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입니다. 그야말로 북방의 바람이 부는 것 같은데, 이럴 때 떠오르는 시가 있으니 바로 <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육사 시인의 <절정>을 참 좋아합니다. 우선 의열단과 저항 작가로서의 이육사를 존경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만큼 시의 아우리가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흔히 일제 시대의 저항 시인으로 윤동주와 이육사를 꼽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항거하는 쪽이 이육사라고 하죠. 두 사람의 대표 시를 비교하면, 윤동주는 자기 반성을 많이 합니다. 반면, 이육사는 처절하고 비참한 상황을 전제하고, 거기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런 생존의 발버둥이 제일 두드러진 작품은 <절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예 제목부터 어디든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절정'입니다. 그야말로 벼랑에 몰리고 몰린 끝에 더 이상 후퇴하거나 물러서거나 도망치거나 나갈 곳이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재앙이 지나갈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겁니다. 아무리 추위가 매서워도, 북방의 채찍이 날카로워도, 발 디딘 곳이 서릿발 같아도 끝내 버텨야 합니다. 생존주의자에게 딱 어울리는 시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스케일도 웅장하잖아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떠오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극단과 절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문명이 망했습니다. 일부 생존자들은 정처없이 떠돕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살 길은 막막합니다. 피난처에 고립이 되었든, 괴물 떼를 피해 도망치든, 방사능 오염에 시달리든 간에 생존자들은 절정의 비참함에 처했습니다. 물론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서 무조건 암울한 상황만 연출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때로는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정말 처절하고 극악하게 살아가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생존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끝내 현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질병이 휩쓴 끝에 유일하게 한 사람이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 방사능 낙진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나머지 모두 죽는다는 <해변에서>, 도저히 희망을 찾을 길이 없는 <로드> 등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주인공을 항상 극단과 절정으로 밀어붙입니다. 생존자들은 더 이상 발 디딜 곳도 없이 쫓겨납니다.

멸망한 세상에서 생존자들이 느끼는 절망과 위기는 그야말로 '절정' 아니겠습니까. 일제 시기 이육사 시인이 처한 현실도 그렇습니다. 이육사가 보기에는 일제 치하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경술국치는 전면 핵전쟁과 좀비 바이러스와 거대 괴수에 필적하는 재앙입니다. 조국이 무너졌으니까 한반도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일제의 압박에 깔려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혹은 디스토피아 설정의 생존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니까 이육사의 심정은 생존자들의 심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근본적으로 비슷했을 겁니다. 달리 살아남지 못한다고, 더 이상 돌파구가 없다고 느꼈을 겁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생존자들이 절망하는 것처럼 일제 치하에서 절망하고 돌변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끝장나고 인간답게 살아갈 방법이 막혔으므로 사실상 대재앙이 들이닥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육사 시인은 그런 심정으로 시를 썼을 테죠.

그러니 <절정>을 아포칼립스와 비교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겁니다. 비록 이 시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고, 미래와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상상하지 않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싯구가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육사는 단순히 상황만 암울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재앙이 혹독해도, 칼날 같은 위기에 서있어도 끝까지 버티겠다고 노래하죠.

이 시는 초인과 창조를 논하는 <광야>보다 스케일은 비교적 작지만, 끝장난 상황을 인내하겠다는 의지는 오히려 강합니다. <광야>는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만, 다소 온화하고 평화롭죠. 압제나 압박 같은 감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인공 역시 평화로운 가운데 초인을 맞이하니까요. 하지만 <절정>은 위에서 줄곧 설명한 것처럼 세상이 다 망한 지경입니다. 그래도 결코 죽지 않고 막판까지 발버둥을 치겠다니, 그야말로 최후의 1인에게 어울리는 자세입니다. 이육사 시인은 저항 작가라는 점도 대단하지만, 처절함과 의지를 그리는 솜씨 또한 멋집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