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믹>을 보면, 인간 흉내를 내는 거대 바퀴벌레가 나옵니다. 바퀴벌레는 인간과 형태가 전혀 다르지만,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해 비슷하게 보이려고 하죠. 우선 이들에겐 가면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등껍질 일부가 인간의 얼굴과 흡사합니다. 위장할 때는 이 등껍질로 머리를 가립니다. 그리고 커다란 날개로 몸을 휘감아 코트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외골격이 있는 벌레 특유의 몸통을 가릴 수 있죠. , 등껍질(가면)로 머리를, 날개(코트)로 가슴과 배를 가려서 벌레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이들이 이족보행을 할 줄 안다는 겁니다. 인간과 똑같은 이족보행은 아니지만, 인간 눈에는 그게 비슷해 보입니다.

 

거대 바퀴벌레, 그러니까 작중 유다라고 불리는 이놈들의 이족보행은 둘째 다리와 셋째 다리로 몸을 지지해 똑바로 서서 걷는 겁니다. 사족보행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둘째와 셋째 다리를 합쳐서 두 발처럼 걸으니 여하튼 이족보행이 됩니다. 첫째 다리는 당연히 팔 역할을 하고요.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통틀어 이 세상에는 인간처럼 곧추서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장류라 할지라도 척추를 완전히 펴지 않고 허리가 구부정하죠. 팔보다 다리가 짧아 어기적거리며 걷고요. 다른 포유류, 가령, 곰도 위협용으로 두 발로 서지만 몸에 비해 다리가 짧습니다. 조류는 두 발로 걸으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몸을 가로로 뻗어야 해요. 파충류(도마뱀 등)는 허리를 펴더라도 다리 관절이 인간과 다르죠. 양서류도 마찬가지. 어류는 말할 것도 없으며, 무척추동물은 아예 인간과 비교할만한 형체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인간처럼 서서 걷는 동물은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이 흔히 보는 생명체 중에 그런 동물은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인류는 곧추서서 걷는 동물은 무조건 인간이다란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았을 겁니다. 그런 형체의 동물이 인간 밖에 없으니까 뇌가 비슷한 형태를 보면 그걸 인간으로 해석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이족보행을 하는 덕분에 인간은 윤곽선이 단순합니다. 다른 동물은 신체와 다리가 수평을 이루지만, 인간은 팔/다리가 신체와 수직 평형을 이루죠. , /다리가 신체의 평행선으로 보입니다. 몸을 똑바로 펴고, 그 위에 둥그스름한 뭔가가 달리면 인간 비슷한 형태가 됩니다. 거대 바퀴벌레 유다는 바로 이런 착시를 이용합니다. 인간처럼 걷는 동물은 없다는 것, 이족보행을 하는 덕분에 인간은 윤곽선이 단순하다는 특징 말입니다.

 

사실 등껍질 가면이나 코트 같은 날개는 옵션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가면을 써도, 아무리 두터운 날개로 가려도 전체 윤곽선이 달라지면 아무런 소용도 없죠. 네 발 동물이 가면 쓴다고 해도 (체고가 낮으니까) 동물이라는 게 금방 드러납니다. 코트라는 건 이족보행에 걸맞는 옷차림이니 네 발 동물은 흉내를 낼 생각조차 못 하겠죠. <폴아웃>을 보면 지능이 높아 인간처럼 행동하는 데스클로가 나옵니다. 이 데스클로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데, 이족보행을 하기 때문에 겉모습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인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데스클로임에도 얼마든지 인간 사회에 어울리죠. 만약 데스클로가 네 발로 걸었다면 이런 위장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이족보행을 하는 건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이족보행을 하면 인간처럼 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아마 바퀴벌레 유다도 그렇게 정의했을 겁니다. “인간은 두 발로 걷기에 팔/다리가 몸통과 수직 평행이다. 따라서 사지가 수직 평행한 신체를 만들면 인간처럼 보인다.”고 판단했겠죠. 여기에 좀 더 정교하게 위장할 목적으로 가면과 코트를 이용했고요. 영화에서는 가면처럼 생긴 등껍질을 중요하게 묘사했으나 진짜 중요한 건 이족보행 흉내를 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두 발로 걷는다는 거야 상식이지만, <미믹>을 보니 그 점이 꽤 새삼스러웠습니다. 인간만의 특징을 바퀴벌레에 적용한 디자인이 참신해요. 영화 자체는 수작 반열에 드는 작품이 아닙니다만, 유다 디자인만큼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란다고 봅니다.