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년 03월 09일. 20시 55분. 워싱턴

'잭 스트로'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남미 문제와 관련된 보고
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는 CIA와 국무성이 긴밀한 협조하에 남미
각국에 비밀리에 파견한 SSW(Special Sweeper)가 예상 이상의 전
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과 6개월만 더 임무를 수행하면 남미 각지에
서 활동하는 반미주의적 경향의 반정부 세력을 완전히 일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에겐 매우 좋은 소식이었다.
얼마 후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스트로 대통령은 시
선을 문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들어오게."

곧 한 명의 육군 장성이 들어왔고, 대통령은 그에게 자리에 앉을 권
한 후 소파에 앉았다.

"자네의 제안을 실행한 덕분에 큰 성과를 거뒀어. 정말 고맙네."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늦은 감이 없지만,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역시 내겐 자네 뿐일세."

이렇게 해서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스트로 대통령은 눈 앞
의 장성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2204년 03월 09일. 21시 30분. 뉴욕

"아키토, 오늘 영업은 안 해도 돼?"
"기껏해야 하룻밤 쉬는 거니까 걱정말고 마음껏 즐기기만 해."
"꺄아, 아키토 화끈해!"
"히카루씨..."

히카루가 아키토를 껴안자 순간적으로 화가 난 유리카를 본 리리스
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나데시코 크루들
은 정말이지...

"여어, 다들 잘 지냈나?"
"패, 패튼 장군? 거기다 라피스쨩까지?"
"안녕하세요."

느긋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온 패튼 장군과 라피스는 점점 달아오르
는 모임의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해주었다. 사정상 모두 모이진
못했지만, 호네트의 함장이었던 햄튼 제독과 밋첼 남매 그리고 아크
엔젤의 파리스 함장도 모두와 잘 어울렸다.

"만나서 반갑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햄튼 제독은 계급으로 따지면 자신보다 상관인 패튼 장군에게 경어
를 쓰면서 조용히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
했다.

"장군님, 요즘 이상한 낌새 같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딱히 느낄만한 것도 없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내나?"
"다름이 아니라 육군 4성 장군인..."
"그 자에 관한 얘기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네.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도 따라다니더군..."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그 자가 요즘 목성 연합의 과학자와 기술자
들을 모처의 장소로 옮겨서 연구 과제를 주면서 관리한다더군요. 의
회에서 그 자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미 문제까지 들어가면 그 자의 영향력이 매우 커지고 있
다는 점이..."

햄튼 제독은 거기 까지 말한 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제독으
로부터 심각한 얘기를 들은 패튼 장군은 잔에 담긴 술을 천천히 음
미하면서 달력에 그려진 횃불과 독립 선언문 대신 무기를 들고 있
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2204년 03월 09일. 23시 00분. 산살바도르

엘살바도르의 수도이자 눈물과 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진 산살바도
르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높이 솟은 마천루, 거리를 가득 메
운 고급 승용차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내전에 시달렸던 그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번영한 모습을 지닌 엘살바도르
였지만, 그 이면엔 말 못할 사실이 숨어 있었다. 1차 냉전이 종료된
21세기 초부터 활발해진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과 뜻있는 시민들의
비난 여론에 밀린 미국은 22세기 중반에 남미 각국을 상대로 한 드
러나 보이는 간섭을 모두 중지하고 해당 국가 국민들의 자결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었다.
그것이 자의였든, 통합의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었든 간에 미국은
자국의 남미 각국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시켰고, 이에 발 맞추어 제2
의 먼로주의라고 불리는 벤플리트 선언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었다. 그로 인해 세계 각국은 극악한
독재자들이 이끄는 몇몇 나라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를 제외하
고는 조용히 지내왔지만, 목성 연합으로 인해 벌어진 두 차례의 전
쟁이 이 흐름을 깨뜨리고 말았다. 첫 전쟁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
두 번째 전쟁에서 그 무능함이 드러난 통합이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진 채 일본에 의존해 왔던 남미 각국에
게 이것은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던 남미
각국의 일부 정치 집단은 미국에 추파를 던졌다. 그러자 미국은 변
함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게
함으로서 남미에 복귀할 발판을 마련했고, 그 결과 남미에선 피바람
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모두 일어나! 싸우러 갈 시간이 왔다!"

캠페인 햇을 착용한 장교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나오자 자고 있
던 군인들이 모두 일어나 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목엔
숫자와 영문 코드가 새겨진 군번줄이 걸려 있을뿐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없었다.

"1999호."
"부르셨습니까?"
"이번 작전이 끝나는 대로 외박을 해도 좋다. 꼭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그 말은 부대장님께 하도록. 난 어디까지나 알려주는 역할일 뿐이
다."

장교는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으며 막사에서 나갔다. 산살바도르
외곽의 인적이 드문 지점에 자리한 엘살바도르 육군의 주둔지엔 상
당수의 미군이 생활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
들은 엘살바로드 정부 관계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그
들은 예전과 달리 외부에 그 정체가 노출되지 않은 자들이어서 세
계 각국에선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었다.

"준비되는 대로 출발해. 이번엔 장기 작전이라 가져가야 할 물자가
많을 거야."
"여단장님, 지금 생각난 겁니다만..."
"말하게."
"1896호와 1999호가 일반 병사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행동?"
"다른 병사들과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고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매우 많습니다."
"AAA급 병사들의 공통된 습관일 뿐이다. 괜한 의심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얼마 후 병사들을 태운 MV-45M의 대편대가 기지 활주로에서 이륙
해 모종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여단장이라고 불리운
군인은 이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