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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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빨래하고 티비를 돌려보고 있는데 '조선총잡이'라는 드라마가 하더군요.
뭔가하고 보고 있는데 권총에 볼트액션식 소총이 나오네요. 거기에 딱봐도 5.56밀리 탄피가 나오구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판타지도 아닌데 시대적 과학력을 초월하는 물건들이 나오는게 단순히 '허구'라는 전제로 해결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과연 허구=판타지라는 식이 성립이 되는건지... 허구라는 조건을 너무 과장되게 사용하는 건지...
너무 당당하게(?) 시대적 과학수준을 파괴하는 물건이 나오길래 글을 남겨봅니다.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난감하죠. 왜곡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좀 낫다고 봅니다만. 그래도 창작의 자유라는 건 허용해야 하니까요. 예전에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아래가 그 링크입니다.)
http://www.joysf.com/?_filter=search&mid=board_free&search_target=content&search_keyword=%EC%9D%B4%EB%AA%A8&document_srl=4371981
개인적으로 사극이라는 것 치고 왜곡없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디까지냐'인 거겠죠.
극적 재미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냐 인 것 같은데
말씀하신 5.56mm 탄 쏘는 정도면 퓨전 환타지 역사물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역사물들 보면.. 왠지 일본 시대극에 나오다가 중국 영화에 종종 등장하던
'현실이랑 별반 상관없이 이름과 분위기만 빌려온' 역사물들 보는 것 같네요.
현대 총격물이랑 합쳐서 퓨전.. 환타지는.. 현실적이지 않아서 환타지..역사물은 배경이 역사속 시점이라..
앞으로 사극도 '정통 역사 사극' 이라든가 '가상 역사 평행우주 사극' 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시청자들이 관심이 있는 만큼 허용해야지요.
문제는 시청자들이 그런 데 관심이 없다는 것...불만이 잔뜩 나오면 제작진들도 신경을 쓸 텐데 말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극'이라는 장르를 달고 나온다면 기본적인 고증은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애초에 기록이 불명확하거나 기록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진행해나가는 이야기구조라면 몰라도,
그리고 기록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진행해가는 이야기 구조에서는 어째서 왜곡된 기록이 남았는가를
이야기해나가는 부분이 반드시 들어가는 편이고 그것이 나름의 재미죠.
애초에 사극이든 현대물이든 그 제약된 상상의 판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가가 '재미'의 중요한 요소니까요.
그걸 편의대로 마구 넘나들기 시작하면 재미를 위해 허구성을 더하고 더 나은 창작을 위해 고증을 희생했다기 보다는
남의 소설을 보고 내용이나 설정을 가져오듯 역사라는 이야기를 가져와서 표절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덧,
혈사로야님의 글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덕분에 정작 드라마는 흘려봤습니다.)
사실 무기나 밀리터리와 관련된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이런저런 자료를 보면서도 자신있게는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실제로 고종이 즉위해서 대원군의 섭정이 끝난 시기정도면 서양쪽에서는 볼트액션 소총이 개발되어 사용되던 시기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윈체스터사에서 1860년대 즈음해서 볼트액션 방식의 소총에 탄창시스템을 개발하던 시기였고,
단발 장전식 볼트액션의 경우에는 고종이 태어나기도 전인 1840년대쯤에 외국의 군에서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속약협을 사용하는 탄환이 등장한 시기일텐데...
그런데 조선총잡이의 정확한 시기가 언제죠 @ㅅ@
고종이고 배우연령이 약 40이니 1890년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다른 글을 보다보니 섭정이 끝나고 3년 후쯤이라고... 그러면 대충 1876년 쯤이 되는군요...
(배우나이랑 캐릭터 연령차가 맞아떨어질 필요는 없지만 그 시기면 고종이 24~25세 정도일텐데 ㅇㅅㅇ 버엉...)
고증잘한다고 소문난 영국 사극도 동생하고 같이보면, 해외대학에서 패션관련 학위를 따고 온 동생님은 언제나 복식의 시대고증을 지적하곤 합니다. 저 시대에 저런 식의 카라를 착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재잘재잘.
하지만 보통 그냥 넘어가지요. 전공자나 관심이 없으면 못보고 지나치는거니까요. 총알의 규격이든 복식의 고증이든 사실 허구적으로는 둘 다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드라마의 개연성을 심하게 해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관없는 듯 합니다. 아는 사람들이 씹어뜯는 즐거움 정도죠.
저의 경우에는 작품속의 허구성에 그다지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정의 오류도 어지간하면 그냥그냥 보는 편이죠.
사실 ... 허구성이 지나쳐서 시대에 너무 안맞거나 아예 설정상 오류가 있거나, 설정오류 차원을 넘어서 작품 스토리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던지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작품의 큰 주제를 해치지 않는다면 별 신경쓰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거기에 집중하거든요.
국내 드라마 시청자는 대략 30대 이상 여성이 일반적인 타겟이지 않습니까? 남자 드라마 시청자는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그 중에 총기류를 꿰고 있는 밀덕은 더욱 소수죠. 주요 시청자 계층이 별 신경 안쓰는데 제작진들이 굳이 고증에 맞게 공들여 묘사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사실 고증 철저한 픽션물은 세계적으로 봐도 흔치는 않은 편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저런 경우는 창작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작품에 애정이 없는건지 창작자들 중 고증을 성의없이 하는 경우가 아주 많더군요. 사실과 다르더라도 작품의 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허구적인 설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처음부터 고증을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일단 저지르고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왜 그런 설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배경이라도 설명하는게 옳죠.
런웨이에서 패션쇼 하는 장옥정이 나오는게 우리나라 사극의 현주소죠.
그냥 판타지로 보면 됩니다.
우연히 시대상이 구한말과 비슷할뿐 패러렐월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