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오는 달리면서 급하게 미카를 호출했다.

“미카, 나와라. 미카, 나와라.”

-지금 사용자의 호출기가 꺼져있습니다.

“이런 썅년이!”

걸오는 잽싸게 부전대장 상투스 소령을 불렀다.

“부전대장? 나 걸오요. 혹시 전대장 못 봤소?”

“글쎄요? 얼핏 듣기론 방에서 주무신다고 하시던데…”

허둥지둥 미카의 방으로 달려가봤지만 그녀는 없었다. 행여 미카가 지금 격납고 쪽으로 간다면 사고가 터져도 아주 대형으로 터진다. 걸오는 현재 격납고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이사타호 서열 2위인 사람을 호출했다.

“관령님, 미카 못 봤어요?”

-다급한 말투로 지금 바뻐. 도리볼한테 물어봐라.

“아니, 지금 큰일이-여보쇼! 씨발 끊지 말라니깐.”

그러고 보니 도리볼이 4번 창고에서 작업 중일 것이다.

“어이, 도리볼. 미카 못 봤냐? 혹시 거기서 보면-”

-뭣이! 지금 전대장이 안 보인다고? 또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거얏!

걸오는 영양가 없는 통신을 끄고 비행중대 휴게실로 달려갔다. 벼락같이 문을 차 열자 텅 빈 휴게실의 자판기 앞에서 고개를 홰딱홰딱 돌리던 테테루가 놀란다.

“삐약! 소령님, 이것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닙니다!
이는 자판기가 홍채 인식 후 금액을 계산하기 전에 안구의 좌우위치를 바꾸어-”

“닥치고 테테루. 미카 못 봤냐?”

“그게 뭡니까? 먹는 겁니까?”

“너 피눈물을 마시는 새가 되고 싶으냐?”

“농담입니다. 그런데 제가 전대장님의 애칭을 함부로 부를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봤냐?”

“못 봤습니다.”

놈을 부리째 자판기에 꽂아버리고 걸오는 다시 내달렸다. 물론 찾으려면 못 찾는 것은 아니다. 지금 미카의 호출기가 꺼져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회선을 닫았다는 것이지 공적인 일로 강제로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 허나 이런 일로 그 기능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번째는 함내 방송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경우엔 방송으로 ‘오미크론 크루갈레시난 중령’이란 단어가 나오자 마자 저 락샤헤이론 크루갈레시난이 미쳐서 방송실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두 무어인 여성들이 앞으로 벌이게 될 사건사고를 상상해 보면 이걸 꼭 사적인 일로 볼 수만은 없었다. 혹시 아까 모우가 락샤헤이론에 대해서 물어본 게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걸오가 락샤헤이론의 단발머리 건을 모우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호출신호가 왔다.

-걸오 소령님, 이 호출을 들으시는 즉시 제 1식당으로 오십시오.

“뭐시.”

걸오는 자신의 팔목 단말기를 미심쩍다는 듯 흘겨보았다. 함에서 제 1식당이라 함은 주로 함장이 귀빈을 대접하거나 참모진들과 회식을 하는 곳이라 걸오로선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지간한 호출이면 씹으려고 했는데 명령발신자가 함장이었다. 이러면 마냥 미카를 찾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이 기회에 함장인 모우에게도 귀띔을 해주는 게 좋을 듯싶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밥 먹으라고 난리다냐.”

걸오가 투덜대며 고속복도로 들어서서 앞으로의 일을 궁리하고 있는데 마침 락샤헤이론이 옆의 복도 입구에서 불쑥 들어왔다.

“또 만나는군 걸오 소령. 그래, 볼일은 마쳤나?”

상당히 우울한 타이밍의 마주침이었지만 걸오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오. 아직입니다. 그런데 중령님은 어딜 가시는 겁니까?”

만약 락샤헤이론이 미카를 찾아서 스타파이터쪽 방향으로 간다면 어떻게든 방향을 돌려야 한다.

“글쎄, 갑자기 1식당으로 오라는 통신이 와서 말이야. 함장님 호출이더군.”

“그렇습니까. 실은 저도 같은 호출을 받았습니다.”

말 끝을 흐린 걸오는 이번 부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뜬금없이 자신을 1식당으로 부른 건 그렇다 치고 락샤헤이론은 왜 불렀을까? 단순히 그녀의 승선 축하로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1식당은 좀 큰 곳이고 걸오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카와 락샤헤이론의 관계가 문제였다. 걸오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어느덧 두 사람은 1식당 입구에 도착하여 고속복도에서 나왔고 입구에서 간단한 신원확인이 있은 뒤 문이 열렸다.

“락샤헤이론 크루갈레시난. 부름을 받고 대령했습니다.”

“음, 어서 오게 중령. 그리고 걸오 소령도.”

식당 가운데에는 길쭉한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그 상석에 있는 함장 모우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리고 모우의 좌우로는 각 부서의 장들이 앉아있었는데 아마도 아이사타호의 간부급 전원이 모인 듯 했다. 이 중에서 걸오가 아는 얼굴이라고는 기술총감 제루님 관령과 해병전대장 스제거 중령 정도였는데 락샤헤이론은 지상군이어서 그런지 스제거를 보고 꽤 놀란 듯 했다. 하긴 도리볼의 말에 따르면 저 양반은 지상군 시절부터 거의 전설이라고 했고 미카와도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아, 걸오 왔네.”

그리고 스퀵테르인의 거구 뒤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사람은 스타파이터 전대장 오미크론 크루갈레시난 중령이었다.

‘아아악!’

미카를 보자마자 걸오의 영혼은 절규를 해댔고 바로 앞에 서있던 락샤헤이론의 등줄기에서는 으직으직하고 근육이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락샤헤이론은 조용히 당번병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위치로 걸어갈 뿐이었다.

"걸오 소령님, 여기에 앉으십시오.”

“으…응.”

걸오가 안내된 곳은 놀랍게도 모우의 오른쪽 첫 자리였다. 대개의 경우 이 자리는 부함장의 자리인데 그 부함장은 지금 모우의 왼쪽 첫 자리에 앉아있었고 걸오가 오른쪽 첫 자리-최측근석에 앉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복잡했던 걸오의 머릿속은 더더욱 뒤죽박죽이 되었다.
일단 자리배치는 모우의 왼쪽으로 부험장과 제루님을 비롯해 비전투병과 인원들이, 오른쪽으로는 걸오와 미카, 스제거, 락샤헤이론을 시작으로 전투병과 인원들이 앉아 있었다. 분명히 미카나 다른 간부들의 계급과 직책이 걸오보다 높을진대 일개 스타파이터 소대장에게 이런 자리배치는 뭔가 이상했다.

“으흠, 이번 모임은 락샤헤이론 크루갈레시난 중령의 승선 환영회와 다른 몇 가지를
겸한 간단한 파티일세. 다름이 아니라 오늘 중령과 멕워리어들이 본 함에 승선함으로써 모든 부서의 체계가 잡혔다네. 아직 인원은 모자라나 일단 구색은 갖춘 셈이야.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걸오였지만 정작 락샤헤이론과 미카가 조용한 마당에 자신이 먼저 나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령, 왜 그러나? 안색이 안 좋은걸?"

"아, 아닙니다. 함장님"

락샤헤이론과 미카 사이에는 스제거가 있어서 둘이 직접 맞닿지는 않았지만 락샤헤이론의 온몸에서 근육들이 날뛰는 소리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자, 그럼 얘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먼저 들지.”

그 말과 함께 모우가 해초 샐러드를 먹기 시작하자 모두들 식사를 시작했다. 얼핏 보니 음식은 공용 식사가 아니라 각각의 종족들에 맞춰진 것들이었고 모르는 걸오가 봐도 제법 고급에 속하는 먹거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겸상하는 상황인지라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미카도 방금 락샤헤이론을 본 탓인지 불쌍하게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도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걸오는 팔꿈치로 미카를 쿡쿡 찔렀다.

“웅냐?”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서 먹을 건 다 먹고 있는 미카가 얼굴을 들었다. 걸오는 쌍심지를 돋우며 손가락으로 미카의 등뒤를 가리켰다. 대강 ‘지금 상황에 밥이 넘어가니?’란 뜻이지만 돌아온 대답은,

“흥앗?”

그렇게 고개를 한번 갸웃하곤 계속 먹는다. 자기 심장의 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 건너 옆에 있는데도 이러고 있으니 혹시 미카가 락샤헤이론의 상황을 몰라서 이러는가도 싶었다. 걸오는 재빨리 미카의 허벅지 위에 글을 썼다.

‘락샤헤이론 크루갈레시난이-.’

“푸하하! 간지러!”

크게 웃는 입에서 씹던 음식들이 튀어나와 식탁 위를 날아다닌다. 걸오는 황당해서 모우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폈으나 미카는 아랑곳 않고 걸오의 뒷통수를 갈긴 다음 계속해서 경쾌하게 식사를 한다. 마치 자신에게 덤비는 음식들과 싸우듯이.
무어인은 여성상위에 모계중심의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성은 허약한 체질인 반면에 여성은 전투와 전쟁을 위한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에너지 소모량이 엄청나다. 다시 말해 식사량도 대단하단 뜻으로 무어인 여성들의 식사는 꽤 과격하고 거침없으며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한자리 건너 앉은 락샤헤이론은 식사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경질화된 손톱으로 식탁을 똑똑 두들기고 있었으니 분위기가 사뭇 흉흉하다. 무어인은 전신에 생체장갑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전투력은 암석종족 스퀵테르인 못지않다. 때문에 어지간한 곳에선 신체경질화는 금지되어있을 텐데도 이러는 걸 보니 꽤나 꼭지가 돌아간 듯하다.

'템인, 무어인, 스퀵테르인, 가룬인의 사대 양아치 종족과는 근접전 금지다.
덧붙여 수중에서 라출노그인과 싸우게 되면 자결하는 것이 행복하다.
케트쿤인들과 일대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그들이 열명 이상 모이면
이쪽이 100명이 될 때까진 도망쳐라, 알았나!'

기초훈련 시절의 교관의 충고가 갑자기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
어느덧 손톱소리가 약간 거슬릴 정도로 커지자 미카도 락샤헤이론쪽으로 흘깃흘깃 곁눈질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눈치를 챘는가 싶어서 걸오가 귀를 기울여보니 미카가 아주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락샤헤이론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근데 헤일, 너 머린 왜 잘랐어?”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락샤헤이론의 앞에 있던 식기들이 박살 났다. 이어 그녀의 전신에서 피부가 저릴 정도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경질화된 손톱들도 길쭉하게 솟아나 식탁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화기애애했던 식당이 살기등등한 아수라장으로 변하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에? 에? 혹시 너 나 때문에 머릴 자른 거야? 엑? 설마 그때 그일 때문에?”

미카가 당황해서 뭐라고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늦고 말았다. 그 분의 신호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크루갈레시난 중령.”

그때까지 둘 사이에서 조용히 이끼를 핥고 있던 스제거 중령이 온화하게 말을 꺼냈다. 두 크루갈레시난 중령 중 한 사람은 지금 걸오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지만 스제거가 부른 것은 길길이 날뛰고 있는 쪽이었다.
스제거 중령은 전혀 스퀵테르인 답지 않은 부드러운 톤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 이 우주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냅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걸오와 그 밖의 우주군들은 그 질문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답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그러나 락샤헤이론은 우주군이 아니었다. 걸오는 그녀의 무지함에 애도하며 미카와 함께 고개를 잽싸게 숙였고 그 즉시 1식당 안에는 음속을 돌파하는 충격파가 연달아 휘몰아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함장 앞에서 영관급 장교 둘, 아니 전투종족 둘이 사투를 벌이다니 보통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함장인 모우는 무덤덤하게 보고만 있었고 걸오와 미카, 제루님을 비롯해 좀 알만한 사람들도 그다지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왜냐면 이 둘은 전혀 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어인이 정말로 싸운다면 전신을 전투형태로 변신시킬 것이고 스퀵테르인이 싸울 마음을 품었다면 눈이 번쩍인 다음 머리카락에서 증기가 솟구칠 것이다. 즉 지금 이 앞에서 펼쳐지는 난투극은 전투종족끼리의 약간 격한 바디 랭귀지인 것이다.

그리고 둘간의 대화는 락샤헤이론의 허리가 잘려나가며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스제거는 락샤헤이론의 멱살을 잡아든 채 눈을 마주보면서 조용히, 그러나 위압적으로 말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누군지 아는가? 바로 함장님일세.
혼돈과 질서를 만드신 분이 누군지 아는가? 바로 함장님 일세.
자네 고향별 무어와 신들을 만드신 분은 아는가? 이 또한 두말할 필요 없이 함장님일세.
바깥에서 뭐라고 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만 이것만은 알아두게.
이 아이사타호에서 모든 삶과 죽음과 진리와 시간과 공간과 차원의 흐름은
바로 함장님의 뜻이란 것을.”

그러니까 그 배의 함장 눈밖에 나면 안 된다. 함장은 단순히 배의 최고지휘자란 뜻이 아니다. ‘함장’이란 이름으로 하계에 머무는 유일신은 그 신도들로부터 절대적인 믿음을 받고 있으며 그의 위치는 절대 불가침의 성역이다. 가령 연방 대통령이 어뢰정에 승선한다 해도 그의 자리는 정장 옆의 차석이며 우주함대의 제독이 승선한다 해도 그가 그 배의 함장이 아닌 이상 제독은 신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사타호의 신은 간만의 활극이 싱겁게 끝나자 약간 실망했다는 톤으로 말을 했다.

“흠, 어인 소란인가?”

“송구합니다. 락샤헤이론 중령이 모르는 것이 있어 가르쳐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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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월간 연재 아니라니까요.
그럼 내년에 뵙겠습니다.

ps) 멕워리어란 단어가 나오는데…이거 저작권법에 걸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