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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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이 밀집된 도심이 화창한 가을하늘 아래서 메마른 빛깔로 물들었다. 마치 캔버스 속의 고정된 풍경화처럼, 그곳은 멈춰진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적막이 내려앉기보다는 산속에 세워진 사찰처럼 고즈넉하기만 했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의 지저귐이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인기척은 없었고, 도로에 널브러진 차량들만이 일상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도심 속에서 멈췄던 시계바늘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 없는 무대에 홀로 서듯, 그는 아무도 없는 도심을 홀로 거닐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 소리만이 도시의 유일한 인기척이었다.
중앙선을 따라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느긋했다. 유람하듯 도시 곳곳을 훑어보는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지방에서 상경해 번화가를 처음 마주하는 촌사람처럼 이곳저곳을 훑어보지만, 시선의 끝에 닿은 것은 문명의 이기가 아닌, 그 속에서 피어난 자연의 모습이었다.
길가의 가로수, 바닥에 떨어진 은행열매, 보도블록 사이로 솟아난 잡초들, 땅으로 내려와 총총거리며 뛰는 참새들……, 자연과 엮인 모든 것들이 그의 시선을 스쳐지나갔다.
짤막한 여정의 종착지는 대형마트였다. 건물 입구에 선 그는 주변에 흩어진 카트들 중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텅 빈 카트 하나가 잠금장치가 풀린 채 마트 정문에 놓여있었다. 카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쥐고 앞뒤로 움직여보던 그는 이내 카트를 밀며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붐빌 시간대임에도 마트 내부에서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상품들이 담긴 카트와 장바구니들이 주인 없이 이곳저곳에 흩어져있을 뿐이었다.
그는 카트를 밀며 굽이진 길을 따라 움직였다. 길게 이어진 생활용품, 주방용품 매장을 그대로 지나갔다. 시들어버린 채소와 과일들을 뒤로한 채 식품매장을 지나쳤다. 축산매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매장들을 지났음에도 카트에 담긴 물품은 고작 플라스틱 그릇 2개와 숟가락 1개, 500ml 생수 1개에 불과했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닿은 장소는 애완용품 매장이었다. 물품들을 훑어보던 그는 고양이 사료 한 봉지와 사료캔, 몇몇 간식을 카트에 담았다.
볼일이 끝났는지 출구를 향해 카트가 움직였다. 도난방지기를 지나쳐 나오려는 순간, 경보음이 울렸다. 잠시 멈춰선 그의 시선이 카트에 담긴 물품들로 향했다. 사료봉지에 부착된 도난방지택을 발견했지만, 개의치 않고 카트를 밀며 마트 밖으로 나갔다.
마트 안에서만 맴돌던 카트는 어느새 도로 한복판으로 나왔다. 중앙선을 기찻길삼아 나아가는 카트는 요란스러웠다. 그럼에도 탑승객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몸을 뉘이고 목적지를 향했다.
위잉위잉-
그저, 뒤에서 애타게 울리는 경보음과 하차 역을 놓친 도난방지택만이 작별을 고할 따름이었다.
.
.
.
1km 남짓한 거리를 나아가던 그가 카트의 방향을 틀었다. 중앙선을 나아가던 카트가 샛길로 빠졌다.
조용하던 아파트 단지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덜그럭거리는 소음과 함께 그가 카트를 밀며 단지 내로 들어왔다. 시가지와 마찬가지로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 단지.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카트가 201동의 주차장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냐옹-
자그마한 울음소리가 주차장을 울렸다.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차량 밑에서 기어 나왔다. 아직 청년기인지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녀석은 그의 발치로 다가오더니 계속 울어댔다.
그는 카트에 든 사료봉지를 찢고 플라스틱 그릇에 적당히 쏟았다. 사료캔을 따서 그 위에 내용물을 얹고 사료와 함께 숟가락으로 비볐다. 남은 그릇에는 물을 따랐다. 사료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녀석이 달려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물이 담긴 그릇까지 곁에 내려놓은 그가 두 걸음 떨어져서 고양이의 모습을 지켜봤다.
식사시간은 짧았다. 배를 채운 고양이는 물이 담긴 접시에 코를 들이밀더니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손을 핥으며 털 고르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그가 뒤를 돌아봤다. 군청색 교복을 걸친 여학생이 그곳에 서있었다.
한 자락의 감정조차 드러나지 않는 표정. 산 자의 모습이 죽은 자의 눈빛을 한 채 무뚝뚝한 물음을 던졌다.
"볼일은?"
"끝났어."
반면, 대답하는 그의 어조에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눈에 비치는 호기심과 감정의 기복으로 하여금 그녀와 상반되는 색깔이 그를 평범한 인간으로 비추었다.
"못마땅해. 의사소통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굳이 따라온 건 너야. 나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더라도 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
"사실이야. 하지만 너의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다음 일정이 지체되는 것도 고려해야 해."
"그건 좀 미안해지는걸."
그는 카트에 실린 사료를 바닥에 내려놨다. 간식들도 포장을 뜯어 몇 개는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나머지는 사료 옆에 포개놓았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마찬가지야.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자 우주의 주민이라고 착각하고 있더군."
"불쾌하겠네."
"그렇진 않아. 지금처럼 먼지를 쓸어내는 건 늘 있는 일이니까.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몰래 셋집살이하는 곰팡이를 귀찮아서 방치하다가 못내 닦아내는 기분……, 정도겠지. 이해돼?"
"이해돼.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이라도 이들은 표현력이 풍부하니까."
그녀의 시선이 간식을 먹고 있는 고양이에게 향했다.
"저 고양이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카트를 구석으로 밀어놓은 그가 돌아오며 답했다.
"당연히."
"이곳은 인간의 도시야."
"아니. 이곳은 더 이상 인간의 도시가 아니야."
그는 고양이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언했다.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도시야."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고양이는 기분 좋은 울음을 냈다.
"방금 새로운 요청이 들어왔어. 이왕 온 김에 달에 찍힌 발자국도 지워달라는데."
"요구사항이 많은 고객이군. 공전궤도 비틀어져도 상관없으면 해준다고 해."
"좋아. 먼저 가겠어."
그 말을 끝으로 초점 없던 그녀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여학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뭐죠? 여긴 어디죠?"
여학생의 물음에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말없이 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서 그녀의 고개가 올라갔고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평소보다 조금 짙어 보이는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꼭대기에는 흐릿한 달이 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소의 하늘이었다. 때문에 손가락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의아해할 무렵,
"어?"
여학생의 입에서 의문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태양이 없었다. 구름이 없으니 가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태양이 없는 하늘은 별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르렀고, 도시는 대낮처럼 밝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아파트에 의해 가려지지 않은, 시야가 확보된 공간. 여학생은 보았다. 지평선 끝에 걸린, 평소라면 보이지 않을 외곽선이 하늘을 구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반대편에 있는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하늘. 아니, 그것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었다. 하늘이라 착각한 그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거대한 행성이었다.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은 자신마저 찢으며 괴성으로 변했다. 본래라면 낼 수 없을, 고주파와도 같은 비명이 이내 성대를 파열시켜 목소리를 앗아갔다. 몸이 허물어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혼란과 고통이 그녀의 머릿속을, 쓰러진 사지를 뒤틀었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검게 물든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옷가지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분해된 그 장소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고양이를 찾던 그의 시선에 먹다 남은 간식만이 보였다. 그것이 못내 아쉬운지 빤히 쳐다보던 그가 하늘을 올려봤다.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말 못마땅했나보군."
그의 몸이 모로 쓰러졌다. 곧이어 여학생과 마찬가지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푸른 하늘이 걷히며 갑작스레 어둠이 내렸다. 흐릿하던 달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렷한 모습을 내비치며 별빛 사이를 가로질렀다.
태양계를 방문한 두 행성은 그렇게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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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매번 안타까운 기분이 듭니다. 버림받은 고양이에게서 나고 자란 새끼들은 콘크리트로 둘러친, 그들에게 있어서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도시에서 짧은 생을 살아가죠. 혹독한 겨울이 오면 열에 아홉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습니다. 나약한 생명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도태되는 것은 분명 순리겠지만, 과연 인간의 손으로 쌓아올려진 도시에서의 생활이 그 범주에 속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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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고양이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겠죠. 씁쓸할 따름입니다.
안녕하세요?
그저 눈팅하면서 간혹 글이나 남기는 엑셀리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