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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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글 로고로 니콜라스 스테노가 떴습니다. 이른바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인데, 침식과 지층 형성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로고 모양도 지층과 화석 그림이네요.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웬 창조과학자 이야기가 주르륵 뜨는군요. 아니, 뜬금없이 창조과학자라니? 구글에서 이런 사이비 인물을 띄워줄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이상해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내용을 읽어보니 멀쩡한 과학자를 매도하는 거였습니다. 니콜라스 스테노는 성경의 창세기에 기초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성과가 성경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한다는 겁니다. 또한 평생 독실하게 신앙을 믿었기에 창조설을 인정하는 창조과학자라고 하더군요.
저런 사이트는 크게 두 가지 오류를 저지르는데, 우선 성경에 기초해 연구했다고 해서 성경이 사실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저 과학자의 생애를 자세히 모르지만, 뭐, 스테노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읽고 연구했다고 칩시다. 때로는 엉뚱한 호기심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테노가 지층 형성 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사용한 건 성경 내용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었습니다. 스테노의 연구 어디에도 신의 위대한 힘이라거나 전능함 같은 구절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지질이 어떻게 퇴적하는지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가설을 입증한 다음, 그걸 토대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하긴 신의 힘 운운했다면 학계에서 인정도 못 받았겠지만요. 저 엉뚱한 논리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이야기를 읽고 번개를 연구해서 제우스를 실존하는 신으로 입증할 수도 있겠군요.
또한 신앙과 과학적 성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앙이 있으면서 과학을 인정하는 종교인도 있는 것처럼 종교를 받아들이는 과학자 또한 있습니다. 니콜라스 스테노는 17세기 서구인인데, 이 당시 기독교를 믿는 건 그 시대의 당연한 풍습이었습니다. 스테노는 그런 풍습에 따라 신을 믿었던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이미 말했듯이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방법론이 옳았기 때문이죠. 기독교와 싸웠던 것으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사실은 교회에 친숙했습니다. 그 시대의 유럽인이라면 그게 당연했으니까요. 현대 한국인 과학자는 추석에 성묘 가지만, 조상 귀신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거랑 하등 다를 바 없어요. 물론 시대가 시대니만큼 스테노나 갈릴레이의 믿음은 보다 성경에 충실했겠죠. 옛 위인을 되새길 때는 항상 시대상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글 로고를 클릭하자마자 창조과학자 운운하는 소리를 들으니, 사이비 과학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17세기 유럽인이 단지 기독교인이었다는 걸 가지고 과학적 사실을 거짓말로 매도하다니요. 훌륭한 위인을 앞두고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17세기 활동한 스테노는 과학과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기 이전 시대의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본래 수도사로 살다가 죽었고 갈릴레이가 청년 시절까지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기를 희망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대학 교수가 되었듯이, 유능한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신부나 수도사로 살아가는 게 당연했던 시기이기도 했죠. 스테노는 지금은 지질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그는 해부학자였습니다. 해부학을 연구하다가 상어를 연구하게 되었고, 상어를 연구하다가 지질학에까지 손을 대어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것이죠.
스테노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과학과 종교는 거의 완전히 분리됩니다. 뛰어난 과학자 중에 신부님이나 목사 출신이 거의 사라지게 되죠. 스테노 이후에 신부로 활동하면서도 과학자로도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요한 멘델은 오스트리아(지금은 체코의 영토)에서 주교로 있었고, 빅뱅 이론을 처음으로 제창한 MIT 출신의 천체물리학자 조르주 르메르트는 벨기에에서 신부로 있었죠. 그 밖에도 피에르 샤르뎅은 신부이면서도 진화론을 믿으며 북경 원인을 발굴하는 등 고인류 고고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운나쁘게도 과학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회자되는 필트다운 유골 조작 사건에 본의 아니게 연류되는 바람에... 두고두고 기독교 진영에서 논란과 비난의 대상으로 씹어대고 있기도 합니다.
음 창조과학이 유사과학으로 현제 분류되고 있지만, 기독교가 현제 사이비 종교라고 분류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 종교가 그런것도 있지만 조금 제목이 도발적이군요.
에, 제목이 좀 도발적이었나요. 굳이 사이비 종교라고 한 이유는 일반적인 기독교와 구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올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종교인과 저런 문제 집단은 엄연히 다르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일반 물리학자와 영구동력 만들었다는 사기꾼이 똑같은 과학자가 아니듯 말입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성경 창세기를 설교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창세기가 과학이고 사실이라며 주장하는 건 큰 문제가 있죠. 자기들 이익 때문에 거짓을 유포하는 행위인데, 사실 사이비란 단어 말고 딱히 지칭할 다른 단어도 없는 듯하고요. (사기꾼이라고 해도 적절하긴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할머님께서 독실한 신자이십니다. 그래서 저도 본의는 아니지만 예배에 여러 번 참석하고, 명절 때는 항상 예배를 봅니다. 할머님 같은 분과 저런 사기꾼이 동일한 종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저로서도 기분 나쁜 이야기고요. 기독교 전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었으니 이해 바랍니다.
사이비라면 사이비고, 다른 종파라면 다른 종파죠.
어떤 종파에서는 다른 종파를 사이비라고 공격하기도 하니까요. 대표적인 예가 같은 크리스트교에 속하면서도 다른 종파에서도 사이비라고 손가락질 받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 등을 꼽을 수 있을겁니다. 애초에 구교와 신교가 나뉘게 된 이유도 서로 자기네가 진짜고 상대가 사이비라고 손가락질 하던데서 시작된걸요.
창조과학회라고 자칭하는 종파는 지나친 축자영감설에 의존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현실세계에 적용하려고 시도하면서도 그걸 종교라고 하지 않고 과학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거죠. 고전신학이 과학과 결별함으로써 신학이 과학에 밀렸으니, 그걸 뒤집음으로써 과학과 고전신학 양쪽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정치적 시도로 보자면, 창조과학회는 사이비 종교라고 부르는 건 다른 종파들이 결정 할 일이겠지만, 확실하게 사이비 과학임은 말 할 수 있습니다.
뭐. 다윈도, 멘델도 신학을 배운 사람이었지요. 심지어 멘델은 신부였고...
하지만, 두 사람 다 과학적 방법론을 선택하여 가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증거와 표본을 수집하거나 실험을 거쳐서 결론을 입증하려 했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앞뒤가 안 맞는 용어지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멘델의 실험은 지금의 기준에서 보아도 완벽한 수준의 실험으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
성경에서 영감을 얻어 실험을 했다고 실험했다고 하면,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얻어 트로이를 발견한 슐리만이 떠오르는군요. 일리아스는 문학 작품이지만, 과거에는 신화와 역사, 그리고 문학 등이 서로 나뉘어지지 않았으니...
이런 인생 덕분에 특히 개신교 쪽에서 과학을 비난할 때 꼭 포함되는데요. 그러나 실제로 스테노의 발견은 지구는 신이 몇천년전에 창조한 그대로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성경을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그 함의를 충분히 이해했고요. 해부에도 능통했다고 하지요. 기독교를 따른다면 굳이 신의 완벽한 피조물을 해부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리고 신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개신교에서 그를 언급하는 것도 아이러니죠. 아무튼 과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스테노는 과학적 업적을 쌓기 보다 종교의 길로 갑니다. 과학계 입장에선 정말 아쉬운 일이죠.
스테노에 대한 읽기 쉬운 번역서로 <산에 오른 조개껍질>이란 책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