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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데버의 항해. 기술 발달은 곧 머나먼 탐험으로 이어집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고생은 당사자가 겪는 거고, 그걸 지켜보는 과정은 꽤 재미있죠.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여행기가 떠돌고, 그걸 알면서도 짐을 꾸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좋은 소재를 창작가들이 외면할 리 없고, 그래서 집 떠나 타국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흔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걸 주력으로 삼는 업종이 검마 판타지입니다. 검마 판타지의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집을 떠나는 소년입니다. 깡촌에서 자란 소년은 무슨 사정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는데, 그 와중에 다양한 종족과 인물을 만납니다. 그리고 진귀한 보물을 얻고,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우고, 음침한 던전도 싸돌아다니죠. 그러던 중 마침내 한층 성숙해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피엔딩을 찍습니다. 영웅 서사시에서 자주 써먹던 형식인데, 초기 검마 판타지부터 지금의 블록버스터까지 마르고 닳도록 인기를 끕니다. 일련의 동료들과 머나먼 나라로 떠나서 이국의 풍물을 접하고 괴물과 싸우죠. 이건 로망이니까요.


판타지의 친근한 이웃인 SF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SF의 여러 하위 장르 역시 정체 모를 땅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죠. 다만, 판타지가 모험이라면, SF는 탐험이나 탐사에 가깝습니다. 모험과 탐험은 위험한 여정이라는 점에서 닮았지만, 후자는 보다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탐험은 조사를 위해 떠나는 거고, 그래서 다소 학구적인 경향을 띱니다. 학자를 포함하거나 학자가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모험이라고 해서 항상 무식한 칼잡이들만 동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탐험보다 학술적인 면모가 덜하죠. 그렇다고 SF 탐험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는 땅에 발을 딛는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이상한 지형이 앞을 가로막거나, 희한한 생물체가 쫓아오거나, 압도적인 기후에 꼼짝 못 하거나, 적대적인 거주민을 만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탐험대는 군인들을 다수 동원하거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각종 장비를 챙깁니다. 절반은 조사, 절반은 전투로 이루어진 탐험이죠.


SF가 탄생한 배경이 19세기 유럽임을 감안하면, 탐험이 두드러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19세기는 유럽 탐험대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등을 한창 떠돌며 식민지를 키웠을 때니까요. 게다가 철도와 선박, 항공기 등이 발달하고 총포 또한 우수해져서 낯선 환경을 감당할 수 있었죠. 16세기가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이었다면, 19세기는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하는 시기인 셈입니다. 물론 탐험을 빙자한 난리 때문에 현지인들이 받은 고통을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이런 탐험은 이후 1940년대까지 (서구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이어지다가 2차 대전을 넘어가면서부터 슬슬 빛이 바랩니다. 하도 많이 떠돌아다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발 딛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았고 탐험의 열망은 식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마침내 대기권을 넘어 우주까지 진출했고, 달까지 밟고 돌아왔죠. 잠수함으로 저 깊은 해저까지 둘러봤고요. 오늘날의 탐험이라고 하면, 우주로 향하는 무인 탐사선이나 심해 잠수정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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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과학은 비경 탐험물에 공헌했습니다. (그런데 저런 공룡이 어디 있나?)]


인류 역사가 저런 과정을 거친 만큼, SF 탄생도 탐험과 함께 했습니다. 초기의 대중적인 SF 하위 장르 중 하나가 비경 탐험물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잃어버린 세계(로스트 월드) 장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솔직히 잃어버렸다는 표현보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과거로 사라졌던 문명을 탐험대가 다시 찾았다는 뜻이니까요. 트로이를 발굴한다거나, 왕가의 계곡을 발견했다거나, 마야 유적을 조사하는 이미지가 대략 현실적인 로스트 월드 개념입니다. 여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면, 아틀란티스나 엘도라도, 공룡의 계곡이 튀어나오죠. 라이더 해거드가 쓴 <솔로몬 왕의 보물>, <동굴의 여왕>은 그런 상상력으로 태어난 소설이고요. 문제는 저렇게 희한한 곳을 찾기 위해서는 그저 근성만 가지고 모자란다는 점입니다. 뛰어난 학식과 첨단 장비를 뒷받침해야 사라진 세계에 도달할 수 있어요. 잠수함도 없이 아틀란티스에 갈 수 있을까요. 고생물학 지식도 없이 공룡을 연구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SF 탐험대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대동하고, 기발한 운송 수단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상상력이 논리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로스트 월드가 SF의 하위 장르로 자리잡았죠.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와 <지구 속 여행>, 코난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 등은 로스트 월드가 왜 SF 쪽에 들어오는지 잘 보여줍니다. 공룡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가설이나 지구공동설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과정, 해저를 여행하는 만능 잠수함 등은 과학적 상상력이 없었다면 등장할 수 없겠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이런 백인 탐험대 이야기는 너무 진부해졌지만, 로스트 월드는 미약하게나마 생명줄을 이어갑니다. 때로는 공포물로 바뀌어 <광기의 산맥> 같은 소설로 나오는가 하면, 때로는 테크노스릴러로 바뀌어 <콩고> 같은 소설로 등장하죠. 영화나 비디오 게임 쪽에서는 시각 효과 발달 때문에 가끔 대작 로스트 월드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SF 탐험의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이제 험상궂은 백인 남정네들이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유적을 찾는 이야기는 시시해졌어요. 여전히 이런 비경 탐험도 인기를 끌지만, 그보다 훨씬 극한 환경에 도전하는 작품들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극지, 심해, 우주야말로 20세기에 걸맞은 탐험 지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탐험의 왕도는 뭐니뭐니해도 우주입니다. 극지도 혹독한 곳이고, 심해는 우주보다 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극지와 심해는 그래도 지구 영역이잖아요. 하지만 우주는 지구 밖으로 벗어나야 하니까 고향을 떠나는 텀험의 낭만을 상징하기 좋습니다. 인류의 오랜 요람을 떠난다는 인상이 짙어요. 더불어 냉전 시기, 몇 차례에 걸쳐 추진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이르렀고요. SF 황금기의 그랜드 마스터들도 모두 우주를 주요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알프레드 반 보그트, 필립 딕, 어슐라 르 귄 등등. 가까운 달이나 화성 탐사부터 시작해 식민지 건설, 테라포밍, 외행성 탐험, 항성간 항해, 심우주 탐사까지 우주를 무대로 한 수작들이 등장했어요. 그 중에는 온갖 개척 행성을 우후죽순 늘어놓고, 거진 스페이스 오페라에 이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사실 초기 SF 평단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우주로 향하는 동경을 어느 정도 포함했다고 봅니다. 이후 명작 스페이스 오페라가 나오면서 우주 탐사의 낭만을 한층 끌어올렸고요. 데이빗 브린의 소설들이 그런 사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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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인데버 탐사 항해. 20세기 SF 탐험의 왕도는 장대한 우주입니다.]


똑같이 우주를 다뤘어도 작가마다 그 면모는 조금씩 다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여러 개척 행성을 등장시켜서 초기 탐사의 어려움과 은하 제국의 흥망까지 모두 다뤘죠. 그 중에서 소위 '우주 3부작'은 말 그대로 우주 탐험물이죠. 아서 클라크는 거대한 외계 지성과 접촉하면서 인류가 느끼는 충격과 당혹감을 그렸고요. 로버트 하인라인은 청소년 소설을 다수 썼는데, 거의 우주판 보이 스카우트라고 할만 합니다. 지성과 청운을 품은 10대 소년이 우주로 나가서 모험한다는, 탐험보다 모험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은하를 넘어서>는 가장 정석적인 사례 같습니다. 알프레드 보그트는 기이한 괴물이나 낯선 생명체와의 조우를 묘사했고, 필립 딕은 우주를 놓고 정체성 문제를 머리 아프게 떠들었죠. <죽음의 미로>를 보면, 이건 뭐…. 어슐라 르 귄은 헤인 시리즈라고 해서 각 행성의 문명 차별을 논했습니다. SF 문화인류학처럼 보이는데, 탐험이 제국주의로 이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시각도 분명히 필요하죠. 그리고 소설과 만화 쪽에서 유행하던 스페이스 오페라가 극장 영화와 TV 시리즈로 대박을 치면서 우주 활극도 SF 시장을 먹여 살리는 영양분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고요. 스페이스 오페라는 전쟁물이 많지만, 탐험을 강조하는 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인류의 우주 탐사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는 겨우 무인 탐사선만 외행성으로 보낸 수준이니까요. 우주 건조물이라고 해야 기껏 우주 정거장이 전부이고, 달이나 화성의 유인 탐사 기지는 생각도 못하는 실정이죠. 우주선을 보내서 광물을 채굴한다거나, 우주 여행을 시켜준다거나 하는 소리가 계속 나오지만,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소식입니다. 스페이스 X는 조만간 화성에 기지를 세우겠다고 장담했지만,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스텔라니, 인터갤러틱이니 해도 아직 말뿐이죠. 수많은 창작물을 거치면서 우주 여행 방법은 몇 가지로 고정되었습니다. 초광속 도약, 웜홀 돌파, 타키온 드라이브, 엔시블, 세대 우주선, 냉동 수면, 광속에 근접한 항해, 태양풍 항해 등등이 주로 쓰입니다. 과연 정말 미래의 우주 항해가 저런 식으로 이루어질지 어떨지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덕분에 SF 탐험계의 왕좌에서 우주가 내려올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합니다. 진지하고 딱딱한 하드 SF가 되었든, 신나게 때려부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나마 다른 행성이나 소행성에서 사람 대신 열심히 일하는 로봇이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할까요.


한 가지 희한한 건 그렇게나 수많은 우주 탐사 소설들이 쏟아졌는데, 의외로 장르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는 '우주 탐사물'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에 대응할만한 용어가 없어요. 영어권에서는 우주 탐사물을 가리켜 딱히 특징적인 용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페이스 트래블, 스페이스 익스플로러, 콜로니제이션, 테라포밍, 스페이스 스테이션 등의 용어는 넘쳐나지만, 이런 것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 타임 트래블 같은 장르 명칭이 아닙니다. 왜 장르 명칭을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가령, '스페이스 익스페디션 장르'라고 하면 어감도 그럴 듯하고 무슨 내용인지 잘 드러낸다고 봅니다만. 서구 팬덤은 이런 명칭을 안 쓴다는 겁니다. <중력의 임무>는 그냥 하드 SF 소설일 뿐이죠. 이걸 스페이스 트래블이나 스페이스 익스페디션 장르로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설사 그렇게 불러도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고요. 우주탐사는 너무 흔한 소재라서 만들 필요가 없나…. 어쨌든 비경 탐험물부터 우주 탐사물까지, SF는 탐험으로 시작했고, 현재도 탐험을 계속 모색 중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를 머나먼 곳으로 보내줬으니, 탐험은 계속해서 SF 소재로 각광을 받겠죠. 우주에는 끝이 없을 테니, 인기 소재로 언제나 변함이 없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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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인 탐사지만, 그렇기에 우주는 마르지 않는 탐험 무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