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에 나오는 밀레니엄 팔콘은 초광속 도약이 빨라 루크 일행의 목숨을 구해주는 일등공신입니다. 제국군에게 쫓길 일이 많은 혁명군 신세인지라 빠른 우주선이 그만큼 요긴하죠. 반면 이 물건은 걸핏하면 고장이 나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제국의 역습>에서 밀레니엄 팔콘이 호스 행성에서 탈출하려다 제국군에게 잡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때문에 나중에 베스핀까지 추격 당합니다. 만일 호스 행성에서 초광속 도약 장치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베스핀까지 추격당할 일도 없었을 테고, 한 솔로가 그렇게 탄소 냉동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모든 비극은 결국 밀레니엄 팔콘에서 출발했다는 겁니다. 우주선한테 죄를 따질 수야 없긴 합니다만.

 

사실 한 솔로 입장에서는 밀레니엄 팔콘이 중요할 때마다 고장이 나기에 밉상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는 안 나오나 그 이전에도 밀수업을 하며 숱한 고비에 빠졌을 걸요. 허나 <제다이의 귀환>에서 솔로는 팔콘을 꽤나 아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란도 칼리시안에게 우주선을 넘길 때 마치 오래된 벗을 대하는 듯하죠. 란도 역시 밀레니엄 팔콘이 툭하면 말썽이고 잔고장이 많다는 걸 잘 알 겁니다. 원래 자기 우주선이었으니까 한 솔로보다 더 잘 알 지도 몰라요. 허나 란도 역시 팔콘이 나쁘다고 평가하지 않으며, 위험한 작전에 참가할 때 기꺼이 제국 함대까지 이 우주선을 몰고 갑니다. 한 솔로야 원래 무대뽀니까 그렇다 쳐도 란도처럼 사리를 따지는 사람까지 팔콘을 신용합니다.

 

츄바카는 팔콘에게 딱히 어떻다는 입장을 보이지 않습니다. 솔로와 함께 수많은 항해를 했으므로 그만큼 애증이 쌓였을 법한데, 좀 무덤덤한 것 같아요. 고장이 나면 화풀이를 하거나 선체를 두들기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럴만한 행동이라 딱히 의미를 부여하긴 힘듭니다. 솔로와 란도 다음으로 팔콘과 가까운 인물인데, 감정표현이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우키라서 그럴까요. 솔로나 란도야 인간이니까 감정표현이 쉽겠지만, 우키는 그렇지도 않잖아요. 인간이 아닌 주요 탑승객으로는 C-3PO와 R2D2도 있는데, 3PO는 팔콘이 뭐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 같진 않습니다. R2는 감정을 안 드러내는 성격답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고요. 그냥 어디가 고장이 났다고 보고만 할 뿐입니다.

 

레이아와 루크는 팔콘을 처음 볼 때부터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겉보기엔 완전 고물이니 이런 우주선에 목숨을 맡길 수가 없었겠죠. 특히 <제국의 역습> 중반부까지만 해도 레이아는 팔콘을 안 좋게 봤던 듯합니다. 이는 단순히 팔콘이 싫다기보다 한 솔로와 엮이는 감정이 복잡해서 그런 탓도 있죠. 위급할 때 구해주니까 고맙긴 한데, 평소 말썽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게다가 밀레니엄 팔콘은 한 솔로 전용 우주선이니 솔로의 이미지가 팔콘에게 그대로 박혔을 수도 있죠. 아마 레이아에겐 팔콘이 그냥 우주선이 아니었을 겁니다. 루크는 <제국의 역습>에 들어선 팔콘을 거의 신뢰하게 된 것 같아요. 투덜거리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옵니다. 하긴 팔콘을 탈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도 밀레니엄 팔콘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우주선입니다. 본래 말썽만 일으키는 캐릭터는 관객에게 짜증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뭐, 자자 빙크스만 해도 그렇죠. 희한하게 팔콘은 그렇게 큰 말썽을 일으켜도 밉지가 않습니다. 물론 팔콘은 캐릭터가 아니라 사물입니다만. 작중 활약만 보면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마 말썽이 많긴 해도 한 번씩 제국군을 따돌리며 초광속 도약을 하는 장면이 멋져서 관객들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밀레니엄 팔콘을 의인화한다면, 괴팍한 노병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늙어서 겉모습도 볼품없고 툭하면 잔병치레를 자주 하지만, 젊은이들에겐 없는 노련함을 가끔씩 발휘해주는 노병이요. 남들이 다 무시하지만, 사실은 믿음직한 동료죠.


하지만 밀레니엄 팔콘이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실제로 이런 걸 몰고 다니면 성격 많이 더러워질 것 같습니다. <구공화국의 온라인>에 우주 비행이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이렇게 걸핏하면 망가지는 우주선이 나온다면 이걸 쓰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될까요. 함대 전투가 벌어졌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우주선에 시동이 안 걸려 전투에 지고 다른 플레이어에게 욕을 먹거나 아이템 획득 기회를 뺏긴다면 어떨까요. 아마 이거 몰고 다니는 플레이어 별로 없을 걸요. 최고 속도라는 장점이 있으나 거의 도박에 가깝잖아요. 밀레니엄 팔콘은 매력적인 우주선이긴 하나 소설이나 영화에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게임처럼 플레이어가 직접 세계관에 참여하는 매체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어쩌면 밀레니엄 팔콘의 진짜 매력은 흔히 말하는 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고로 빠른 우주선이라는 장점과 걸핏하면 망가진다는 단점 사이에 존재하는 갭이 매력인 거죠. 고물 우주선이 가장 빠르다는 아이러니가 오히려 관객에겐 재미있게 다가오는 겁니다. 그리고 보면 망가지는 게 주특기인 메카닉도 더러 있죠. 하나 예시를 들자면, <백 투 더 퓨처>의 드로이안은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영화의 절반은 브라운 박사와 마티 맥플라이가 드로이안을 움직이려고 고생하는 내용입니다. 이 녀석은 밀레니엄 팔콘처럼 망가지는 건 아니지만, 연료가 괴악해 시동이 안 걸리거나 타이머 잘못 눌렀다고 엉뚱한 시대로 가거나 하니까요. 그리고 보면 둘 다 80년대 SF물에다가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비슷한 감성의 제작자로군요.


흔히 메카닉은 고장 안 나고 튼튼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개 가전 제품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잖아요. 허나 이런 상식을 뒤집어서 인기를 끄는 메카닉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밀레니엄 팔콘이나 드로이안만 이야기했으나 알고 보면 비슷한 사례가 꽤 많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