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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 광고에서 손목에 PDA 감고 다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PDA가 말 그대로 종이처럼 얇고 휘어지기 때문에 손목에 둘둘 말아가지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죠. 요즘도 이 광고 나오나 모르겠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보 처리 기기나 소형 컴퓨터, 통신장치를 손목에 장착한다는 건 SF에서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기술력이 딸려서 스마트폰을 어떻게든 얇게 만들어보려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SF에서 손으로 전화기 들고 다니는 건 원시적인 방법이고, 몸에 부착한 채 필요할 때마다 적시에 사용하죠. 작품 설정에 따라 손으로 휴대하는 장치가 더 많으나 그보다는 손목 장착 기기가 더 인상적이기 마련입니다.

 

이쪽 기기의 대표작으로는 <폴아웃>에 나오는 핍보이가 있습니다. 핍보이는 게임 내에서 그야말로 만능 물품으로 나오는데,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못하는 게 없습니다. 지도 찾기나 메모리 기록은 물론이요,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검색해주고, 방사능 수치도 검사합니다. 심지어 사용자가 부상을 입으면 배낭에 든 치료제를 이용해 자동으로 치료도 해줍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컴퓨터나 PDA가 아니라 사용자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핍보이가 이렇게 오버 테크놀러지스러운 물건인 건 게임 메뉴를 전부 핍보이 인터페이스로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대단한 장비임에 분명해요.

 

녹색 진공관이 구식이라며 핍보이를 까는 사람도 있던데, 그리 만만한 장비가 아닙니다. 양덕후들은 핍보이를 실제로 만들기도 하지만, 아이폰을 억지로 손목시계에 휘감아놓는 게 대부분이에요. 지금 기술로 못 만들지는 않겠지만, 대량 생산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손목 컴퓨터의 또 다른 이용자로는 프레데터가 있습니다. 프레데터의 손목 컴퓨터는 딱히 공식 명칭은 없어요. 그러나 이름만 없다 뿐이지, 프레데터 사냥 시스템의 모든 걸 좌우하는 장비입니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우주선과 교신할 수도 있고, 아무리 방대한 건물의 지리도 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며, 의료 키트와 연계해 부상당한 부위를 치료할 수 있고, 은신과 시야 모드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폭탄 타이머 기능도 있습니다!! 이거 잘못 건드리면 프레데터 주변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됩니다. 프레데터는 비단 손목 컴퓨터 말고 장비란 장비는 죄다 몸에 부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칼은 손목에, 플라즈마 포대는 어깨에, 탐지기는 마스크에 붙어있죠. 따라서 양손이 자유로워 정글에서 활동하기 편합니다. 하지만 작중에서 실제로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 건 손목 컴퓨터이며, 다른 장비는 손으로 조작하는 모습이 안 나왔죠.

 

정보 처리는 아니지만, 통신이나 간단한 작업 등을 손목 기기로 해결하는 때도 있습니다. 영화 <어비스>를 보면, 잠수복 손목에 소형 자판이 달렸습니다. 이 잠수복은 헬멧 안에 액체를 채워 액체 호흡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착용자가 육성 신호를 보낼 수 없으므로 전달 사항이 있을 때 자판을 눌러서 통신하는 거죠. 한 손으로만 자판을 조작하니 육성 신호만큼 즉각적이고 빠르지는 않습니다. 허나 <어비스> 자체가 좀 은은한 분위기의 영화라서 느릿느릿한 문자 신호가 오히려 어울렸지요. 외계인의 우주선 모습을 문자 신호로 묘사하는 장면이 일품. 현실에서도 액체 호흡을 하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꽤 유용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상황이 별로 없는지 실제 우주복이나 잠수복에 손목 자판이 달린 건 못 본 듯도 하네요.

 

<전격 Z 작전>에 나오는 시계는 마이클과 키트를 이어주는 중요한 소품입니다. 이것도 그 중요성에 비해 정확한 명칭은 없는 듯. 허나 <전격 Z 작전>을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기 손목시계에 대고 키트를 외쳐봤을 걸요. 이 시계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우선 마이클과 키트의 통신입니다. 마이클은 이 시계가 있으므로 키트를 떠나서도 항상 연락할 수 있죠. 또 하나의 기능은 스캔인데, 이 시계는 키트의 영상 장치와 연계됩니다. 그래서 분석이 필요할 때 마이클이 시계를 가져다 대면, 키트가 그걸 촬영해서 분석해 결과를 알려주죠. 덕분에 키트가 진입할 수 없는 건물 안이나 좁은 장소도 마이클이 잠입해 분석할 수 있습니다. 아마 손목시계를 잃어버려 고생하는 에피소드도 있던가 싶은데, 기억은 잘 안 나네요.

 

<컴퓨터 형사 가제트>에 나오는 소녀 페니도 만능시계 소유자입니다. 자세한 기억은 안 납니다만, 기본적으로 영상 통신이 가능하고 그 밖의 몇몇 유틸기도 있을 겁니다. 당시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마이클 나이트의 손목시계보다 더 유용했다고 생각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페니는 시계 외에도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 이거 말 그대로 노트북입니다. 뭔 소리인고 하니, 겉으로 보기에 분명 책이고 책처럼 펼칠 수 있는데, 안에 컴퓨터가 있습니다. 이걸로 중요한 정보를 다 처리하니까 시계에 딱히 정보 처리 기능이 있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항상 책을 펼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시계도 몇 번 썼을 거예요. 으음, 이거 확실하진 않네요. 여하튼 영상 통신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술이고, 여기에 몇몇 기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버 테크놀러지.

 

몇몇 초인물에서는 시계가 변신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과학닌자대 갓차맨>이 그런 사례인데, 독수리 5형제는 모두 시계차고 다니죠. 출동 시간이 되면 시계의 불빛이 점등하고, 이걸 조작해 과학 닌자로 변신합니다. 이 시계 역시 통신기능이 있어 각 대원들이나 기지 인물과도 교신이 가능합니다. 콘돌 2호는 적 기지에 침투했다가 시계가 깨져서 본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으니 그 중요성을 알만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의 기기와 달리 손목시계 자체를 들여다 보며 뭔가 조작하는 장면은 안 나오는 것 같네요. 심지어 변신할 때도 울트라맨이 변신 장치를 치켜드는 것마냥 손을 번쩍 들어올릴 뿐입니다. 통신은 하되 영상 기능은 쌍방향도 아니고, 정보를 입력하거나 분석하지도 않는 것 같고요. 애초에 과학닌자대가 그런 업무를 할 위인들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손목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하는 건 마찬가지.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손목에 저런 장비를 착용하는 이유는 즉각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일 겁니다. 단말기를 장착할 신체부위는 많습니다만, 손목만큼 원하는 때 즉시 볼 수 있는 부위는 없어요. 손목시계가 보급된 원인도 군인들이 작전 시간을 즉시 확인하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치열한 전투 중이나 군장을 주렁주렁 짊어진 상황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럴 때 손목에 시계가 있으면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금방 볼 수 있으며, 행동이 거추장스럽지도 않아요. 손목 단말기는 이러한 손목시계의 휴대성을 확장해 정보처리까지 담당시킨 물건입니다. 시계판을 들여다보고 버튼을 조작하는 행위가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버튼 누르는 거랑 유사한 행동이니까요.

 

현재 개인용 단말기나 전화기는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지만, 아직까지 손목형 단말기나 스마트폰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중시계가 손목시계로 바뀐 것처럼 휴대용 스마트폰이 손목형 스마트폰으로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미래가 오면, 군인들이 손목을 들여다보며 통신하거나 정보를 찾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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