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宙易)
글 수 47
“그만하면 되었네. 무지한 이의 치기에 너무 노여워 말게.”
모우가 지느러미를 흔들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로봇들이 난장판이 된 식당을 금새 정리하고 다시 식사를 가져왔다. 그러는 사이 허리가 재생된 락샤헤이론이 천천히 일어나 옷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모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두의 긴장된 시선이 모인 가운데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무어인 여전사가 라출노그인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도 대단히 정중하게, 마치 신하가 왕에게 예를 올리듯이 말이다.
“저의 무지로 인해 오해가 생겨 죄송할 따름입니다.
해서 이 자리를 빌어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가 아이사타호에 타는 순간부터 이 육체와 영혼은 모두 함장님의 것입니다.”
그 목소리에 결코 거짓은 없었다. 지금 락샤헤이론의 행동과 말은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방금 일어났던 격전에 가슴 졸였던 이들은 겨우 안심했으나 락샤헤이론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고개를 들자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무어인 여전사의 얼굴에 가득 찬 것은 오만함과 자존심이었고 입에서 울려 퍼진 것은 결코 굽히지 않는 의지의 목소리였다.
“허나 나는 오미크론 크루갈레시난이 아니라 미카 때문에 머리를 잘랐다.”
거기엔 또 하나의 여왕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고고한 여왕이. 이런 락샤헤이론의 도발적인 언행에 잠시나마 안도했던 이들은 도로 사색이 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모우는 흡족한 듯이 웃었다.
“흠, 그런가? 알겠네. 그러면 식사나 들지.”
“…네, 함장님.”
아닌 게 아니라 모우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실력과 배짱을 겸비한 부하를 만난 것은 정말 드물다. 오늘의 만남에 견줄만한 것은 제루님을 만났을 때, 미카를 만났을 때, 스제거를 만났을 때, 그리고 걸오가 진면목을 드러냈을 때 정도랄까? 모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식사를 재개했고 덕분에 식당도 다시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갔다. 허나 걸오는 사건이 일단락된 듯 해도 뭔가 뒤끝이 남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분명히 락샤헤이론은 오미크론이 아닌 미카 때문에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즉 이 말은 ‘공적’으로는 사고 안치고 복종할 테니 그 대신 둘만의 ‘사적’인 피바다에는 왈가왈부하지 말란 얘기가 된다. 걸오는 조용히 식사하는 락샤헤이론을 흘끔흘끔 곁눈질로 보며 다시 미카를 쿡쿡 찔렀다.
“바보야. 이만하길 다행인줄 알아라.”
“음~. 이거 함장님 각본인데…”
웅얼거리는 미카의 대답이 청천벽력처럼 들린다.
“가! 가각…”
걸오는 띵해져 오는 뒷목을 부여잡으며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락샤헤이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그토록 발악했던 미카가 무엇 때문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걸오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의도적으로 락샤헤이론을 도발했을까? 답을 알자 자연히 이해가 되었다. 방금 같은 연극은 얼마 전 걸오가 몸소 겪지 않았던가. 이제 락샤헤이론도 약점을 잡혀 모우의 비공식 노예가 돼버린 것이다.
“…언제나 철저하시군.”
기가 드센 부하를 말로 휘어잡으려면 시간이 걸리고 뒤끝도 있다. 그러니 폭력으로 짓밟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빠르고 행복한 결말을 가져온다, 라는 게 모우의 지론이다. 때문에 부하들은 모우를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위험인물로 규정하고 항상 주의하지만 이 라출노그인 왕자는 평소에는 속내를 감춘 채 공정하며 근엄한 함장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 방심하게 된다. 그리고 부하들이 잊을 만하면 거하게 뒤통수를 후려친다. 걸오는 최근 들어 자신을 두 번이나 속인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방금 저년 말 들었잖아? 함장님이 손 못댈건데?”
“그래도 함장님이 지켜준다고 했어. 함장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안 이뤄진 게 있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다. 모우가 적을 대놓고 속인 적은 있어도 어줍잖은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덧붙여 자신이 한 말이 거짓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우에게 락샤헤이론을 제압할 또 다른 수가 있다는 말이다.
“자네는 어이 하여 그리도 조용한고?”
“예, 네?”
걸오는 그 수가 무얼까 하고 밥을 깨작거리며 생각하다가 갑작스런 모우의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본디 이런 난장판은 자네의 장기 아니던가.
더군다나 눈앞에서 싸움이 났는데도 나서질 않다니, 혹여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겐가?”
모우의 말에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밥 먹다 굳어버린 지구인에게로 옮겨갔다. 1.8로아의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그 위로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고 밑으로는 탄탄한 목과 승모근으로 시작해서 잘 발달된 근육들로 이뤄진 육체가 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면 무어인이나 담프사인의 눈길 정도는 끌 호남형의 외모를 가진 걸오지만 거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 지구인의 정체를 밝히면 입만 열었다 하면 육두문자가 쏟아지고 시비 걸기로는 스퀵테르인과 호형호제요 싸움 실력은 무어인과 백년가약인 호전적 생명체 인데다 결정적인 것은 성격마저 개차반이라 자타공인 상말종인 것이다.
그런 걸오가 조용히 앉아만 있으니 이는 뭔가 사고를 친 뒤 몸을 사리거나 아니면 앞으로 무슨 사고를 치기 위해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것임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걸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였다. 그런데 아무리 막 나가는 걸오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빈틈 보다가 뒤치기 해서 한방에 보내려고 했어요.’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좀 막 나가긴 해도 이런 자리에서까지 분별없이 나댈 순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초면에 조져, 아니 무례하게 굴 수도 없지요.”
건방지지만 걸오치곤 나름 예의 바르고 무난한 대답이다. 실제로 걸오 혼자라면 아까 판을 엎어도 열두 번은 더 엎었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모우와 제루님, 미카의 체면을 생각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우가 호들갑을 떤다.
“흐음, 갸륵하도다!”
“네?”
“자네는 이전부터 숱한 폭력사고로 본관의 근심을 키우는데 크나큰 일조를 하였거늘
늦게나마 개과천선하였다니 이 아니 기쁠 손가.”
“예?”
“해서 걸오소령, 그대를 짐의 근위소대장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어? 어어?”
별볼일 없는 대답에 돌아온 말이 냅다 근위소대장 임명이라니 당사자인 걸오만 놀란 것이 아니다. 식당 안의 모든 이들이 놀라서 걸오와 모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근위소대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휘관과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직속부대이다. 이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인 연방군 내에서 종족간에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섬세하고 민감한 사안이 생길 경우 다른 종족의 가치관이나 이견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고 오직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생겨난 부대다. 즉 지휘관 직속이라 아래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고 상부에서도 지휘관까지만 건드리고 근위소대에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니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상 근위소대는 행성의 총독이나 함대의 제독, 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의 장성들에게만 주어지며 맡게 되는 임무도 군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미묘하게 오락가락하는 데다 그 존재자체도 사조직에 가까워 매 청문회마다 단골 공격메뉴가 되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순효과 때문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모우는 함장의 신분이라 지금까지 근위소대를 가질 수 없었지만 원래 라출노그 왕자라는 신분에 지금은 준장으로 승진했고 거기다 아이사타호 자체도 하나의 함대에 버금가는 특수한 함이니 이제 근위소대를 가진다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또 걸오가 다른 종족이긴 하지만 이것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뜬금없이 밥 먹다가 냅다 근위소대 창설이라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혹 과인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 있느뇨?”
방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하나 징하게 조져놓고 그런 말씀하시면 안되죠. 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도로 삼킨 걸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의 미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고 있었으며 저쪽의 제루님은 더듬이 언어로 '불쌍한 놈아 고생문이 희번떡 열렸구나야~'라고 더듬거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걸오 혼자 주섬주섬 말을 붙인다.
“근위소대는 그 뭐, 허가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음, 물론 있느니라.”
그 말과 함께 모우의 어항 앞에 올라오는 입체영상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근위소대 창설 허가서다. 내용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이 여기까지 벌어졌으니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아예...맡겨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이것 외엔 대답할 게 없다. 행여 걸오가 거부했다 한들 그 과정에만 사소한 변화가 있을 뿐 걸오가 근위소대장이 된다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흐음, 다른 이들의 의견은 어떠할꼬? 제루님 관령.”
-심드렁하니 하쇼.
“다음 스제거 중령은?”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오미크론 중령.”
“에헤헤헤~찬성입니다.”
“그렇다면 만장일치로…아, 그렇지. 락샤헤이론 중령.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락샤헤이론으로서는 당연히 찬성이다. 상관인 모우가 자신의 근위소대를 만들겠다는데 락샤헤이론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일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외람되지만…적 하나 죽여보지 못한 자를 근위소대장으로 해도 괜찮겠습니까?”
순간 걸오를 아는 사람들의 표정이 대단히 해괴하게 변했는데 그 해괴하다는 표정도 숨겨진 뜻은 저마다 각양각색이라 이 무슨 황당한 얘기냐는 것에서부터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또는 뭔가 다른 숨겨진 뜻이 있을까, 혹은 아니 저년이 미쳤나,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닥탄 걸오님이?”
스제거 중령이 머리를 긁적임과 동시에 걸오를 잘 아는 사람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한 쾌감에 상쾌해하며 그래! 둘이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지?
옳거니 그러고 보니 그때 이미 흉수를 뻗쳤구나!
착용자의 부적절한 어휘사용으로 인해 잠시 번역을 정지합니다.
관절마디가 분리되는 공포에 떨며 너너너! 도대체 무슨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거야?
안돼! 안돼! 평화로운 아이사타호를 너의 간악한 손길로부터 지키고야 말 테다!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며 아이사타호의 순결은 나의 것이다! 케케케케케!
“헤헹! 흐흥! 걸오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면 함장님은 멸치야!”
“…꽤나 불쾌한 예시지만 반박은 못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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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연재를 재개하려 했지만 좀 힘들었군요.
쓰는 놈이 이러니 읽는 분들께서는 어떠실지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모우가 지느러미를 흔들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로봇들이 난장판이 된 식당을 금새 정리하고 다시 식사를 가져왔다. 그러는 사이 허리가 재생된 락샤헤이론이 천천히 일어나 옷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모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두의 긴장된 시선이 모인 가운데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무어인 여전사가 라출노그인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도 대단히 정중하게, 마치 신하가 왕에게 예를 올리듯이 말이다.
“저의 무지로 인해 오해가 생겨 죄송할 따름입니다.
해서 이 자리를 빌어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가 아이사타호에 타는 순간부터 이 육체와 영혼은 모두 함장님의 것입니다.”
그 목소리에 결코 거짓은 없었다. 지금 락샤헤이론의 행동과 말은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방금 일어났던 격전에 가슴 졸였던 이들은 겨우 안심했으나 락샤헤이론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고개를 들자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무어인 여전사의 얼굴에 가득 찬 것은 오만함과 자존심이었고 입에서 울려 퍼진 것은 결코 굽히지 않는 의지의 목소리였다.
“허나 나는 오미크론 크루갈레시난이 아니라 미카 때문에 머리를 잘랐다.”
거기엔 또 하나의 여왕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고고한 여왕이. 이런 락샤헤이론의 도발적인 언행에 잠시나마 안도했던 이들은 도로 사색이 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모우는 흡족한 듯이 웃었다.
“흠, 그런가? 알겠네. 그러면 식사나 들지.”
“…네, 함장님.”
아닌 게 아니라 모우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실력과 배짱을 겸비한 부하를 만난 것은 정말 드물다. 오늘의 만남에 견줄만한 것은 제루님을 만났을 때, 미카를 만났을 때, 스제거를 만났을 때, 그리고 걸오가 진면목을 드러냈을 때 정도랄까? 모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식사를 재개했고 덕분에 식당도 다시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갔다. 허나 걸오는 사건이 일단락된 듯 해도 뭔가 뒤끝이 남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분명히 락샤헤이론은 오미크론이 아닌 미카 때문에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즉 이 말은 ‘공적’으로는 사고 안치고 복종할 테니 그 대신 둘만의 ‘사적’인 피바다에는 왈가왈부하지 말란 얘기가 된다. 걸오는 조용히 식사하는 락샤헤이론을 흘끔흘끔 곁눈질로 보며 다시 미카를 쿡쿡 찔렀다.
“바보야. 이만하길 다행인줄 알아라.”
“음~. 이거 함장님 각본인데…”
웅얼거리는 미카의 대답이 청천벽력처럼 들린다.
“가! 가각…”
걸오는 띵해져 오는 뒷목을 부여잡으며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락샤헤이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그토록 발악했던 미카가 무엇 때문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걸오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의도적으로 락샤헤이론을 도발했을까? 답을 알자 자연히 이해가 되었다. 방금 같은 연극은 얼마 전 걸오가 몸소 겪지 않았던가. 이제 락샤헤이론도 약점을 잡혀 모우의 비공식 노예가 돼버린 것이다.
“…언제나 철저하시군.”
기가 드센 부하를 말로 휘어잡으려면 시간이 걸리고 뒤끝도 있다. 그러니 폭력으로 짓밟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빠르고 행복한 결말을 가져온다, 라는 게 모우의 지론이다. 때문에 부하들은 모우를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위험인물로 규정하고 항상 주의하지만 이 라출노그인 왕자는 평소에는 속내를 감춘 채 공정하며 근엄한 함장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 방심하게 된다. 그리고 부하들이 잊을 만하면 거하게 뒤통수를 후려친다. 걸오는 최근 들어 자신을 두 번이나 속인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방금 저년 말 들었잖아? 함장님이 손 못댈건데?”
“그래도 함장님이 지켜준다고 했어. 함장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안 이뤄진 게 있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다. 모우가 적을 대놓고 속인 적은 있어도 어줍잖은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덧붙여 자신이 한 말이 거짓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우에게 락샤헤이론을 제압할 또 다른 수가 있다는 말이다.
“자네는 어이 하여 그리도 조용한고?”
“예, 네?”
걸오는 그 수가 무얼까 하고 밥을 깨작거리며 생각하다가 갑작스런 모우의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본디 이런 난장판은 자네의 장기 아니던가.
더군다나 눈앞에서 싸움이 났는데도 나서질 않다니, 혹여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겐가?”
모우의 말에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밥 먹다 굳어버린 지구인에게로 옮겨갔다. 1.8로아의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그 위로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고 밑으로는 탄탄한 목과 승모근으로 시작해서 잘 발달된 근육들로 이뤄진 육체가 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면 무어인이나 담프사인의 눈길 정도는 끌 호남형의 외모를 가진 걸오지만 거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 지구인의 정체를 밝히면 입만 열었다 하면 육두문자가 쏟아지고 시비 걸기로는 스퀵테르인과 호형호제요 싸움 실력은 무어인과 백년가약인 호전적 생명체 인데다 결정적인 것은 성격마저 개차반이라 자타공인 상말종인 것이다.
그런 걸오가 조용히 앉아만 있으니 이는 뭔가 사고를 친 뒤 몸을 사리거나 아니면 앞으로 무슨 사고를 치기 위해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것임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걸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였다. 그런데 아무리 막 나가는 걸오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빈틈 보다가 뒤치기 해서 한방에 보내려고 했어요.’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좀 막 나가긴 해도 이런 자리에서까지 분별없이 나댈 순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초면에 조져, 아니 무례하게 굴 수도 없지요.”
건방지지만 걸오치곤 나름 예의 바르고 무난한 대답이다. 실제로 걸오 혼자라면 아까 판을 엎어도 열두 번은 더 엎었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모우와 제루님, 미카의 체면을 생각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우가 호들갑을 떤다.
“흐음, 갸륵하도다!”
“네?”
“자네는 이전부터 숱한 폭력사고로 본관의 근심을 키우는데 크나큰 일조를 하였거늘
늦게나마 개과천선하였다니 이 아니 기쁠 손가.”
“예?”
“해서 걸오소령, 그대를 짐의 근위소대장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어? 어어?”
별볼일 없는 대답에 돌아온 말이 냅다 근위소대장 임명이라니 당사자인 걸오만 놀란 것이 아니다. 식당 안의 모든 이들이 놀라서 걸오와 모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근위소대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휘관과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직속부대이다. 이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인 연방군 내에서 종족간에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섬세하고 민감한 사안이 생길 경우 다른 종족의 가치관이나 이견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고 오직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생겨난 부대다. 즉 지휘관 직속이라 아래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고 상부에서도 지휘관까지만 건드리고 근위소대에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니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상 근위소대는 행성의 총독이나 함대의 제독, 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의 장성들에게만 주어지며 맡게 되는 임무도 군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미묘하게 오락가락하는 데다 그 존재자체도 사조직에 가까워 매 청문회마다 단골 공격메뉴가 되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순효과 때문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모우는 함장의 신분이라 지금까지 근위소대를 가질 수 없었지만 원래 라출노그 왕자라는 신분에 지금은 준장으로 승진했고 거기다 아이사타호 자체도 하나의 함대에 버금가는 특수한 함이니 이제 근위소대를 가진다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또 걸오가 다른 종족이긴 하지만 이것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뜬금없이 밥 먹다가 냅다 근위소대 창설이라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혹 과인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 있느뇨?”
방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하나 징하게 조져놓고 그런 말씀하시면 안되죠. 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도로 삼킨 걸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의 미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고 있었으며 저쪽의 제루님은 더듬이 언어로 '불쌍한 놈아 고생문이 희번떡 열렸구나야~'라고 더듬거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걸오 혼자 주섬주섬 말을 붙인다.
“근위소대는 그 뭐, 허가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음, 물론 있느니라.”
그 말과 함께 모우의 어항 앞에 올라오는 입체영상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근위소대 창설 허가서다. 내용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이 여기까지 벌어졌으니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아예...맡겨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이것 외엔 대답할 게 없다. 행여 걸오가 거부했다 한들 그 과정에만 사소한 변화가 있을 뿐 걸오가 근위소대장이 된다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흐음, 다른 이들의 의견은 어떠할꼬? 제루님 관령.”
-심드렁하니 하쇼.
“다음 스제거 중령은?”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오미크론 중령.”
“에헤헤헤~찬성입니다.”
“그렇다면 만장일치로…아, 그렇지. 락샤헤이론 중령.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락샤헤이론으로서는 당연히 찬성이다. 상관인 모우가 자신의 근위소대를 만들겠다는데 락샤헤이론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일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외람되지만…적 하나 죽여보지 못한 자를 근위소대장으로 해도 괜찮겠습니까?”
순간 걸오를 아는 사람들의 표정이 대단히 해괴하게 변했는데 그 해괴하다는 표정도 숨겨진 뜻은 저마다 각양각색이라 이 무슨 황당한 얘기냐는 것에서부터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또는 뭔가 다른 숨겨진 뜻이 있을까, 혹은 아니 저년이 미쳤나,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닥탄 걸오님이?”
스제거 중령이 머리를 긁적임과 동시에 걸오를 잘 아는 사람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한 쾌감에 상쾌해하며 그래! 둘이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지?
옳거니 그러고 보니 그때 이미 흉수를 뻗쳤구나!
착용자의 부적절한 어휘사용으로 인해 잠시 번역을 정지합니다.
관절마디가 분리되는 공포에 떨며 너너너! 도대체 무슨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거야?
안돼! 안돼! 평화로운 아이사타호를 너의 간악한 손길로부터 지키고야 말 테다!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며 아이사타호의 순결은 나의 것이다! 케케케케케!
“헤헹! 흐흥! 걸오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면 함장님은 멸치야!”
“…꽤나 불쾌한 예시지만 반박은 못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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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연재를 재개하려 했지만 좀 힘들었군요.
쓰는 놈이 이러니 읽는 분들께서는 어떠실지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멋지군요!
ps.근데 덧글에는 온통 연재속도뿐... 날짜를 봐도 한숨... 뭐, 이정도 소설이라면
당연한 건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