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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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프에서 오염된 스페이스 헐크. 최단거리 우주 여행은 여러 문제가 따릅니다.]
초공간 도약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만능열쇠입니다. 우주를 돌아다니며 각종 외계 종족과 어울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우주 여행은 까다롭기 그지 없거든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다른 은하는 고사하고, 항성계까지만 가는 데도 수 십 년이 기본이죠. 이래서야 영웅들의 종횡무진 활약이 돋보이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시공간을 거쳐 초광속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은 꽤나 편리합니다. 엔진 하나만 그럴 듯하게 달아놓으면 아무리 먼 거리도 순식간에 주파하니 말입니다. 원리가 좀 다르지만, 워프라든가, 웜홀 통과라든가 하는 설정도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봅니다. 워프는 두 공간을 접어 거리가 0이 되는 지점을 통과하는 거지만, 어쨌든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거리를 여행한다는 결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초공간 도약과 워프, 웜홀 통과 모두 그 어떠한 실현적인 이론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요. 그러니 이 설정이 없었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나 우주탐험물은 장르 자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초공간이나 워프가 항상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장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하는 만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묘사하는 작품들도 있죠. 예를 들어, 성급하게 도약했다가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약 자체는 순식간일지 몰라도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좌표를 계산해야 하니까요. 거리가 멀수록 계산 시간도 길어질 텐데, 항해사들이 항상 컴퓨터를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우주에서는 언제 무슨 위협이 닥칠지 모르잖아요. 거대한 비행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고, 자기장 폭풍에서 벗어나야 할 수도 있고, 악의 제국이 추격할 수도 있죠. 특히 밀수업자나 반란군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게 일상입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도약해야 하고, 때로는 좌표 계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볼 우려가 있습니다. 그냥 외따로 떨어진 우주로 나오면 다행이지만, 혹시 태양에 너무 근접하거나 행성 내핵에 처박히기라도 하면 끝장입니다.
지도가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마 우주를 항해할 때 쓰는 지도는 항성과 행성, 성운 등을 기준으로 만들 겁니다. 지금의 별자리 지도와 그리 다르지 않겠죠. 그거 말고 딱히 넣을 게 없으니까요. 간혹 기상천외한 통로나 입구가 열리는 창작물도 있지만, 그건 차후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여하튼 우주 지도는 별이 기준이고, 별은 수명이 기니까 지도를 자주 바꿀 일이 없습니다. 초광속 도약은 엄청난 거리에 걸쳐 이루어지므로 업데이트 한번 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말입니다. 허나 우주가 항상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아닙니다. 소행성이 날아와 행성에 들이박기도 하고, 위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수명이 다 되어서 블랙홀로 변하거나, 신성으로 폭발할 수도 있죠. 몇 십 년 전만 해도 존재하던 별이 어느 날 폭발하거나 수축해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걸 업데이트하지 못했다면 잘못된 지도로 헤맬 우려가 있습니다. 우주에서 헤매는 건 그냥 길 잃는 것과 다르겠고.
[웜홀(블랙홀)을 통과하다 공포의 세계로 들어간 이벤트 호라이즌 우주선.]
간혹 엉뚱한 시공간으로 넘어가서 사고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죠. 초공간 도약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시험 단계일 때 그렇습니다. 도약 과정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라, 결과가 명확하지 않고, 그래서 의도했던 목적지와 전혀 다른 곳으로 도착합니다. 그나마 별다른 위험이 없는 곳이라면 다행인데, 꼭 이상한 차원으로 튀어나와서 끔찍한 참사가 생겨납니다. 가끔은 초공간이나 웜홀 드라이브가 잘못 되었다며 우주선 내부에 포탈 같은 게 열리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이런 우주선은 참사를 당한 뒤, 자신이 출발했던 일반적인 우주 공간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괜히 조사차 방문했던 다른 우주선까지 전염시키거나 물귀신처럼 끌고 가버려요. 이런 플롯의 작품은 초공간 도약보다는 워프나 웜홀 설정을 더 즐겨 쓰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차원을 넘어간다는 개념에는 워프가 더 어울려서 그런가 봐요. 초공간은 어디까지나 빛보다 빠른 초광속을 위한 통로랄까, 그런 쪽이잖아요.
작품마다 설정이 다르긴 하나, 초공간 도약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묘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엉뚱한 곳에 떨어지면 돌아갈 길도 막막합니다. 일반적인 항해라면, 길을 잃었다 해도 되짚어가면 됩니다. 왔던 길로 돌아가다 보면 언젠가 출발지에 당도할 테니까요. 연료와 물자만 충분하다면 말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항해는 지속적으로 위치를 파악할 테니, 길을 잃을 가능성도 낮습니다. 허나 초공간 도약은 다른 세계 혹은 차원을 넘어오는 거라 지나온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우주 지도나 성도를 검토해 현재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목적지까지 거리를 산출하고, 엔진을 가동시켜 다시 뛰어넘어야죠. 이럴 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도가 잘못 되어서 좌표 계산이 안 되거나, 아예 지도에 없는 지역이라면…. 음, 명복을 비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행성이 정착 가능하길 바라야죠. 어쩌겠어요.
이동은 순식간이지만, 상대적인 시간은 계속 흐르는 설정도 있습니다. 초공간을 지나든, 웜홀을 지나든, 먼 거리를 단시간에 돌파하는 것까진 좋습니다. 우주선 항해사 입장에서야 기껏해야 몇 초 혹은 몇 분이 지나가겠죠. 하지만 초공간 외부, 그러니까 일반 우주에서는 이미 세월이 엄청나게 흘렀습니다. 출발점과 도착점의 거리만큼요. A 행성에서 B 행성으로 가는 데 3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면, 초공간 도약을 해서 도착한 순간 30년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항해사에겐 그게 몇 분에 불과할지라 말입니다. 그러니 항해사나 여행자들은 자신이 항상 미래로 뛰어넘는다는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우주전쟁물에서는 이 점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초공간 도약을 하며 싸웠다간 10년이나 20년 후의 적함과 마주칠지도 모르잖아요. 10년 후의 적함은 더 발달한 기술로 무장했을 테고, 불리한 전황에서 싸우다 우주의 고철덩어리가 될 수도 있겠죠. 재수 좋으면 반대 상황도 벌어지겠지만.
[콜랩서 점프로 우주를 뛰어다니다가 영원한 전쟁을 벌이는 <영원한 전쟁>.]
초공간 도약을 할 때 항상 우주선에다 엔진을 장착하는 건 아닙니다. 관문 같은 걸 만들고, 우주선이 거길 통과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일 수도 있죠. 만일 이런 관문이 작동을 정지하거나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주 곳곳에 퍼진 인류는 갑자기 단절된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다른 항성계와 교류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이웃 행성이나마 간신히 왕래할 수 있겠죠. 여러 관문을 통과하며 항해할 예정이었던 우주선은 그대로 고립될 테고요. 자원이 풍부한 행성이라면 외부 교류 없이도 자체적으로 잘 먹고 잘 살 테지만, 식민지가 다 그렇게 사정이 넉넉하진 않을 겁니다. 테라포밍 중이거나 전진 기지 삼아서 척박한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있겠죠. 생활을 지속하려면 물자를 실은 수송선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야 하고요.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 물자 보급이 끊기면 사실상 세상이 망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초광속 항해 기술을 보유한 종족이라면, 상대 진영을 고립시키려고 이런 전략을 쓸지도 모르겠네요. 상대방 도약 관문을 망가뜨린 다음, 자기들만 초광속으로 신나게 날아다니는 거죠.
좀 더 빤따스띡한 설정으로는 초공간이 현실 공간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하도 도약을 많이 하다 보니, 현실 공간이 초공간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두 차원이 하나로 얽힌다는 뜻입니다. 위상이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만큼, 그 충격은 어마어마하겠죠. 폭풍이 일어나 근방 행성을 날려먹는 건 기본이고, 기괴한 거주자들이 몰려와 깽판을 치기도 합니다. 이런 설정을 이용하는 작품에서는 악마나 유령까지 나오더군요. 지옥이라는 게 사실은 초공간의 일종이었고, 악마라는 놈들이 알고 보니 여기에 기거하는 존재라면서요. 좀 더 리얼함을 추구하는 작품에서는 지옥이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고, 비슷하게만 묘사하지만요. 어쨌든 괴물이 쳐들어왔으니 인류 군대와 쌈박질을 벌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다른 차원에 속하는지라 일반 공격으로 처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처치했다 해도 완전히 사살한 게 아니라 잠시 약해진 것일 수도 있고요. 이런 양상은 전쟁물에 써먹기 좋은지라 탐험물보다 우주전쟁물에서 즐겨 이용합니다.
또한 초공간을 이동할 때 특별한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상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웜홀이나 워프 통로는 복잡하고 어두워서 초인을 길잡이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예지력에 가까운 정신 감응자가 필수적입니다. 이런 능력자가 없이, 일반인들이 함부로 도약을 시도했다가는 초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낯선 곳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예지력을 발휘하는 초인이 정상인일 리 없겠죠. 사고방식이 희한해서 툭하면 사고를 친다거나, 특별한 영양분을 섭취하거나, 초공간의 괴물과 교감할 수도 있습니다. 다루기 까다로운 인물들이라 자칫 한눈을 팔면 항해 도중 뭔 일이 터질지 모릅니다. 더욱이 초인을 독점하는 조직이라도 생기면 항해사는 더 고달파집니다. 아무나 이런 능력이 생기지 않으니, 그 수는 매우 희귀할 겁니다. 이런 능력자를 권력 집단이 독점하고 길잡이를 빌려주는 대가로 비싸게 받아먹을 가능성도 높죠. 만에 하나, 관리 소홀로 능력자들이 죽거나 피해를 입으면 초공간 도약이 불가능해지는 단점도 생기고요.
[소설 <듄>의 우주여행도 꽤 골치 아프죠. 스파이스를 섭취해야 우주 여행도 가능하거든요.]
이렇듯 초공간 도약이 겉으로는 쉬워 보여도, 따지고 보면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지적한 것 말고도 다양한 문제가 더 있을 듯하네요. 물론 그런 거 없이 슝슝 잘만 날아다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해서 다 비슷하진 않으니까요. 허나 어지간한 우주탐험물이나 전쟁물은 도약이나 워프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한 번쯤 다루기 마련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그에 관해 고민이라도 하거나요. 아예 이걸 테마로 삼은 걸작도 몇몇 있습니다. 어쩌면 초공간 도약에 여러 문제가 있는 건 그만큼 간단한 방법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항성계까지 후딱 다녀온다는 발상이 너무 간단해서 설정이 단순해 보이잖아요. 뭔가 깊이 있는 설정을 만들려면 도약이나 워프에도 이것저것 설명을 달아놔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건/사고가 안 터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창작물 속의 이야기고, 인류가 초공간 도약이나 워프를 할 일은 없을 테니 다행(?)이지만요.
※ 참고로 창작물에서 우주선들이 도약을 하는 모습도 제각기 다릅니다. 가장 흔한 묘사는 허공에 문이 열리고 거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 다음, 반대편에서 쑥~ 빠져나옵니다. 언뜻 보면 우주선이 반으로 쪼개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문은 대개 원형이나 타원형이지만, 드물게 다각형 문이 열리는 설정도 있습니다. 아니면, 문 대신 통로 같은 게 열려서 통과합니다. 웜홀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많이 쓰이는 듯합니다. 우주선이 서서히 빨라지다가 잔상을 남기고 슝~ 사라지는 방식도 있습니다.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거나 별들이 좍 퍼지는 효과를 더해주면 금상첨화. 7번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우주선이 자체적으로 엔진을 탑재한 게 아니라 관문을 설치해서 지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관문이 번쩍거리고 우주선이 짠~ 나타나는 식입니다. 이런 거 없이 우주선이 휙 사라져서 반짝 하고 나타나기도 하죠. 시각적으로 그리 멋있는 방법이 아니라 자주 써먹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형 포탈이 열리고 그걸 통과하는 식이 제일 멋있고 괜찮더군요.
뭐든 완벽한것을 찾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결국 저울에 장점과 단점을 놓고 무게를 달아봐서 쓰는게 보통이죠. 뭐 특이사항이라면 장점쪽에 올려놓은건 많은데 단 하나의 단점이 그걸 망쳐놓는다는 경우도 있지만 완전 단점투성이임에도 오로지 그 장점 하나만 바라보고 사용하는것도 있기 마련이죠. 초공간 도약도 결국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류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제공해주는것, 그걸 바라보고 사용하는것이 초공간 도약이 아닐까 싶네요. 뭐 예외로 실험마다 다 실패하고 선발대마저 도약실패로 망해서 그냥 포기한다면 모를까. 기술이란건 단점만 따져대면 다른 기술에 의해 도태되거나 스스로 사라지기 마련이죠.
아, 그나저나 저는 원형 포탈도 멋있긴 한데 관문이 상당히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문은 원형 포탈보다는 좀 단점도 많고 열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주에 구조물을 고정시켜둔다는게 꽤 겉모습은 멋있으니까요. 그래도 원형 포탈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던브링어'라는 작품에서는 몇몇 능력자만이 개인적으로 공간 도약을 할 수 있는데, 다차원의 존재에게 오염될 위험이 있더군요.(오염되면 괴물로 변하여 행성 전체까지 오염시켜 그 행성은 버려야된다는 설정입니다. 결국 한사람의 오염으로 행성까지 버려야 됩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다차원 거대괴수의 공간 도약으로 도망가는 씬이 있는데 자신의 공간을 종이접기처럼 접어서 사라졌다는 신선한 묘사입니다. 문을 표현하지 않은 공간도약도 있네요.
게다가 여담이지만 블랙홀의 위치를 알고있으면 그 블랙홀의 파장들을 워프 같은 걸로 가져와 배리어, 공격 등으로 쓰는 방법 도 있더군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자면 영화 '플라이'식의 위험도 있고 레플리케이터에서 잉여 사본이 나오는 소재도 있죠. 이제야 다들 클리셰가 되어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