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미 쪽의 진보 지도자들이 화제인가 봅니다. 얼마 전에는 버니 샌더스 이야기가 여기저기 퍼지더니, 트뤼도 총리의 내각 구성도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떨치더군요. 트뤼도 내각은 어찌 보면 파격이라고 할만큼 혁신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비 균형은 물론이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대변할 수 있도록 골고루 머릿수를 채웠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시대 정서에 맞도록 부서도 새로 개편했고, 그 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차별과 범죄 문제 역시 수면 위에 대폭 떠오를 전망입니다.


물론 겉보기만 그럴 듯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인재는 능력 위주로 뽑아야지, 소수자를 정책 결정 자리에 앉힌다고 세상이 잘 돌아갈 리 없으니까요. 당연히 트뤼도 내각이 얼만큼 잘 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겁니다. 다만, 사람들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캐나다 내각이 다양성으로 출발하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 정부는 다양성을 쓰레기처럼 내다버리고, 역사관마저 획일화하려고 안달하니까요. 캐나다 내각이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라면, 한국 정부는 획일화를 꾀하는 전체주의라고 해야 하나. 이건 무슨 지구 연방과 아라크니드의 대결도 아니고, 원.


트뤼도 총리는 저런 혁신적인 내각 이외에 사소한 이유로도 주목을 받는데…. 장르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양반은 스스로 사이언스 픽션 팬임을 자처한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장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야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몇 개 찾아봤는데,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 스티븐 킹 등을 언급하더군요. 1980년대부터 이쪽 계열의 독자가 되었다고 하니, 언급한 작가들 이외에 많은 책을 읽었겠죠. 사실 캐나다에는 마가렛 앳우드 같은 걸출한 세계구급 작가도 존재합니다. 게다가 마가렛 앳우드는 <시녀 이야기> 등으로 장르 문학만 아니라 주류 문학에도 널리 알려졌으니까요. 세계 문학 선집 같은 목록에도 들어갈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앳우드 소설이 제법 나왔죠.


아, 그리고 보니 마가렛 앳우드가 보수 정당을 슬쩍 까는 사설도 본 적 있습니다. 예전 선거철에 보수 정당이 트뤼도 후보의 별 거 아닌 단점을 물고 늘어졌나 봅니다. 앳우드는 그런 트집이나 잡지 말고 중요한 문제를 논하라고 보수 정당을 우회적으로 깠죠. 앳우드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런 사설 덕분에 트뤼도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죠. (앳우드는 성향상 진보 사상을 지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총리의 성격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 않겠죠. 비교하자면, 안철수가 <뉴로맨서>를 좋아한다고 화제가 되었던 것과 비슷할까요. 하지만 정치적 이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저런 혁신적인 지도자가 스스로 SF 덕후임을 밝히니, 좀 신기하고 반갑고 그렇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선호하는 사람이 무조건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특별해 보이네요. 그런데 이 양반이 뭘 잘못하면, 도리어 SF 소설이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안철수 때문에 <뉴로맨서>가 욕 먹지는 않으니까 상관이 없으려나.)


※ 캐나다에서 저런 지도자와 저런 내각이 출범한 이유는 그만큼 국민들이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니까요. 국민이 멍청하면, 그만큼 악질 지도자가 튀어나오기 마련이겠죠. 뭐, 캐나다도 하루 아침에 저렇게 성숙한 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민주주의 발걸음(15년)을 뗐죠. 언젠가 작금의 획일화 정부를 뿌리 뽑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