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SF, 판타지,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소설이나 개인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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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킹덤 간호로봇 바사기의 하루]
바사기는 충전용 포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고민을 정리하고 있었다. 3호가 만든 가상세계를 체험 한 이후부터 바사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가상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만들어진 인격의 아바타, 그 아바타는 분명 인간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해지는 감각, 청소로봇용으로 만들어진 본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접한 이후 그, 아니 그녀는 자신을 이끌어준 3호의 내밀어진 손을 잡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기도 했다.
3호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전해진 전류가 바사기의 AI모듈을 다운시킨 듯 주변의 시간이 멈추어진 경험.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AI는 그 감정을 연심(戀心)이라고 판단하였다. 데이터 판단의 근거는 방금전까지도 시청한 드라마가 있었다. 젊은 남녀가 해변에서 손을 잡는 행동은 반드시 연인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유일까? 3호를 향한 바사기의 행동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른 인물들을 대하는 것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3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신도 놀랄 정도로 변한 자신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3호의 곁으로 가는 것 만으로도 바사기의 말투와 행동은 드라마에서 보던 사랑에 빠진 소녀와 변해버린다. 아쉽게도 본 모습은 그대로지만 말이다.
"....삐익 충전완료."
바사기는 충전을 끝내며 자신의 창조자인 강훈 반장에게 가기로 했다. 최근에 섭렵한 드라마에서는 연인이 교제함에 있어서 부모의 허가는 중요했던 것이다. 부모의 반대 끝에 비극으로 치달아버린 내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 같은 존재인 강훈에게 3호와의 교제를 허가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써본적이 없는 간호식 데이터를 활용한 죽도 준비해 두었다. 처음 만드는 죽이었지만 데이터에 근거해 만들어진 맛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랜덤한 하늘에 맡기며 머릿속에서 행복한 그림을 그린 바사기는 평소와 달리 이동모듈에 연산량을 늘리며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린킹덤 동북아지부 책임자 닥터 노스트라의 하루]
가을의 문턱을 지나니 야속하리만큼 흰 구름은 하늘 높이 더 높이 떠올라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빛은 여름보다 더 강렬한 듯 따갑게 닥터 노스트라의 등에 내리 쬐며 황량한 산지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자에서 꿈쩍않고 있던 그를 향해 인근에서 사는 농부처럼 보이는 3명의 중년 남성들이 정류장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농사꾼의 모습과 달리 모두 모진 풍파를 겪은 역전의 용사마냥 강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 중에 가운데 있던 가장 뚱뚱하고 키가 큰 한명이 노스트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정류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노스트라에게 향한 것이리라. 노스트라는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일으키며 형형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순 안타까운 듯 한 빛이 비추어지긴 했지만 이내 사라지곤 그가 있는 곳에 온 3명의 중년 남성들과 함께 버스 정류장 뒷 편으로 걸어갔다.
대략 10분쯤 걸어간 그 곳에는 뼈대만 남은 건물의 잔해가 있었다. 그들은 잔해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건물의 중심부에 숨겨진 비밀통로를 거쳐 숨겨진 내부로 들어섰다. 아무말도 없던 그들 사이에서 노스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비교적 멀쩡한 것 같군."
그러자 뚱뚱한 중년인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마! 우리가 아직도 관리하고 있는데. 그런데 너 많이 말랐데이."
그에 맞장구를 치며 뚱뚱한 중년이 우측 옆에 있던 말쑥하게 생긴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노스트라 형님 진짜 억수로 말랐네, 덕배형은 배만 나오는데 말여"
노스트라는 혀를 찼다.
"쯧! 서울 놈들이 시골 촌구석에서 살더니 지역 불명의 사투리만 늘었구나. 현지 코스프레냐."
"뭐얏! 벌써 10년인데 이정도면 괜찮지 여전히 냉혹하네 너"
덕배라 불린 인물이 발끈하자. 그의 좌측에서 걸어가던 빼빼마르고 안경을 쓴 사람이 웃기 시작했다.
"푸하핫, 역시 노스트라 형님, 덕배형과 준상이형이 역으로 한방 먹었네요. 이 기지는 우리가 매년 청소하고 있어요."
"흥 그렇군, 답없는 놈들 사이에서 준수 네가 고생이 많다."
그렇게 신변에 대한 농을 주고 받던 그들은 테이블이 놓여진 공간에 도착했다. 준수라 불린 인물이 말한 것과 같이 내부는 깨끗하게 정도되어 있었다. 10년전 히어로 협회의 공격으로 무너지기 전과 같이,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기술관련 서류와 실험무기가 정돈되어 있던 곳에 월간 농촌시대라는 잡지와 괴상하게 변형되긴 했지만 분명 농기구라고 보여지는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다르지만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노스트라가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4명. 이들은 과거 10년전 히어로 협회와 싸움을 함께했던 동료들인 것이다.
현재는 그린킹덤에 속한 닥터 노스트라, 현재는 농사꾼이지만 로봇 발명왕 대회에서 12살이라는 사상 최연소 로봇 개발자에 올랐던, 최덕배, 그리고 같은 팀 소속의 윤준상, 윤준수 형제. 이들의 인연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별다른 세력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 파일럿으로 일하던 노스트라는 대둔산 자락에 위치한 어떤 비밀조직의 의뢰를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후 먼저 와있던 비슷한 연배의 로봇 개발자 최덕배와 그의 후배들인 준상, 준수 형제를 만나 의기투합하며 일을 했지만 일을 준 비밀조직이 히어로협회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위험조직으로 등재되어 개발비 잔금을 받기 한달 전에 공격을 받아 망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노스트라는 다시 프리랜서 로봇 개발자로, 그리고 최덕배와 그의 후배들은 취미삼아 가꾸던 텃발을 기반으로 최첨단 농사꾼이 되었던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나누어 주지."
노스트라는 품 안에서 3개의 각설탕 만한 조각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해골지팡이를 내밀어 광선을 발사시키자 3개의 조각이 점차 커져 녹색왕국식품이 자랑하는 보양건강캡슐 [인생절정 150세시대] 박스가 되었다.
"어이쿠 이런 걸 다 가지고 왔어~역시 그린킹덤이군."
"고맙습니다. 형님. 흐흐"
"이거면 실험작물 팟쿤EX를 10그루는 심겠네요."
길이 100미터에 달하는 어떤 식물의 강화체를 더 심을 생각에 윤준수가 기뻐하는 듯 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닥터 노스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부탁한 내용 말인데, 어떤가 준비는 되어 있겠지?"
"우물우물 그럼! 걱정말라고! 격납고로 가보면 알거야."
어느 틈에 보양캡슐을 한움큼 까서 입에 넣은 최덕배가 우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후에 격납고로 자리를 옮기자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타이탄과 비슷한 체격의 거대 로봇 3대가 먼지를 뒤집어 쓴 체 놓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슷한 체격이지만 타이탄과 달리 뿔은 없고 마스크도 단순한 형태였다. 이 로봇들은 최덕배와 후배들이 만들었던 로봇으로 그래도 나름 다른 히어로들 틈에서 조연급 정도의 활약을 보이던 로봇이었는데 그들이 농업에 매진하는 이유로 이렇게 격납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흐음.."
닥터 노스트라가 신중하게 가지고 있던 해골지팡이를 들어서 스캐닝 레이저로 로봇들을 흝었다.
- 삐빗.
해골지팡이에서 스캔 종료 소리가 나오자 노스트라는 쓰고 있던 외알 안경을 통해서 내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결손 부위나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히어로협회의 공격이 있던 날 노스트라의 타이탄도 그렇지만 이 로봇들도 유일한 사출구이던 본부 천장이 무너져 밖으로 나가서 싸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비밀조직의 윗선은 모두 진작에 도망가버렸고 이들만 남아서 취조를 당해야 했었다. 물론 이들이 프리랜서였다는 점을 알게된 히어로협회가 놔주긴 했지만 나름 한성질 하던 사람들이라 히어로들과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노스트라는 당시 직접 나온 현 히어로협회의 회장과 1대 1로 싸운 일도 있었다.
"어때? 괜찮지? 이거 가지고 가서 그대로 써도 된다니까."
최덕배는 캡슐로 채운 배를 손으로 치며 탕탕 거렸다. 사실 별도의 정비는 거치지 않았지만 만들 때부터 10년정도 내버려 둔다고 망가질 만큼 허접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자신감이었다.
그 모습이 조금 맘에 들지 않지만 이를 참으며 노스트라는 덕배를 보고 말했다.
"좋아, 그건 그렇고 배달은 해주겠지?"
"뭐야? 너네 파일럿 없냐? 참 손이 간다니까. 하하하"
강훈은 수면부족, 1호는 오늘 출근, 2호는 장염 입원, 3호는 급성 피로로 입원 했으니 로봇을 운반하는 일에는 이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운송비도 얹어서 줄테니까."
"알겠다. 그럼 언제 필요한지 시간하고 장소만 말해!"
그렇게 1시간정도 세부적인 조율이 끝나고 나서야 노스트라가 생각한 전력 보강을 위한 로봇의 인수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이미 결정된 금액을 가지고 자금 집행을 담당하는 그린 바이탈을 설득하는 일이었지만 쉽진 않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린 바이탈도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닥터 노스트라가 갑작스럽게 이미 은퇴한 로봇 개발자이자 파일럿들을 만난 이유가 있었는데, 총독 아스트라가 다음 번 전투를 직접 관전하겠다는 선언이 그 시작이었다. 사실상 테크노포스와의 전투에서 졌다면 어차피 그 시점으로 그린킹덤은 정리되는 것이었지만 노스트라가 노린 점이 들어맞아 무승부를 하게되자 총독 아스트라가 격려라는 이유로 방문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격려의 의미가 아니라 동북아지부의 정리를 위한 내부 점검의 성격이 크다는 것을 그린 바이탈의 귀뜸을 통해 들었던 노스트라는 팩토리엠페러와의 다음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 전력 보강이 필요했는데 마침 최덕배들이 생각난 그가 연락을 걸어 인수를 타진했고 서로의 조율을 위하여 오늘 방문 확인했던 것이었다.
'나머지는 이 것들을 어떻게 타이탄과 같은 시스템으로 개조하느냐 인데 훈이가 또 뒷목을 잡겠구만.'
그렇다 이후의 문제는 강훈 반장과 타이탄 팀의 활약에 달려 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긴 하지만 보강하고 보수해야 할 부분은 있었던 것이다. 철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과중한 업무를 던져주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이번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총독 아스트라의 면전에서 패배한다면 분명 결과는 예상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닥터 노스트라는 지팡이의 해골 부분을 잡고 쓰다듬었다. 이미 미녀의 방문이라는 계략은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기지로 돌아온 노스트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비밀통신을 위한 단말기를 꺼냈다.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닥터 노스트라가 보낸 메시지가 J박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쯧쯧..매몰차기는..."
어제 사정을 말하고 이번에는 져주면 안되냐고 물어봤을 때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후우..한가지 정도는 더 준비해 두는 게 좋겠군.."
그렇게 그린킹덤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이야기와 함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바사기는 충전용 포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고민을 정리하고 있었다. 3호가 만든 가상세계를 체험 한 이후부터 바사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가상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만들어진 인격의 아바타, 그 아바타는 분명 인간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전해지는 감각, 청소로봇용으로 만들어진 본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정보를 접한 이후 그, 아니 그녀는 자신을 이끌어준 3호의 내밀어진 손을 잡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기도 했다.
3호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전해진 전류가 바사기의 AI모듈을 다운시킨 듯 주변의 시간이 멈추어진 경험.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AI는 그 감정을 연심(戀心)이라고 판단하였다. 데이터 판단의 근거는 방금전까지도 시청한 드라마가 있었다. 젊은 남녀가 해변에서 손을 잡는 행동은 반드시 연인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유일까? 3호를 향한 바사기의 행동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른 인물들을 대하는 것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3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신도 놀랄 정도로 변한 자신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3호의 곁으로 가는 것 만으로도 바사기의 말투와 행동은 드라마에서 보던 사랑에 빠진 소녀와 변해버린다. 아쉽게도 본 모습은 그대로지만 말이다.
"....삐익 충전완료."
바사기는 충전을 끝내며 자신의 창조자인 강훈 반장에게 가기로 했다. 최근에 섭렵한 드라마에서는 연인이 교제함에 있어서 부모의 허가는 중요했던 것이다. 부모의 반대 끝에 비극으로 치달아버린 내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 같은 존재인 강훈에게 3호와의 교제를 허가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써본적이 없는 간호식 데이터를 활용한 죽도 준비해 두었다. 처음 만드는 죽이었지만 데이터에 근거해 만들어진 맛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랜덤한 하늘에 맡기며 머릿속에서 행복한 그림을 그린 바사기는 평소와 달리 이동모듈에 연산량을 늘리며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린킹덤 동북아지부 책임자 닥터 노스트라의 하루]
가을의 문턱을 지나니 야속하리만큼 흰 구름은 하늘 높이 더 높이 떠올라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빛은 여름보다 더 강렬한 듯 따갑게 닥터 노스트라의 등에 내리 쬐며 황량한 산지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자에서 꿈쩍않고 있던 그를 향해 인근에서 사는 농부처럼 보이는 3명의 중년 남성들이 정류장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농사꾼의 모습과 달리 모두 모진 풍파를 겪은 역전의 용사마냥 강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 중에 가운데 있던 가장 뚱뚱하고 키가 큰 한명이 노스트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정류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노스트라에게 향한 것이리라. 노스트라는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일으키며 형형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순 안타까운 듯 한 빛이 비추어지긴 했지만 이내 사라지곤 그가 있는 곳에 온 3명의 중년 남성들과 함께 버스 정류장 뒷 편으로 걸어갔다.
대략 10분쯤 걸어간 그 곳에는 뼈대만 남은 건물의 잔해가 있었다. 그들은 잔해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건물의 중심부에 숨겨진 비밀통로를 거쳐 숨겨진 내부로 들어섰다. 아무말도 없던 그들 사이에서 노스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비교적 멀쩡한 것 같군."
그러자 뚱뚱한 중년인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마! 우리가 아직도 관리하고 있는데. 그런데 너 많이 말랐데이."
그에 맞장구를 치며 뚱뚱한 중년이 우측 옆에 있던 말쑥하게 생긴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노스트라 형님 진짜 억수로 말랐네, 덕배형은 배만 나오는데 말여"
노스트라는 혀를 찼다.
"쯧! 서울 놈들이 시골 촌구석에서 살더니 지역 불명의 사투리만 늘었구나. 현지 코스프레냐."
"뭐얏! 벌써 10년인데 이정도면 괜찮지 여전히 냉혹하네 너"
덕배라 불린 인물이 발끈하자. 그의 좌측에서 걸어가던 빼빼마르고 안경을 쓴 사람이 웃기 시작했다.
"푸하핫, 역시 노스트라 형님, 덕배형과 준상이형이 역으로 한방 먹었네요. 이 기지는 우리가 매년 청소하고 있어요."
"흥 그렇군, 답없는 놈들 사이에서 준수 네가 고생이 많다."
그렇게 신변에 대한 농을 주고 받던 그들은 테이블이 놓여진 공간에 도착했다. 준수라 불린 인물이 말한 것과 같이 내부는 깨끗하게 정도되어 있었다. 10년전 히어로 협회의 공격으로 무너지기 전과 같이,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기술관련 서류와 실험무기가 정돈되어 있던 곳에 월간 농촌시대라는 잡지와 괴상하게 변형되긴 했지만 분명 농기구라고 보여지는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다르지만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노스트라가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4명. 이들은 과거 10년전 히어로 협회와 싸움을 함께했던 동료들인 것이다.
현재는 그린킹덤에 속한 닥터 노스트라, 현재는 농사꾼이지만 로봇 발명왕 대회에서 12살이라는 사상 최연소 로봇 개발자에 올랐던, 최덕배, 그리고 같은 팀 소속의 윤준상, 윤준수 형제. 이들의 인연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별다른 세력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 파일럿으로 일하던 노스트라는 대둔산 자락에 위치한 어떤 비밀조직의 의뢰를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후 먼저 와있던 비슷한 연배의 로봇 개발자 최덕배와 그의 후배들인 준상, 준수 형제를 만나 의기투합하며 일을 했지만 일을 준 비밀조직이 히어로협회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위험조직으로 등재되어 개발비 잔금을 받기 한달 전에 공격을 받아 망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노스트라는 다시 프리랜서 로봇 개발자로, 그리고 최덕배와 그의 후배들은 취미삼아 가꾸던 텃발을 기반으로 최첨단 농사꾼이 되었던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나누어 주지."
노스트라는 품 안에서 3개의 각설탕 만한 조각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해골지팡이를 내밀어 광선을 발사시키자 3개의 조각이 점차 커져 녹색왕국식품이 자랑하는 보양건강캡슐 [인생절정 150세시대] 박스가 되었다.
"어이쿠 이런 걸 다 가지고 왔어~역시 그린킹덤이군."
"고맙습니다. 형님. 흐흐"
"이거면 실험작물 팟쿤EX를 10그루는 심겠네요."
길이 100미터에 달하는 어떤 식물의 강화체를 더 심을 생각에 윤준수가 기뻐하는 듯 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닥터 노스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부탁한 내용 말인데, 어떤가 준비는 되어 있겠지?"
"우물우물 그럼! 걱정말라고! 격납고로 가보면 알거야."
어느 틈에 보양캡슐을 한움큼 까서 입에 넣은 최덕배가 우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후에 격납고로 자리를 옮기자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타이탄과 비슷한 체격의 거대 로봇 3대가 먼지를 뒤집어 쓴 체 놓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슷한 체격이지만 타이탄과 달리 뿔은 없고 마스크도 단순한 형태였다. 이 로봇들은 최덕배와 후배들이 만들었던 로봇으로 그래도 나름 다른 히어로들 틈에서 조연급 정도의 활약을 보이던 로봇이었는데 그들이 농업에 매진하는 이유로 이렇게 격납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흐음.."
닥터 노스트라가 신중하게 가지고 있던 해골지팡이를 들어서 스캐닝 레이저로 로봇들을 흝었다.
- 삐빗.
해골지팡이에서 스캔 종료 소리가 나오자 노스트라는 쓰고 있던 외알 안경을 통해서 내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결손 부위나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히어로협회의 공격이 있던 날 노스트라의 타이탄도 그렇지만 이 로봇들도 유일한 사출구이던 본부 천장이 무너져 밖으로 나가서 싸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비밀조직의 윗선은 모두 진작에 도망가버렸고 이들만 남아서 취조를 당해야 했었다. 물론 이들이 프리랜서였다는 점을 알게된 히어로협회가 놔주긴 했지만 나름 한성질 하던 사람들이라 히어로들과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노스트라는 당시 직접 나온 현 히어로협회의 회장과 1대 1로 싸운 일도 있었다.
"어때? 괜찮지? 이거 가지고 가서 그대로 써도 된다니까."
최덕배는 캡슐로 채운 배를 손으로 치며 탕탕 거렸다. 사실 별도의 정비는 거치지 않았지만 만들 때부터 10년정도 내버려 둔다고 망가질 만큼 허접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자신감이었다.
그 모습이 조금 맘에 들지 않지만 이를 참으며 노스트라는 덕배를 보고 말했다.
"좋아, 그건 그렇고 배달은 해주겠지?"
"뭐야? 너네 파일럿 없냐? 참 손이 간다니까. 하하하"
강훈은 수면부족, 1호는 오늘 출근, 2호는 장염 입원, 3호는 급성 피로로 입원 했으니 로봇을 운반하는 일에는 이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운송비도 얹어서 줄테니까."
"알겠다. 그럼 언제 필요한지 시간하고 장소만 말해!"
그렇게 1시간정도 세부적인 조율이 끝나고 나서야 노스트라가 생각한 전력 보강을 위한 로봇의 인수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이미 결정된 금액을 가지고 자금 집행을 담당하는 그린 바이탈을 설득하는 일이었지만 쉽진 않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린 바이탈도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닥터 노스트라가 갑작스럽게 이미 은퇴한 로봇 개발자이자 파일럿들을 만난 이유가 있었는데, 총독 아스트라가 다음 번 전투를 직접 관전하겠다는 선언이 그 시작이었다. 사실상 테크노포스와의 전투에서 졌다면 어차피 그 시점으로 그린킹덤은 정리되는 것이었지만 노스트라가 노린 점이 들어맞아 무승부를 하게되자 총독 아스트라가 격려라는 이유로 방문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격려의 의미가 아니라 동북아지부의 정리를 위한 내부 점검의 성격이 크다는 것을 그린 바이탈의 귀뜸을 통해 들었던 노스트라는 팩토리엠페러와의 다음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 전력 보강이 필요했는데 마침 최덕배들이 생각난 그가 연락을 걸어 인수를 타진했고 서로의 조율을 위하여 오늘 방문 확인했던 것이었다.
'나머지는 이 것들을 어떻게 타이탄과 같은 시스템으로 개조하느냐 인데 훈이가 또 뒷목을 잡겠구만.'
그렇다 이후의 문제는 강훈 반장과 타이탄 팀의 활약에 달려 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긴 하지만 보강하고 보수해야 할 부분은 있었던 것이다. 철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과중한 업무를 던져주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이번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총독 아스트라의 면전에서 패배한다면 분명 결과는 예상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닥터 노스트라는 지팡이의 해골 부분을 잡고 쓰다듬었다. 이미 미녀의 방문이라는 계략은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기지로 돌아온 노스트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비밀통신을 위한 단말기를 꺼냈다.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닥터 노스트라가 보낸 메시지가 J박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쯧쯧..매몰차기는..."
어제 사정을 말하고 이번에는 져주면 안되냐고 물어봤을 때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후우..한가지 정도는 더 준비해 두는 게 좋겠군.."
그렇게 그린킹덤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이야기와 함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