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자.

해는 1944년.
당신은 미 해병이다.
덥고 습기찬 어느 태평양의 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날 아침.
시야가 차단되는 정글의 덤불을 사방에 두고 있는데
여기에 안개까지 자욱하다.
덜덜 떨며 천천히 전진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덴노 헤이까 반자아아이이이!!! (天皇陛下万歳, 천황폐하만세)

그리고는 어느순간 배가 녹슨 총검에 꿰뚫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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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살기 위해 적병의 목에 자신의 대검을 꽂아넣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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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매된지 1년이나 된 게임이지만 클럽에는 따로 리뷰가 보이지 않아 제가 1년 전에 블로그에 썼던
리뷰글을 약간 수정해서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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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오브듀티:World At War는 콜오브듀티4:모던워페어의 엔진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작 스튜디오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틱한 전개방식과 영상연출방식도 답습합니다.
그 분위기와 게임 방식, 방향성은 콜오브듀티1로의 회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들과 아주 다른, 새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잔인성 부각을 통한 전쟁의 참혹함 표현

저것도 사실 매우 진부한 것이긴 한데 콜오브듀티 시리즈 내로 한정 시킬 때에는 상당히 새로운 개념입니다.

전작들의 영웅주의적, 감정적 표현방식 (전형적으로 감정적인 클래식 음악의 사용 등) 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연출들. 태평양 전쟁의 인간성 상실한 군인들과의 처참한 혈전과 역시 마찬가지로 참혹한 독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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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의 경우는 지난 시리즈들에서도 계속 묘사되었던 바이나 이번은 좀 다릅니다.
쓰러져있는 소련군 병사들을 확인사살하는 독일군이나,
 항복하는 독일군들을 화염병으로 태워죽이는 소련군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위한 영광' 이라던가 '간지 소련군' 뭐 이런 소리가 나올 여지는 없습니다.

 게다가 적들은 더욱 괴로워 하며 죽습니다.

총에 맞은 배를 부여잡고 벙찐 표정으로 비틀비틀하는 적군 병사의 모습을 보면 좀 징그럽기까지하죠.
소련군 특유의 전투함성 "우라"Ura (ypa)를 내지르며 돌격하는 아군도 좀 무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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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최초로 묘사된 태평양 전선의 경우,
정말 '적 군인들'이 아니라 '악귀'들을 상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소름끼칩니다.

절망과 광신적 군국주의에 '취한' 일본군인들이 착검돌격하는 모습을 보며
실제 미군들이 그 열대섬들에서 느꼈을 법한 그 감정이 게이머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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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잔인성과 폭력성의 표현은
 총검과 화염방사기, 그리고 몰로토프 칵테일 등의 무기들의 추가로 인해 더 증폭됩니다.
여기에 그래픽과 엔진의 향상으로 인해 샷건이나 판쳐쉬렉에 맞은 병사는
다리가 날아가거나 내장을 허공에 흩뿌리며, 일반 소총도 잘 맞으면
팔뚝이 통째로 날아가 날아간 자신의 손을 잡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Gruesome한 전장의 모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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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선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계속 찝찔씁쓰레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면도 우중충한 회색톤으로 채색되어있고요.


음악도 지금까지의 의도된 감동을 연출하기 위한 자랑스러운 분위기의 곡들과는 달리
좀 섬뜩한, 공포영화에서 사용할 법한 음악들을 썼달까.
전작들에서 사용한 클래식풍 음악들과는 달리 섬뜩하고 무서운 전장의 분위기에 잘 부합합니다.



그리고... 영상. 각 미션들의 오프닝 영상들.



이건 제일 처음의 오프닝 영상인데.

굉장히 스타일리쉬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화려한건 아니면서도 매우 분위기 있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현대적 세련미가 가미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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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에서 가장 감정적이 되는 부분은 가장 마지막, 최종 미션입니다. 기승전결 상 당연하지만.
소련군으로, 베를린에 있는 제국 국회의사당 건물 꼭대기에 소련 깃발을 꽃는 그 순간을 묘사합니다.

분명 콜오브듀티 1에서 묘사된 것과 동일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너무나 다르죠.
게다가 여기서는 '깃발 꽂는 모습을 보는' 전작의 표현이 아닌, '스스로 꽂는' 건데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게됩니다.


...일단 게임 내내 옆에서 플레이어를 지도하는 상관이
성우가 무려 영화배우 게리 올드만씨입니다. 연기 전체에서 아주 포스가 뿜어져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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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흘러나오는 엔딩 영상과 문구들은 다른 것보다도 (전작에서는 애국과 희생을 얘기하는데 반해)
제 2차세계대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품 전체에서 "잘 봐! 전쟁은 이렇게 암담하고 나쁜거야!"를 외치는 듯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옵니다.

어떤 점에서는 지금껏 나온 전쟁FPS 게임들 중에서는 가장 반전反戰 성향이더군요.

아무튼 결론을 내리자면, 원 시리즈의 제작사(인피니티 워드)가 아닌, 네임밸류는 좀 떨어지던
스튜디오(트레이앜)에서 만든거라 수준이 어떨지 걱정을 하긴 했지만,

그 결과물은 정말 훌륭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확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s. 캠페인 미션을 다 완료하고 나면 보너스 미션이 생기는데...

이게 뭐냐면 밀려오는 나찌 좀비군을 상대로 집을 지키는 게임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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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이것도 멀티플레이어 용으로는 정말 재밌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