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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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미에빌의 신작 소설 번역본이 나올 예정입니다. 11월 20일 출간 예정인 <이중도시>입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언제나 그랬듯 그리고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기괴한 도시가 무대입니다. 의문사한 여성을 수사하기 위해 두 개 도시의 형사들이 음산한 전설과 맞서는 추리물이라고 합니다. 평론가들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프란츠 카프카를 결합한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평가하네요. 이런 호평답게 휴고와 로커스, 영국 SF 문학상과 아서 클라크상에 빛나는 수작입니다. 네뷸러와 존 캠벨 주니어에도 후보로 올라갔으니, 문학적 완성도와 설정의 기발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중도시>는 <쥐의 왕>이나 <퍼디도 정거장>보다 훨씬 우리나라 정서에 잘 어울릴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리 문학이 상당한 인기를 끌잖아요.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로렌스 블록, 요 네스뵈 등이 큰 인기를 끈다고 들었고, 관련 작품들도 많습니다. <이중도시>는 그냥 스릴러 문학이 아니라 SF 위어드 테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레이먼드 챈들러를 거론한 걸 보면, 상당히 하드보일드 수사 스타일을 더했나 봅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하드보일드 형사물이 결합한 사례는 꽤 많으며, <쿼런틴>이나 <얼터드 카본>, <다이디타운> 같은 책들이 이런 쪽이죠. 다만, 미에빌 특유의 역겹고 추레한 묘사가 특유의 느낌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는 또 얼마나 혼란스러운 시궁창을 묘사할지.
문제는…. 문제는 이 소설에 괴물이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겁니다. 여보세요, 미에빌 작가님. 독자들이 괴물 좋아하는 작가라고 누누히 떠들던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괴물 좋아하는 작가의 대표작이 괴물 안 나오는 소설이라니요. 어떤 블로거는 "이 소설이 차이나 미에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한 가지 이유로 괴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전 작품에서 볼만했던 괴물들은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하네요. 뭔가 신비롭고 기이하고 끔찍하지만, 그 주체는 어떤 현상이나 법칙일 뿐 사람들을 습격하는 짐승 따위가 없는가 봅니다. <퍼디도 정거장>에 나왔던 슬레이크 나방이 꽤 흥미로웠던 터라서 이건 좀 아쉽네요.
물론 미에빌이 무조건 괴물 튀어나오는 바스-라그 소설만 쓰라는 법은 없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자세는 좋습니다. 결국 그런 시도가 수작으로 이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이왕이면 형사들이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거 너무 아쉽네요. 사실 미에빌은 괴물 나오는 다른 소설들도 많이 썼지만, 국내에는 <쥐의 왕>, <언런던> 그리고 <퍼디도 정거장>까지 번역본이 3개만 나온 터라…. 내심 <크라켄>이나 바스-라그 연작이 나오기를 바랐는데, <이중도시>가 나와서 시원섭섭(?)합니다. 하긴 제가 번역자라도 작품성 높은 걸 내놓고 싶었겠습니다. 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완성도가 중요하니까요. 괴물이 나와봤자 완성도가 낮으면 소용이 없겠죠. <크라켄>은 실제로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고요.
괴물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미에빌 특유의 사회주의(를 빙자한 공산주의)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퍼디도 정거장>의 그 디스토피아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는데요. 위어드 스팀펑크에 주술사 노동자 파업이나 지하 언론들의 저항이 나오는 게 퍽 신선했습니다.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봐서는 나중에 미에빌의 책도 빨갱이로 몰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빨갱이 트집을 잡기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군상들이 하도 많으니…. 요즘 상황을 보면, 책 한 권 잘못 읽어서 진짜 끌려가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 시대가 되면, 노동자 촛불 집회를 지지했던 사회주의자 미에빌의 책은 금서로 찍힐지도? 뭐, 너무 호들갑 떠는 듯하지만, 사회가 그만큼 미쳐 돌아가는 중이니까요. (투쟁과 혁명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절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새 책이 나왔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주문해야죠. 혹시 아나요. 나중에 바스-라그 연작이나 <크라켄> 같은 게 또 나올지. (그나저나 표지 그림이 위어드 테일치고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