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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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에 있었던 번개 모임에서 오고간 얘기를 계속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얘기를 옮깁니다. 블로그에 썼던 포스트를 첫 문단을 빼고 그대로 가져옵니다. 블로그에 비해 여러 좋은 얘기를 접할 수 있으니까요.
제목에 나타난 장비는 각종 공성 무기를 가리킵니다. 투석기, 노포, 사다리 이외. 대포도 들어갈 것 같지만, 칭기즈칸 시기에는 이 무기가 제대로 써먹었는가를 확신할 수 없어 일단 뺍니다. 몽골군이 화약을 잘 써먹었다. 이 얘기를 확실하게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갑니다.
공성 무기는 군대가 빨리 이동하는데 방해가 되겠습니다. 크고 무거운 장비를 이동하는 데 상당히 애먹으니까요. 행군하기 편하도록 공성 장비를 일단 해체시켜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텝니다. 통째로 옮기는 경우에 비해 행군 거리가 길고 덜 고달프지만, 해체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은 군대를 빨리 움직이려 장비 대신 장인을 옮겼을 거다고 추측합니다. 본거지에서 공성 무기를 만들어 전장으로 보내는 대신 현장에서 재료를 조달해서 장인이 조립하는 전술입니다.
재빠르게 행군하고 공격해서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한다. 몽골 제국군이 추구한 전략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전술로 판단합니다. 장인을 몽골 전사처럼 말을 태우면서 가니 걸어가는 경우에 비해 빨리 행군할 수 있습니다. 말을 탈 수 없는 경우에는 수레에 타고 가겠지만요. 또한, 공성 무기를 현지 사정에 맞추어 제작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장비를 더욱 정밀하게 제작하니 공성전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작은 차이로 전투에서 승패가 갈리는 전사(戰史)가 계속 나타나니 아는 이상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장비 뿐만 아니라 장인의 능력도 향상되는 이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원에서 끌려온 한인(漢人) 장인이 호라즘 침공에도 차출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서역 지역에 쓰이는 공성 기술을 익힐 수 있으니까요. 이렇지 않더라도 계속 전장에 투입되어 장비를 만드니까 전에 비해 솜씨가 나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자를 두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쓰니 몽골 제국은 병사 뿐만 아니라 장인을 효율 높게 쥐어짰습니다. 그 덕분에 당대나 후세나 금 복수전과 호라즘 원정 같은 경이로운 승전을 이뤘습니다. 다른 요인과 더불어서요.
이렇게까지만 쓰고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면모를 보니까 여기에서 끝내지 않습니다. 몽골군에게 끌려가서 낯선 땅에서 계속 떠돌며 고생하는 장인이 겪을 애환. 여기에 살짝이나마 초첨을 맞춥니다. 앞문단에서 언급했던 한인 출신 장인이 호라즘 땅에서 겪었을 고난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면서 입니다. 몽골군이 중원에 쳐들어 오지 않았을 때에는 확실하게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텝니다. 그러나 몽골군에게 끌려가면서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땅에서 전전긍긍하는 삶을 겪었을 텝니다. 몽골비사, 원사, 라시드 앗 딘이 집필한 집사(集史)와 다르게 확실하게 기록된 자취를 접하지 못하니 상상만 할 뿐이지만요.
오랑캐로 멸시했던 몽골족에게 받는 설움. 낯선 환경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처지. 언제든지 죽을 줄 모르는데 결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자신처럼 몽골군에게 끌러온 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떠나면서 생기는 고독과 두려움 같은 흔들리는 마음. 이렇게 상상하니 '전쟁은 인간의 내면을 망가트린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칭기즈칸이 이런 찬란한 성공에 눈길이 크게 가지만, 거대한 영웅의 그림자에 가려진 다른 이가 겪는 고난을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함께합니다. 몽골 제국에 희생된 이들이 당한 고통과 애환. 지난 번에 있었던 번개 모임에 상세히 얘기하지 못한 일면을 늦게서야 털어놓습니다.
다른 이야기) 금은 주르첸, 몽골 제국은 예케 몽골 울루스.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번개 모임에서 거란을 키타이로 언급했듯이요. 그러나 주르첸, 키타이, 예케 몽골 울루스 같은 용어를 금방 알아차리지 못할 분들이 상당하니 흔히 쓰이는 표기에 따릅니다.
추가 기술) 여기에서는 블로그에 쓰지 않은 부분을 적습니다. 통치자는 백성과 함께 해야 한다. 앞문단을 짙게 강조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칭기즈칸은 백성과 함께한 훌륭한 통치자입니다. 몽골 제국이 펼친 깃발 아래 모인 초원민의 욕구를 채우려고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는 점을 아니까 여기에는 왜구나 개일본제국처럼 적개심이 들지 않습니다. 칭기즈칸에 놓인 처치였으면 누구라도 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초원민에게는 훌륭한 통치자이나 다른 민족에게는 가혹한 침략자다는 상반될 시간을 내비칩니다. 몽골인의 전력을 보존하려고 복속된 타민족을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선대의 복수. 이 명분으로 금을 침공하면서 얻는 재원을 활용해 호라즘을 침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금이 차지한 북중원에 사는 인구 중 절반이 사라져 버립니다. 호라즘에서는 무르쉬드님이 얘기하셨던 아프가니스탄부터 떠올립니다. 몽골군이 쳐들어 온 뒤에는 생태계가 바꿨다는 내용을 섬뜩하게 되새기면서요. 전쟁에 지는 부담을 효과있게 피민족에게 떠넘겼다. 몽골인을 위해서. 마치 소를 온갖 방법으로 부린 뒤에 더 이상 쓸모없으니까 도축하는 소주인처럼 몽골 제국은 지독할 정도로 피지배민족에게는 가혹했던 일면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몽골 제국을 우리의 이상으로 여기는 점에는 아주 회의가 듭니다. 역사에 나왔던 다른 나라가 더욱 맞으리라. 이 생각을 내비칩니다. 몽골제국처럼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는 나라이기를 바라면서요.
<오. 우리가 여기서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는 그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우리를 잊지 마오.>
- 출처 : 듄 우리말 번역본(출판사 : 황금가지) 제 1권 177쪽
중국인구사를 보면 당시 금의 인구는 5천만 명 선이었는데 금을 완전히 멸살한다고 쳐도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보다는 떨어질 것 같은데요. 절반만 죽여도 2,500만 명인데, 인구가 절반이 날아갔다면 금은 칭기즈 칸 당대에 이미 망했어야죠. 칭기즈 칸이 학살을 한 것은 맞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금을 치면서 마오쩌둥이 저지른 것 이상으로 죽이려면 당시 1억 2천 명 정도였던 서하+금+남송+대리 인구의 절반 이상을 쓸어버렸어야 하니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봅니다. 만일 그랬다면 칭기즈 칸은 세계 인구의 1/5 가까이를 날려버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희대의 학살자겠죠. 칭기즈 칸뿐만 아니라, 그 후대까지 고려한다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장비 대신 장인을 옮겼을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해보자면,
어차피 장인을 옮기더라도 공성병기를 만들기 위한 자원을 현지에서 조달하기가 수월치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사 자원의 수급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조립/해체가 아니라 완전히 나무를 다듬고 철을 녹이게 된다면
이를 위한 도구나 설비 일체를 옮기는 것만으로 기동력은 공성병기를 해체 이동하는 이상으로 느려지지 않았을까 생각되고
당연히 새롭게 만드는 과정은 해체/이동하는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을까요?
제 맹점을 확실하게 찌른 댓글입니다. 여기에 반박할 여지가 저한테는 없습니다. 금과 서하 같은 경우는 현지에서 사로잡은 장인으로 하여금 점령한 영토에 있는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호라즘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지를 막막합니다. 틈만 나면 도망치고 보는 호라즘 술탄를 잡으려면 빨리 행군해야 합니다. 호라즘 술탄이 어느 성에 있다는 첩보를 접하면 목표를 그 성부터 두어야 했을 테죠. 그런데, 제가 낮에 제시했던 방책인 장인만 옮기는 방책은 행군 속도를 늦추는 독소 요소로 판단해 봅니다. 데브(Dev)님이 다신 댓글을 보기 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아니까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오판한 듯해서 씁쓸하지만, 몽골군이 공성 장비를 동반하고도 다른 군대에 비해 빠르게 행군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더욱 신중히 생각합니다.
세상 일은 새옹지마이기도 하고 한 가지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금나라가 개봉을 점령하고 송나라가 강남으로 쫓겨 가 남송을 건국한 후 돈다발을 금나라에 갖다 바치던 시절,
중국 대륙의 북방 지역과 중원을 점령한 금나라는 나름대로 부국강병을 이루며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또 강남으로 내려가 적극적으로 강남 지역을 개발한 남송 역시 전례없는 실리주의와 경제적 부를 이루죠.
다시 말해서 중국 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북방, 중원, 강남이 모두 균형 발전을 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 겁니다.
백성들의 삶의 수준도 유래없이 윤택한 편이었졌죠. 경제력이 올라가고 부국강병을 추구하니 삶의 질이 좋아집니다.
대표적인 증거 중 하나가... 남송 시대의 시와 사가문학이 역사상 유래없는 대중화를 이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시를 짓고 읇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당한 교양 수준을 요구하고, 뛰어난 학자나 문인들의 전유물이었죠.
한문이라는 꽤 어려운 글자를 가지고 있었던 중국은 더욱 그러한 경향이 심했고, 시를 짓는 것은 아무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암묵적인 또는 현실적인 룰이 남송 시대에는 깨집니다 - 평민들도 누구나 시를 짓고 사를 씁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풍요를 이룩한 평민 -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한 평민들이 시문학을 즐기게 되고,
보통 사람이더라도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라면 시를 쓰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죠.
그래서 남송 시대의 시와 사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서민적이고, 실제로 서민들이 시문학을 적극 창작합니다.
물론 남송과 금나라가 멸망하고, 원대를 거쳐 명, 청으로 이어지면서 이런 서민들의 시문학은 사라지고 말죠.
그래서 남송 때 평민 시문학의 번성이라는 게 매우 유니크한 겁니다 - 중국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적이 없거든요.
다만... 평민이 시문학 창작에 적극적이었던 남송 시문학은 중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수준이 낮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쉽게 말해서 하향평준화가 되어버린 것이죠 - 2000 년대 한국의 양판소 창작 결과와 맵핑하여 생각하면 대충 맞습니다.
징기스칸의 등장과 몽골 제국의 건국 과정에서 금나라와 남송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멸망합니다.
금나라와 남송 시절 중국대륙의 북방, 중원, 남방이 고루 발전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지만,
몽골 제국의 건국 전쟁으로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낳으면서 중국 대륙을 폐허로 만듭니다.
중국 역사상 최대 인구가 한꺼번에 죽은 이벤트를 꼽을 때 징기스칸 전쟁, 문화대혁명, 청나라 학살 등을 꼽는데,
징기스칸에 의한 금나라 멸망 - 중국 대륙 북방과 중원의 인구가 절반 이상 희생된 사태 - 이것을 거의 수위로 꼽고,
두 번째가 모택동에 의한 대약진 운동 부작용으로 찾아온 기근과 문화대혁명에 의한 희생자 수를 비슷한 레벨로 봅니다.
이후 후금이 중국 대륙을 사실상 별다른 저항없이 점령한 후, 청나라 건국 과정에서 명나라 잔당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지금으로 치면 중국행정구역의 성 단위 하나씩 돌아가면서 몽땅 다 몰살시키는 일을 거듭하였던 것이 3위에 랭크되죠.
다시 말해서 징기스칸 등장 이전의 금나라와 남송으로 나뉘어 나름 평화를 누리면서 번영하였던 중국 대륙의 삶과,
징기스칸 등장 이후 몽골 제국 건국 전쟁 과정에서 엄청난 사람이 학살당한 중국 대륙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겁니다.
- 거의 천국과 지옥 이상의 차이를 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