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허억, 허억."

약 오백여명의 건장한 장정들이 전투복 바지만을 입은 채 달리고 있다. 녹색의 군복은 이미 땀에 쩔고 흙먼지에 범벅이 된지 오래. 때는 5월 하순, 트레비아 반도의 남부 지방에는 이미 작렬하는 태양과 무더위가 찾아들고 있었다. 그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는 정오, 군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으며 달리고 있었다.

"너무 느리다. 더 빨리 뛰어라. 한명이라도 제 시간 내로 코스 완주 못하면 제3대대에게는 점심배식을 안하겠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젊은 소령 한 명이 같이 뛰고 있었다. 그의 어조는 격렬한 육체활동 때문인지 크지는 않았으나, 제 3대대 소속 5백 4십 명의 귀에 들리기 충분했다. 그의 앳된 얼굴은 순수해 보였으나 그가 가볍게 말한 내용은 제3대대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하-악! 하-악, 안 돼-! 더 이상 굶을 순 없어! 얘들아, 이번 한번만, 한번만 전력을 다하자!!"
어느 병사가 외쳤다.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고? 그러면 안 되지. 그럼 앞으로는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 같군, 베송 대위. 그러면 참으로 곤란해."

소령의 비꼬는 듯한 어투에 제 3 대대병들은 물론이고 연병장 옆을 지나던 다른 부대원들도 더위를 잊었다.

"밥좀먹자-! A-샌드는 이제 싫어! 밥 다운 밥을 먹을거야!!"

또 다른 병사의 처절한 외침에 대대원들은 구호를 외치며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밥-좀-먹-자! 밥•좀•먹•자! 밥좀먹자! 밥좀먹자!"

멀리서 지켜보던 젊은 군단장은 수첩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요소 : 식욕’

프리디아 주둔지에는 총 6개의 연병장이 있었고, 그중 현재 제3대대가 달리고 있는 연병장은 총 5천 명 정도를 수용, 정렬시킬 수 있는 규모였다. 그에 따라 그 둘레는 0.4 마일에 달했고, 그런 연병장을 지금 제3대대 원들은 28바퀴째 도는 중이었다. 대대원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군단 배치 받기 이전의, 훈련조교들의 구타를 정신없이 받던 신병 시절이 그리울 상황이었다.



“라에비트 소령은 현 직무에 매우 만족하는 듯 하군요.”

수첩을 든 상관 옆에 어느새 나타난 시데르 로크 중령의 말이었다.

“제일 적합한 인물이기도 했지.”

“군단 보병대를 총괄하기에는 너무 젊다고는 생각하신적 없습니까?”

이 말에 체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데르를 쳐다봤다.

“우리는 젊은게 아니고?”

“각하는 스물 여섯. 저는 스물 일곱. 한데 그는 겨우 스물 둘이잖습니까.”

“내가 소령이었을 때도 스물 셋이였어. 그리고 담배 불 끄지 그러나. 냄새가 불유쾌하군. 제품을 바꾸기라도 했나?”

“에, 래버러(Laborer) 표 담배인데, 향이 괜찮죠? 요즘 맛 들이는 중입니다.”

약간 짜증이 깃든 상관의 어투에도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답하는 시데르였다.

“그보다 자네가 여기 있는 이유가 궁금하군. 자네한테는 오늘 제 3기병대의 재훈련을 지휘하도록 지시했을 텐데.”

체스는 시데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채 발걸음을 옮겼다. 시데르는 재빨리 담배 꽁초를 발로 짓밟고 체스의 뒤를 따랐다.

“아, 마침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겁니다, 장군님. 2개 기병대의 말들 상태가 상당히 안좋아서 확인해 보니 편자가 굉장한 불량품이더군요. 그런 상태로는 전투대기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납품 경로를 재확인하고 제대로된 물건을 배급받고 싶습니다만.”

“그런거라면 참모장하고 얘기해야지. 나한테 올게 아니라.”

시데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난처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띄었다.

“그게 말입니다… 한 삼십 분 쯤 전에 군단 참모장 도스카라스 대령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 들어와서 말입니다.”

체스는 걸음을 멈추고 시데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의 연병장에서는 아직도 장병들이 기진맥진한채 구보를 계속하고 있었다.



창설 된지 한 달이 되어가는 공화육군 제 7군단은 현재 보병이 700명씩 9개 대대 6천 3백여명에, 기병이 400명씩 5개 대대로 2천명, 여기에 마법병 200여명 1개 대대로 총 8천 5백여명에 달하는 편제로 편성이 완료되어 훈련을 계속 중이었다. 이는 규정상의 군단 편제에서 2천여명 정도가 모자라는 규모로, 완전치 못한 상태였으나 이는 고급 지휘관의 부족 때문이기도 했다. 체스는 그나마 이에 만족해야했다.

그 대신 그는 전 부대를 한시도 놔두지 않고 훈련을 시켰다. 기병과 마법병들도 언제나 긴장상태에서 훈련을 받아야했고, 보병들의 일과는 특히 힘들었다. 모든 보병은 아침 6시에 기상해 식사 후 이론교육을 받고, 9시부터 각자 대대단위로 정해진 연병장을 뛰기 시작해, 연병장 30바퀴 구보 후, 점심식사를 했다. 1시간의 휴식 후, 오후 7시까지 사격훈련과 백병전 훈련을 6시간동안 받았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2시간 휴식을 취한 다음 야간 군장행군을 실시했다. 그중 제일 힘든 것은 연병장 집단구보였다. 연병장 30바퀴를 1시간 반 이내로 완주하지 못하면 식사배식은 없었다.

현재 9개의 보병대대중에서 제3대대만이 매번 시간 내 완주에 실패해, 그들은 3일째 점심과 저녁을 굶고 초저녁때 A-샌드만을 지급받으며 견디고 있었다. A-샌드는 대체 샌드위치(Alternative Sandwich)의 준말로, 일종의 군용비상식량이었다. 영양학자들이 세심하게 배려하여 영양분을 고루 포함시켰다고 선전되고 있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텁텁하고 미각을 자극하지 못하는 맛 때문에 최전선에서의 전투 등, 정말 ‘비상시’가 아닌 이상 모두가 기피하는 그런 식품이었다.

"끄, 끝이다!!!"

전 대대원들이 무사히 완주지점을 돌파하는 모습에 다른 부대원들까지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대대원들은 아직 얼어붙어 있었다.

"구, 헉, 구십, 헉, 분.. 이상, 헉, 걸렸습니까?"

물론, 대대장도 대대원들과 함께 뛰었고, 그랬기에 제3대대장 베송 대위의 상태도 대대병들과 별 차이 없이 초죽음에 가까운 상태였다. 숨이 턱에 찬 대대장이 힘겹게 물었다.

"127분 43초. 내가 알기로 오늘 점심은 멧돼지 바베큐인데 말이야. 특식을 즐기도록."

이 말에 대대원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기쁨에 겨워했다. 그러나 뒤이어진 말에 그들은 다시 축 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먹어둬야겠지. 저녁 이후에 하는 완전군장행군때 얼마나 빨리 뛰는지 봐서 앞으로의 식사배식여부를 결정하겠다."

라에비트 소령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샤워실로 향했다.

"죽일 놈."

어느 상병의 소감.

"개새."

어느 원사가 이어 말했다.

“우리가 신병이냐? 신병이냐고!”

누구에게 향한건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외침.

“내가 8군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도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은 없어.”

"원사님, 그래도 저놈은 우리랑 같이 뛰지 말입니다. 적어도 단상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낙하산 새끼보다야 저게 낫지 않습니까?”

“맞어, 맞어.”

“그리고 이 따위 일정을 짠 것도 그 낙하산 장군이잖아?”

어느새 제 1연대장 겸 군단보병대 총 책임자에 대한 비난은 곧 군단장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대대병들의 눈길은 연병장 끄트머리에서 사령부 건물로 걸어가던 중의 군단장에게 향했다.

"야! 애초에 다른 부대는 그냥 중대단위로, 중대장이 알아서 훈련시키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연대장이 직접 대대단위를 통째로 훈련시키냐고!? 말이나 돼, 이게?"

"그렇지 말입니다."

그 말에 군단장을 비난했던 일병이 다시 군단장의 부조리를 따졌다.

“그것보다도, 우리는 국제 장거리 달리기 경주 선수가 아니지 말입니다? 12마일을 1시간 반 만에 뛰게 말입니다?”

"그렇군."

"그러게말야."

"또라이 아닐까?"

사실 실제 장거리 달리기 선수는 7 군단 보병들의 오전 구보 거리의 2배 이상의 거리를 2시간 동안 완주 하지만, 그 사실은 무시되었다.

"아-시팔!"

"나이도 젊지 말입니다아. 저랑 동년배인데 장군이에요!"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옆에 있던 원사가 이미 해당 발언의 이병보다 두 살 어렸기 때문이었다.

“새꺄, 나이가 중요해!? 짬밥 먹은 횟수가 중요하지? 옆에 원사님 계시는데 어디서? 박아!”

이병은 마침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던 병장에 의해 연병장의 단단한 모래밭에 머리를 박게 되었다.

"그래도, 20대의 군단장이라니, 말도 안되긴 하지?”

"정부에 ‘빽’이 있는 거 아닐까?"

"생긴건 기생오래비같고."

지휘관의 지나친 젊음은 부하들에게 불신과 불만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빌어먹을, 저녁때는 또 어떻게 뛰라고!?"

구보가 끝났음에도, 점심식사를 알리는 나팔이 울리기 전까지 군단장에 대한 ‘뒷담화’는 계속됐다. 대대장이라는 베송 대위는 이미 비틀거리며 자신의 막사로 향한지 오래였고, 그 아래의 중대장이나 소대장등의 장교들은 부하들을 제지하기는 커녕 그들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땀에 절은 수백여명의 남정네들이 주저앉아 지휘관 욕이나 하고 있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으나, 이런 광경은 도처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목격될 터였다.



저주와 욕설에는 이미 익숙해졌는지, 군단장의 손가락은 귀를 긁고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손가락은 지도 위에서 몇몇 도시와 도로를 짚으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네이룬, 트레비아, 아르카디아. 트레비아, 펜토스. 펜토스, 렌디노어. 아피룬, 시슈타인.’ 그 움직임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중단됐다.

"들어와요."

시데르였다.

"뭐 하러 노크를 다 하나? 그냥 들어오지."

“조금 걱정이 되서 하는 주제넘는 소리 좀 하러 왔습니다만..”

“자네가 언제 주제 넘는 소리 하지 않은 적이 있나?”

체스는 뜸을 들이는 시데르를 흘낏 보고는 다시 시선을 지도에 향했다. 시데르는 책상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군단의 훈련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미 저들은 신병훈련기간동안 뛰는 일은 죽도록 해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원성을 들으면서까지 훈련을 시키시는지 납득 못하는 자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채찍도 좋지만 가끔은 당근도 필요합니다."

그는 군단병들이 필요 이상으로 체스를 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앞으로 장거리를 단시간 내에 주파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기동성을 중요시할 이유는 어디에 있지요? 공화국의 영토는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휘하고 있는것은 ‘군단병’들 이지, 특수부대가 아닙니다. 저들은 RCB 대원들이 아니라고요."

저항제거여단, 즉 RCB(Resistance Clearing Brigade)는 공화국의 특전부대로, 주로 비정규전에서 게릴라 저항 세력의 제거를 맡으며, 정규전에서는 본대의 공격 이전에 방어 시설 등을 무력화시켜 길을 트는, 그런 작전에 투입되는 부대였다. 그 특성에 따라 RCB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성이었다. 체스와 시데르의 전투 경험은 주로 저항제거여단의 작전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등한 규모의 군단병력들이 대거 투입되는 대규모의 회전(會戰)에서 RCB는 소용이 없는 병과였다.


"아르키디아의 영토는 넓어."

체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자넨 신문도 안보나?"

시데르의 말에 체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답했다.

"신문이요?"

체스는 책상에서 신문을 집어 시데르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신문이군요. 아직 안읽었습니다."

"내가 줄쳐 논 기사를 읽어봐."

시데르는 체스가 줄쳐논 부분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광산 소유권 분쟁 – 제국패배. 네이룬-아르카디아 국경지대에서 대규모로 발견된 집마석 산지에 대한 소유권 분쟁은 네이룬 공화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국제법정에서 내린 이번 판결은…."

"그 다음 줄친 부분도."

"이번 광산 소유권 판결에 대해 아르카디아 제국내 최대 기업 ‘스탠더드 마나 트러스트’사는 큰 유감을 표시했다. SMT(Standard Mana Trust)사의 CEO 제럴드 D. 록힐러 회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소유권 분쟁을 ‘자사의 이익뿐 아니라 제국 신민 전원의 이해가 걸린 문제’라 표현하며, ‘네이룬 공화국은 매우 부당한 방법으로, 정당하지 못하게 소송에서 승리했다’고 발언했다. 제국정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SMT사가…."

“바로 그거야.”

“단지 그것만으로는 전쟁이 일어난다, 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지 아니면 전면전에 들어갈지 그것도 알 수 없는 문제 아닙니까?”

“곧 알게될 거야. 자네 벌써 잊었나? RCB때 우리가 투입된 작전들이 정말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유 때문에 무력개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을…?”

‘에라 모르겠다.’ 시데르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흔들고 화제를 바꿨다.

“뭐, 장군님 생각이 옳겠죠. 도스카라스 대령을 대체할, 다음 참모장 선임은 하셨습니까?”

“1군 사령부에 요청은 해 놨어. 수도에서 엘리트 장교 하나가 내려온다더군.”

“허, 엘리트입니까?”

“사관학교 수석이였다나 어쨌다나. 아, 그리고 이제부터 내 집무실은 금연이야.”

시데르는 라이터와 담배를 손에 거머쥔 채 3계급 위의 상관을 노려보았다. 상관도 부관을 노려보았다. 두 청년의 눈싸움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