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날씨가 좋아서 뒷산을 좀 올라갔다 왔습니다. 와,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진짜 초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더군요. 녹음이 우거진 게 계속 보노라니 눈이 아주 새파래질 지경이었습니다. 녹색은 잎이요, 갈색은 줄기다 뭐, 이런 거죠. 그만큼 숲이 풍성하게 보였다는 겁니다. 겨우 동네 뒷산일 뿐이니까 국립공원 정도의 커다란 산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산림이란 걸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들이 우거진 모습을 보면서 조금 걷자니까 뜬금없이 프레데터 생각이 났습니다. 아니, 비단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이처럼 녹음이 푸르른 숲을 보면 항상 프레데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프레데터가 제일 인상 깊은 장면은 나뭇잎처럼 위장해서 정글을 스르륵 돌아다니는 부분 아니겠어요. 그런데 잎이 새파란 나무들을 보자니 꼭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프레데터의 은신 방법이 숲에서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흔히 개구리복이라고 부르는 위장 전투복을 입어도 이런 숲에서는 눈에 잘 안 띈다고 하던데, 윤곽선만 남기고 다닌다면 얼마나 찾기가 힘들겠어요.

덧붙여 나무들이 빽빽한 이런 곳에서는 열감지 시야가 참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니까 열을 감지해서 상대를 추적하는 편이 훨씬 낫겠죠. 사실 영화 2편에서 나온 것처럼 도시에서 열감지 시야가 얼마나 유용할지 약간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도시에는 사람 수도 워낙 많고, 열원도 한두 개가 아닌지라 목표를 쉽사리 추적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사람이 별로 없고 열원도 없는 숲에서만큼은 더없이 좋을 것 같더군요. 뭐, 전적으로 열감지 시야에만 의존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 테지만, 숲에서 상대를 추적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냄새 분자를 추적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프레데터가 냄새를 추적한다는 설정은 본 적이 없으니)

여하튼 뒷산에 숲 구경하러 갔다가 프레데터 생각까지 한참 하고 왔습니다. 프레데터란 캐릭터(크리쳐?)가 그만큼 잘 만들었고 인상 깊다는 뜻이겠죠. 여유가 되신다면 한 번쯤 산에 올라가서 '프레데터가 이런 숲을 돌아다닌다면 어떤 모습일까'하고 상상해 보시길. 등산하는 재미가 색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