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앙 - 작가 : 월광토끼(moonrabit)
글 수 20
시크힐
다음날 저녁, 체스와 시데르는 다시 일그러진 표정이 된 여관주인 사디우스와 여관 맙히노그를 뒤로하고 도심에 위치한 1군 사령부로 향했다. 도심 경제구역 옆에 위치한 넓은 군사구역에는 여러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 1군 사령부가 있었다. 1군 사령부 건물은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는, 제일 규모가 큰 군단의 사령부답지 않게 낡고 단순해 보이는 정육면체의 6층 건물이었다. 약간의 장식이라고는 건물 앞에 있는 승리의 여신 ‘살렘’의 동상과 건물 입구에 조그맣게 금으로 적힌 The 1st Republican Field Army Headquarter가 전부였다.
"장군님, 이 건물은 왜 이렇게 인테리어 감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까?."
잠시 사령부건물을 바라보던 시데르의 감상이었다.
"자네는 렌디노어 시에 와 본적이 없나?"
"여러 번 있습니다. 그렇지만 1군 사령부는 처음 와봅니다."
"그런가? 나는 사관학교 졸업 직후와 소령시절에 이곳에서 근무했지. 그리고 건물로 말하자면, 사치는 엄격히 배격해야 하는 거 모르나?"
"하지만 명색이 군 사령부면 좀 위엄이 서야 되지 않습니까?"
"공화군 사령부는 제국 황궁이 아니야."
둘은 사령부 입구로 향했다.
"정지,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소총을 장비한 헌병 3명이 그들을 제지했다.
"육군 특수작전부 RCB (Resistance Clearing Brigade – 저항제거여단) 소속 시데르 로크 중령이다."
"육군 특수작전부 RCB 여단장 체스 아크벨 준장이다. 로크 중령과 본관은 4월 28일자로 1군 사령부에 발령받았으니 확인 바란다."
체스와 시데르는 각자 군에서 발급한 통행증을 제시했다.
"통과하십시오. 충성!"
헌병들은 잠시 통신구에 대고 통신을 주고 받은 후 체스와 시데르를 경례와 함께 통과시켜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군 사령관에게 도착을 신고하고 지시를 하달 받아야지."
"지금 제 1군 사령관이.. 아마 시크힐 대장이지요?"
"그렇지."
시데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사령관 집무실은 6층에 있어. 어서 올라가자고."
둘은 입구 옆의 층계를 올랐다. 6층에는 방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1군 행정책임관실, 1군 정보부장실, 1군 참모총장실을 지나 1군 사령관 집무실 앞에 섰다.
"들어오게."
문을 두드리자 방 안에서 무겁고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체스와 시데르를 맞은건 왼쪽 눈에 안대를 한, 예리한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띤 중년의 군인이었다. 머리도 얼굴표정과 비슷한 은회색이었다. 시베르는 ‘1군 사령관 나이넨 제킬 대장’이라고 쓰인 팻말을 힐끗 쳐다보았다.
"충성! 공화육군 시데르 로크 중령, 4월 27일 19시에 1군 사령부에 도착했습니다."
"충성, 공화육군 체스 아크벨 준장, 도착했습니다."
제킬 대장은 손짓으로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 방 안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고, 가구는 넓은 책상 하나와 의자 4개가 전부였다. 체스와 시베르는 그 의자들 중 두 의자에 앉았다.
"여행은 어땠나? 수도에서 여기까지는 배를 타고 왔을 테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크벨 준장 그대는 이미 여러 차례 만났지. 로크 중령 귀관의 이름은 아크벨 준장의 충복이라는 명성으로 익히 들어왔네."
체스의 표정은 난처해졌고, 시데르의 표정은 약간 일그러졌다. 둘의 표정 변화를 표정 없이 바라보던 제킬 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남부지역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걸 귀관들도 잘 알고 있겠지? 크라레안 제국이 아르카디아 제국의 공격에 허물어져 버렸네. 아직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아르카디아 군이 크라레안의 주력을 페이룰 인근에서 패퇴시켰네. 크라레안 제국 정부는 지금 평화조약을 불리한 조건에서라도 맺으려 하고 있다는군. 게다가 네이룬 주변으로 제국군이 대규모 군사훈련도 실시하고 있다더군. 이와 같이 아르카디아 제국의 위협이 증대대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도 대비할 수밖에 없지. 이에 따라 우리 공화군도 4개의 군단을 더 신설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기로 결정했네. 그 4개의 군단 중 하나를 자네가 맡게 될 걸세."
빠른 속도로 할 말을 마친 제킬 대장은 체스와 시데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데르는 ‘거 더럽게 말 빨리하네.’라고 생각했다.
"질문할 사항은 없나?"
이 말이 떨어지자 체스가 물었다.
"보통 군단 사령관은 중장 이상이 맡는 게 불문율 아닙니까? 왜 소장도 아닌, 준장밖에 안된 제가 선임된 거지요? 게다가 저같이 장군이 된지 얼마 안된 풋내기를 말입니다."
제킬 대장은 이에 즉각 대답했다.
"겸손한 체 하지 말게. 허나 난 모르는 사항일세. 인사는 내가 결정한 게 아니네. 난 제 1군에 군단을 신설하길 원했고, 국방부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네를 그 군단의 사령관에 보임시킨 거지. 그뿐이네."
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오히려 냉엄한 표정의 제킬 대장을 보고 더 묻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데르는 ‘거 더럽게 무표정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부터 군단 창설에 들어가게. 신병들은 이미 모집됐고, 부족한 인원은 타 군단의 고참병들을 빼와 채웠네. 자네는 이제 보급이나 군단편성만 하면 되겠군. 미리 도착한 부관들이 상세 사항을 알려줄 걸세. 숙소는 군인관사 19번일세. 앞으로도 거기에서 살게 되겠지. 그게 싫다면 군단 병들과 함께 천막치고 생활해도 무방하네. 그럼 이만 가보게. 아, 잊을뻔 했군. 자네 군단의 번호는 7번이네. 제 7군단."
신임 군단장과 군 총사령관과의 군단신설식 치고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짧은 대화가 끝나자, 체스와 시데르는 제킬 대장에게 경례한 후 방을 나왔다. 둘은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사령부 건물을 나와 병영을 향해 걸었다. 체스는 더 이상 자신의 군단장 직위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을 가지고 더 의문을 제기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을 터이니,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 아닌가. 체스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시데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장군님, 왜 제킬 대장이 ‘시크힐’이라고 불리는지 아십니까?"
“시크힐이라는 성이 원래 이름이 아닌 것은 알고 계셨지요?”
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군 장성 명단을 보다가 ‘제킬’이라고 기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알았지.”
“그것밖에 모르십니까?”
“몰라.”
“소문도 안 들어보셨습니까?”
“원래 소문 같은 건 취급안해.”
체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시크힐’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모르시겠네요.”
“모르겠는걸. 그리고 좀 빨리 걷지. 병영까지는 아직 멀어."
둘은 속도를 높여 걸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던 다른 병사들이 그들에게 경례를 했다. 잠시 후 체스가 말했다.
"아니, 난 애초에 소문이고 뭐고 사람들이 제킬 대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별로 들어보질 못했는데?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시데르는 장난스러운 표정도, 심각한 표정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 크라레안 제국과 벌였던 전쟁을 아십니까?"
"알아."
1413년까지만 해도 트레비아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던 것은 크라레안 제국이었다. 그러다가 1413년 말에 펜토스에서 큰 전투가 있은 후 크라레안 제국은 힘을 잃기 시작했고, 곧 아르카디아 제국에게 밀려 축소되어간 것이다. 시데르가 말하는 전쟁은 바로 펜토스의 전투였다.
"펜토스 시 동쪽에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크라레안 제국군이 그쪽에…."
시데르의 말을 끊고 체스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알어. 사관학교에서 전사과목은 언제나 A+ 학점만 받았으니까. 그 언덕에 공격을 집중했고, 그곳을 제 1군단이 처절하게 방어해 지켜낸 후, 4군단이 도착해 구원했지."
"아-네, 교과서에는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교관이 뭐 다른 얘기는 안 해줬습니까?"
빈정대는 투였다.
"말투가 어째 건방지군."
"시정하겠습니다, 장군님.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수적으로 크게 불리한 제 1군단이 거의 전멸할 위기에 쳐하자, 군단장이 갑자기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검강을 날려대며 적을 수백이나 ‘잘라’버렸다는 얘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체스는 황당해했다.
"뭐?"
"그 군단장은 전투 중반에 적의 에너지탄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했다는군요. 그런데, 그 후 치료도 마다하고 갑자기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답니다. 단도를 하나 꺼내들고 급소만 골라, 전광석화처럼 베었답니다. 마구 날뛰면서 잘라대는데, 닿는 자마다 모두 ‘사륵’"
시데르는 뭔가를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제야 체스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 했다.
"제킬 대장이군."
"어찌나 그 모습이 빠르고 귀신 같았던지, 적의 에너지탄도 빗나가고 아무도 막을 생각을 못했다는군요. 눈알이 없는 눈에서는 마치, 푸른 안광이 흘러나오는 듯 하여 악마의 그것과 같아, 적이던 아군이던 그 눈을 감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지요 . 그 후 그 언덕은 ‘잘린’ 시체와 피로 물들었는데, 그 광경이 너무 참혹해서 보는 사람이 모두 역겨워했다네요. 그래서 제킬 대장을 우리가 ‘시크힐’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시데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어느새 다 왔군요."
둘은 병영 입구에 서 있었다. 둘은 사령부에서 했던 것처럼 신분증을 제시하고 들어갔다.
"제 7군단이라, 어떤 놈들로 이루어졌을지 궁금하군요."
체스는 말이 없었다.
"장군님?"
"…."
"전 그럼 장군님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요."
"…"
시데르는 어깨를 으쓱한 후 터벅터벅 걸어갔다.
"시크힐..…이란 말이지…?"
한참의 침묵 후에 체스가 내뱉은 말이다. 살짝 끝을 올린 그의 말에 담긴 의문이 무엇에 대한 의문이었는지는 본인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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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9월 초
집중호우가 잦은 시기입니다.
산간계곡으로 야영하러 간 사람들 많다는데 봉변이나 당하러 가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 폭우 때도 산간계곡서 잠자다가 빠져죽은 사람도 많다던데.
다음날 저녁, 체스와 시데르는 다시 일그러진 표정이 된 여관주인 사디우스와 여관 맙히노그를 뒤로하고 도심에 위치한 1군 사령부로 향했다. 도심 경제구역 옆에 위치한 넓은 군사구역에는 여러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 1군 사령부가 있었다. 1군 사령부 건물은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는, 제일 규모가 큰 군단의 사령부답지 않게 낡고 단순해 보이는 정육면체의 6층 건물이었다. 약간의 장식이라고는 건물 앞에 있는 승리의 여신 ‘살렘’의 동상과 건물 입구에 조그맣게 금으로 적힌 The 1st Republican Field Army Headquarter가 전부였다.
"장군님, 이 건물은 왜 이렇게 인테리어 감각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까?."
잠시 사령부건물을 바라보던 시데르의 감상이었다.
"자네는 렌디노어 시에 와 본적이 없나?"
"여러 번 있습니다. 그렇지만 1군 사령부는 처음 와봅니다."
"그런가? 나는 사관학교 졸업 직후와 소령시절에 이곳에서 근무했지. 그리고 건물로 말하자면, 사치는 엄격히 배격해야 하는 거 모르나?"
"하지만 명색이 군 사령부면 좀 위엄이 서야 되지 않습니까?"
"공화군 사령부는 제국 황궁이 아니야."
둘은 사령부 입구로 향했다.
"정지,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소총을 장비한 헌병 3명이 그들을 제지했다.
"육군 특수작전부 RCB (Resistance Clearing Brigade – 저항제거여단) 소속 시데르 로크 중령이다."
"육군 특수작전부 RCB 여단장 체스 아크벨 준장이다. 로크 중령과 본관은 4월 28일자로 1군 사령부에 발령받았으니 확인 바란다."
체스와 시데르는 각자 군에서 발급한 통행증을 제시했다.
"통과하십시오. 충성!"
헌병들은 잠시 통신구에 대고 통신을 주고 받은 후 체스와 시데르를 경례와 함께 통과시켜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군 사령관에게 도착을 신고하고 지시를 하달 받아야지."
"지금 제 1군 사령관이.. 아마 시크힐 대장이지요?"
"그렇지."
시데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사령관 집무실은 6층에 있어. 어서 올라가자고."
둘은 입구 옆의 층계를 올랐다. 6층에는 방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1군 행정책임관실, 1군 정보부장실, 1군 참모총장실을 지나 1군 사령관 집무실 앞에 섰다.
"들어오게."
문을 두드리자 방 안에서 무겁고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체스와 시데르를 맞은건 왼쪽 눈에 안대를 한, 예리한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띤 중년의 군인이었다. 머리도 얼굴표정과 비슷한 은회색이었다. 시베르는 ‘1군 사령관 나이넨 제킬 대장’이라고 쓰인 팻말을 힐끗 쳐다보았다.
"충성! 공화육군 시데르 로크 중령, 4월 27일 19시에 1군 사령부에 도착했습니다."
"충성, 공화육군 체스 아크벨 준장, 도착했습니다."
제킬 대장은 손짓으로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 방 안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고, 가구는 넓은 책상 하나와 의자 4개가 전부였다. 체스와 시베르는 그 의자들 중 두 의자에 앉았다.
"여행은 어땠나? 수도에서 여기까지는 배를 타고 왔을 테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크벨 준장 그대는 이미 여러 차례 만났지. 로크 중령 귀관의 이름은 아크벨 준장의 충복이라는 명성으로 익히 들어왔네."
체스의 표정은 난처해졌고, 시데르의 표정은 약간 일그러졌다. 둘의 표정 변화를 표정 없이 바라보던 제킬 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남부지역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걸 귀관들도 잘 알고 있겠지? 크라레안 제국이 아르카디아 제국의 공격에 허물어져 버렸네. 아직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아르카디아 군이 크라레안의 주력을 페이룰 인근에서 패퇴시켰네. 크라레안 제국 정부는 지금 평화조약을 불리한 조건에서라도 맺으려 하고 있다는군. 게다가 네이룬 주변으로 제국군이 대규모 군사훈련도 실시하고 있다더군. 이와 같이 아르카디아 제국의 위협이 증대대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도 대비할 수밖에 없지. 이에 따라 우리 공화군도 4개의 군단을 더 신설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기로 결정했네. 그 4개의 군단 중 하나를 자네가 맡게 될 걸세."
빠른 속도로 할 말을 마친 제킬 대장은 체스와 시데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데르는 ‘거 더럽게 말 빨리하네.’라고 생각했다.
"질문할 사항은 없나?"
이 말이 떨어지자 체스가 물었다.
"보통 군단 사령관은 중장 이상이 맡는 게 불문율 아닙니까? 왜 소장도 아닌, 준장밖에 안된 제가 선임된 거지요? 게다가 저같이 장군이 된지 얼마 안된 풋내기를 말입니다."
제킬 대장은 이에 즉각 대답했다.
"겸손한 체 하지 말게. 허나 난 모르는 사항일세. 인사는 내가 결정한 게 아니네. 난 제 1군에 군단을 신설하길 원했고, 국방부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네를 그 군단의 사령관에 보임시킨 거지. 그뿐이네."
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오히려 냉엄한 표정의 제킬 대장을 보고 더 묻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데르는 ‘거 더럽게 무표정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부터 군단 창설에 들어가게. 신병들은 이미 모집됐고, 부족한 인원은 타 군단의 고참병들을 빼와 채웠네. 자네는 이제 보급이나 군단편성만 하면 되겠군. 미리 도착한 부관들이 상세 사항을 알려줄 걸세. 숙소는 군인관사 19번일세. 앞으로도 거기에서 살게 되겠지. 그게 싫다면 군단 병들과 함께 천막치고 생활해도 무방하네. 그럼 이만 가보게. 아, 잊을뻔 했군. 자네 군단의 번호는 7번이네. 제 7군단."
신임 군단장과 군 총사령관과의 군단신설식 치고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짧은 대화가 끝나자, 체스와 시데르는 제킬 대장에게 경례한 후 방을 나왔다. 둘은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사령부 건물을 나와 병영을 향해 걸었다. 체스는 더 이상 자신의 군단장 직위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을 가지고 더 의문을 제기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을 터이니,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 아닌가. 체스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시데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장군님, 왜 제킬 대장이 ‘시크힐’이라고 불리는지 아십니까?"
“시크힐이라는 성이 원래 이름이 아닌 것은 알고 계셨지요?”
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군 장성 명단을 보다가 ‘제킬’이라고 기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알았지.”
“그것밖에 모르십니까?”
“몰라.”
“소문도 안 들어보셨습니까?”
“원래 소문 같은 건 취급안해.”
체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시크힐’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모르시겠네요.”
“모르겠는걸. 그리고 좀 빨리 걷지. 병영까지는 아직 멀어."
둘은 속도를 높여 걸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던 다른 병사들이 그들에게 경례를 했다. 잠시 후 체스가 말했다.
"아니, 난 애초에 소문이고 뭐고 사람들이 제킬 대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별로 들어보질 못했는데?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시데르는 장난스러운 표정도, 심각한 표정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 크라레안 제국과 벌였던 전쟁을 아십니까?"
"알아."
1413년까지만 해도 트레비아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던 것은 크라레안 제국이었다. 그러다가 1413년 말에 펜토스에서 큰 전투가 있은 후 크라레안 제국은 힘을 잃기 시작했고, 곧 아르카디아 제국에게 밀려 축소되어간 것이다. 시데르가 말하는 전쟁은 바로 펜토스의 전투였다.
"펜토스 시 동쪽에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크라레안 제국군이 그쪽에…."
시데르의 말을 끊고 체스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알어. 사관학교에서 전사과목은 언제나 A+ 학점만 받았으니까. 그 언덕에 공격을 집중했고, 그곳을 제 1군단이 처절하게 방어해 지켜낸 후, 4군단이 도착해 구원했지."
"아-네, 교과서에는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교관이 뭐 다른 얘기는 안 해줬습니까?"
빈정대는 투였다.
"말투가 어째 건방지군."
"시정하겠습니다, 장군님.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수적으로 크게 불리한 제 1군단이 거의 전멸할 위기에 쳐하자, 군단장이 갑자기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검강을 날려대며 적을 수백이나 ‘잘라’버렸다는 얘기는 못 들어보셨습니까?"
체스는 황당해했다.
"뭐?"
"그 군단장은 전투 중반에 적의 에너지탄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했다는군요. 그런데, 그 후 치료도 마다하고 갑자기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답니다. 단도를 하나 꺼내들고 급소만 골라, 전광석화처럼 베었답니다. 마구 날뛰면서 잘라대는데, 닿는 자마다 모두 ‘사륵’"
시데르는 뭔가를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제야 체스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 했다.
"제킬 대장이군."
"어찌나 그 모습이 빠르고 귀신 같았던지, 적의 에너지탄도 빗나가고 아무도 막을 생각을 못했다는군요. 눈알이 없는 눈에서는 마치, 푸른 안광이 흘러나오는 듯 하여 악마의 그것과 같아, 적이던 아군이던 그 눈을 감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지요 . 그 후 그 언덕은 ‘잘린’ 시체와 피로 물들었는데, 그 광경이 너무 참혹해서 보는 사람이 모두 역겨워했다네요. 그래서 제킬 대장을 우리가 ‘시크힐’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시데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어느새 다 왔군요."
둘은 병영 입구에 서 있었다. 둘은 사령부에서 했던 것처럼 신분증을 제시하고 들어갔다.
"제 7군단이라, 어떤 놈들로 이루어졌을지 궁금하군요."
체스는 말이 없었다.
"장군님?"
"…."
"전 그럼 장군님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요."
"…"
시데르는 어깨를 으쓱한 후 터벅터벅 걸어갔다.
"시크힐..…이란 말이지…?"
한참의 침묵 후에 체스가 내뱉은 말이다. 살짝 끝을 올린 그의 말에 담긴 의문이 무엇에 대한 의문이었는지는 본인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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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9월 초
집중호우가 잦은 시기입니다.
산간계곡으로 야영하러 간 사람들 많다는데 봉변이나 당하러 가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 폭우 때도 산간계곡서 잠자다가 빠져죽은 사람도 많다던데.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