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절티드[Exalted]라는 RPG룰북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화이트 울프사의 wod이후로 많이 팔린 룰북입니다. 당연히 지원 서플리먼트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그나 카르타의 일러스트로 유명한 김형태씨에게 표지 디자인을 맡겨서 서밴트 앤 소서리라는 서플을 내기도 했습니다.(여담이지만, 그 문제의 일러스트 표지때문에 현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김형태씨 특유의 문어 포즈와 팬션으로 "선정적"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 대체 어떤 룰이길래 그렇게 장광설을 늘어 놓냐 라고 하시겠군요. 우선, 익절티드를 이야기 하기 전에 화이트 울프사와 그들의 베스트 셀러 wod에 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 봅시다. 화이트 울프는 wod라는 걸출한 스토리 텔링 RPG를 만든 회사입니다. 월드 오브 다크니스의 약자인 wod(wow아님!)는 그 쿨하고 세기말적인 설정덕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입니다.

wod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각각 뱀파이어, 워울프, 체인질링, 메이지등을 플레이 할 수 있으며, 정말 플레이어 자신이 그 캐릭터가 되어서 연기에 가까운 몰입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게임입니다.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 같은 경우에는 라이브 액션이라는 개념까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컨벤션에도 뱀파이어 라이브 극단이라는 팀이 매년 이 플레이를 선보여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눈치 빠르시다면 감을 잡으셨을테지만, 이 룰북은 설정이 주지 게임 시스템이 주는 아닙니다. D&D의 수 많은 규칙책과는 달리 wod와 같은 책자에서는 규칙 조금에 각종 설정이 숨막히게 빽빽히 쓰여져 있습니다. D&D가 보드게임적인 요소로 RPG를 이끈다면, wod와 같은 스토리 텔링 RPG는 설정으로 인한 캐릭터의 당위적인 플레이를 유도합니다.

익절티드 이야기 하다가 상당히 많이 샌것 같군요. 익절티드의 게임 시스템도 wod와 별반 다를것이 없습니다. 핵심적인 규칙은 거의 동일하고, 각종 설정북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식입니다. 다만, 익절티드의 미덕아닌 미덕이라면, wod와 같은 어두움이 아닌 경쾌하고 밝은 색채를 낸다는 점입니다. wod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구석이 있으며, 음지에서 사는 존재들입니다. 때문에, 언제나 침울하고 고뇌에 가득찬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물론, 핵엔 슬래쉬도 심심치 않게 벌이는 팀들도 있습니다.)

익절티드는 고대의 신화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하며,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입니다. 일러스트는 일본 식 그림체에 가까우며, 설정은 wod에 비해서 한결 가볍습니다. 부제가 "슬픔의 시대"이기 때문에 약간의 시니컬한 면도 있습니다만, wod에 비해서는 전체적으로 열혈적인 맛이 난다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플레이어들은 고대의 신들의 축복을 받은 익절티드라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모탈들에 비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에센스라는 것이 흐르고 있고, 익절티드들의 자신들의 능력인 참[charm]을 발휘하려면, 이 에센스를 몸안에 흡수해서 운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 설정 어디서 많이 들어 보신것 같지 않습니까? 설마, 무협지? 맞습니다! 에센스를 "기"로 참을 "~권법"으로 치환하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집니다. 또한 에센스는 회복이 잘 안됩니다.(기의 회복이 느린것처럼.)

참이라는 능력은 무술 영화에 나오는 권법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물론, 영어 문화권에서 붙인 이름이 우리내 정서에는 좀 투박해 보일런지 모르지만, 거기 담긴 내용은 분명 쿵푸 무비 그것입니다. 익절티드 코어북에 플레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로 제시한 것들을 보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이 됩니다.

"와호장룡, 무사 쥬베이들을 참고하세요."

이 게임의 재미는 그러한 액션 영화 주인공처럼 멋지게 적을 쓰러트리는데 있습니다. 비록 우리 몸이 둔하고 약해 빠재서 실재로 재현해 볼 수는 없지만, 게임상에서의 캐릭터들은 멋지게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 넘으면서 무영각을 날리는 모습을 볼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얼마나 멋지게 묘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묘사도에 따라서 스토리 텔러(D&D의 마스터라고 보시면 됩니다.)는 최고 두 개까지 다이스를 보너스로 줍니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D&D식의 페널티가 몇이라서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피트를 박아야 할지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곧바로 참을 쓰면 됩니다.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이미 수직 벽을 타고 적의 뒤를 잡아 흡성 마공을 구사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게임입니다. 먼치킨이라고요? 하하. 글세요. 하지만, 적들도 그런 정도로 나온다면 이게 정말 먼치킨이라고 불릴 일은 없겠지요?^^

익절티드의 밝은 이러한 면에서 기인합니다. 비록 그들이 각성하자마자 악마로 몰려서 죽을뻔하고, 도망다닌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모험은 위험보다는 스릴에 가까운 여정들입니다.

이 게임은 룰도 상당히 간단합니다. 다이스 풀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10면체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 7이상이 나온 다이스이 갯수를 성공수라고 부르며 그걸로 판정을 합니다. 더군다나 스토리 텔링 게임이기 때문에 골치아픈 규칙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D&D에 질렸다거나, 뭔가 새로운 TRPG를 하시고자 하는분, 처음 TRPG를 하는데 도저히 규칙 외우기가 겁난다는 분들에게 익절티드는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선택일런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