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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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뉴클론
리스 발리츠의 실종 사건 이후 배틀로더 프로젝트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대신 의회는 크라인 그로스가 기획한 새로운 클론 프로젝트를 승인하게 되었다. ESP를 강화한 ‘뉴클론’, 그것은 아크만 클론에 ESP 관련 유전인자를 강화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클론 씨드였다.
고어 하댄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조작하던 콘솔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메카닉팀이 사용하던 상황실에는 의회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위언 파블로는 중앙에서 크라인 그로스와 귓속말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좌우로는 다른 의원들이 나란히 서서 앞쪽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고든 섬너는 제일 끝자리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크라인 그로스의 목소리가 상황실에 울렸다.
“클론 기술은 원래 금지된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시는 의원님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술이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 500명이고 저 밖에는 5천만의 다른 존재들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만을 주장하시며 최근까지도 배틀로더를 개량하는 프로젝트를 지지하셨던 많은 분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는 거듭된 실패로 제어 가능한 힘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크라인은 고든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클론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노동력과 안전을 제공해주었고 그 덕으로 우리는 이제 생존의 문제를 벗어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클론 숫자를 늘리는 데는 합의된 의견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메카닉팀의 고마운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ESP 연구 뿐 아니라 클론 연구에서도 커다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크라인은 다시 한 번 고든을 바라보았다. 고든은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이미 싸이키메탈을 이용한 전투용 슈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크만 클론은 충분한 ESP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크라인은 정면의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금. 여러분에게 새로운 클론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영원히 이카루스를 군사적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우리의 동반자. ‘뉴클론’입니다. 화면을 보십시오. 첫 번째 뉴클론 ‘1N’입니다. 우리는 그를 프로토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슈트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의 체구는 아크만 클론보다 작았다. 보통 사람 정도의 체격.
모니터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에 약간 네모진 턱은 가운데 깊은 홈이 세로로 패여 있었다. 뉴클론은 아크만 클론과는 달리 특정한 유전자를 기본으로 하지 않았다. 뉴클론은 거의 완전한 재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클론 씨드였다. 그의 모습은 아크만이나 발리츠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프로토의 슈트는 짙은 회색이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프로토는 슈트의 헬멧을 썼다. 크라인은 프로토가 헬멧을 쓰자 오퍼레이터에게 눈짓으로 신호했다.
“지금부터 지켜보십시오!”
수기의 무인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프로토에게 날아들었다. 프로토는 무인기에 에워싸이기 전에 앞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인기는 속도를 높여 프로토를 좌우에서 포위해 들어갔다. 그때 가벼운 진동이 프로토 주변에 울렸다. 프로토의 슈트는 3배까지 ESP를 부스트 할 수 있었다. 옅은 빛이 슈트 주변에 잠시 뿌려졌다.
프로토는 순식간에 무인기를 따돌리고 앞쪽으로 나가서 돌아섰다. 무인기들은 연습용 표적을 프로토를 향해서 뿌려대기 시작했다. 프로토는 땅을 딛고 다시 무인기와 표적을 향해 뛰어가며 손을 뻗었다.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표적은 크게 조각나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계속 돌진해 들어가자 무인기는 거리를 두고 그에게서 떨어졌다.
남은 표적들이 공중에서 원을 그리다가 다시 그를 향해 방향을 잡고 날아들었다. 프로토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로 팔을 뻗었다가 짧은 기합과 함께 아래로 힘주어 내렸다.
표적들은 일제히 딱하고 금이 가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방향을 잃고 프로토를 지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프로토의 머리 위로는 표적의 파편이 만들어낸 하얀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지켜보는 모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크라인은 자신의 몸에 가루가 묻기라도 한 듯 양쪽 소매를 한 차례씩 쓸어내리며 말을 시작했다.
“보셨다시피 뉴클론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틀 로더처럼 너무 가공할 위력으로 제어 불가능한 상황을 일으키지도 않을 겁니다. 의회의 승인만 있으면 이제 이 프로토를 씨드로 하여 뉴클론을 배양하게 될 겁니다. 딱 3개월입니다. 이 배양이 완성되면 우리는 뮤턴트에게 거주지의 영토 분할을 요구할 생각입니다. 대신 파멜리드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요.”
고든 섬너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고든은 한발 앞으로 나서며 크라인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그런 협상이 클론이 완성된 후에만 가능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시다시피 뮤턴트들은 기본적으로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외교와 협상의 여지가 있어요. 뉴클론의 대량 배양? 설마 이야기가 잘되지 않으면 전쟁이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크라인은 입을 다물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고든 섬너를 쳐다보았다.
“필요하다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죠. 협상도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든 섬너는 그의 논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답답함이 솟구쳤다.
“그들에게 군사적 위협을 보여 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거주지에 대한 양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크라인은 재빨리 말을 받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땅에 내려서 거주지를 잡았을 때, 밤에 그들이 기습이라도 하면 무엇으로 우리를 지킬 건가요? 우리는 하룻밤 새 모두 하나하나 화살에 꽂혀 죽음을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든 섬너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계속했다.
“이곳은 우리가 아닌 그들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과 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라인 그로스는 짧게 코웃음 쳤다.
“고든! 그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자기네 영토에 발을 들인 파멜리드인을 화살로 꿰어 죽이고 머리 껍질을 벗겨 그들의 움막을 장식합니다.
역사란 피와 경쟁의 기록일 뿐입니다. 그들은 문명 퇴행의 결과이며 결핍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남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역사입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빅화이트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뉴클론은 지금까지의 실패에 대한 새로운 대안입니다.”
고든 섬너는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