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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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존재 증명에
대한 이야기 3번째이자 마지막 글 입니다. ^^ 이번에는
제임스와 키에르케고르 입니다. 이 두 철학자 모두 둘
다 이성의 능력을 부정하고, 믿으려는 의지와 주관적인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이 전에 이야기한 데카르트나 흄 모두 이성의 능력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 근본적으로는 이성의 능력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데카르트야 두 번 말할 것도 없고, 흄도 경험을 통해서 인과관계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임스와
키에르케고르는 둘 다 신앙이라는 것과 이성이라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즉, 이성에 기초한 신 존재 증명으로는 신앙(믿음)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좀 더 풀어 쓰자면, 이러저러하니까 신이 존재한다, 혹은 존재 안 한다 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것만으로는 신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못한다는 믿음은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에 석아찬님이
쓰신 글에서처럼 생물학자 앞에 신을 가져다 주더라도 생물학자는 그 것을 새로운 생명체의 일종으로 생각할 뿐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건,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제임스가
이야기 한 것은 실용주의 진리설 입니다. 설명하자면 어느 명제에 대한 믿음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나타냈을 때 그
명제는 진실이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나타내면 그 명제는 거짓이라는 겁니다. 제임스가 미국의 심리학자 겸 철학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국스럽고 자본주의적인 설명이죠. ^^;
예를 들어 생각해보죠. '오이는 맛있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제가 오이를 먹어봤더니, 향도 상큼하고, 맛도 시원합니다. 맛있네요. 때문에
저한테는 '오이는 맛있다' 라는 명제는 진실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명제에도 적용시킬 수 있죠. '1+1 = 2' 라는
것에 대해서도 저 명제를 믿고, 시험을 쳤더니 100점 나왔더라. 그러므로 '1+1 = 2' 라는 명제는 진실이다. 라거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360도 이다.' 라는 명제를 믿고 문제를 풀었더니 틀렸다. 그러므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360도' 라는 명제는 거짓이다. 라는 식으로
뭐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즉 어느 명제를 믿는 경우와 안 믿는 경우 이득과 손실을 따져봐서
이득인 게 참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
진리설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진리라는 게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맨 처음 이야기한 '오이는 맛있다' 라는 명제를 생각해보죠. 사람에 따라서 오이를 먹으면 알르레기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이 향만 맡아도 구역질이 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이는
맛있다' 라는 명제는 거짓입니다. 이러한 실용주의
진리설을 신 존재에 적용시키면 다음 표와 같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믿거나 안 믿는 경우의 결과를
확인해 보면. 신이 존재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경우 사후 영원한 보상 (종교적
안심)
?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믿을 경우 사후 영원한 저주
(?)
? 뭐 제임스가
미국인 인이기 때문에 보상과 저주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했습니다만, 다른 종교에서도 기본적으로 기복신앙은
있으니 표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뭐 다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실용주의 진리설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진리설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경우에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종교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라는 게 들어가서
결과적으로 '신이 존재한다 라는 것을 안 믿는 게 더 이득이다' 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한다는 건 거짓인 것이죠. 키에르케고르의
경우에는 이성적인 능력을 제임스보다 더 무시합니다. 제임스라면 그나마 어느 것이 이득이다 라고 판단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습니다만, 키에르케고르는 아예 이성적인 것 위에 종교적 믿음이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 예로 든 경우가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모습입니다.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르지요. 여기서는 어떠한 이성적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보다 종교적 믿음이 모든 행동의 근본이 됩니다. 보통사람들이 보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는 미친 사람의 행동도 아브라함에 있어서는 종교적 이유가 있었기에 정당화 된다는 겁니다. 즉, 이성적 판단보다 위에 종교적 믿음이 있고, 이것 저것 따져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이야기 #2. 흄 : http://www.joysf.com/4258263
모르죠. 야훼나 알라를 믿었더니 다른 신이 나와서. "그런 엉뚱한 종교를 믿다니 너는 영원히 지옥" 이럴지도...^^
야훼와 알라는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건 맞지만, 전혀 다른 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역시 다른 종교라면서 "영원히 지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야훼는 야훼인데 현세에서 믿은 종교와 관련 없다고 할 수도 있고...
결국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죽은 이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종교나 신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실용 주의 진리설이라는 말은 복잡하게 설명하긴 해도 결국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별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겠고요.^^
키에르케고르의 이야기는 신앙이라는 것이 가진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역시 그리스도교만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모든 종교에서 그런 면이 있지요. 이성보다 신앙을 우위에 둔다는 것.
올려주신 글 다 잘 읽었어요. 유명한 철학자들도 다 다른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생각 했다는게 재밌었어요.
.... 질문의 답변을 솔직히 말씀 드려도 되나요? 음... 철학은 머리 아파요. 철학으로 신의 존재를 생각 했었다는 철학자들은 다 대머리 일꺼라고 생각했어요. 결론은 모두다 마음에 안들어요.
하나님이나 알라, 야훼라고요?
알라야 워낙에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 치고, 하나님과 야훼는 다른 존재인가요?
(트웬티메이지님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혹 그게 개신교의 일반적인 관점이라면 그 종파는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만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분파로군요. 그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관점이 그거라면 적어도 초중학교 역사 시간에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는 뜻일테고.
특히 구제불능에 가까운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빼다박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도 아직 그 꼴인 걸 보니 한국 개신교가 저 모양인 가 약간은 이해가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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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종교인이 아니지만 바로 이런말이 마음 아프다구요, 무르쉬드님 (쪽지 생략 할께요)
석아찬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저는 이해 못하겠지요. 왜냐햐면 저는 석아찬님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석아찬님도 개신교가 아니라면 개신교를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은 바로 석아찬님 같아요 - 개신교는 구제불능이다 - 이말만 봐도 저는 석아찬님이 낡아빠진 근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충분히 오해할수 있어요.
혹시 샘플링 에러 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으셨나요? 모든 개신교들을 다 경험해 보신게 아니잖아요.안좋은 일을 겪으셨다니 저도 마음이 안좋아요. 그렇지만 제가 얘기하는 이유는 '미움'이라는 것도 대상이 없는것이기 때문이에요. 마음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여기서 제가 (주제넘게) 걱정하는건 석아찬님이에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대로 미움을 가지면 본인이 제일 괴로워 진다구요. 네가티브한 감정을 가지는 순간 몸에서 얼마나 많은 독소가 나오는지 아세요? 이런 상태가 계속 되면 면역력도 떨어지고 암에 걸리기도 쉽데요. 그냥 잊어버리시고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근본주의가 싫어요. 어떤 원리던지 사람을 위하는게 제일 먼저에요.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도 딱히 반론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뭐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개신교가 아닌 사람들이 그 분파를 싫어하는 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경향이라는 거죠. 굳이 찾기에는 좀 번거롭지만 제 말을 믿으신다면, 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개신교 신자가 대폭 줄고 그 사람들이 천주교, 불교 등의 다른 종교로 편입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사실 3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고성방가 전도인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곤 곧 잊는 정도였죠.)
말인즉슨, 제가 근본주의를 싫어하는 건 그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계속 받고 있어서거든요. 그러니까, 묘오님 관점에 상관없이 그들은 실제로 실체를 가지고 명백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허상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자기 온존을 위해 투쟁하는 거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아무튼 이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투쟁의 장이 아닌 곳에서 투쟁을 운운하니 이 또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석아찬님을 곤란하게 하려 올리는 글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문제를 일으키는 "개신교" 신도들은 석아찬님께 어떤 생각의 결말을 가지고 올수있는 원인을 제공 했을뿐 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분석해서 일어난 '미움' 이란 감정은 석아찬님 마음에서 발생되는 것이라 정확히는 "개신교"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통제할수 없는) '문제'라 인식하고 있는 석아찬님 생각과 연관된 석아찬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응 입니다. 그래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리고 석아찬님에게 받아들여지는 그들의 못마땅한 행동을 항상 '미움'이란 허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지요. 석아찬님은 그들을 '동정' 하거나 '무관심' 하거나 할수있는 다른 선택도 가지고 계시니까요. 마지막으로 군중의 다수가 "개신교"를 싫어한다는 통계는 저에게 "개신교"를 미워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제가 겪어봐지 못해서 경험부족 인가 봅니다.
혹시 JoySF 분들중 좋은일 하시면서 개신교를 믿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지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본인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미워해서 제일 괴로운건 '나' 이고 그 다음은 지켜보는 주위분들입니다. 진정한 사족의 의미로 말씀드리자면, 남 미워하는 사람치고 똑똑한 사람 못봤습니다. 석아찬님은 예외 입니다.
전 묘오님 개인의논리나 주장이야 그걸 그대로 존중하고 사실관계에 어긋나거나 (전에 말한)감탄사와 같은 위상이 아니라면 별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견지에서 지하철 가판대에 진열된 좋은 생각 류의 훈계야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애초 묘오님 자신이 제게 그런 걸 해도 된다고 믿을 정도의 주제라고 파악하고 있나보구나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 건은 좀 다르네요. 이전까지 묘오님 글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수준이었다면 이번은 불쾌감마저 생기는군요.
묘오님은 도대체 뭘 근거로 제가 그들을 미워한다고 단정짓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실제로 그들을 미워한다고 치죠. 만약 그렇다 해도 묘오님의 도를 넘은 확신은 운빨로 맞은 것이지 저란 사람을 단정할 정도로 근거를 가진 결론은 아닐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건 묘오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묘오님이 다른 분들께 하는 행동에서, 저 사람 괜히 건드렸다가는 스트레스만 받는다는 걸 배웠거든요.
다만 묘오님의 근거없는 확신이 이번 처음이 아닌 마당에, 가서 안 오신다니 그 전에 묘오님이 함부로 내리는 단정과 확신이 적어도 한 사람에겐 굉장한 불쾌감을 일으켰음은 확실히 말해줘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부산에서 철야를 하고 온 후유증에 더해 아직도 온 몸이 화끈거리는 통증이 가시지 않아 글이 다소 공격적으로 작성되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반대입니다. 한국어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었는데 개신교도들이 '유일신'이니까 하나님이라고 하자고 지어낸 표현이죠. 한국어에서의 초월자는 하느님(하늘님에서 자음 탈락)이고 한국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에서는 하느님이라는 표기법을 씁니다. (하나님의 경우도 하나라서 하나님이라고 할 거라면 한님이라고 하는 게 표기법에 맞습니다.)
개신교에서의 하나님은 여호와를 의미하고 여호와는 야훼를 영어방식으로 표기하는 와중에 약간의 오자가 덧붙여진 이름으로, 표기만 다르고 같은 존재를 지칭합니다.
참고로 야훼는 이윤기 선생님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자성어'로, 네 글자로 된 거룩한 이름이란 뜻입니다. 볼드모트와는 반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기록하는 자체가 불경하다고 여겨졌거든요.
위의 실용주의 진리설에는 매우 큰 모순이 있지요. 바로 "신은 존재하는데 내가 믿던 신이 아닌 경우"라는 조건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거의 모든 이가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신의 존재/비존재'만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 각지에는 무진장 많은 종교가 있고 무진장 많은 신이 있지요.
가령, 신은 존재했는데, 그가 야훼가 아니라 알라라거나(사실, 알라나 야훼나 같은 신이라 하지만...) 아니면 제우스나 오딘, 라나 아후라마즈다라면?
인구 비율로 볼때 그리스도교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모두 합쳐도- 절반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신이 있다고 해도 야훼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은 건 아니지요. (설사 야훼라고 해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에서 믿는 야훼라는 법은 없습니다. 가령 유대교의 야훼라면 어떨까요? 그럼 유태인이 아닌 사람은 설사 신을 믿었다고 해도 구원 받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습니다.)
여담)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세 이익을 중시하는 편이라 그런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실용주의 진리설도 그다지 효과를 보이지 못할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