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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데시코 외전 : 호넷 - 작가 : Frank
글 수 87
2204년 03월 13일. 09시 00분. 워싱턴
"그러면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틴 해밀턴' 대장."
"네. 의장님."
"이 자리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시겠습니까?"
"맹세합니다."
"좋습니다. 의원님들은 질문을 하십시오."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하원 의원들은 해밀턴 대장에게 예리한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해밀턴 대장, 국방성이 제출한 서류에 의하면 육군 관할의 연구소
들이 타군 소속 연구소들보다 연구비를 가장 많이 지급 받은 것으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자금을 어느 연구에 동원했습니까?"
"보안상 대외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서류에 기재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의원님들께 그 연구에 관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곧 해밀턴 대장은 갖고온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렸고 외장
식 홀로그램 재생기가 작동하면서 입체 영상을 보여주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육군은 차세대 일렉트로닉 페어리들과 관
련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그 중 31가지 항목이 다른 분야
에 응용이 가능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얘기가 나오자 의원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의심을 표하지
않았다. 연구 목적의, 그리고 군 주도하의 사업은 그 목적과 수단이
무엇이건 쉽게 용인 받기 때문이다.
"해밀턴 대장. 차세대 일렉트로닉 페어리들이 기존의 페어리들과 특
별히 우월한 점이 있습니까?"
"모두 두 가지 입니다. 통제하기가 쉬우며, 즉시 제조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연방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네. 만성적인 인원 부족에 시달리는 기술 병과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정보의 분석과 복잡한 전자 장비의 사용
등 고급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어려운 점이 많은 부서가 차세대 일
렉트로닉 페어리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종교 단체가 반발하지 않을까요?"
"이미 사멸화 되어가는 집단의 주장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종교 단체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멋지게 반문한 해밀턴 대장
은 이후 쏟아져 나온 질문도 절묘하게 받아 넘겼고, 청문회가 끝나
자 여유 있게 밖으로 나가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2204년 03월 13일. 08시 40분. 온두라스 요로
"정말 모른단 말입니까?"
"믿어주십쇼. 저희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받아 주겠
습니까?"
귀에 목소리가 들리자 잠시 눈을 뜬 글렌은 품 안에 넣어둔 권총에
손을 댔다. 쥬티칼파에서 요로 까지 도망쳐온 그가 이 이름 모를 마
을에 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사건 당일, 차를 훔쳐 타는데 성공한 그는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차를 몰던 중 길가에서 여아를 강간하려는 마약 조직의 행동대원들
이 눈에 들어오자 앞 뒤 잴 것 없이 그들을 제거한 후 소녀를 구해
주었고, 소녀는 자신이 살던 마을로 안내해 주었다. 마을에 도착한
그는 소녀에게서 저간의 사정을 들은 주민들로부터 다소 과한 대접
을 받았고, 반군과 연줄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그를 반군 간부들에
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미스터 글렌. 정부군이 갔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군이 떠났다는 말에 글렌은 안도한 표정을 지은 후 일어섰고,
그가 기거하는 방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던 반군 간부들과
마주 앉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꼭 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사히 귀국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걸 부탁하겠습니다."
"이건 뭡니까?"
"세상에 알려야 할 진실들이 담긴 물건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싫어
합니다. 하지만, 당신과 같은 미국의 시민들은 우리의 절규를 외면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고서 그 믿음
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너무 과분합니다. 고작 한 개인에게..."
"우리말고도 당신을 도와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부에 알릴 기회가 전무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자신에게 어려운 일을 맡긴 이 온두라스인들이 안타깝기만
한 글렌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반드시 이걸 세상에 보여주겠습니다."
"그 대답 만으로도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입니다. 그러면 저희가 준
비한 탈출 루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204년 03월 13일. 09시 40분. 포트 브렉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미 육군의 정예 특수부대 그린 베레의 고향인 포트 브렉에 자리한
특수전 교육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UN상비군에서 보낸 훈련
생들은 교관이 언급하는 사항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요점을 메모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그들 중엔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마키비
하리'도 끼어 있었다.
하리는 강의 내용을 적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외우면서 그 이론들
을 머리 속에 담느라 애썼다. 바로 그때였다.
"마키비 훈련생."
"네. 훈련생 '하리 마, 키, 비'!"
"귀관이 만에 하나 총격전에 휩쓸린다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한다
고 생각하나?"
난데 없는 질문에 훈련생들이 의아해하는 가운데 하리는 망설임 없
이 곧바로 대답했다.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다. 힌트를 주자면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
다. 누구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없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교관은 피식 웃은 후 말했다.
"왜 다들 그렇게 생각이 없나?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바로
전우다. 예로부터 여러 전사 연구가들은 전장에서 성공적으로 생환
하는 군인들의 심리에 관해 연구했었고, 그 이유가 바로 전우애였음
을 밝혀냈다. 그 전우애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귀관들에겐 유치
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전쟁과 함께 하면서 수많은 군인들이 자기 옆의 동
료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그 일념만으로 희생을 무릎 썼고, 이기진
못할 지라도 아군이 전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주는 훌륭한 방
파제 역할을 해냈었다. 그것은 귀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
다. 모두 내가 오늘 언급한 것들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만
강의를 마치겠다."
얼마 후 훈련생들은 교관에게 경례한 후 강의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젠장, 몸이 남아나지 않을 판국에 왜 강의를 하는 거야?"
"지금 당장은 그저 그렇겠지만, 언젠가 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이야. 참고 버텨야 하지 않겠어?"
다른 훈련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육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가
운데 하리는 혼자서 벤치에 앉은 채 조용히 앞을 응시하기만 했다.
"야, 누가 저녀석한테 말 좀 걸어봐라."
"뭐? 난 관심없어."
"나도 동감이야. 저녀석은 늘 '험프리 보가트'같은 인상을 풍겨서 가
까이 하고 싶지 않아."
"듣자하니까 쟤 메이저 루리를 짝사랑했다지?"
"뭐? 하하하... 좀 말이 될 소리를 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녀석은 참 바보로군. 그까짓 싸구려 매춘부
따위를 좋아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다소 무례한 언사를 늘어 놓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이 나눈 대
화는 UN 상비군을 비롯한 서방권 군대에서의 루리에 대한 전체적
인 인식의 한 단면이었다. 물론 하리 본인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
일 수 없는 모욕이었지만...
"어? 저녀석 왜 저래?"
상황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분개한 하리가 뛰어올라 발로 동료 훈련
생을 차버리자 싸움이 벌어졌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하리는 일방
적으로 맞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다들 적당히 해."
마악 하리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주먹으로 치려던 훈련생의 어깨를
잡은 미 해병대 장교는 매서운 눈빛으로 모두 싸움을 그만두게 한
후 하리를 일으켜 세워줬다.
"괜찮나?"
"네."
"모두 돌아가.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곧 단 둘만 있게 되자 하리는 그 장교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말하기 뭣하지만, 인연 때문이었네... 좀 늦었지만 내 소개를 해야
겠군. '마이클 돌로레스'네. 계급은 소령."
"저는..."
"'마키비 하리'. 계급은 중위. 전 나데시코 승조원. 맞나?"
"네..."
"자네 함장이 조난 당했던 일이 계기가 되어서 나데시코의 일에 관
심을 갖게 됐지. 나쁘게 보진 말게."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남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것 뿐이야..."
돌로레스 소령은 거기 까지 말하고는 일어선 후 자신이 근무 중인
부서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다른 얘기들은 나중에 하세. 지금 당장은 일이 급하니까."
"그러면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틴 해밀턴' 대장."
"네. 의장님."
"이 자리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시겠습니까?"
"맹세합니다."
"좋습니다. 의원님들은 질문을 하십시오."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하원 의원들은 해밀턴 대장에게 예리한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해밀턴 대장, 국방성이 제출한 서류에 의하면 육군 관할의 연구소
들이 타군 소속 연구소들보다 연구비를 가장 많이 지급 받은 것으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자금을 어느 연구에 동원했습니까?"
"보안상 대외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서류에 기재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의원님들께 그 연구에 관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곧 해밀턴 대장은 갖고온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렸고 외장
식 홀로그램 재생기가 작동하면서 입체 영상을 보여주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육군은 차세대 일렉트로닉 페어리들과 관
련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그 중 31가지 항목이 다른 분야
에 응용이 가능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얘기가 나오자 의원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의심을 표하지
않았다. 연구 목적의, 그리고 군 주도하의 사업은 그 목적과 수단이
무엇이건 쉽게 용인 받기 때문이다.
"해밀턴 대장. 차세대 일렉트로닉 페어리들이 기존의 페어리들과 특
별히 우월한 점이 있습니까?"
"모두 두 가지 입니다. 통제하기가 쉬우며, 즉시 제조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연방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네. 만성적인 인원 부족에 시달리는 기술 병과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정보의 분석과 복잡한 전자 장비의 사용
등 고급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어려운 점이 많은 부서가 차세대 일
렉트로닉 페어리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종교 단체가 반발하지 않을까요?"
"이미 사멸화 되어가는 집단의 주장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종교 단체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멋지게 반문한 해밀턴 대장
은 이후 쏟아져 나온 질문도 절묘하게 받아 넘겼고, 청문회가 끝나
자 여유 있게 밖으로 나가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2204년 03월 13일. 08시 40분. 온두라스 요로
"정말 모른단 말입니까?"
"믿어주십쇼. 저희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받아 주겠
습니까?"
귀에 목소리가 들리자 잠시 눈을 뜬 글렌은 품 안에 넣어둔 권총에
손을 댔다. 쥬티칼파에서 요로 까지 도망쳐온 그가 이 이름 모를 마
을에 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사건 당일, 차를 훔쳐 타는데 성공한 그는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차를 몰던 중 길가에서 여아를 강간하려는 마약 조직의 행동대원들
이 눈에 들어오자 앞 뒤 잴 것 없이 그들을 제거한 후 소녀를 구해
주었고, 소녀는 자신이 살던 마을로 안내해 주었다. 마을에 도착한
그는 소녀에게서 저간의 사정을 들은 주민들로부터 다소 과한 대접
을 받았고, 반군과 연줄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그를 반군 간부들에
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미스터 글렌. 정부군이 갔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군이 떠났다는 말에 글렌은 안도한 표정을 지은 후 일어섰고,
그가 기거하는 방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던 반군 간부들과
마주 앉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꼭 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사히 귀국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걸 부탁하겠습니다."
"이건 뭡니까?"
"세상에 알려야 할 진실들이 담긴 물건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싫어
합니다. 하지만, 당신과 같은 미국의 시민들은 우리의 절규를 외면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고서 그 믿음
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너무 과분합니다. 고작 한 개인에게..."
"우리말고도 당신을 도와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부에 알릴 기회가 전무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자신에게 어려운 일을 맡긴 이 온두라스인들이 안타깝기만
한 글렌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반드시 이걸 세상에 보여주겠습니다."
"그 대답 만으로도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입니다. 그러면 저희가 준
비한 탈출 루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204년 03월 13일. 09시 40분. 포트 브렉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미 육군의 정예 특수부대 그린 베레의 고향인 포트 브렉에 자리한
특수전 교육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UN상비군에서 보낸 훈련
생들은 교관이 언급하는 사항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요점을 메모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그들 중엔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마키비
하리'도 끼어 있었다.
하리는 강의 내용을 적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외우면서 그 이론들
을 머리 속에 담느라 애썼다. 바로 그때였다.
"마키비 훈련생."
"네. 훈련생 '하리 마, 키, 비'!"
"귀관이 만에 하나 총격전에 휩쓸린다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한다
고 생각하나?"
난데 없는 질문에 훈련생들이 의아해하는 가운데 하리는 망설임 없
이 곧바로 대답했다.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다. 힌트를 주자면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
다. 누구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없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교관은 피식 웃은 후 말했다.
"왜 다들 그렇게 생각이 없나?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바로
전우다. 예로부터 여러 전사 연구가들은 전장에서 성공적으로 생환
하는 군인들의 심리에 관해 연구했었고, 그 이유가 바로 전우애였음
을 밝혀냈다. 그 전우애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귀관들에겐 유치
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전쟁과 함께 하면서 수많은 군인들이 자기 옆의 동
료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그 일념만으로 희생을 무릎 썼고, 이기진
못할 지라도 아군이 전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주는 훌륭한 방
파제 역할을 해냈었다. 그것은 귀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
다. 모두 내가 오늘 언급한 것들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만
강의를 마치겠다."
얼마 후 훈련생들은 교관에게 경례한 후 강의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젠장, 몸이 남아나지 않을 판국에 왜 강의를 하는 거야?"
"지금 당장은 그저 그렇겠지만, 언젠가 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이야. 참고 버텨야 하지 않겠어?"
다른 훈련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육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가
운데 하리는 혼자서 벤치에 앉은 채 조용히 앞을 응시하기만 했다.
"야, 누가 저녀석한테 말 좀 걸어봐라."
"뭐? 난 관심없어."
"나도 동감이야. 저녀석은 늘 '험프리 보가트'같은 인상을 풍겨서 가
까이 하고 싶지 않아."
"듣자하니까 쟤 메이저 루리를 짝사랑했다지?"
"뭐? 하하하... 좀 말이 될 소리를 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녀석은 참 바보로군. 그까짓 싸구려 매춘부
따위를 좋아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다소 무례한 언사를 늘어 놓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이 나눈 대
화는 UN 상비군을 비롯한 서방권 군대에서의 루리에 대한 전체적
인 인식의 한 단면이었다. 물론 하리 본인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
일 수 없는 모욕이었지만...
"어? 저녀석 왜 저래?"
상황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분개한 하리가 뛰어올라 발로 동료 훈련
생을 차버리자 싸움이 벌어졌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하리는 일방
적으로 맞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다들 적당히 해."
마악 하리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주먹으로 치려던 훈련생의 어깨를
잡은 미 해병대 장교는 매서운 눈빛으로 모두 싸움을 그만두게 한
후 하리를 일으켜 세워줬다.
"괜찮나?"
"네."
"모두 돌아가.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곧 단 둘만 있게 되자 하리는 그 장교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말하기 뭣하지만, 인연 때문이었네... 좀 늦었지만 내 소개를 해야
겠군. '마이클 돌로레스'네. 계급은 소령."
"저는..."
"'마키비 하리'. 계급은 중위. 전 나데시코 승조원. 맞나?"
"네..."
"자네 함장이 조난 당했던 일이 계기가 되어서 나데시코의 일에 관
심을 갖게 됐지. 나쁘게 보진 말게."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남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것 뿐이야..."
돌로레스 소령은 거기 까지 말하고는 일어선 후 자신이 근무 중인
부서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다른 얘기들은 나중에 하세. 지금 당장은 일이 급하니까."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