 항만에 대한 봉쇄를 시도하기 위해 출격한 후 뒤넨 반도 인근 해상에서 제국 제 4 북해 함대에게 격파 당한 것이 가장 큰 성공이었다. 이후 트레비아 해군은 모든 상황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제국 북해 전단은 그런 트레비아 해군을 항구에 몰아넣었고, 트레비아 해군은 대함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제해권을 상실했다. 그나마 전력이 온전한 네빈테르 주둔함대만이 트레비아의 해상무역을 간신히 보호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상에서의 우세도 전세를 극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제해권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반도 자체에 대한 상륙작전은 아직 불가능했다. 움츠러들었다 하나 트레비아의 해군은 여전히 대형전함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전 해안선은 단단히 방어되어 어느 지점에 공격을 받아도 신속히 부대를 투입할 수 있었다. 제국 총사령부에서는 반도 전체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상륙작전을 계획했으나 그런 방대한 상륙전을 위해서는 북해 함대 전력은 물론 남쪽의 황해함대까지 모두 투입해야 했고, 그런 차출은 이득이 없을 뿐 아니라 불가능했다.
전황의 변화가 없자 주변국들은 압박을 시작했고, 외교적 대립은 시작됬다. 이에 귀족 상원의는군부를 독촉했고, 군부에서는 해군의 영향력만 증대했다. 아르케디아 제국군에게 남은 길은 하나였다. 펜토스 지구를 돌파해 트레비아 반도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
1426년 10월 11일, 일군의 기병대가 수풀을 흩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포장 도로를 벗어나 흙먼지 속에서 달린지 열흘 째, 제국 육군 제 5 집단군 소속 제 1사단의 제 3 기병연대는 아르케디아 제국 서북부의 국경지대를 지나 트레비아 공화국령에 진입했다. 이들의 임무는 트레비아령 펜토스 지역의 정찰과 거점 확보였다. 한참을 달리던 기병대는 지휘관이 손을 들자 정지했다.
“헤, 올리브 나무가 참 많군요.”
주변 풍경을 잠시 관찰한 슈마허 대위의 감상이었다.
“그렇군. 올리브가 많아.”
헤르만 마이어 소령은 부하가 언급하기 전부터 이미 올리브 나무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는 올리브에서 집을 떠올렸다. 헤르만이 태어난 제국 서남부, 즉 크라레안 제국과의 접경지대인 아렌쉬타트 지방은 따뜻한 기후와 적당한 강수량으로 오렌지와 포도, 그리고 올리브가 재배되기 최적의 지역이었다. 최상품의 와인과 올리브유가 아렌쉬타트에서 재배됬다. 그리고 마이어 집안은 올리브 농장과 목장을 경영했다. 헤르만은 고향의 풍경을 떠올렸다. 따스한 햇빛, 끝없이 펼쳐진 황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운 올리브 나무들. 그가 태어나서 최초로 심은 나무도 올리브 나무였다. 그는 그 올리브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은..
“소령님, 강줄기가 두개로 갈라진 지점입니다! 이곳이 분명 테론강일 겁니다.
슈마허 대위의 외침에 고개를 든 헤르만은 꾸깃꿋깃한 지도를 품 안에서 꺼내들었다. 큰 도로들과 마을만 대충 표기되는 일반 민간인용 지도와는 날리, 헤르만이 꺼내든 군용 지도는 정교한 측량기술과 발전된 인쇄기, 그리고 이름모를 세작들의 피땀어린 노고의 결과물이었고, 이는 소대 단위의 병력을 숨길 수 있을만한 수풀지대의 위치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헤르만에게는 그런 상세한 정보까지는 필요하지 않았고, 그저 Y자형으로 이어진 강줄기를 확인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지도에 ‘테론 강’으로 표기된 물길은 헤르만의 앞에 펼쳐진 풍경과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한 1마일쯤 전방에 펜토스가 있겠지. 도시 외곽까지 진출한다.”
슈마허 대위는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했고, 곧 경쾌한 뿔피리 소리와 함께 제 3 기병연대는 다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고, 도시에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눈에 들어왔다.
"사단 사령부에 연락해. 펜토스 시에 도달했다, 적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
통신사관은 복잡하게 줄들이 얽혀있는 통신구를 통해 사령부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통신용 수정은 집마석을 사용하지 않고 마력을 따로 주입해 사용하는데, 이 때문인지 일반 수정에 비해 강도가 약하기 짝이 없었다. 급한 행군중일 때도, 긴박한 전투상황에서도 통신구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통신사관들의 임무였다. 물론 이들은 기초적인 마력운용을 해야했기에 적어도 대학 1학년 과정은 수료한 자들 중에서만 특별히 선발되었다.
통신사관이 연락을 취하는 사이, 마이어 소령은 망원경을 들어 펜토스시를 바라보았다.
한편, 제국군 기병들이 시민들을 보는만큼 시민들도 기병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색 제복을 입고 있는 도시 치안대원 하나가 멀리서 움직이는 먼지구름을 확인했고, 그는 옆의 경비탑 위에서 졸고 있던 동료에게 돌을 던졌다.
“야! 야! 존! 일어나 새꺄!”
“아 왜 씨발 왜?”
동료의 고함과 돌팔매질에 잠에서 깨어난 치안대원은 7미터 아래에 서있는 동료에게 짜증을 냈다.
“저기 남서쪽에 저 흙먼지 보여? 내가 보기에는 기병들 같아!”
존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치안대원은 동료의 말에 망원경을 꺼내들었고, 곧 동료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중으로 국경 방어 하러 온다던 군대 아니야? 시내에는 들어오지 않는다던데, 일단 보고는 해야겠지?”
존은 동료의 말을 무시한채 망원경을 조절했다. 먼지 때문에 깃발이 잘 안보였다. 존은 다시 한번 망원경을 조절하고 렌즈를 옷자락으로 닦았다.
“무슨 부대래?”
존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야, 너 망원경 들고 조는거냐? 대답..
”
동료의 고함은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다. 존은 숨을 깊게 들이마쉬고는, 고함을 내뱉었다.
“적이다!!!!!!!!!!!!!!”
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뛰어다녔다. 엄마 손을 놓치고 넘어진 어린 소녀가 울음을 터트렸고, 치안대원들은 어설프게 대오를 갖추려 노력했다.
도시의 혼란은 헤르만이 들고 있는 망원경으로도 보였다. 헤르만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하죠?”
어느 장교가 다가와 물었다. 헤르만은 전혀 동떨어진 대답을 했다.
“비텐 소위. 사람 죽여본적 있나?”
“예?”
“살인해 봤냐고.”
“아직 못해봤습니다.”
소위의 대답에 헤르만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도 못해봤어.”
헤르만은 허공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쟂빛 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숨을 헐떡인다. 육체는 더 많은 산소와 온기를 필요로 한다. 근육이 파르르 경련하고, 심장은 더 많은 산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들이 마셔진 공기는 탁하고 매케하여 기침을 유발하였다. 사방은 어둠으로 뒤덮혀 있었고, 이따금씩 불꽃과 번개가 어둠을 일부나마 채색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함성, 그리고 언덕 너머에서 번쩍이는 불꽃과 번개. 헤르만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공포를 느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미칠듯한 공포 때문인지, 피부에 닿는 빗줄기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하엘! 오토! 비텐!! 슈마허! 대답해! 모두 어디있는거야!!”
목이 터져라 소리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헤르만은 더 이상 소리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위에 적군이 있다면 표적만 제공해 줄뿐일 테니까. 피로가 극에 달한 그의 다리가 그에게 휴식을 강요했기에 헤르만은 부러진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 앉았다.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그런 식이었다. 그루터기만 남았거나 새까맣게 타들어가있었다. 한숨만 연거푸 나왔다.
헤르만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건 그가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질 때 망가진 상태였다. 시계가 망가질 때 시계에 달려있던 나침반도 깨졌다. 지금이 몇시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쉰 후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지도는 없었다. 담배 한갑이 들어있었지만 헤르만은 흡연자가 아니었다.
"젠장!"
헤르만은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계속된 긴장의 연속이 그의 육체를 피곤하게 했다. 깨어있기위해 그는 생각을 하려 애썼다. 그의 생각은 전혀 엉뚱한 것으로 이어졌다.
‘내가 6살 때 심은 나무 이름이 뭐더라? 분명 올리브 나무였지. 그 나무에 나는 이름을 붙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고함소리와 섞여 그의 상념을 끊었고, 헤르만은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린 후 뒤를 돌아보자 적군 병사가 나무에 박힌 대검을 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적 병사의 표정은 헤르만의 표정만큼이나 공포에 젖어있었다. 헤르만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권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주인의 기대와는 달리 약실에는 더 이상 에너지가 들어있지 않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군인은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다시 몸을 움직인건 헤르만이었다. 그는 발사가 되지 않는 권총을 공화국 군인에게 힘껏 던졌다. 양 손 모두 나무에 박힌 대검을 잡고 있었던 병사는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묵짉한 권총을 피하지 못했다. 헤르만은 권총을 집어던지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적군을 향해서가 아니라, 언덕 너머로. 그는 맨주먹으로 하는 싸움에는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는 지금 그 무엇에도 자신이 없었다.
펜토스 시의 어설픈 치안대에게 돌격을 감행하던 제국육군 제 1사단 제 3기병연대는 도시 동쪽으로부터 몰려오는 일군의 부대를 발견했다. 모두에게 먼지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흉갑과 투구와 기병도, 그리고 높이 치켜든 깃발이 보였고, 녹색 바탕에 붉디 붉은 올리브 이파리가 그려진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치안대에게 돌격하던 제국군 기병대는 방향을 돌려 달려오던 공화군 기병대와 정면 충돌했고, 거친 마상전투가 이어졌다. 문제는 공화군은 기병대만 데리고 온게 아니었다는데에 있었다.
공화군 기병대는 첫 충돌 후 후퇴, 갑자기 좌우로 갈라섰다. 기병대 뒤로 나타난 공화군 보병대의 일제 사격에 제국군 제 3기병연대는 그 수의 절반이 말 아래로 떨어지거나 또는 말이 무릎을 꿇었고, 남은 병력은 뿔뿔히 흩어졌다. 제 3기병연대 소속 2백명의 기병들 중 이십여명은 다가온 적군을 향해 하릴없이 양손을 번쩍 들었고, 육십여명은 땅바닥에 누워 신음하거나 숨을 멈춘 상태였다.
첫 사격에서 타고 있던 말을 잃은 헤르만은 재집결한 자들에도, 포로가 된 자들에도, 목숨을 잃은 자들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펜토스 시 근처의 야산에서 공포에 떨며 헤매고 있었다.
교전을 벌이고 다시 어둠이 내린 시간, 헤르만은 엄청난 양의 함성과 총성, 그리고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수풀 속에 숨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았고 폭발이 일어났다. 타죽을 위기에 처해있던 헤르만을 구한것은 한밤중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였다.
그 후로 그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잠시 쉬어보려다가 대검에 등이 꿰뚫릴 뻔한 위기를 넘긴 후로 그는 계속 달렸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도 불과하고 그는 뒤도 안보고 달렸다. '제기랄'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을 하기에는 허파가 이미 과로로 시달리고 있었다.
앞도 보지 않고 달렸기에 그는 결국 나무에 부딪혔다. 이미 체력이 떨어져 달리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기에 충격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통은 느껴졌고, 헤르만은 욕을 내뱉으려 했다. 순간 그는 그나무가 그을리지 않은, 푸르고 생기있는 나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비에 촉촉히 젖은 올리브 열매들이 가지에 맺혀있었다. 헤르만은 "아!"하는 탄성을 내뱉고는 올리브에 손을 뻗어 입안에 넣었고, 곧 올리브의 시큼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심은 올리브 나무의 이름은.. 올리브..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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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번편에 대해선 뭔가 할 말이 없네요.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은 이번편에 대헤 무슨 감상이라도,,,?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쿠... OTL 개그의 극에 달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허무개그!!!
왠지 팝송 I'll survive! 를 듣는 기분입니다.
소령이 지휘관씩이나 되면서 말도 없이 발로 달려 도망가는 게 좀 불쌍하기도 하군요.
생 올리브의 맛은 시큼한가요? 궁금한 문제긴 한데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