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앙 - 작가 : 월광토끼(moonrabit)
글 수 20
제도
아르카디아 제국은 본디 다일로스 대륙의 아르케디나에서 건국되었다. 그러다가 앤티텀 대륙으로 세력을 넓혀가 엔도어 대하 유역에까지 다다르자, 제국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수도를 앤티텀 대륙과 다일로스 대륙의 사이로 옮겨, 지금의 생 아르코소가 되었다.
앤티텀 대륙과 다일로스 대륙은 폭 2km의 작은 해협으로 끊겨있었는데, 그 사이는 해협 정 중앙에 있는 턴해이먼 섬과 그 위에 건설된 도시로 연결되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제국의 수도 생 아르코소는 거대했다.
도시 중심과 도시의 외곽은 해협으로 인해 동과 서로 나뉘어졌고, 중심부가 그 사이를 2개의 거대한 다리와 함께 연결하고 있었다. 양 대륙 끄트머리에 걸쳐진 도시의 외곽은 항구와 경제활동지역으로, 은행과 증권, 무역과 산업에 걸쳐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들의 커다란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시 양쪽에 건설된 항구들은 언제나 대형 상선과 수송선들로 북적대었고, 그 선박들 위로는 두 대륙을 잇는 거대한 다리 ‘화이트 게이트’가 인공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보여주었다.
화강암으로 뒤덮인 턴해이먼 섬이 도시의 중심을 받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제국의 황궁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제국 아르카디아의 위엄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높게 건설된 제국황궁은 가장 높은 층이 67층에 달했다. 대리석으로 건물을 감싼 황궁은 창문마다 집마석을 이용한 조명기구를 설치해 밤이면 아름다운 청색 빛을 내뿜었다. 황궁 주변으로는 황궁 못지않게 장대한 제국의회, 제국군통수본부, 제국대양함대사령부, 그리고 제립 아르케디 군사학교의 건물들이 그 위용을 과시했다.
이것이, 강대제국 아르카디아의 힘과 부를 상징하는 도시 아르코소의 모습이었다.
제국 국무총리 카이모 공작은 자랑스런 제국의 수도를 바라볼 때마다 일종의 자신감을 느꼈다. 밤이 되어 어둠이 내려도 도시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가 보기에 아르코소의 장대하며 아름다운 야경은 제국의 미래가 영원히 밝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제국은 더욱, 세계의 끝까지 팽창하고, 만인의 우러름을 받아야 했다. 상원의회장 건물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지금도 그의 눈 앞에는 제도의 야경이 선했다.
"…고작 광산하나 때문에 전쟁까지 일으킨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크라레안 제국과 전쟁을 벌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면 신민들의 부담만 가증될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황제폐하께서도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을 보이시덥니다. 게다가 지금 크건 작건 전쟁을 거의 1년에 두 번씩은 치르는 추세인데, 우리 경제가 그 모든 군비를 감당할 만큼 넉넉하지 못합니다. 전쟁을 치르면 치룰수록 국토야 확대 되겠지만, 전선 또한 길어집니다. 전선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국가경제와 사회기반에 걸쳐지는 부담은 더욱 가증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점령지 수익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단상에서 발언 하고 있는 것은 일부르크 후작이었다. 그는 제국 민생안정부 총감으로, 귀족원 내 반전파의 기수였으며, 또한 44세 밖에 되지 않아 가장 젊은 각료에 속했다. 지금 일부르크 후작은 대귀족 출신의 다른 상원의원들을 설득시키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대귀족들의 시선에는 싸늘함이 담겨있었다. 결국은 그 싸늘함에 지원받은 국무총리 카이모 공작이 계속되는 후작의 불평을 막기 위해 발언을 요청했다.
"이미 하원에서는 통과된 사안이 아니오, 일부르크 후작?"
자리에서 일어난 국무총리는 휘어잡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카이모 공작의 다부진 몸과 반듯한 얼굴, 그리고 단정한 몸가짐은 그에게 위엄을 더해주었다.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는 말을 이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하원의 의견이 존중되는걸 잘 알고 있지 않소?"
이 대목에서 몇몇 대귀족들은 입가에 조소를 담았다.
"경의 발언에는 큰 문제가 한가지 있소. ‘고작’ 광산 하나라니, 현재 우리 제국은 총 집마석 사용량의 60%를 국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소. 그것이 우리 신민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데, 네이룬의 광산지대는 그 60%를 50% 이하로 낮출 수 있는 막대한 가치가 있단 말이오. 오히려 그곳을 손에 넣어야 신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소. 새로 발견되는 집마석 산지가 극히 드물어, 집마석 가격은 자꾸만 오르고 있소. 여기에서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은, 바로 신민들일 것이오. 민생 안정부 총감께서는 신민들의 생활 여건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지 못하시오? 그리고, 전쟁자금 유출로 경제가 위태하다 하셨는데, 현재 우리 경제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 않소? 내가 상공부장관이 아니라서 자세한건 모르겠소만, 점령지에서의 수입이 전쟁으로 소비한 자금을 흑자로 바꿔주고 있다 들었소이다."
카이모 공작의 차분한 대꾸에 일부르크 후작은 적당한 반론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 네이룬에 대한 적대행위를 한다면, 트레비아 공화국등 더 많은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게 될 위험도 있지 않습니까?"
일부르크 후작의 이 말에 카이모 공작의 감정이 약간 자극받았다.
"위험이라니요?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소이다."
가시 섞인 공작의 어투에 움찔하면서도 주의를 끈 것을 성과로 여기며 일부르크 후작이 반론을 펼쳤다.
"지금껏 우리가 전쟁을 치룬 나라들은 모두 국력이 우리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었기에 신속하게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부가적인 이익도 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트레비아는 그 지역에서는 강한 국력으로 북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과의 전쟁은 우리 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득 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태로 전개된다면 전쟁을 하느니 신영토에 대한 치안회복 및 지배권 확충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제국의 공작이자 국무총리는 격분했다.
"트레비아가 무엇이오!? 공화주의에 미친 장사꾼들이 세운 너절한 나라 따위가, 어찌 감히 우리 대 아르카디아 제국에 위험이 될 수 있단 말이오?! 그들과 전쟁을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소! 아예 이 기회에 공화주의를 대륙에서 몰아내고 대제국의 안위를 굳건히 하고 영광을 드높여야 하지 않겠소?! 경의 발언은 황실과 제국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이오!"
국무총리의 격설에 의회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씩씩 거리는 국무총리의 폭발적인 애국심과 그에 대한 동조에 일부르크 후작은 잠깐 넋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넋을 잃은 것은 어이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후작이 반론을 제기하려 할 때, 의회 중앙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황제의 손이 올라갔다.
“그만하면 됐소.”
제국 황제의 준엄한 목소리에 의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각 의견들을 경들 모두가 잘 이해했으리라 믿소. 그러면, 결정은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소.”
대 네이룬 제제 결의안이 아르카디아 제국 하원과 상원 양쪽에서 통과된 것은, 1426년 6월 8일의 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모두들 대기업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거야!!"
의원 전용 휴게실에 도착한 일부르크 후작이 벽을 치며 중얼거렸다. 마법도 견디게 설계된 황궁의 단단한 벽 때문에 주먹이 매우 아팠지만 일부르크 후작은 내색하지 않았다.
"SMT사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거요. 그건 일부분일 뿐이지"
후작의 중얼거림에 답한 것은 백발의 군인, 제 1 집단군 사령관 샤이니아 폰 테킬로스 원수였다. 그는 거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으며 수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운 백전노장으로, 언제나 ‘제국의 진정한 충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장군임과 동시에 현재 군 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거의 유일한 무인이었다.
“SMT사의 록케필라르 회장과 카이모 공작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후작의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에 노원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소. 싸우면 늘 이기고, 무역은 흑자를 주체 못할 정도이고, 회사들의 주가는 올라가며 주변국들은 모두 우리나라를 두려워하지. 이렇게 강력하게 팽창하여 두려울 게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그 힘을 표출할 필요가 있는 거요."
"테킬로스 원수님조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후작의 반문에 테킬로스 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이걸로 아르카디아 제국은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앞으로 나아갈 거요.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 패배를 한다면 다시 반성을 하며 발전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승리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수도 있소. 제국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질 테니까."
후작은 테킬로스 원수의 말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말했다.
"크기가 지나치게 커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제국이 오만해진단 말입니까?"
"내부에서 스러지게 될 수도 있지. 어쨌든 지나치게 큰 제국은 쉽게 멸망한다는 것은 이미 천년전 사라진 이드네이즈 제국이 보여주고 있소."
이드네이즈 제국은 고대에 가장 막강한 제국이었다. 그들의 영토는 세계 6개 대륙을 모두 덮을 만큼 넓은 것이었고, 기술 또한 최대로 발달하여 그들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해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큰 제국이 한순간에 멸망해버린것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분분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드네이즈 제국의 황제가 엘프족의 미녀를 탐내다가 엘프들의 분노를 샀다고 한다. 그리하여 바다건너 어디엔가 있다는 엘프들의 제국 엘프리안에서 거대한 함대가 몰려와 무시무시한 엘프군대를 상륙시켰고, 그들의 막강한 힘 앞에 인간들의 제국은 초토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제국의 마지막 황제, 즉 엘프의 미를 탐한 무지한 자의 이름이 카무폴레지우스였는데, 그의 이름을 따 이드네이즈 제국이 멸망한 해를 원년으로 삼아 AK력 (After Kamufolezius)이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륙력’이라고 부르지만.
"전 이드네이즈가 엘프들에 의해 멸망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후작의 말에 원수는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 전설은 아마 제국의 지나친 강대함이 빚어낸 자멸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거요. 그 '미녀 엘프'를 집마석에 대입해보면 어떻소? 그럼 이해가 되오?"
원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상황은 일부르크 후작님께서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소. 제국은 거대기업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의지로 전쟁을 하오."
일부르크 후작은 혼란스럽다는 듯이 테킬로스 원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트레비아와의 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말씀해오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평생 군인으로 살아오셨기에 결국 전쟁에 찬성하시게 된 겁니까?"
"내 60년 가까이를 군에서 보냈지만 전쟁을 찬성한 적은 없소. 다만 이번에는 전쟁이 불가피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오. 우리는 동쪽으로의 진출이 끝났으니 서방의 강한 국가들과 자웅을 겨루어 제국의 힘을 과시하려 들겠지. 그것은 필연.. 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소. 그리고… 나는황자저하가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으면 하오."
"황태자 저하가 아니라, 황자저하 말씀이십니까?"
노원수는 후작의 물음에 대답 없이 눈을 감았다.
카를은 제국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아르코소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아침이야, 카즈."
"그래, 좋은 아침이지."
카를은3층짜리 장교관사의 옥상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7시쯤 되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이미 해는 높이 떠 있었고, 해협 건너편의 항구와 기업체들에서는 분주한 경제활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햇살이 하얀 화강암과 대리석의 거대 인공물들 위로 내리쬐어 그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의미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제국을 상징하는 듯 했다.
"왜 황궁에 들어가지 않았어? 황제폐하를 알현해야 하는 것 아냐?"
카를은 쿠로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도시는 참 아름다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제국의 수도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
쿠로는 카를의 시선을 따라가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카를은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지만 쿠로는 그에 대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늘 아름다움 그 뒤엔 비참함이 있기 마련이지."
카를은 잠시 쉬었다 말을 이었다.
"형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귀족들도 보기 싫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괜히 봉변을 당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
"네 편이 되고자 하는 귀족들도 있을 텐데?"
"머저리들이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파벌 따위 형성하여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려는 놈들뿐이지."
"하지만 그런 자들을 이용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카를의 말에 쿠로는 짐짓 엄하게 말했다.
"알고 있어.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군. 그 일, 일부르크 후작에게 부탁해두었어?"
"물론."
"…그가 과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카를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쿠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우리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대귀족이야."
"하지만 지독하게 멍청하지. 카이모 그 늙은 너구리에 비하면 상대도 안될걸."
카를의 평가는 일부르크 후작에 대한 평가로는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멍청해보여도, 정말 무능했다면 장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민들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몇 안 되는 귀족들 중의 하나였다. 다만, 우직하다고나 할까,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 그의 문제였다.
"자, 그럼 가볼까? 샤이니아 원수께서 우리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신것,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8시까지는 그랑데뷰 호텔에 가야해."
쿠로의 말에 카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지. 우리의 샤이닝 엉클을 만나러 가야지."
카를이 앳된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국의 수도 아르코소 시는 그 역동적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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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올렸던걸 많이 수정했습니다.
그래봤자 문장들 미묘하게 투를 바꾸거나
문장 몇개 새로 삽입한게 다 지만.
아르카디아 제국은 미국을 비판하고자 설정한 나라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주의란 다 비슷비슷한 형태로 발현되지요..
아르카디아 제국은 본디 다일로스 대륙의 아르케디나에서 건국되었다. 그러다가 앤티텀 대륙으로 세력을 넓혀가 엔도어 대하 유역에까지 다다르자, 제국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수도를 앤티텀 대륙과 다일로스 대륙의 사이로 옮겨, 지금의 생 아르코소가 되었다.
앤티텀 대륙과 다일로스 대륙은 폭 2km의 작은 해협으로 끊겨있었는데, 그 사이는 해협 정 중앙에 있는 턴해이먼 섬과 그 위에 건설된 도시로 연결되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제국의 수도 생 아르코소는 거대했다.
도시 중심과 도시의 외곽은 해협으로 인해 동과 서로 나뉘어졌고, 중심부가 그 사이를 2개의 거대한 다리와 함께 연결하고 있었다. 양 대륙 끄트머리에 걸쳐진 도시의 외곽은 항구와 경제활동지역으로, 은행과 증권, 무역과 산업에 걸쳐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들의 커다란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시 양쪽에 건설된 항구들은 언제나 대형 상선과 수송선들로 북적대었고, 그 선박들 위로는 두 대륙을 잇는 거대한 다리 ‘화이트 게이트’가 인공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보여주었다.
화강암으로 뒤덮인 턴해이먼 섬이 도시의 중심을 받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제국의 황궁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제국 아르카디아의 위엄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높게 건설된 제국황궁은 가장 높은 층이 67층에 달했다. 대리석으로 건물을 감싼 황궁은 창문마다 집마석을 이용한 조명기구를 설치해 밤이면 아름다운 청색 빛을 내뿜었다. 황궁 주변으로는 황궁 못지않게 장대한 제국의회, 제국군통수본부, 제국대양함대사령부, 그리고 제립 아르케디 군사학교의 건물들이 그 위용을 과시했다.
이것이, 강대제국 아르카디아의 힘과 부를 상징하는 도시 아르코소의 모습이었다.
제국 국무총리 카이모 공작은 자랑스런 제국의 수도를 바라볼 때마다 일종의 자신감을 느꼈다. 밤이 되어 어둠이 내려도 도시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가 보기에 아르코소의 장대하며 아름다운 야경은 제국의 미래가 영원히 밝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제국은 더욱, 세계의 끝까지 팽창하고, 만인의 우러름을 받아야 했다. 상원의회장 건물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지금도 그의 눈 앞에는 제도의 야경이 선했다.
"…고작 광산하나 때문에 전쟁까지 일으킨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크라레안 제국과 전쟁을 벌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면 신민들의 부담만 가증될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황제폐하께서도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을 보이시덥니다. 게다가 지금 크건 작건 전쟁을 거의 1년에 두 번씩은 치르는 추세인데, 우리 경제가 그 모든 군비를 감당할 만큼 넉넉하지 못합니다. 전쟁을 치르면 치룰수록 국토야 확대 되겠지만, 전선 또한 길어집니다. 전선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국가경제와 사회기반에 걸쳐지는 부담은 더욱 가증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점령지 수익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단상에서 발언 하고 있는 것은 일부르크 후작이었다. 그는 제국 민생안정부 총감으로, 귀족원 내 반전파의 기수였으며, 또한 44세 밖에 되지 않아 가장 젊은 각료에 속했다. 지금 일부르크 후작은 대귀족 출신의 다른 상원의원들을 설득시키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대귀족들의 시선에는 싸늘함이 담겨있었다. 결국은 그 싸늘함에 지원받은 국무총리 카이모 공작이 계속되는 후작의 불평을 막기 위해 발언을 요청했다.
"이미 하원에서는 통과된 사안이 아니오, 일부르크 후작?"
자리에서 일어난 국무총리는 휘어잡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카이모 공작의 다부진 몸과 반듯한 얼굴, 그리고 단정한 몸가짐은 그에게 위엄을 더해주었다.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는 말을 이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하원의 의견이 존중되는걸 잘 알고 있지 않소?"
이 대목에서 몇몇 대귀족들은 입가에 조소를 담았다.
"경의 발언에는 큰 문제가 한가지 있소. ‘고작’ 광산 하나라니, 현재 우리 제국은 총 집마석 사용량의 60%를 국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소. 그것이 우리 신민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데, 네이룬의 광산지대는 그 60%를 50% 이하로 낮출 수 있는 막대한 가치가 있단 말이오. 오히려 그곳을 손에 넣어야 신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소. 새로 발견되는 집마석 산지가 극히 드물어, 집마석 가격은 자꾸만 오르고 있소. 여기에서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은, 바로 신민들일 것이오. 민생 안정부 총감께서는 신민들의 생활 여건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지 못하시오? 그리고, 전쟁자금 유출로 경제가 위태하다 하셨는데, 현재 우리 경제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 않소? 내가 상공부장관이 아니라서 자세한건 모르겠소만, 점령지에서의 수입이 전쟁으로 소비한 자금을 흑자로 바꿔주고 있다 들었소이다."
카이모 공작의 차분한 대꾸에 일부르크 후작은 적당한 반론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 네이룬에 대한 적대행위를 한다면, 트레비아 공화국등 더 많은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게 될 위험도 있지 않습니까?"
일부르크 후작의 이 말에 카이모 공작의 감정이 약간 자극받았다.
"위험이라니요?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소이다."
가시 섞인 공작의 어투에 움찔하면서도 주의를 끈 것을 성과로 여기며 일부르크 후작이 반론을 펼쳤다.
"지금껏 우리가 전쟁을 치룬 나라들은 모두 국력이 우리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었기에 신속하게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부가적인 이익도 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트레비아는 그 지역에서는 강한 국력으로 북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과의 전쟁은 우리 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득 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태로 전개된다면 전쟁을 하느니 신영토에 대한 치안회복 및 지배권 확충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제국의 공작이자 국무총리는 격분했다.
"트레비아가 무엇이오!? 공화주의에 미친 장사꾼들이 세운 너절한 나라 따위가, 어찌 감히 우리 대 아르카디아 제국에 위험이 될 수 있단 말이오?! 그들과 전쟁을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소! 아예 이 기회에 공화주의를 대륙에서 몰아내고 대제국의 안위를 굳건히 하고 영광을 드높여야 하지 않겠소?! 경의 발언은 황실과 제국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이오!"
국무총리의 격설에 의회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씩씩 거리는 국무총리의 폭발적인 애국심과 그에 대한 동조에 일부르크 후작은 잠깐 넋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넋을 잃은 것은 어이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후작이 반론을 제기하려 할 때, 의회 중앙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황제의 손이 올라갔다.
“그만하면 됐소.”
제국 황제의 준엄한 목소리에 의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각 의견들을 경들 모두가 잘 이해했으리라 믿소. 그러면, 결정은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소.”
대 네이룬 제제 결의안이 아르카디아 제국 하원과 상원 양쪽에서 통과된 것은, 1426년 6월 8일의 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모두들 대기업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거야!!"
의원 전용 휴게실에 도착한 일부르크 후작이 벽을 치며 중얼거렸다. 마법도 견디게 설계된 황궁의 단단한 벽 때문에 주먹이 매우 아팠지만 일부르크 후작은 내색하지 않았다.
"SMT사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거요. 그건 일부분일 뿐이지"
후작의 중얼거림에 답한 것은 백발의 군인, 제 1 집단군 사령관 샤이니아 폰 테킬로스 원수였다. 그는 거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으며 수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운 백전노장으로, 언제나 ‘제국의 진정한 충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장군임과 동시에 현재 군 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거의 유일한 무인이었다.
“SMT사의 록케필라르 회장과 카이모 공작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후작의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에 노원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소. 싸우면 늘 이기고, 무역은 흑자를 주체 못할 정도이고, 회사들의 주가는 올라가며 주변국들은 모두 우리나라를 두려워하지. 이렇게 강력하게 팽창하여 두려울 게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그 힘을 표출할 필요가 있는 거요."
"테킬로스 원수님조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후작의 반문에 테킬로스 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이걸로 아르카디아 제국은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앞으로 나아갈 거요.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 패배를 한다면 다시 반성을 하며 발전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승리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수도 있소. 제국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질 테니까."
후작은 테킬로스 원수의 말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말했다.
"크기가 지나치게 커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제국이 오만해진단 말입니까?"
"내부에서 스러지게 될 수도 있지. 어쨌든 지나치게 큰 제국은 쉽게 멸망한다는 것은 이미 천년전 사라진 이드네이즈 제국이 보여주고 있소."
이드네이즈 제국은 고대에 가장 막강한 제국이었다. 그들의 영토는 세계 6개 대륙을 모두 덮을 만큼 넓은 것이었고, 기술 또한 최대로 발달하여 그들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해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큰 제국이 한순간에 멸망해버린것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분분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드네이즈 제국의 황제가 엘프족의 미녀를 탐내다가 엘프들의 분노를 샀다고 한다. 그리하여 바다건너 어디엔가 있다는 엘프들의 제국 엘프리안에서 거대한 함대가 몰려와 무시무시한 엘프군대를 상륙시켰고, 그들의 막강한 힘 앞에 인간들의 제국은 초토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제국의 마지막 황제, 즉 엘프의 미를 탐한 무지한 자의 이름이 카무폴레지우스였는데, 그의 이름을 따 이드네이즈 제국이 멸망한 해를 원년으로 삼아 AK력 (After Kamufolezius)이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륙력’이라고 부르지만.
"전 이드네이즈가 엘프들에 의해 멸망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후작의 말에 원수는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 전설은 아마 제국의 지나친 강대함이 빚어낸 자멸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거요. 그 '미녀 엘프'를 집마석에 대입해보면 어떻소? 그럼 이해가 되오?"
원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상황은 일부르크 후작님께서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소. 제국은 거대기업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의지로 전쟁을 하오."
일부르크 후작은 혼란스럽다는 듯이 테킬로스 원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트레비아와의 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말씀해오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평생 군인으로 살아오셨기에 결국 전쟁에 찬성하시게 된 겁니까?"
"내 60년 가까이를 군에서 보냈지만 전쟁을 찬성한 적은 없소. 다만 이번에는 전쟁이 불가피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오. 우리는 동쪽으로의 진출이 끝났으니 서방의 강한 국가들과 자웅을 겨루어 제국의 힘을 과시하려 들겠지. 그것은 필연.. 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소. 그리고… 나는황자저하가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으면 하오."
"황태자 저하가 아니라, 황자저하 말씀이십니까?"
노원수는 후작의 물음에 대답 없이 눈을 감았다.
카를은 제국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아르코소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아침이야, 카즈."
"그래, 좋은 아침이지."
카를은3층짜리 장교관사의 옥상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7시쯤 되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이미 해는 높이 떠 있었고, 해협 건너편의 항구와 기업체들에서는 분주한 경제활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햇살이 하얀 화강암과 대리석의 거대 인공물들 위로 내리쬐어 그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의미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제국을 상징하는 듯 했다.
"왜 황궁에 들어가지 않았어? 황제폐하를 알현해야 하는 것 아냐?"
카를은 쿠로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도시는 참 아름다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제국의 수도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
쿠로는 카를의 시선을 따라가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카를은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지만 쿠로는 그에 대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늘 아름다움 그 뒤엔 비참함이 있기 마련이지."
카를은 잠시 쉬었다 말을 이었다.
"형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귀족들도 보기 싫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괜히 봉변을 당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
"네 편이 되고자 하는 귀족들도 있을 텐데?"
"머저리들이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파벌 따위 형성하여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려는 놈들뿐이지."
"하지만 그런 자들을 이용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카를의 말에 쿠로는 짐짓 엄하게 말했다.
"알고 있어.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군. 그 일, 일부르크 후작에게 부탁해두었어?"
"물론."
"…그가 과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카를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쿠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우리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대귀족이야."
"하지만 지독하게 멍청하지. 카이모 그 늙은 너구리에 비하면 상대도 안될걸."
카를의 평가는 일부르크 후작에 대한 평가로는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멍청해보여도, 정말 무능했다면 장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민들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몇 안 되는 귀족들 중의 하나였다. 다만, 우직하다고나 할까,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 그의 문제였다.
"자, 그럼 가볼까? 샤이니아 원수께서 우리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신것,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8시까지는 그랑데뷰 호텔에 가야해."
쿠로의 말에 카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지. 우리의 샤이닝 엉클을 만나러 가야지."
카를이 앳된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국의 수도 아르코소 시는 그 역동적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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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올렸던걸 많이 수정했습니다.
그래봤자 문장들 미묘하게 투를 바꾸거나
문장 몇개 새로 삽입한게 다 지만.
아르카디아 제국은 미국을 비판하고자 설정한 나라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주의란 다 비슷비슷한 형태로 발현되지요..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