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라는 청소년 교양 잡지가 있습니다. 2016년 7월호에서 '스마트폰을 쓰기 위해서 빅뱅이 필요하다'는 기사가 나왔더군요. 도대체 스마트폰과 빅뱅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하는군요. 빅 히스토리는 인간 역사를 비단 인류 한 종에만 그치지 않고 우주까지 확장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런 학문적 관점은 우주의 탄생, 태양계의 생성, 지구 생명체의 진화 등을 거쳐 인류의 문명까지 거시적으로 설명하죠. 그래서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고고학, 인류학 등의 수많은 학문들이 하나로 뒤섞입니다. 굉장히 거대한 종합 과학, 융합 학문, 통섭이라고 할까요.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지식은 없고, 따라서 모든 것을 연결한 상태에서 사고해야 한다는 취지겠죠. 이런 융합 학문의 사례는 SF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예전에도 몇 가지를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스페이스 비글>의 종합 과학이나 <파운데이션>의 심리 역사학이 바로 그런 융합 학문이라고 봅니다. 다만, 융합 학문은 세세한 정보를 조사할 때는 별 도움이 안 될 수 있고, 막상 교육자들이 가르치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유레카> 기자는 빅 히스토리 관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마트폰과 빅뱅의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스마트폰이 작동하려면, 전기가 필요합니다. 당연하겠죠. 충전기는 발전소에서 보내준 220V 전기를 5V로 바꾸고, 이를 스마트폰에 공급합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우리나라는 화력과 원자력에 주로 의존하죠. 화력 발전소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고, 터빈의 자석이 전자기 유도 법칙에 따라 전기를 만듭니다. 수증기를 끓이려면, 석탄이 필요하고요. 자, 여기서 슬슬 빅 히스토리 관점이 들어갑니다. 석탄은 식물의 시체입니다. 고대 식물들이 땅에 묻혔고, 그런 시체들이 석탄으로 변했습니다. 식물들이 자라지 않았다면, 인류도 석탄을 이용하지 못했겠죠. 그런데 이 석탄은 땅 속에 묻힌 태양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식물들이 태양 에너지를 이용했고, 땅 속에서 화학 작용이 일어났고, 인류가 그걸 이용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화석 연료 사용을 가리켜서 '태양 에너지를 땅에서 파내고 다시 하늘로 되돌린다'고 표현하죠. 결국 태양이 없었다면 석탄도 없었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태양을 이야기하죠.


태양은 46억 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수소 원자들이 중력으로 뭉쳤고, 점점 커집니다. 중심부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온도가 높아집니다. 압력 때문에 수소 두 개가 합체하고, 헬륨이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쏟아지고요. 태양을 이루는 수소 원자는 바로 빅뱅의 부산물이라고 합니다. 우주는 138억 년 전에 쾅~ 터지면서 태어났습니다. 우주가 터지면서 온도가 낮아졌고, 양성자와 전자 같은 단단한 물질들이 낮은 온도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해 수소가 등장했고, 우리 은하를 이루는 물질의 74%라고 합니다. 그래서 태양 에너지의 원천은 빅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에너지를 거꾸로 추적하면, 빅뱅에까지 이르죠. 거시적인 융합 학문은 바로 이런 방식을 다룹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물을 겁니다. 도대체 그게 왜 중요한가? 뭐, 굉장히 장엄하고 대단하게 보이지만,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는가? 어차피 빅뱅 따위를 몰라도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에 아무 장애나 불편이 없지 않은가? 애플 같은 기업이 빅뱅 이론을 공부했기 때문에 아이폰을 만든 건 아니지 않는가?


네, 그렇게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확실히 장대하지만, 융합 학문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문 연구가 언제나 반드시 성과나 이익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거시적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자신, 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가 나갈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겁니다. 이왕 과거를 돌아본다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보지 못한 다른 요소를 볼 수 있고, 또 다른 문제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령,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생태계 파괴 문제에 마르크스 이론이 취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르크스 비판론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무조건 물질적인 생산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데모크리투스부터 유스투스 폰 리비히에 이르기까지 연구합니다. 경제학과 생태학이라는 두 학문이 유물론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었죠. 덕분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유물론에 근거해 생태계 보존을 외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설명해도 여전히 융합 학문이 무슨 소용이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과 빅뱅, 경제학과 생태학보다 이상 기후 조사를 사례로 이야기해도 좋겠죠. 마침 7월호 <유레카>의 대문 기사도 지구 온난화 논쟁이로군요. 사실 이상 기후는 더 이상 주류 학계의 논쟁거리가 아니고, 수많은 과학자들은 (인간 활동 때문에 발생한) 지구 온난화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어느 날 아침, 그냥 한 순간에 이런 결론을 뚝딱 내리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야 다들 이상 기후를 익숙하게 생각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죠. 초기 몇몇 과학자들은 온도 상승을 경고했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심지어 과학자들마저 그랬죠. 그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연구했고, 서로 연구 결과를 공유했고, 그걸 검토하고 비교하고 대조했습니다. 머나먼 선사시대의 온도부터 현재의 온도를 추적했고, 남반구부터 북반구까지 수많은 나라들의 온도 차이를 추적했습니다. 따라서 그저 생태학자나 기상학자만의 노고가 아니었죠. 다양한 전문가들의 노고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상 기후가 실존하는 현상이라고 의견을 모았죠.


이런 과정은 꽤나 지난한 한편, 수많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가 쌓이고 쌓이고 쌓였기 때문에 진짜 문제를 찾을 수 있었죠. 비단 기상학자나 기후학자만 지구 온난화 연구에 이바지하지 않았습니다. 지구 물리학 전문가들은 농업, 역학, 삼림학 등의 전문가들과 토의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와도 토론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상 기후는 전지구적인 현상이고, 몇몇 개인이 전지구적인 현상에 도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소수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뭔가 대단한 사실을 발견한다고 생각하고, 실제 그런 일도 자주 벌어지지만, 이상 기후 연구는 아니었습니다. 자연 과학 쪽에서도 동물들을 관찰하는 생태학자부터 별들을 살피는 천문학자까지 모두가 힘을 합해야 했고, 각 대륙이나 국가의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도 힘을 보태야 했죠. 음, 어쩌면 이상 기후 연구는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융합 학문의 얼굴 마담일지 모르겠습니다. 뭐, 낯 간지러운 소리를 하자면, 전세계의 학자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단결했다고 할 수 있겠죠. (엑스컴 삘이 나는군요.)


이상 기후 현상은 원인 조사만 아니라 해결 방법에도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할 겁니다. 그저 과학 기술만으로는 이렇게 거대한 재난에 대처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상 기후의 원인은 화석 연료이고, 그래서 재생 에너지 기술이 제일 좋은 해답이라고 합니다. 재생 에너지 기술이 정말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탄소 배출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고, 그건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다만, 지금부터 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이미 인류는 때를 놓쳤습니다. 이상 기후 때문에 치명적인 가뭄이 닥쳤고, 그런 가뭄 덕분에 내전이나 테러, 폭동, 반란이 더욱 심해졌다는 시각도 있으니까요. 중앙 아시아의 양귀비 재배나 아프리카 각국의 흉작은 괴악한 가뭄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런 참사는 다시 내전이나 정치 부패를 자극합니다. 여기서 난민 발생과 외국인 혐오가 발생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하죠. 이런 사건들을 살피려면, 그저 과학적인 시각이나 정치적인 시각만으로 부족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이 종합적이기 때문에 해결 방법도 종합적이어야 할 겁니다. 재생 에너지만 개발한다고 저런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요.


이렇듯 융합 학문은 경제학부터 천문학까지 가로지르고, 덕분에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아마 미래에는 훨씬 정교하고 체계적인 융학 학문이 등장할지 모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융합 학문에서 SF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우선 규모가 큽니다. 행성 전체의 위기와 그걸 해결하는 과학자들의 연합이라니, SF 소설의 홍보 문구로 써먹기 딱 좋지 않습니까. 게다가 인류가 행성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융합 학문 또한 발달하겠죠. 사실 사이언스 픽션 자체가 하나의 실험적인 융합 학문일 수 있습니다. 기술 발달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F 작가가 그런 영향력을 설정하려면, 비단 자연 과학만 아니라 인문학에도 어느 정도 통달해야 합니다. 자연 과학만 강조해도 얼마든지 훌륭한 SF 소설이 나올 수 있지만, 인문학과 자연 과학을 합치면 더욱 금상첨화겠죠. SF 소설가이자 정치 사상가를 자처한 19세기의 허버트 웰즈부터 하드 SF 설정을 늘어놓으면서 정치 참여를 부르짖는 21세기의 킴 로빈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